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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말다툼도 하고 머리칼 부여잡고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집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유희는 계속 그 집에 틀어박혀 다른 것들까지 끌어들이며 온갖 사건을 일으켜대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분하고 씁쓸하기 이를 데 없는 기억인데, 어째서 자꾸 떠올리는 걸까. 그러한 불쾌감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사라지는 건 또 무슨 이유에설까.


'아가씨'가 가져온 참외를 함께 나누어 먹으며 마당 구석에 핀 동백꽃을 보고 있는데, 문이 활짝 열리면서 마침내 그 여자, 유희가 나타났다.


"나도 한 조각."


"손님 온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지?"


내가 비꼬아 말했지만 그녀, 유희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접시에 담긴 참외 조각 먼저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여전히 검은 정장 코트에 챙 넓은 여성용 검정 실크 모자 차림이었다. 보는 사람이 답답해하기 이전에 열이 올라 쓰러지지나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요즘 날씨 꽤 덥지?"


이렇게 말하며 유희가 모자를 벗자, 그 아래 드러난 창백한 얼굴엔 땀 한 방울 맺힌 흔적도 없었다. 역시나 '마녀'. - 엄마를 '주인'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모두 유희를 그렇게 불렀다.


"이 더운 날 그렇게 입고 창고에 틀이 박힐 생각이 잘도 들었네?"


비꼬아 말했지만, 사실 이 무신경하고 제멋대로인 마녀에겐 씨도 먹히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윤주 유품들을 둘러봤지."


도리어 유희 대답에 내가 흥미가 생겨서 슬며시 물었다. 엄마를, 유희는 항상 윤주라는 성과 이름으로 불렀다.


"뭐 좀 찾았어?" "역시 윤주란 생각이 들었지."


무슨 뜻일까.


"아무것도 없더라고."


놀림 받았단 사실을 깨닫자 곧장 열이 올랐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생각은 간절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그래 뭐 어린애도 아니고.


유희는 말을 계속했다.


"사실 당연한가? 윤주 말이야, 그렇게 막강한 힘을 아무 계시나 전조도 없이, 의지할 매개도 없이 써댔거든. 어떨 땐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고 자연스레 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 아, 뭔가 했구나, 라고 깨달을 때쯤엔 벌써, 그녀가 원하던 데로 이루어져 있었어."


"잘은 몰라도 대단하게 들리네."


대단하지, 라고 유희는 강조했다.


"어떤 형태로건 세계를 변화시키려면 세계를 납득시켜야 해. 치성이니, 의례니, 그런 거추장스런 과정이 필요하단 말이야. 나도 마찬가지고."


'마녀'로서 그녀가 어떻게 '마법'을 부리는지는 이미 봐둔 적이 있어 쉽게 이해했다. 그녀의 경우, 과정에 해당하는 것은 아마도 '향을 피우는 행위'일 것이다. 유희가 향을 피우고 그 연기가 주변을 자욱이 채우면,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조종하고 바꾸었다.


엄마도 이들처럼 마술 같은 걸 부릴 수 있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자식들 앞에서 그런 내색은커녕 흔적이나 증거조차 보이지 않았다. 유희가 다녀온, 그 창고 아니고선 향이건 다른 무엇이건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게 존재한다면.


"윤주는, 자신의 그 모든 일상을 스스로 원할 때마다 치성이나 의례가 되도록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 공기놀이나 사방치기를 하다가도, 콧노래를 부르다가도, 요리를 하며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하다가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호소한 게 아닐까."


유희 말이 사실이라면 대단한 일이 아닐까. 세상 일 모두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니까.


그렇게 자기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자식들도 모르는 구석에서 제멋대로 살았을 엄마를 생각해 보았다. 엄마 당신을 남들보다도 모르는 딸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지 알기나 했을까. 어느 날 당신이 죽고 없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 당신 친구이자 딸이라고 하면 자식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느낄지 알고는 있었을까.


"신랑."


'아가씨'가 유희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언뜻 그녀 얼굴을 보았을 때, 유희는 내게 단 한 번 보이지 않았던 낯선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난 것처럼도 보이고, 슬픈 것처럼도 보이는 그 표정은 짧은 순간 강렬하게 머릿속에 박혔다.


유희는 금세 표정을 풀고 한 팔로 가볍게 '아가씨'를 끌어안아 뺨에 키스한 뒤 미소 지으며 놔줬다. 평소라면 온몸에 닭살이 일어 뭐라 한 마디 쏘아 줬을 테지만, 그 순간엔 마치 두 사람이 진짜 연인처럼 느껴져 거부감이 일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아가씨'를 유희는 줄곧 결혼한 사이라고 밝혔고, '아가씨'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여자끼린데, 정말 아무 문제없는 걸까.


문득 유희가 말을 꺼냈다. 표정은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이었지만, 목소리는 진지했다.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하고 바래본 적 없지?'


무슨 소린가 하고 쳐다보았는데, 유희는 그다지 내 반응에 관심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이야기만을 계속 이을 뿐이었다.


"태어나면서 사명이나 뭔가 그럴듯한 이유는커녕, 단지 자신이 어떤 변덕이나 사고로, 특별히 스스로 바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 바란 것도 아닌데 이 세상에 떡 하니 내던져졌다는 걸 깨달았다면, 어떤 기분일 거 같아? 상상이 가?"


나는 누군가 지금 눈앞에 있는 유희처럼 무섭게 '웃고 있는'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확신하거나 증명할 수는 없었지만, 어렴풋이 느껴지긴 했다. 유희는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녀석에게도 반드시, 내가 지금 느낀 처절한 공포와 분노, 충격을, 지금 보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돌려주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겠어?"


"네가, 혹시?"


아니라는 것은 알면서, 그 험악한 기세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물었다. 혹시, 엄마가 죽은 건 네 탓이 아니냐고.


잠시 동안 팽팽하게 긴장된 공기가 어느 순간 편안하게 풀어지는 듯 느껴졌다. 무심결에 한숨을 내쉬고 내가 보니, 유희는 평소처럼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런 짓 할리 있겠어? 내 이름, 예전에 가르쳐준 걸 잊은 건 아니지?"


접시에 고인 과일 물을 손가락 끝에 묻히곤, 그녀는 마룻바닥에 사망유희(四望遊戱)라고 적어 보였다. 사망유희, 희, 노, 애, 락 네 가지 고통을 모두 잊고 즐겁게 노는 이란 뜻. 마음 한구석에서 아우성치는 목소리를 간신히 억누르고 나는 그녀 말을 그대로 믿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아우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한 줄기 불안감은 아무리 애써도 온전히 지울 수 없었다. 웃기지마, 사실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 사망유희란, 네 스스로 붙인 이름의 진짜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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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시험이군요.


...금방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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