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04 06:31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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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루모스는 소녀의 소릴 듣고 한마디 입으로 꺼냈다. 고귀하며 사악한 단어를.


 “마왕.”


 그 뿐이었다.




















 1장 부활




  어둡지만 푸근한 베이지색으로 도배된 방이 있다. 그곳엔 눅눅하게 젖어 보이는 침대가 있고 그 침대엔 병색이 살짝 짙어 보이는 소년이 앉아 있다. 소년의 나이는 약 15세로 추정 되 보이는데, 손엔 무거운 책을 들고선 읽고 있는 중이다. 그런 와중 노크가 들려왔다.


 "아직 기침이 멈추지 않으니 잠시 가만히 놔둬주세요."


 소년은 말한 뒤 콜록 콜록 몇 번 기침 시늉을 내보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방해했군요."


 문을 관통에 소리가 소년의 귀에 닿았을 때 소년은 잠시 동안 뭔가 홀린 듯 허공을 보았다. 이유는 문 뒤에 있는 소리가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남자의) 소년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소년의 이름을 말하자면 에빈이다. 에빈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손의 길러졌는데, 지금은 어머니가 부유한 가문의 귀족과 결혼한 턱에 사치스럽진 않지만 그런 대로 만족스런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것보다, 지금 소년이 고민에 잠긴 이유는 어머닌 자신에게 친척이 있다 곤 한소리도 말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정한 적도 흔치않다. 거기에 어머니 성격으론 사람들과 별로 섞이지 않고 당돌한 여자고 거기에 당돌하지만 남자와 결혼하고 대놓고 남자를 사귀고 그 남자를 아들에게 보일만한 그런 여자는 더욱이 아니다.


 그럼 문 뒤에 있는 의문의 남자는 누구인가?


 뚱하게 빠져든 생각들론, 저 남잔 미치광이 일수도 있고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는 주정뱅이 일 수도 있다. 이 주장의 근거론 남자로 추정되는 자의 뉘앙스 때문이다. 그자의 뉘앙스는 마치 술에 취한 사람 같았고 설령 아니라도 그런 뉘앙스를 내는 사람은 그다지 정상적여 보이진 않았을 것 같았다.


 에빈은 이러한 생각으로 "가주시겠습니까" 또는 "저리 꺼져버려" 라고 말하려 했지만 저리 꺼져버려는 최악의 상태엔 그 남자가 엄마의 지인을 수도 있고 이것도 좋은 건 아니지만 술에 취했던 미쳤던 그런 사람을 자극했다간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기에 정중하게,


 "가주시겠습니까."


 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말하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에빈은 앉아서 조용히 책에 몰두했다.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시간 때는 에빈이 남자에게 정중하게 "가주시겠습니까" 라고 청한 3시간 뒤이다. 에빈은 시중이 가져다준 스프를 맛있게 먹고 이제 막 자려던 참이었다. 불을 커놓고 책을 보기엔 램프에 기름이 다 떨어졌고 그렇다고 하녀를 시켜 구해오란 것은 너무 악덕스런 횡포처럼 생각되어 내린 결정이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해도 잠은 오지 않았다. 단지 앞엔 짤막한 검은 스크린과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뿐이다. 그런 상태에선 잠이 잘 올지 모르겠지만 에반은 별로 그렇지 않다.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고 이상한 잡념만 생각났다. 예를 들어, 낮에 의문의 남자는 누구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이 오고갔다.


 엄마의 애인은 아니고 시중 또한 아니다. 우편배달부는 이곳까지 올라올 리가 없고.. 점점 이런 생각들이 반복 새를 이루자 그냥 편안하게 술 취한 사람 또는 정신이상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을 까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호기심은 어쩔 수 없어 그저 계속 되풀이하며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무의미한 짓이 아닌가? 결국 낮에 했던 5분도 안되던 생각만 되풀이하다 밤을 샐 것 만 같았다.


 그렇게 혼돈이 꼬리를 물며 돌고 있을 때 낮과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다.


 똑똑.


 에빈은 모든 생각들이 멈추고 문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더 이상 자신에게 묻지 않았다.


 "실례가 되지 않다면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낮에 들었던 뉘앙스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니! 에빈은 생각했다. 지금까지 잠도 못 자고 궁금증을 유발시킨 장본인의 정체를!


 이윽고 문은 열렸다.


 문 뒤에 중간 정도의 키와 호리호리해 보이는 체형의 누군가가 있다. 그는 천천히 에빈 곁으로 걸어왔다. 발걸음 소리는 고요한 와중에도 거의 들리지 않았으며 문은 계속 열려있었다.


 "아 문을 닫아 야죠."


 뒷걸음질하고 그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에빈에게 다가오고 그의 얼굴이 보인다. 심각한 의외의 얼굴. 주름살이 꽤 배기고 쭈글쭈글한 늙은 노인이 서있던 것이다. 노인은 안경을 쓰고 있었고 머리도 흰색으로 모두 새버렸다. 눈은 어두운 밤에도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옷은 정장을 차려입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에빈군 맞죠? 당신의 아버지께서 고용해주신 이야기꾼입니다."


 특유의 뉘앙스가 에빈의 귀에 맺혔다. 에벤은 말없이 이야기꾼을 바라본다. 이야기꾼은 포근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야기꾼에게 질문했다.


 "아버지께서 무슨 연유로 이야기꾼을 고용 한 것이죠?"


 "독감이 걸려 집에서 꼼짝도 못할 태니 그때 동안 심심치 안게 하라고 해주시라고 말씀해 주셨지요."


