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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거 더 마음에 드는 걸요.”


아틀라스가 전혀 뜻밖인 말을 했다.


“윤주 씬 그 힘 때문이 아니라, 강한 힘을 다루는 그녀 본인의 순수함과 선량함 탓에 존경받았죠. 그 다음 주인 구하는데 이렇게 애를 먹는 이유가 그거에요. 윤주 씨 이후로, 이 세계선 그녀 뜻을 이어줄 적합한 사람이 없어요.”
“그럼 진연일 세계의 주인으로 삼을 거야?”


검은 옷 여자 질문에 아틀라스는 은근한 미소를 흘리며,


“글쎄, 어떻게 할까요.”


애매한 말만을 했다.


“그나저나 점심시간인데, 식사들 하셨어요? 죄송한데 배가 고파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달려간 건 왜일까. 밥솥에서 몇 주걱 퍼 밥공기에 담을 때서야 정신 차리고 생각해봤지만 끝내 알 수 없었다.


커다란 쟁반에 국과 밥을 넷씩, 그리고 김치, 적과 잡채를 조금씩 덜어 내갈 동안 젊은 여자 손님은 상을 폈고, 수저와 젓가락을 사람 수대로 가져다놓았다. 아틀라스 꼬맹이와 얘기하느라 바쁜 검은 여자는 눈곱만큼도 도와주지 않았지. 잔뜩 벼르며 나갔더니, 마루에 앉은 사람은 어느새 나를 포함해 다섯이 되어 있었다. 이번엔 내게도 친숙한 여자였기에 먼저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아페 리제씨잖아! 오랜만이에요.”
“목포에 내려갔다 오는 길에 들렸네요. 염치없이, 준비해온 게 아무것도 없어서 어쩌죠?”
“그럴 줄 알고 다 챙겨 왔습니다, 이 아가씨야.”


거기에 대문을 열고 막 들어선 남자와, 뒤따라 들어온 꽁지머리 여자까지. 180이 조금 넘는 키에 칼라가 묘하게 우주복을 연상시키는 은빛 번쩍이는 점퍼를 입은 남자가 인사 건네는 사이, 꽁지머리 여자는 손에 든 비닐봉지를 마루 한 쪽에 내려놓았다.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로 보아 소주병이겠지.


“진연 씨, 오랜만에 뵙네요.”
“어서와요, 미뉴레세 씨. 뷰카치오 헤세씨도 잘 지내셨어요?”
“예,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진연 씨.”


눈에 띄는 점퍼를 입은 남자, 뷰카치오 헤세가 꺼낸 말에 주위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가 갑자기 경직했다. 설마, 하면서 보고 있으려니 한 순간 절로 키득키득 웃음이 났다. 그래서 제사상에 떡국이 아니라 무국을 올린다고 했구나. 여자가 실수를 저지르고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이해되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평범함에 서툴다.


“진짜야? 오늘 설이었어?”
“그걸 이제 아셨나, 차례상에 무국 올리려던 아가씨.”
“아, 미안해요. 진연 씨. 깜빡했지 뭐예요.”
“맙소사. 미뉴레세가 스무 번은 더 넘게 말한 거 같은데.”
“떡국 없죠? 지금부터라도 끓일까요?”


모두 우왕좌왕했다. 떠들썩한 그들 사이에 끼여 있으니 나도 모르게 들떠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도 많으니까, 지금 끓이죠. 다들 도와주실 거죠?”


분위기에 휩싸인 탓인지, 스스로 듣기에도 오랜만에 기운찬 목소리가 났다.



당연한 얘기지만 무슨 일이건 사람이 너무 많으면 어쩔 수 없이 노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검은 옷 여자와 아틀라스, 아페 리제는 일찌감치 자기들이 썰던 국거리들을 정리하고 한곳에 모여앉아 저들끼리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검은 옷 여자의 미인 손님에게 불 좀 봐주라고 부탁해놓고 부엌에서 나와 기분 좋게 기지개를 펴는데, 세 사람만 슬그머니 빠져나와 떠들고 노는 모습에 괜히 약이 올랐다. 내가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끼어든 걸 알아차린 사람이 없었다.


“학부 때 ‘세계의 상’이란, 이론 모형을 본 적 있어.”


막 아틀라스 꼬맹이가 뭔가 말을 마치자, 아페 리제가 입을 열어 처음 꺼낸 얘기에 모두가 주목했다.


“각양각색의 세계가 콜라주처럼 전체 세계를 구성하는 그림에, 처음 보는 순간 꽂힌 거야. 아, 이거다 하고.”
“무슨 뜻이죠?”


아틀라스가 묻자, 아페 리제는, 별 거 아냐, 하며 말을 이었다.


“단지, 이 세상도 구성원 하나하나가 자유롭고 자연스레 전체 세상의 움직임을 이루는 지금 모습이, 여행자인 내 입장에선 그리 어색해 보이지 않단 거지.”
“그건 잠시뿐이니까 가능하죠. 결국 현명한 지휘자 없이 세상은 흩어져버릴 걸요.”
“무슨 얘길 그리도 열심히 하시기에,”


갑자기 내가 끼어든 걸 깨닫고 놀라, 세 사람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여자 분들은 부엌 한 번 들여다보지 않나 그래!”
“알았어, 미안해. 진연아. 잘 알았다고.”
“알았으면 빨리 들어가 봐! 손님 혼자 불보고 있단 말이야.”


티격태격, 평소 모습처럼 돌아간 둘. 아틀라스와 아페 리제는 어느새 슬쩍 도망쳐버려 검은 옷 여자만 자리에 남았다. 아차, 싶었지만 확실히 해두자, 벼르며 뭔가 말하려는데,


“저, 진연 씨. 저 위에 윤주 씨 무덤밖에 없다고요?”


막 대문으로 들어온 미뉴레세가 집에서 더 올라, 영유산 자락 안쪽을 가리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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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시라노 2009.01.22 08:30
    [꿈꾸는마녀]가 본제가 뒷부분은 부재인건가 헷갈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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