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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집 앞 길 따라 쭉 올라가면 나와요. 엄마 무덤 말곤 다른 무덤도, 집도 없어요.”
“방금 누가 위로 올라가던걸요. 뭐더라, 이렇게 잔뜩 부풀고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무슨 옷?”


언제 왔는지, 아페 리제도 다가와 물었다.


“요전에 찍어 오신 사진 중에 여자가 입었던, 새하얀 옷 있잖아요. 펑퍼짐하고, 장식 많은.”
“요전에 찍은 여자 사진이면. 그 웨딩드레스?”
“예, 아마도 그럴 거예요.”
“그거 ‘신부’잖아!”


별안간 검은 옷 여자가 재빨리 대문을 열고 뛰어 나갔다. 무슨 일인지 몰라 웅성대는 사람들과, 역시 어떻게 된 건지 갈피잡지 못하는 나.


“쟤 아까 신부라고 하지 않았어? 도와주러 가지 않을 거야, 다들!”


아페 리제가 검은 여자의 말을 상기시켜준 후에야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대문 밖으로 나갔다. 처음엔 조심스런 걸음이었지만 점차 한 명, 또 한 명 발걸음이 빨라지며 무덤 쪽으로 향했다. 헐떡대며 오르막을 지나 좁은 산길을 따라가던 우리 가운데, 앞서 나가던 헤세가 제자리에 멈췄고,
그리고 보았다.


“큭, 여기 뭐 하러 왔어, 신부!”


대답 대신, 목을 향해 날아드는 칼을, 검은 옷 여자는 간발 차로 피했다. 여자가 허점을 파고들어 주먹으로 연타를 먹이려 했지만, 신부는 예상외로 유연하게 공격을 피하고 거꾸로 여자의 팔에 상처를 냈다. 예상외로 현란한 싸움을, 우리는 넋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저러다 크게 다치는 건 아니죠?”


내가 묻자, 뷰카치오 헤세는 야릇한 표정을 하고선 글쎄요, 하고 답했다.


“진연 씨, 저 녀석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요?”


“싫어하긴. 다 외로워서 그래.”


안 그래요? 하고, 아페 리제가 물었다.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나는 화끈거리는 뺨을 손으로 짚었다.


그래, 실은 알고 있었다. 꼴보기 싫은 여자라고 욕하면서도, 그 여자에게서 엄마 겹쳐 보이는 것 싫어하면서도 구정 설에 굳이 여길 찾은 건, 엄마가 살던, 이 영유산 자락 아래 포근히 파묻힌 이 집 외에 어느 곳에서도 이 외로움을 지울 수 없어서다.


눈물 흘리지 않는 게 강한 걸까. 휴가 보내며 부장님이, ‘진연 씨. 푹 쉬다 와요. 요즘 진연 씨, 너무 딱해 보여.'라고 했을 때, 엄마 보낼 때도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갑자기 울컥 쏟아져 나오려 했다. 억지로 웃으며, 걱정 마세요, 라고 대답했었다. 차라리 울고, 목 놓아 울면서, 부장님, 저 너무 힘들어요. 죽을 정도로 힘들어요. 엄마가, 아직 제대로 맘에 준비도 안했는데 돌아가신 게, 그게 너무 억울해요, 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아니, 부장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라도 그렇게 하소연해봤더라면. 하지만 생판 모르는 남에게 기대기가 그리 쉽던가.


어느새 아페 리제 품에 기대, 나는 외로워 울며 그녀 얘기를 듣고 있었다.


“저거 봐, 죽어라 싸우면서도 속으로 기뻐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걸. 헤세, 말릴 거 없어. 짐승들이 오랜만에 자기 태어난 산에 돌아왔을 뿐이니까.
그거 알아, 헤세? 저 여자, 유희 말이야. 오래 전부터 ‘신부’를 기다렸었다. 언젠가 찾아올 거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몰라. 그도 그럴 게, 신부는 유희 자식이나 다름없거든. 무덤 앞에 국화꽃이 보여? 얼어 있지만 얼마나 아름다워.
그래, 신부도 자기 할머니 집을 찾아 온 거야. 오늘, 설이란 게 원래 그런 날이잖아.”


품에서 엿들은 얘기는 마치 꿈결 속에서 들려오는 듯 아련해서, 나는 그걸 모두 잊기로 했다. 대신 진짜 꿈을 꿔야지.


그것은 같은 산에서 태어난 두 마리 짐승, 아니, 모든 짐승이, 자기 난 자궁을 묻은 자리 위에서 즐거운 듯 다투는 평화롭고, 참으로 평화로운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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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더 완성된 결과물이 나오지 못한게 안타깝습니다. 아무튼 요즘엔 이런 얘기들이 마음에 드네요. 더 깔끔한 결과를 내기 위해 이래저래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분들께도 이런 얘기가 재미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꿈꾸는 마녀의 세계]는 이런 곳입니다. 이어 올릴 다른 글들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드리겠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대략 이 글에서 그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입니다.


 암튼 곧 진짜 설입니다. 신정은 하루밖에 안 쉬니까, 새로운 한 해라는 느낌이 별로 안오더군요. 어차피 부대에서 보내겠지만, 올 구정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한 해가 시작될지...


 


 즐거운 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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