 에빈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 지금의 자신의 아버지에 취미는 고상한 취미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는 거라고. 그런데 무엇보다 왜 이렇게 늦은 밤인가 말인가. 에빈이 그에게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에빈군이 불면증이 있단 건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이야기는 밤중에 들어야지 더 맛깔스럽잔 습니까. 용사 이야기 좋아하죠?"


 에빈은 이야기꾼이 바로 이야기를 들려주려는지 알고는 누워있는 포즈를 앉은 자세로 바꿨다. 그리고 저기 의자가 있다는 제스처를 해줘, 이야기꾼에게 작은 성의를 배풀었다. 이야기꾼은 의자에 앉아서 기대곤 잠시 이야기를 생각하듯 심취에 빠진다. 에빈은 이야기꾼을 방해치 안고 보기만 한다.


 "대답하지 않으셨지만 좋아하시는 줄 알고 이야기 해드리겠습니다. 일단 서두는 이것부터 시작하죠. 옛날옛날 아주 먼 옛적에. 태고에 마법이 존재하던 시대에.."


 이야기꾼의 말이 시작되었다. 이야기꾼의 말은 다른 사람이 해주던 말과 왠지 달랐다. 뉘앙스 때문인지 아무튼 뭔가가 달랐다. 옛날이란 말을 듣자 자신은 마치 옛날로 온 기분이었고 태고의 마법이란 말은 바로 앞에 마법의 신비가 있는 것 같았다. 이야기꾼은 말을 이어서 한다.




 태고에 마법이 존재하던 시대에 마왕이 있었다. 마왕은 모든 악의 증표이야 제왕이자 인간의 최대의 숙적인데, 머리엔 두 개의 뿔이 있고 이빨은 늑대의 이빨처럼 뾰족하며 파괴를 즐기고 흑마법을 번성시킨다.


 마왕의 성은 음습하고 어둡다. 성 주위엔 안개들이 자옥이 껴있고 그 안개에 들어간 자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할 만큼 안개는 짙다. 마왕의 성은 시간의 개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밤이고 낮은 없다. 악과 선의 개념은 말할 필요 없을뿐더러 마왕을 드는 시중들은 대게 음탕하거나 대게는 감정 없는 잔인한 악마들이다. 성에서의 지하엔 고문되는 자들의 고통소리가 끈이지 않고 바닥에 사는 이끼는 사람들의 피를 먹어 검푸른 색이 아닌 붉은 색으로 은은히 끈적거린다.


 어딜 가나 핏 비린내가 나며, 밤의 고요는 어딜 가나 찾아 볼 수 없다. 오직 고통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세상엔 절망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태생은 악일지언정 최후엔 선을 지향한다. 비록 많은 이들이 타인을 의식하고 그것을 따르며 악을 추앙하겠지만, 만 중 하나는 혁신의 의지를 갖고 선을 이루려 한다. 의지는 사람에 사람을 이어주고 결국 선을 이룬다. 이렇게 인간은 악을 추앙하는 것이 아닌 선을 지향하는 것이다.


 마왕이 악을 전파하고 악이 세상을 제폐하는 때의 용사가 혁신의 의지를 가지고 선을 지향하려 한다. 용사는 빛이 통과할 수 없는 동굴을 지나며, 악마가 깃든 숲을 지나고, 괴기한 것들과 싸우며, 마왕의 목을 친다.



 “그래, 그렇게 시작해서 끝나는 거지.”


 어둠속 오직 한줄기 빛만 들어오는 종이더미들 속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뒤이어 어린 소년이 말한다.


 “램프가 필요하지 않나요? 루모스님.”


 “아니, 필요 없어. 이 서재(서재라고 하기엔 제대로 된 책하나 없지만.)에서 일한지 언 10년이야. 눈감고 찾을 수 없다면 이 일을 그만 둬야했겠지..”


 당당한 루모스의 말에 소년은 그에 당당함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여기 오시기 전엔 어디서 일하셨죠?”


 루모스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지만 서글픈 생각을 하고선 대답해주었다.


 “이곳저곳을 방랑했지. 지금에서야 안정을 되찾았어. 그래도 돌아가고 싶구나, 십년 전 쯤으로..”


 말이 끝나자 루모스는 필요한 자료들을 가지고 뒤돌아섰다. 빛줄기가 루카스의 눈과 눈 사이를 비춰줘 그는 마치 5분의 1 쪽 밖에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문을 열자, 천천히 빛이 그에게 스며들었다. 문 앞을 막고 있는 소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젖어있는 루모스에 눈을 들여다보며 슬며시 질문했다.


 “그리워하는 건가요?”


 루모스는 얼마 동안 말없이 서있다 말해주었다.


 “아니, 그저 그 때로 가면 좀 더 다른 일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해서.”


 더 이상에 대화 없이 둘은 짤막한 복도를 건너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계단 밑으로 내려가면 분명 교수의 방이 나올 터였다.


 교수에 방문 앞에 다다랐을 때, 루모스가 살짝 눈짓하자 소년이 교수에 방문을 열어주었다. 문은 열리기보단, 미끄러져 뒤로 쭉 빠졌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하얀 머리칼이 듬성듬성 밖에 없는 교수였다. (배는 볼록 나왔겠지)


 루모스에겐 교수는 깊은 은인이었다. 자신의 집안이 대대로 모시던 가문이 해체 된 후 집사들도 이리저리 흩어져 일자리를 구해야 했지만, 루모스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르소는 가문이 해체되던 통에 교수직을 박탈당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시켰고 루모스를 채용했던 것이다. 과거에 직접적으로 시중을 들던 루카스와의 관계는 족보상으론 까마득하게 멀었으나, 루카스의 친족 중 아버지와 동생 다음으로 가까웠을 사람이다.


