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19 09:23

[꿈꾸는 마녀]야간 산책

조회 수 985 추천 수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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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산책>


여느 때처럼 여자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이제 막 눈뜬, 선우는 기지개를 펴고 누운 채 여자를 바라보며 인사 건넸다.


"안녕, 좋은 밤이네."


"나갈까."


딱 한 마디하곤 여자는 일어났다. 여자가 비켜서자, 방문 위에 걸린 시계가 보였다. 시간은 새벽 4시를 가리켰다. 이것도 평소와 다름없다.


옷을 갈아입으며 나갈 채비를 하면서, 선우는 왜 자신이 그녀 말에 이리도 약한지 잠시 고민했다. 은인이라서? 아니면, 남들이 부르듯 그가 여자의 '연인'이기 때문에?


"왜?"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느낀 여자가 묻자, 선우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황급히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그가 사는 아파트 9층, 유리창 너머 세상은 언제나처럼 달이 홀로 밝아 쓸쓸한 모습이었다.


언제부턴가 세계는 이런 모습이었다. 사람들로 활기 넘치던 건물과 도로는, 해가 짐과 동시에 한밤중 울창한 숲 속에 인적 하나 없이 버려진 유적지처럼 바뀌었다. 해가 떨어지고 난 시간대, 도시를 점령한 것은 인간 아닌 다른 것. 구체적으로 야행성 작은 동물들과, 선우를 데리고 매일 어두운 숲 속을 돌아다니는 여자 같은 부류들.


기형적으로 자란 고목 줄기와 덩굴식물이 아파트 1층 현관을 막고 있었기에, 여자는 앞장서 2층 창문으로 나가 나무를 타고내려갔다. 민첩한 몸놀림으로 여자는 순식간에 땅바닥을 밟았다. 선우는 그런 여자를 부러워하며, 부들부들 떨며 조심스레 발 디딜 곳을 찾아가며 천천히 내려갔다.


단지 후문을 나서려던 두 사람은, 커다란 나무 주변에 기대서거나 앉아 시시덕대는 남자 셋을 보았다. 여자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뒤따르던 선우는, 제발 그들이 아무런 시비 걸지 않기를 바라며 시선을 피했다. 이 밤중에, 저렇게 떼 지어 모여 있는 녀석들 가운데는, 여자와 같은 부류이면서도 인간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이들이 종종 있다. 피에크람Fiekram이라고 불리는, 인간을 적대하는 밤의 짐승들.


"어이, 저 녀석 인간 냄새가 난다."


아니나 다를까. 한 녀석이 선우를 가리켜 말하자 다른 두 녀석도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겁도 없이 잘도 돌아다니잖아. 손봐줄까."


"곁에 계집앤 뭐지? 동족 아냐?"


"야수TOXLAS라고? 그것도 인간과 같이?"


"더러운 년."


"자존심 없는 새끼."


야유가 쏟아지자 선우는 여자 표정을 슬쩍 살폈다. 절망적이다. 여자는 막 분노로 얼굴을 붉히며, 뭔가 하나 터트리려던 찰나였다.


"시끄러 벌레들."


선우가 머리를 감싸는 사이, 그녀는 5, 6m 떨어진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누구로 보여?"


"알게 뭐야, 수치스런 계집년 따위."


"천윤진, 루시디다."


여자의 말뜻을 그들이 이해하기도 전에, 윤진이라고 자신을 밝힌 여자는 재빨리 가운데 나무에 기대 선 남자에게 달려들어 지탱한 발을 자기 쪽으로 빼었다. 남자 몸이 기울며 뒤로 넘어간다. 어느새 꺼냈는지 여자의 총구가 남자에게 바짝 붙어 눈썹과 눈썹 사이를 눌렀다. 모두가 예상외의 습격에 놀라 침묵하는 가운데, 한 녀석이 확인하듯 물었다.


"루시디라고, '달'이냐?"


남자에게 겨눈 총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윤진은, 그들에게 말했다.


"피에크람 쓰레기들이 왜 여기서 얼쩡대지?"


"오, 오늘 처음 왔어. 진짜야! 두 번 다시 이런 곳, 안 온다고!"


"믿을 수 없어."


철컥, 탄이 장전되는 소리에 모두 긴장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얼굴로, 더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윤진은 남자에게 속삭인다.


"어때, 부당한가? 아무리 '집사'라도 이럴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


"……."


"여긴 내 구역이야. 피라미들이 물 흐리는 것 용납 못해. 저 남자가 부당하게 모욕당하고 위협받는 것, 용납할 수 없어."


윤진이 나중에 꺼낸 말이 선우를 가리키는 것임을 남자도 모르지 않았다.


"너희는 저 남자에게, 부당하지 않았어?"


남자는 침묵했다. 어떻게 자신이 답하더라도, 여자 화를 가라앉히진 못하리라. 이 무지막지한 여자와 함께인 저 인간 녀석이 한 마디만 해주어도 상황은 훨씬 나아질 텐데.


"윤진아."


그 때 선우가 다가와 윤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거면 됐어."


얘기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자신들, 인간에겐 말할 자격이 없지 않는가. 선우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이 사태를 초래한 건 모두 인간의 잘못이기 때문에.


"패배주의자."


못마땅한 듯 선우에게 한 마디 내뱉곤 윤진은, 남자에게서 총구를 치웠다. 온 몸이 긴장으로 굳어버린 녀석들을 흘끗 노려보곤, 윤진은 몸을 홱 돌려 앞장섰다. 선우는 웃으며 잠자코 그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왜 그들과 우리는 서로 적대할 수밖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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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글 <야간 산책>입니다. 꿈꾸는 마녀의 세계에서 밤은 낮과 또다른 모습을 갖습니다. 이 글은 그런, 꿈꾸는 마녀 세계의 밤풍경을 배경으로 한 글입니다만,


 창도가 어느새 리뉴얼되어 있군요. 아무튼 좀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회수를 보면 그렇게 접속자가 적은 것 같진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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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시라노 2009.01.19 09:23
    호오 오랫만에 misfect님글 역시나 좋은 글입니다[<-] 그렇게 짧은건 아니지만 술술 읽혀 내려가다보니 이거 짧네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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