2011.08.16 09:25

성배:행복한 세상(계속)

조회 수 618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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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사가 가져온 맛모를 아침 식사를 끝내고, 나는 하릴없이 침대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았다. 움직이면 안되니까 이러고는 있지만, 진짜 과하다 싶을 정도로 멍한 상태로 하루가 지나간다. 정신이 또랑또랑해지는건 꿈꾸는 중이나 그 전후 정도고, 나머지는 그저 시간 때우기. 누가 나를 보면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영혼이 존재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퇴원하거든 어설프게 도와주는 일은 절대 없으리. 깁스를 하고있는게 얼마나 찝찝하고 짜증나고 냄새나는지는 겪어본 사람만 안다. 벗기고보면 찐득거리고 뭔 검은 지우개똥? 데일밴드 뜯은 자리에 남아있는 것 같은게 붙어있는데다가 냄새는 또 쉰내같은게 구리구리.. 그런걸 씻지도 못하고 붙여놓고 살면 어쩔땐 진짜 의사를 석고로 때려버리고 싶어진다. 물론 이건 그냥 하는 소리. 석고하고는 고등학교 미술 시간때 만들었던 손 모형 이후로는 인연이 없길 바랐는데.. 이대로여선 석고하고 미래의 아내하고 합동결혼식 올릴 기세다. 오오, 부부의 부적절한 낭만 불.. 집어치워.

 

 기분이 안좋아져서 냉장고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이럴땐 단 것을 먹으면 좋아진다고 했었지. 아오, 유럽쪽 정통 초콜릿보단 살 안찌지만 몸에도 안좋은 망할 팜유 함유 우유 초콜릿. 뭐여 이 라임은?

 

 초콜릿을 보니까 내 코를 주저앉힌 흑형이 생각난다. 따지고 보면 이 초콜릿도 그 사람 때문에 깨작거리고 있는거지. 저번에 그 중딩하고 시비붙은 외국인. 안말리면 큰일 날 것 같아서 뛰어들었는데 '넌 뭐야' 하는 눈빛이랑 잠깐 마주친 다음 기절해버렸다. 안면에 클린 히트. 아 망했어요. 낙법도 못치고 엉덩이로 착지. 다 나아가던 정강이뼈에 금 다시 간건 서비스. 내가 주저앉은 상태에서 전혀 움직이질 않자 그 외국인은 당황한 듯 두리번거리다가 줄행랑쳐버렸다고. 잘못 때려서 사람 하나 죽인줄 알았나보다. 그래도 장소가 지나가는 사람이 많은 지하철 역 근처여서 누군가가 119를 불렀고, 앰뷸런스가 와서 날 실어갔다. 그러고보니 멍한 상태에서 사이렌 소리를 들은 것도 같네. 정신을 차려보니 병실이었다. 콧구멍에 솜 끼우고 뭘 먹는다는게 얼마나 곤욕이었는지. 우동 후루룩 소리내면서 먹는거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사람이 느끼는 맛이란건 혓바닥의 미뢰에서 느끼는 맛 말고 코로 들이쉰 냄새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맛이 안느껴지니까 눈만 가리면 플루토늄도 상쾌하기 먹을 수 있을 것 같겠냐?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숨도 입으로 쉬어야해서 뭐 먹다보면 사레들려서 콜록거리기 일쑤고, 자고 일어나면 병실에 내 입냄새가 차있어서 제일 먼저 일어나서 환기를 시켜야한다. 숨쉬다가 뭐가 씹히는 느낌이 들면 화장실로 달려가야하고. 기분 구린거 못참고 바닥에다 뱉었다간 아밀라아제가 다량 함유된 벌레경단을 황반에 새기게된다. 벌레는 단백질이 대부분이라서 입에선 소화 잘 안되니까 걱정마라! 맛은 둘째치고 불편해서 사는 것 같지가 않다니까.

 

 더러운 이야기는 갈무리하고, 하여튼 수술이나 기다리면서 누워있는게 고작이다. 콧구멍 양쪽에 다 끼워넣은 솜은 절대로 빼면 안된단다. 간호사 왈, '혈액형도 O형이신데 Rh-형이시면 솜 빼는 날로 돌아가시는 거예요. 절대 빼지마세요'랜다. Rh-형은 아니지만 O형이 수혈받기 힘든건 맞는 말이고. 아오. 완치된게 아니라 반쯤 나아가던 몸이었는데 또 다치다니. 대범한 척 웃어제꼈지만 불편한 건 불편한거다. 목발도 다시 짚고 다니고..

 

 상태가 이렇다보니 내가 할 수 있는건 휴대전화로 노닥거리는게 전부다. 뭔 타이쿤도 하고~ 화투도 치고~ RPG도 하고~ 요리도 하고~ 4세대 인터넷인가 휴대전환가가 나왔다고 난리인데 나는 와이파이도 제대로 못잡는 미묘한 놈을 쓴다. 한 달에 50MB밖에 못쓰는 염가형 계약이라 일주일도 못버틴다. 나란 남자 이런 남자. 세상하고 아주 단절이 되셨어요.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도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눈치라, 무리해서 관계를 만들어봤자 좋은 소리는 못들을 것 같고. 이래저래 고독한 상황이다.

 

 그런데 나한테 고독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지는 잘 모르겠다. 한 달 동안 집에서 안나가고 지내도 전혀 답답한 느낌이 없는 데다가, 문자나 메일 온다고 설레이지도 않는다. 싸이월드나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친목활동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정성은 없다. 그냥 게임이나 하고 땡이지.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기쁘긴 하다. 하지만 대개 내가 먼저 다가가는 입장이 아니면 관계가 엄청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기가 센 사람 하고는 친해지지 못한다. 누군가가 불러서 나가는 자리에도 오래 못있고.. 아하? 사람이 아니라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은거구만. 아니면 내가 전생에 고양이였던지. 인간관계가 무슨 선빵필승이냐. 내가 혹시라도 뭘 기른다면.. 뱀 같은걸 기를 것 같은데. 그래가지고서야 누가 집에 찾아왔을 때 뒷감당 못할 확률이 10할이다. 또, 먹이가 살아있는 쥐나 알 뭐 그런 종류일텐데, 사료처럼 한가득 사가지고 쟁여놓고 두고두고 먹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먹이 챙겨줄 때마다 외출해야할텐데, 소화하는데 몇 주는 걸린다지만 귀찮아서 어떡하냐. 못해. 안길러. 그냥 안팔려서 상품성 떨어질 때까지 가게 안에 갇혀있다가 보신 재료로 팔리는게 펫 숍 동물들의 운명이지.

 

 하지만 펫숍의 동물과 별 차이 없는게 인간의 삶이다. 애초에 인간도 동물이니까. 동물들이 겪는 모든 일, 유기나 납치, 학대와 무차별 살육은 인간들도 겪고 있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애완뱀에 대해 지껄인 것은 인간이 같은 인간을 보고서 보이는 반응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이런 확대해석을 들으면 '그냥 괜히 해본 소리인데 그럴 것 없다'는 생각이고, 나도 그냥 하는 소리가 맞다. 하지만.. 그 그냥에 엄청난 폭력이 숨어있는 것이다. 난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글쎄? 본심은 결국 속물이 아닌가 싶다. 착한척하는 것 자체가 죄의식에서 오는 것일는지도.

 

 ..초콜릿을 하나 더 꺼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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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1.08.16 16:19

     애완뱀 얘기가 묘하게 정곡을 찌르네요. 주인공은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지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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