 르소는 항상 루카스에게 조언을 놓아주었다. 루카스는 루소의 조언을 들을 때면 죽었던 눈빛도 살아나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르소는 기묘한 남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루카스가 없는 지금, 르소는 단순한 교수에 불과할 뿐이었다.


 “르소님, 자료 여기 있습니다. 뭘 연구 중이시죠?”


 자료 끝에 있는 르소에 집필원고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르소가 말하기 이내, 르소에 책상 조금 옆에 있는 나무 상자 위에 종이더미를 올려놨다.


 르소는 집필하고 중인 손과 눈에 방향을 돌리지 않고 곧 잘 대답했다.


 “마왕이란 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에 대한 논문일세.”


 루모스는 약간 의외인 듯이 모호한 표정으로 교수에 머릴 바라보았다. 교수는 말을 계속 이었다.


 “미신정도로 여기지고 있는 마왕은 실존했나, 실존하지 않았나. 이런 이슈적인 연구보단, 휠씬 실용적이고 좋은 논문이 될 거라고 생각하네. 아마 의외라고 생각 할 지도 모르지. 하지만 마왕을 누구보다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가?”


 르소에 말은 백번도 옮았다. 마왕은 대부분에 사람들에겐 그저 미신적인 공포이다. 이 미신적인 공포는 실존에서 파생된 것인데, 실존에서의 마왕은 미신에서의 마왕과는 사뭇 다르다. 미신에서의 마왕은 악의 신 막스의 왼팔이 잘려 태어났다. 한 때, 인간계에 머물며 인간을 학살하는 것으로 막스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 마왕에 존재 목적이었다. 그러던 중, 마계와 인간계의 선이 나눠지는 전쟁이 일어나고, 마왕은 패배해 지옥으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마왕이 이끄는 군단은 10만이 넘는 다던가, 이러저러한 신기루들로 마왕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대다수가 아는 전부이고, 소수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진짜 마왕은 이렇지 않다. 그가 왜 존재하는지 극소수의 1%도 모른다. 실제로 마왕이 부리는 부하는 10만의 군대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마왕의 몇몇 불쌍한 피조물들, 눈에 보이지 않는 유상무상의 악들. 그것이 그가 가진 전부이다. 왜 그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겉으로 드러났다가 배격 당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게 아닐까 추측한다. 단순히 그늘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 ‘선’의 대표적 승리는 마왕의 공포를 땅 아래로 하락 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암만 이렇게 추측해봤자 마왕의 내속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무서울 따름이다. 만약 그 것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알젠 가문 사람들뿐이다. 르소는 그 알젠 가문에 속해있었고, 유일하게 국성에 남아있는 알젠 가문사람이다.


 “도망치는 것이라고 생각 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에게 존재를 알리는 것은 그만 두세요. 르소님께 건방진 것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충격일지 모르잖아요! 설령 옮다 해도, 이곳에서 쫓겨나게 되고 르소님의 글은 쓰레기 신문 더미 속에 묻혀 질 겁니다. 제발, 르소님 만이라도 가문을..”


 길게 늘어진 루모스의 말에 르소가 날카롭게 눈뜨고는 바라보았다.


 “자네, 자네는 이기적인 사람일세. 자네는 진실을 알지. 하지만 자네가 아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을 생각해 보았나? 진실을 안다고 해서 나아질게 없을 거란 말. 그런 말 싫어하는 것은 자네지 않나. 모든 사람들이 진실을 안다면, 나는 서슴없이 알릴 걸세.”


 루모스는 황소고집보다 더한 르소의 고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한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계속해서 일만 반복했다. 밤이 되도록.


 미적지근한 밤이 시작된 이래, 루모스의 몸은 먼지 쌓인 서재가 아닌, 시끄러운 술집에 들어앉았다. 루모스에게 딱히 담소를 나눌 상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술을 위해 온 것이다. 낮에 쌓인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것은 현명하다고는 못하지만 일반적인 행동임이 분명했다. 술은 달짝지근하여 목에 잘 넘어갔다. 하지만 위안을 주진 못했다. 술을 마실수록 아른거리는 르소의 말이 거슬려지기만 했다.


 ‘자네, 자네는 이기적인 사람일세.’


 “내가 왜!”


 그에 반항하여 소릴 지르며 팔을 휘휘 저어대었다. 그러면서도 술은 입에서 때지 않았다. 머리가 빙빙 돌고 어지러워도 계속해서 입에 끈적한 액체를 들이 밀자, 점점 그에 평정심은 그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그의 행동은 추잡해지기만 했다. 르소에 대한 작은 반항  조차 못되는 폭주는 때로는 루모스에게 때로는 슬픈 연기를 때로는 격노, 희락, 의구심, 광기를 요구했는데, 굉장히 리얼한 원맨쇼였던지, 눈을 모아 사람들이 루모스를 쳐다보았다. 


 “이기적이긴 개뿔!”


 이것이 루모스가 말한 짤막한 밤 중 마지막 말이었다. 그에게 이제 남은 일은 바닥에 얼굴을 묻은 체 그곳에서 잠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찾아와 주머니를 뒤져도 상관없다. 이미 술을 다 사버렸으니. 술에 취한 것 치고는 놀라운 생각인데, 그는 내일 일어나보면 ‘마룻바닥이 아닌, 흙먼지 더미에서 일어나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적중은 완벽히 빗나갔다.


 밝은 햇살과 함께 다락방으로 추정되는 알 수 없는 곳에서 루모스는 깨어났다. 먼지 하나하나의 궤적들을 햇빛이 선명하게 비춰 주는 것을 보아, 적어도 새벽은 아닌 것 같았다.


