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19 04:31

[꿈꾸는 마녀]마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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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꿈>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마녀는 꿈꾼다.


그 꿈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오로지 그 자신뿐이다.


 


눈발 날리는 설원에 서서, 신부는 피눈물을 쏟았다. 북극권에 속한 얼어붙은 땅이었다. 내뱉는 숨결조차 얼어붙는 공간에서 신부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붉은 물기는 유독 얼지 않았다.


축복받아야 마땅할 결혼식이 저주받았다. 눈과 같이 순결한 흰색 웨딩드레스는 방금 전까지 곁에 있던 신랑의 피로 얼룩졌다. 요란한 총성이 있은 직후 벌어진 일이다.


북극에 가까운 바다에서, 유빙 위에 단 둘이 치러진 조촐한 혼례였다. 주변은 적막하고 고요했다. 흩날리는 눈발이 두 사람을 축복하는 유일한 하객이었다. 소박한 결혼식장에 뛰어들어 엉망으로 만든 탄환은 그 얼음 덩어리서부터 조금 떨어진 한 포경선 갑판 위에서 쏜 것이었다. 우연히 지나던 선박, 내기삼아 바다표범이나 북극곰 따위를 상대로 사격 솜씨를 뽐내던 선원들에겐 신부의 결혼식을 망칠 의도 따윈 없었다. 그저 100여 미터 넘게 떨어진 두 사람의 모습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변명하자면, 단순한 사고였을 뿐.


결과적으로 총을 쏜 선원들이 신부에게 변명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얼어붙어 잔뜩 붉게 변한 손으로 눈을 긁어모아 신랑을 묻어보려 했던 신부는, 도저히 뜻대로 되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신랑을 차가운 바닷물 속에 수장하고는 그 포경선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떼자 그녀의 분노에 이끌린 유령들이 그 뒤에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인간 아닌 신부에겐 포경선 선원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적개심을 갖는 것이 문제될 게 없었다. 신랑을 죽이고 단 하나 남은 행복을 가로챈 인간들에게, 신부는 끝 모를 원한을 품었다. 그에 따라 온갖 형태를 가진 새카만 유령들은 더더욱 많이 신부의 뒤에 따라붙었다. 신부가 낳은 것이나 다름없는 유령들은 그녀를 따라 모든 것을 부수고, 집어 삼키고, 끝내는 그들을 탄생시킨 신부마저도 모두 삼켜버릴 것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존재하는 것은 저주이며, 그들을 존재하게 만든 것 역시 저주할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 신부의 무리가 포경선 한 척을 침몰시킨 것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신부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아이슬란드 레이야비크로부터 더블린, 에딘버러를 거쳐 영국 전체에 혼란과 공포를 퍼트린 직후였다. 도버 해역을 넘어 대륙에 올라온 웨딩드레스 차림의 재앙에 대해 ‘아이슬란드 신부’란 이름이 붙었다. 사람들이 아는 것은 그녀와, 그녀 뒤를 따르는 유령들의 무차별적 파괴뿐이고, 그 이전 포경선이 쏜 탄환, 망쳐버린 결혼식에 대해선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가 대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더더욱 아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이야기는 대체로 이와 같다.


 


이 세계에 마녀가 나타난 것은 그보다 오래되었다.


어느 순간, 불현듯 나타난 마녀를 최초로 만난 것은 그 유명한 ‘주인’, 50년 가까이 가장 뛰어난 세계의 균형자였던 한 인간이었던 듯하다. 맨 처음 마녀는 ‘주인’과 대립했지만 어떠한 이유로 굴복했다. 이후 ‘주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마녀는 항상 그 곁에 있었다. ‘주인’은 마녀에게 인정받은 전 세계 유일한 존재였다. ‘주인’이 태어나면서 세계는 평화로웠고, 그가 아무런 전조 없이 세상을 떠난 이후로 세계는 혼란해졌다. 밤은 더 이상 낮의 연장이 아니었고, 낮은 더 이상 밤의 다음이 아니었다. 서로 화해하지 못하고 갈라선 부부처럼, 낮과 밤은 서로 갈라졌고, 인간도 인간 아닌 것들과 서로 갈라섰다. 해가 떨어지면 세상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극소수 밤의 세계에 남은 인간들은 완전히 삼림으로 변한 주변 경관에 낯설어했고, 그 삼림 속에 사는 인간 아닌 밤의 주민들을 두려워했다. 이내 그들은 울창한 삼림 속, 얼마 남지 않은 콘크리트 폐허 속에 숨어 언제 죽을지 몰라 벌벌 떨면서 해가 뜨기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반대로 해가 뜨면 인간 아닌 밤의 주민들이 잔인한 인간의 눈을 피해 여기저기 숨어 다녔다. 모든 존재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주인을 원망했다.


‘주인’이 떠난 후 세상은 소란스러웠지만, 마녀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얼마 안 되어 마녀는 자신의 반려란 여자를 데리고 옛 ‘주인’ 집을 차지해 틀이 박혔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인간들을 제외하고 세계 모든 이들의 눈이 빈 ‘주인’ 자리와, 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마녀에게 쏠렸다. 마녀가 있는 한 어느 누구도 함부로 ‘주인’을 자칭할 순 없었으므로.


세상에 알려지는 모든 이야기는 대체로 이와 같다.


 


정체모를 무리가 있었다.


수많은 귀신들, 고통 받고 버림받아 양식도 물도 모르고, 남편과 아내, 어미와 자식도 잊은 무리는 어느 순간 갑자기 밤과 낮의 세계 양쪽 모두에 나타났다. 의지도, 목적도 없는 이들을 이끄는 유일한 자는 오로지 ‘사랑하는 딸’이라 불리는 예닐곱 살 가량의 소녀다. ‘사랑하는 딸’ 자신이 곧 그 무리 전체와 같다고 하는 건, 그녀 이외 이 무리에 계획을 가진 자가 아무도 없는 탓이다. 어쨌건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청삽살개와 유령 가마와 출몰하는 그것이 무엇을 하는지, 또 무엇을 하려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그들은 위협적이었다. 동시에 무엇을 할지 모른단 점에서 어떤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았다. 마치 다른 세상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그들은 알게 모르게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의 입에서도 그들의 이름은 들려오지 않았다.


무릇 세상에 알려지는 모든 이야기는 대체로 이같이 무의미하다.


 


이야기란 무의미하다. 잘려 나가고, 과장되고, 일부는 무시하는 모든 이야기는 이처럼 무의미하다.


마녀에게 모든 것은 무의미하지 않다. 언뜻 꿈처럼 일관성 없어 보이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녀야말로 진정 이 세계를 사랑한 나머지, 그것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자다. 통째로 집어삼키는 자의 주변엔 이야기가 남지 않는다. 남는 거라곤 오롯이 선명한 꿈의 흔적뿐이다. 마녀에게 있어 남은 흔적은, 아는 사람 이외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어떤 이의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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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정말로;;


 


[꿈꾸는 마녀] 제목으로 올린 단편들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이야기라기보단 내용정리에 가깝습니다만.


조만간 뭔가 제대로 된 얘기를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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