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21 21:28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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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 31.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이 들어, 윤민아?"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들어보니까, 내가 누워있는 옆에는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여자애가 앉아있었다.


"혜인..이?"


잃어버린 마도서를 찾으러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던 혜인이. 그러면 여기는 혜인이네 집? 게다가 혜인이 머리가 은발인 것도 오랜만에 본다.


"다행이야. 윤민이.. 살아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서연이랑 유정이는.. 무사한거야?"
"응. 그 둘 뿐 아니라 다솜이라는 애도 있었는데.. 다들 별 일 없이.. 집에 돌아갔어."


휴. 서연이랑 유정이가 무사하다니 다행이다. 그 둘 뿐 아니라 다솜이까지 잡아갔다니. 정말 극악무도한 말종인 조공명이다. 조공명이 도플갱어 때문에 죽었기에 망정이지, 지금 살아있었다면.. 휴, 생각하기도 싫다.


"그 도플갱어는.. 어떻게 된거야?"
"마도서를 찾고 돌아가는 길에.. 윤민이 목소리가 들려서, 윤민이가 위험한 걸 알았어. 하지만.. 윤민이가 이미 당한 걸 보고나서.. 이능력자를 가만히 둘 수 없었어. 그 도플갱어 능력을 봉인시킨 뒤에.. 처리했어."
"그럼.. 죽은거야?"
"아니. 이능력만 못 쓸 뿐이야. 내 마도서를 이용한 능력이라서 봉인시키기가 그나마 쉬웠는데.. 설마.. 그 마도서가 다른 이능력자의 손으로 들어갈 줄이야."


도플갱어 정초혜도 조공명 못지 않게, 아니 어찌보면 조공명보다도 더 위험한데. 그나마 능력을 봉인했다니 다행이지만, 나중에 또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특히 이능력자니까 더더욱.


"혜인이가 없는 사이에.. 그 도플갱어가 지금까지 다른 여자애들 행세를 하면서, 여자애들을 조공명한테 잡아갔던거야."
"..나쁜. 괜히 보내줬네.."


앞으로 혜인이가 정초혜를 또다시 만난다면 그 때는 정초혜가 절대 무사하지 못하겠지.


"다른 여자애들을 다 보내놓고 윤민이를 봤는데.. 그 이능력자가 뭘 했는지 몰라도, 윤민이가 죽어가고 있어서.. 집으로 데리고 왔어. 윤민이가.. 깨어나야 하는데, 윤민이가 몸이 너무 망가져서.. 그냥은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어."


뭐라고. 내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거였어? 나도 눈을 떴을 때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사후세계가 아니었나 하는 착각을 했으니.


"날.. 편견없이 봐 주고.. 나같은 애랑도 친하려고 했던 착한 애가.. 윤민이니까. 윤민이만은.. 그냥 죽게 놔둘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내 마력을 윤민이한테 넣어줄 수밖에 없었어. 원래.. 마력이 없는 보통 사람한테는 이렇게 하면 안되는데.. 더 이상 '보통 사람'이 아니게 되니까.. 미안해. 윤민아. 흐흑.."


혜인이가 이렇게 우는 모습은 처음 본다. 나한테 자기 마력을 넣으면서까지 나를 살렸다니. 내가 그렇게 혜인이한테 특별했다는 건가. 혜인이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나는 그대로 북망산을 넘어서 요단강을 건넜어야 했으니.


"아냐.. 고마워, 혜인아. 그렇게라도 날 살려줘서."
"이제 윤민이.. 이전같이 살기 힘들텐데.. 괜찮아?"
"그래도..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있어서 이렇게 혜인이 곁에 있을 수 있는 거니까. 내가 죽으면.. 마음아파할 사람이 많을거야. 부모님, 윤화, 서연이.. 그리고 혜인이도."
"맞아.. 그래서.. 어떻게든 윤민이를 살리려고 했던 거야. 그 무엇보다도.. 내가.. 윤민이를 죽게 놔둘 수가 없었으니까."


혜인이는 더 이상 내가 보통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 주윤민, 지금 이렇게 살아있으니까.


"혜인아. 혜인이는 마녀잖아. 그러면 나는.."
"윤민이는..?"
"'마남'이 되는거.. 으아아아!!"


내가 말 한마디를 잘못하니까 갑자기 온 몸에 고통이 밀려온다. 아파. 정말 아파. 그만. 내가 실수했어.


"가끔.. 윤민이가 재미없는 농담할 때가 싫어."