 깨어난 자리는 지금 눈에 보이는 먼지 이상으로 먼지 쌓인 회색 침대였다. 침대 옆엔 동그랗게 창문이 사람 키만한 크기로 있었다. 이곳에 지붕은 아마 뾰족 할 것이다, 라고 천장에 이리저리 얽혀있는 나무판자들과 한 점을 중심으로 좁게 퍼져있는 텅 빈 원통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루모스에 전체적인 평은 다 좋지만 이곳은 결정적으로 좁고 쓸 때 없이 천장이 높아 싫었다.


 간신히 루모스는 침대에 모서리 끝을 잡고 일어서서 자신에 몸을 뒤적였다. 돈은 다 썼지만 옷이 제대로 있나 해서 뒤져 봤다. 좋은 소식으론 옷은 모두 제대로 있었다. 하지만 지난밤 일을 더듬거리며 기억하려 했지만 기억할 수 없었다.


 기억 할 수 없다는 짜증과 숙취 덕에 루모스는 잠시 휘청했다.


 간밤사이에 꿈을 꿨을 지도 모르지만 하룻밤 사이에 기억들이 모두 탕진되고 어질 거리는 현기증과 울렁거리는 구토감만 남기고는 알 수 없는 방에 있다니, 아마 루모스가 살던 10년 중 근래 가장 최근으로 잡아 최악에 날 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투명한 유리창 너머 멀리 말쿠트의 좀처럼 흠잡을 때 없이 웅장한 성이 보였다. 그렇다는 것은 이곳은 분명히 말쿠트의 시계탑 끝 층이다.


 루모스는 창문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어째서 말쿠트 시계탑 끝 층에 침대가 있는가?’라고 생각할 때, 창문 위 작은 나무패에 ‘도둑고양이연맹의 비밀기지 2호’라고 아담한 글씨를 보곤 이해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도둑고양이연맹. 그것은 말쿠트란 국가를 넘어서 온 세상에 넓리 펴져있는 좀도둑 연맹이다. 그들에 관한 정보는 국가의 기밀만큼이나 희귀하고 영웅의 전설만큼이나 과장되어있다. 그래봤자 쓸모없는 정보이며, 정보에 바싹한 루모스가 아는 것이라곤, 그들에 구성원은 여성들 밖에 없단 것 외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어째서 그들이 루모스를 납치해야 했는가?


 작은 패에 대한 생각을 떨치고 창 너머 보이는 것들을 응시했다. 루모스의 눈엔 곧장 성이 보였다. 이 높이, 이 각도로 보아 이곳은 말쿠트의 시계탑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말쿠트의 시계탑은 높은 언덕에 위치해있어 곧장 성이 보이기도, 성에서 이곳이 보이기도하게 만들어졌다. 이렇게 전망 좋은 곳은 평민들도 쓸 일 없고, 귀족들도 쓸 일 없는 장식용이 대게인데 이곳도 그 중 하나다. 적어도 위치를 알았지만 아직도 아리송하기만 하다. 왠지 위치를 알아냈지만 아까와 같은 쓸모없는 정보처럼 느껴지기만 한 그는 생각 할수록 짜증나고 깨질 듯한 머리를 쥐어짜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침대에 앉아 스멀스멀 지나가는 순진한 구름을 보았다. 구름은 느릿느릿 천천히, 하지만 눈에 띄도록 말쿠트성 위를 스쳐 지나쳤다.


 그는 지난 날 루소와 다투었던 시간을 눈감고 회상했다. 르소의 조언은 항상 현명했다는 것을, 지날 날 자신에게 주었던 핀잔은 그에 조언이었다는 것을.


 아집은 르소가 부리는 것이 아닌, 루모스가 부린 것이었다. 평화가 긴 탓인지, 루모스는 스스로 나태해졌다. 어쩌면 전쟁을 하던, 평화가 있던 사람은 퇴보하는 것 일련지도 몰fms다. 노력한 점의 비해 사람들은 예전처럼 응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반복되는 일상, 마왕의 유무에 따라 달라지지 않은 군중들의 태도 사이에서 용사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것은 어려웠을 태다. 결국은 포기하면 편하다. 루모스는 포기했고 등불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않았다. 그런 루모스를 보며 르소는 매우 아쉬웠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가까이 두었고, 그 때문인지, 잘해주었다. 그러나 루소도 예전 같지가 않아, 죽은 눈빛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루모스는 가만히 잡혀있어서는 루소에게 보상 못 됨을 알고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창문의 끝자락에서 끝자락까지 기어가는 구름을 보았다. 때 좋게 누군가가 이곳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들리는 소리로 보아 아마 바닥에 작은 문이 붙어 있을 것이고 그 밑에는 사다리가 위치해 있음을 알았다. 재빨리 바닥을 살펴봤지만 이미 늦었었다. 발견치 못한 바닥의 작은 문짝은 저 하늘의 순진한 구름만큼 느리지 않았던 것이다.


 ‘초조 할 거 없어. 죽였다면 벌써 죽였다. 나에게 뭔가 알아내려는 모양인데, 도망치면 될 거야.’


 루모스는 초조한 자신의 마음을 달래고, 문 쪽을 똑바로 보았다. 열린 문으로 내밀어진 작은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좀도둑 아니랄까봐, 머리는 손질한지 10일은 족히 넘어보였다. 하지만, 소녀에 얼굴에 천진난만이라는 천성이 씌워져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앞에 있는 소녀에겐 그것이 자연스러웠다.


 루모스는 운이 좋았다. 이렇게나 무고한 소녀는 결코 심문자가 될 수 없다. 만약 저 소녀 혼자 길을 인도한다면 루모스에게 있어서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다. 루모스는 소녀 앞에서 포근히 미소 지었다. 그것은 소녀에게 불쾌함을 주었지만 소녀는 드러내지 않았다.


 소녀의 몸통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도둑생활이 오래인지 소녀에 몸은 균형 있게 자라있었다. 키도 제법 커보였다. 그런, 소녀는 좁게 몇 발자국 움직이고는 루모스에게 낭랑하게 말을 걸었다. 소녀라기 보단 소년의 목소리다.


 “날 만난 걸 행운으로 생각해. 어제 큰일 날 뻔했어. 아저씨 말이야.”


 대화가 걸릴 거라고 생각 못한 루모스는 눈빛으로 ‘난 어제 쓰러져있어서, 술을 너무 마셔서,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써버린 것을 읽혀버리고 다시 소녀에게 핀잔을 들었다. 눈 속의 진의를 읽음과 이런 핀잔을 줌은 소녀라는 것을 뜻했다.


 “조심 좀 해! 평소에 도망 다니지? 그런 무시무시한 사람들에게 뭔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도움은 여기까지야. 세상은 착한 일을 싫어한다고. 알겠어?”


 루모스는 쉽게 읽히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고, 쉽게 알지 못하는 앞 소녀의 존재는 답답하기만 했다.


 도망 다니지 않는 입장에서 루모스는 무시무시한 사람들에 대해 듣고 싶었다. 그는 소녀에게 무시무시한 사람들에 대해 물었지만 소녀는 오렌지 같은 웃음으로 뭔가를 무마 하려했다. 루모스가 약간 심각한 표정을 짓자, 장난끼 넘치는 미소만 남기고 대답해주었다.


  “으음.. 아저씨, 나 어제 아저씨 털려다, 말았는데? 용서할 꺼야?”


황당함은 앞서 질려버린지라, 더 이상 당황 할 것도 없는 듯이 짜증과 화를 뒤로 한 채 루모스는 너그러이 소녀에 범죄행각을 용서해 줬다. 소녀는 어재 저녁의 뿌연 안개를 지나, 심연 속에 잠자고 있는 기억을 꺼냈다.








 출신을 막론, 국가를 막론, 인종을 막론, 취향을 막론하고 오직 여자만이 들어올 수 있는 대좀도둑연맹. 그것이 도둑고양이연맹이다. 나타난 시기는 정확히 짚을 수 없지만, 연맹의 창시자 플루토의 일대기를 알면 추측이 가능하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안스르, 그것도 명문집안이다. 이 정도만 알아도 그녀가 지금 도둑연맹 같은 것을 이끌 리가 없다 생각이 들겠지만, 그녀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말자.(세세한 이유까지 설명한다면 마왕이 아닌 플루토라는 소설이 되버릴 테니.)


 그녀의 출생일은 말쿠트 9대 왕이 228번째 개국기념문을 떠들었던 시대. 아마 지금과도 다르지 않은 시대였을 것이다. 지금과 다를 봐는 도둑고양이연맹의 유무일까.


 228번째 건국기념문이 읽힌 후 18년 후 그녀는 성인식이 하기 싫어 나라를 떠나고 집을 떠났다. 그리고 도둑고양이연맹이 창설된 것이다.


 이제야 루모스를 구해준 소녀에 대해 조금이나마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연맹은 언제나 바쁘지만 한참 바뻤던 말쿠트력 248년, 초창기보단 안정 됐지만 여전히 자금적으로나 인력적으로나 아슬아슬 하던 때다.


 플루토는 ‘한건’ 벌이기 위해 뒷골목을 이곳저곳 배회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뒤에서 관리나 하고 있을 그녀가 뒷골목을 배회함은 연맹의 처참한 인구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녀는 우연스레 골목에서 버려진 아기를 발견했다. 그녀는 일생에서 처음으로 버려진 아기를 보았고 처음으로 아기를 안아봤다. 그것은 무의식적이었다. 방금 전까지 울던 아기가 자신이 안아주자 울음을 뚝 그치는 것을 보곤 플루토는 연맹까지 아기를 데려가 키웠다. 직접 이름도 지어줬다. 안야 소프라고.


 소프가 17살이 되는 해이다. 소프라면, 지금 술집에서 잔득 풀이 푹 죽어 엎드려있다. 재잘거리는 소리, 웃는 소리 등 다 소음이지만 너무 피곤해 무시할 수 있다. 말쿠트에 하나 밖에 없는 고아원에 설거지와 빨래를 혼자 다 해치웠기 때문이다. 이게 소프의 일상이다. 일을 처리하면 언제나 고아원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일상. 예전부터 엄마라고 할 수 있는 플루토가 싫어하던 일상이었다. 도둑인 주제에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이유에 안야는 이렇게 자신의 행위를 표명했다. ‘딸의 작은 반항이라고 생각해줘!’ 결과는 참혹했지만 말이다. 어른들은 하나 같이 곧바르게 자라라, 옮은 일을 하거라, 말은 번지르하게 길러놓고 정작 선행 후에 주는 것이 핀잔이다. ‘자신이 손해입지 않는다.‘라는 전제에서에 선행은 너무나도 제한된다. 이런 생각으로서 소프는 밤새 경비들과 추격전을 벌여도 따분하기만 했다.


 전신이 쑤시고 머리가 어질어질한 그녀는 술 한 잔 마시면 ‘괜찮아지겠지.‘라며 술집으로 걸어 들어왔지만 정작 돈이 없었다. 그러니 풀이 죽을 수밖에.


 돈이 없으니 가게 아저씨조차 말 걸지 않는다. 바텐더는 술잔만 열심히 닦고 있었다.


 “내가 왜!”


 30대로 추정돼는 아저씨가 소릴 질렀다. 루모스다. 소프와 루모스는 모르는 사이지만 단 두 가지 이유로 그를 보게 되었다.


 우선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그는 취했으니까.


 혼자서 연극하듯이 루모스는 노래 부르고 울고 웃고 난리가 아니었다. 가끔 이런 손님이 있기 때문에 술집이 재밌을련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구경하면 구경하고 무시하면 무시하지 대게는 간섭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 소프는 음흉하게 구경하는 축에 들어갔다.


 루모스가 30분가량 떠들다 잠들었다. 소프는 술에 약한가 보지하고 크크 하고 웃으며 고요히 잠든 주정뱅이에게 향했다. 명색에 도둑고양이연맹이라면 누군가의 지갑을 훔치는 것이라면 식은 죽 먹기, 잠든 자의 지갑을 훔치는 것이라면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일이다.


 자연스레 루모스 옆에 다가가고 루모스의 연인인척 슬며시 입술을 귀에 갖다 댔다. 뭔가 속삭이는 시늉을 하며 이곳저곳 몸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잡히는 지갑. 그리고 비어있는 지갑. 뭔가 자기만 바보 된 느낌에 소프는 지갑을 땅에 내던졌다. 플루토가 말하길, ‘안목 있는 도둑이라면 한눈에 사람에 액수를 볼 수 있다.’ 자신은 얼마나 최악인가?


 그의 액수를 확인하기 위해 탁자에 엎드린 채로 술주정뱅이의 얼굴을 유심이 들여다보았다. 그는 유순하게 생겼다란 인상으로 앞으로 돈은 벌지 못하겠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다른 관점으론 주정이라면 누구나 피우지만 유순한 얼굴에 그 요란한 주정. 분명히 이상한 사람이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볼일도 없자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플루토가 알아채기 때문에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소프는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새곤새곤 자는 주정뱅이 볼에 살짝 입맞춤하고 가려던 찰나 뒤에서 남자가 소프를 잡았다.


 “너.. 넌 뭐야아..!”


 처음에는 틀림없이 또박또박 말했지만 점점 말이 흐려졌다. 방언처럼 들리는 알 수 없는 말에 소프는 다시 크크하고 비웃었다. 루모스 옆자리에 의자를 끌어 앉고는 루모스가 마시다 남은 술을 냉큼 마셨다. 루모스는 충분히 취해버려 소녀가 자신의 술을 마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저 앞에 여자만 있을 뿐.


 “으으윽.”


 루모스가 소프의 어깨를 아플 정도로 잡았다.


 "아저씨야말로 뭐하는 거야!“


 소프는 루모스의 손을 때고 바닥으로 밀어 던졌다. 쿵 소리와 함께 루모스의 신음소리를 듣곤 소프가 루모스를 일으키며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그저.. ...”


 ‘그저’만 알아들을 수 있었고 뒤에 짤막한 한마디는 알아듣지 못 할 정도로 우물거렸다. 살짝 궁금해진 소프가 다시 뭇자 확실하다고 할 수 없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으로 소녀에게 말해줬다.


 “그저.. 화날 뿐.”


 이야기가 더욱더 알 수 없게 됐다. 소프는 점차적으로 루모스에게 질문하고 루모스는 답하였다.


 “도디체 뭐가 화나는데?”


 “교수님이..”


 “왜?”


 “고집 부려서.”


 소프는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정리했다.


 일단 이 아저씨는 교수라는 사람 밑에서 일한다.


 지금은 교수라는 작자가 고집을 부려서 서로 싸우고 나왔다. 홧김에 술집으로 그는 향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결정적으로 소프는 ‘무슨 고집인가‘가 궁금했는데.


 “어떤 고집?”


 루모스는 왠지 술이 약간 깬 것 같이 뭔가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자기 자신보단 진실이 더 중요하데,”


 그는 잠시 말을 끊고 술잔에 있는 술을 입에 쏟았지만 술은 없었다. 술잔을 테이블에 엎어두고 계속 말을 이었다.


 “너무 자길 챙기지 않잖아.. 젠장. 알젠 놈들은 하나같이 오만해서..”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구슬이 뚝뚝 끊어져 내렸다. 소프는 동그란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맺어지는 말꼬리가 구슬프기만 했다. 그래서 남잘 끌어안고 자신도 눈물을 나눠흘렸다. 사실 소프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지만, 소프가 댓가 없는 선을 추구하는 것도 이렇게 누군가의 눈물을 쉽게 나누는 것도 플루토의 삶이 소프에게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플루토, 그녀가 그렇게 배웠듯이 소프에게 고스란히 사람은 마음과 마음으로 맞대야 한다는 것을 가장 깊고 깊게 가르쳐왔다. 때로는 호수처럼 깊게, 때로는 바다처럼 넓게, 때로는 눈물처럼 따뜻하게.


 남자는 새곤새곤 다시 잠들었다. 들고가는 것도 무리가 있고 연맹 내에서도 재워주는 것도 충분히 무리지만, 난처해보여서 잠시 시계탑을 사용해도 되겠지 하고 소프는 남자를 힘겹게 업었다.


 소프가 장정의 남자를 혼자 데려갔을 거라곤 생각지 말길 바란다. 도둑고양이 연맹은 플루토가 총체이고 이 외, 여러 개의 단들이 존재하고 그곳에는 단장이 있다. 단의 이름은 고양이 종류의 이름으로 정하는데, 소프는 숏헤어에 단장으로서 속해있다. (플루토가 보기에는 흐뭇해하는 곳이지만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카를로스에겐 골칫거리 밖에 안 된다.) 말쿠트 전역에 곳곳이 퍼져있는 ‘도둑고양이’들은 연맹에 훈련되어 연맹에 통신망으로 쓰인다. 소프는 최대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도둑고양이’를 찾아, 숏헤어단을 술집으로 전부 집합시켰다. 그러고는 루모스 옆에 살며시 다가와 눈물을 닦아주고 잠들었다.


 얼마가 지났는지 모르지만 술집에 단원들이 모였다. 단원들 중 가장 막내가 소프를 깨웠다.


 “일어나요! 언니!”


 소프는 ‘엉?’하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막내의 정수리에 주먹을 박아 놨다.


 “아앗! 뭐하는 거에요! 언니가 불렀잖아요!”


 “맞아. 너가 불러 놓고서 무슨 짓이야. 설마 과음해서  걸을 수도 없단 건 아니겠지?”


 막내 옆에 있는 머리카락이 긴 여자가 말했다. 막내는 "맞아요!"라며 앙탈을 피웠다. 뭔가 좀도둑이라기엔 나이가 너무 어린 감이 있었지만 짧은 머리칼과 당돌하고 장난끼 넘치는 미소는 대표적인 좀도둑인 소프와 무척 흡사했다. 반대로 머리칼이 긴 여자는 키가 크고 뭔가 반말을 쓰지만 차분하고 가려 말하는 경양이 있었다. 그녀의 긴 금발은 귀를 스쳐, 허리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그 밑에는 딱, 꼬마의 머리칼이 닿아있었다. 그 중간쯤에 소프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게 아니라. 난 술.. 어라? 마셨지.”


 늠름한 여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소프는 재빨리 정정한다.


 “한잔! 한잔이야! 그거 가지곤 내 고양이도 안취해! 후우.. 아무튼. 이 남자를 시계탑까지 옮겼으면해.”


 여자의 얼굴이 더욱더 찌푸려졌고 막내는 계속해서 소프 옆에서 앙탈을 피웠다.


 여자가 손가락으로 루모스가 있는 방향을 찌르며 말했다.


 “우리 부른 이유로 널 옮기라고 해도 밉상인 판에, 이 남자는 뭐지?”


 “이 남자는, 사연이 있어! 그러니까 자 가자가자!”


 할 수 없다는 듯이 한 숨 쉬며 셋이서(막내는 손잡아 주는 정도로 그쳤지만) 남자를 들었다. 근처의 수레를 구해 남자를 올렸다.


 말쿠트의 시계탑은 성의 반대 반향으로 그곳 근처엔 사람을 볼 수 없다. 조용하고 양지바른 언덕에 세워진 시계탑은 그렇게 누군가가 보지 않아도 계속해서 시간을 세었다. 그러다가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게 멈춰버렸다. 지금도 사람들은 이곳에 시계탑이 있는지 멈췄는지 돌아가는지 모른다. 결국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게 되어버렸다. 어째서인지 말쿠트 자체에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곳을 유일하게 도둑고양이연맹에서 숏헤어의 아지트로 사용하고 있다. 목적지인 시계탑은 방금 나온 술집에서 10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수레도 있으니, 넋 잡고 20분은 잡아야 했다. 10분 쯤 들고서 걸었을까, 아직 말쿠트의 광장 밖에 오지 않았다. 가장 힘이 쌘 소프가 평소보다 힘을 못 쓰는 지경이라서 그런지 막내까지 돕고 있다. 지금은 밤이라 아무도 나와 있지 않다. 새벽의 공기를 마시지 못하는게 아쉬울 정도로 새벽과 근접한 시간쯤이라, 불도 없이 어두침침한 밤길에 수레를 끌고 가는 숏헤어들이 경비에게 들키면 죽도 밥도 없다. 장애물 없이 은은한 달빛이 들어오는 광장 중앙에서 막내 숏헤어가 벌써 지쳐 숨을 헐떡이며 수레를 땅에 내버려뒀다. 막내가 말했다.


 “하아.. 이 남자 두고 가면 안돼요?”


 소프는 닥쳐라는 말을 손으로 표현하고 잠시 쉴 뿐이라고 답해주었다. 그때였다. 그들 주위로 위화감이 다가오는 느낌이 셋을 압도했다. 걸음소리가 하나 같이 똑같고 하나같이 일정한 ‘군대’들이 주위로 몰려오는가 싶었다. 광장 언저리에 동그랗게 서서 그들이 둘러쌓듯이 그들은 앞뒤양옆으로 시시각각 다가왔다. 소프만이 아니라 다른 두 명도 그것을 느꼈는지 이곳저곳 곁눈질한다. 이곳저곳에서 드문드문 검은 천을 두른 사람들이 보였다. 길이 완전히 막히지 않았지만 사람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3개의 길을 막고 서있었다. 길목 하나당 2명씩 짝지어 그들은 숨통을 조이듯이 다가왔다. 그들을 비추는 달빛은 더 이상 은은한 달빛이 아니다. 차갑고 광기가 넘치는 달빛이다.


 분명히 이들은 위험하다. 뭔지는 몰라도 소프의 직감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그리고 말했다. ‘뛰어! 뛰라고!’


 생각이 미치기전 직감으로 소리쳤다.


 “뛰어!”


 셋은 남자를 아무렇게나 수레에 넣고, 딱하나 열려있는 골목길하나로 어느 때보다 급하게 뛰었다. 셋은 평소에 호흡이 잘 맞아 서로에게 맞춰져있어 서로서로 속도를 맞출 필욘 없었다. 이대로라면 그들은 쫓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허나,


 뛰는 자 위에 나는 자 있다고 하지 않던가?


 검은 천을 두른 자들이 뛰어다니는 소린 들리지 않았다. 대신 날아오르는 천쪼가리들의 펄럭거리는 비명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날아올랐다. 그들이 뛰어오르는 사실을 목격한건 아니다. 하지만 저 하늘의 검은 천은 사신같이 고귀하고 두려웠으므로 그들이 틀림없었다. 검은 천이 하나하나 무대로 올라왔다. 날아오르는 그자들은 밤하늘의 별들은 가리고 밤의 어둠을 점유했다. 소프는 그들이 날아오르는데에 경악하고 싶었지만 이미 머리는 마비되고 몸은 뜨겁게 폭주했다. 그러나 이것은 좋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생각이 필요하다 어디까지나 뛰는 사람은 소프고 나는 자들은 사신이다. 그들이 우위인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소프에게 지혜는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플루토를 생각하자, 플루토의 잔잔한 얼굴이 떠올르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마음속에 울렸다.


 ‘도둑의 삶은 임기응변 그 자체라 해도 맞는 말이다.’


 임기응변을 위해 필요한 것은 상황이다. 지금의 상황을 대처하는 것이 임기응변이라면 상황에 새로운 국면을 보이는 것 또한 임기응변일 터.


 그들이 하늘을 날아 숏헤어와 남자의 위치를 알지만 지금은 밤이기 때문에 어둡다. 달과 별을 제외하면 밤하늘에 눈에 띄는 것은 검은 사신정도란 것.


 마법을 전적으로 제제하고 있는 말쿠트에서 고공비행이란 있을 수없는 일이다. 사람들을 이곳으로 부르면 간단한 예제였다.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여러 개 챙긴 가방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폭약이다. 소프는 둘에게 남자를 맡기고 폭약을 꺼냈다. 성냥에 불을 붙이고 불을 폭약의 꼬리에 옮겼다. 하늘의 향해 높게 폭약을 치켜들고는 던졌다. 폭음이 시원하게 일어나고 하늘에 떠오른 자들은 집중하지 못하고 떨어졌다. 의기양양해진 소프는 양치기 소년도 놀라자빠질 만큼 익살스런 목소리로 외쳤다.


 “불이다!”


 이제 인근에 있는 경비들이 몰려올 것이다. 경비에게 들키면 폭약사건만 해도 여러 고생할게 뻔했기 때문에 안도하긴 이르지만 죽음의 늪에서는 벗어난데에 있어서 상황이 더 이상 생사를 쥐락펴락하지 않는 것에 소프는 감사하기만 했다. 늘 그렇듯이 이젠, 경비와 도둑간의 평범한 추격전이 전부였다.


 소프의 일행은 시계탑에 가기위해 수레를 돌렸다. 건물 모퉁이를 돌아 앞을 보는 순간 사신과 직면했다. 사신은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어째서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 거냐. 지금이라도 넘겨라. 그렇지 않으면,”


 잠시 뿐이지만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라면 아마 지금 앞에 서있는 사신의 눈을 같을 같겠지. 소프와 그는 눈이 마주쳤다. 그가 소프에게 속삭였다.


 “마왕의 진노를 보리라.”


 이렇게 이야기가 끝났다. 물론 이 뒤에 그 광인의 대한 처리라 던지 경비와의 추격전이 있었지만 더 이상 들려달라는 사람이 듣지 않자 소프도 이야기의 흥이 떨어져 그만뒀다. 송장같이 바싹 얼어붙은 루모스는 소프가 아는 한 처음으로 눈을 동그랗게 떳다. 여유 있고 졸려보이던 눈은 온데간데없고 텁텁하게 숨 막힐 정도로 크고 동그랗게 눈뜨고 있었다.


 “뭐야? 문제 있어? 아저씨? 돈이라도 없어 진거야?”


 소프의 질문에 루모스는 엉뚱한 대답을 해주었다.


 “없앴을 텐데.. 무슨 이유로..”


 “누가 이상한사람 티 못 내면 의원 못 갈까봐. 정신 좀 차려봐.”


 “용사는 어디로 간 거지?”


 진지하게 소프는 앞에 있는 남자를 병리원에 넣을 궁리를 해보았다.


 소프는 루모스를 알고 모른다는 차원을 넘어 루모스가 느끼는 공포를 공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행한 몇몇의 영혼만이 그에게 피어난 공포를 형용할 수 있다. 머릿속 깊이 잠들어있는 과거의 잔재 따위가 아닌, 근원적인 공포에 부활로 마음속에 죽어있던 공포가 다시 살아나버렸다. 이것은 살아있고 불멸이다. 그 누구도 죽일 수 없다.


 “답답하게 시리. 말 좀 해봐!”


 루모스는 소녀의 소릴 듣고 한마디 입으로 꺼냈다. 고귀하며 사악한 단어를.


 “마왕.”


 그 뿐이었다.


 


-----------------------------------------------------------------------------------------------------


 




후후훗 흐흐흐


 


나자신의 미숙함과 풋내기스러움을 비웃고 있었습니다 후후훗


 


(응?)

?
  • profile
    에테넬 2009.02.04 06:31
    엉엉엉.. 침체된 문학마을 연재란에 새로운 글이... ㅜ_ㅜ 엉엉.. ㅜ_ㅜ
  • ?
    또또님 2009.02.04 07:34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들어 살아나는 느낌이 나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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