정말 혜인이 앞에서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혜인이한테 잘못 걸리면 엄청 아프니까. 아니, 말 뿐 아니라 생각도 조심해야 한다. 혜인이는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상한게.. 조공명이 총을 가지고 있어서 그 때 총 맞고 죽는 줄 알았는데.. 총알이 보고 피할 수 있는 속도로 날아오는거야. 그래서 피했더니.. 조공명이 엄청 당황한 것 같았어."
"..."


혜인이는 또다시 말을 잃었다. 도대체 이건 또 뭐지.


"혜인아.. 왜?"
"윤민이가.. 그 게임 속 세계에 빠졌다고 했잖아."
"응. 맞아."
"내가 알고 있는게 맞다면.. 그 게임 속 세계가 마도서로 구현한거니까, 윤민이가 마도서의 영향을 받아서.. 반사신경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게 된 거야. 만약에.. 마도서가 다른 이능력자나.. 퇴마사나.. 아니면 교회에라도 넘어갔으면, 정말 큰일날 뻔 했어."


그러면, 신이 도운게 아니라, 마도서 때문에 그렇게 총알을 피할 수 있었던 거라구? 마도서.. 이거 상상 이상으로 무서운데.


"그런데.. 보통 사람들 중에서는 그 마도서의 능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보기가 드문데.. 윤민이가.. 받아들였다는게..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어. 윤민이를.. 이쪽으로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니.. 지금은 이미 늦었지만."


내가 마도서의 능력을 받아들인 보기 드문 사람 중 하나라니. 이건 또 어떻게 되는거야. 정말 내가 '선택'이라도 받았다는 거야?


"그렇다고 해도.. 걱정마. 윤민이 곁에는.. 내가 있을거니까. 그 때 윤민이한테 나타났을 때처럼.. 윤민이의 수호천사가 되어줄테니까."
"고마워.. 혜인아."


그 때 수호천사로 있었던 혜인이 때문에 내가 학교에서 조퇴까지 하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좋다. 혜인이는 죽을 뻔한 나를 이렇게 살려준 내 생명의 은인이니까.


"다솜이는?"
"그 애도 그 게임 속에 들어가서 윤민이랑 같이 있었다면.. 가능은 해. 하지만.. 그 능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 '얼마 되지 않는' 사람 중 하나가 나였다니. 난 그냥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고 싶다구. 그냥 남들처럼 죽어라고 공부해서 대학에도 들어가고..


"윤민아. 내가.. 하나 솔직히 말해도 될까?"
"응.. 어떤거?"
"쓰러진 윤민이를 데려와서 침대에 눕히고 나서.. 윤민이한테 마력을 넣기 전에 윤민이 몸 이곳저곳을 손 대봤고, 윤민이한테 입맞춤도 몰래 했어. 윤민이를 살리지 못하면 어쩌나 불안해서.."


...?!


혜인이 얘. 평소에는 얌전하다가도 가끔 이럴 때 무섭다. 정말 혜인이도 나를 그렇게까지 특별하게 생각했던 건가.


"미안해.. 윤민아. 나.. 역시 윤민이랑 친해질 자격이 없는 앤가봐."
"아냐.. 날 걱정해줘서, 그리고 날 살려줘서 고마워."
"윤민이.. 정말 보기 드물게 착한 애니까."


정말 남들이 보면 영락없이 '마녀한테 홀렸다' 라고 하겠지만, 혜인이는 흔히들 생각하는 그런 나쁜 마녀가 아니라니까.


"그런데.. 윤민이랑 윤화 있잖아."
"응."
"내가 보기에.. 둘이.. 친남매가 아닌 것 같아."


뭐라고?


나랑 윤화가 둘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윤'민과 '윤'화라서 이름 돌림자도 같고, 남들이 보기에 친남매가 아닌 걸 의식하지 못할 정도는 아닌데. 그래서 둘이 친남매가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은 우리 부모님을 제외하면 서연이밖에 없으니까.


"그 때 윤민이네 집에 수호천사 모습으로 있었을 때, 윤화가 들어오니까.. 내가 다시 원래대로 되었잖아."
"응. 맞아. 그랬지. 그때에야 그 수호천사가 혜인이라는 거 알았으니까."
"윤화한테는.. 내 마력을 방해하는 힘이 있어. 윤화 자신은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서 윤민이랑 윤화가 남매니까 윤민이한테도 혹시 그런 힘이 있을까봐.. 윤민이한테 마력을 넣을 때 조심했는데, 윤민이한테는 그런 힘이 없어."


윤화가 혜인이를 싫어하는 것 뿐 아니라.. 윤화한테 혜인이의 마력을 방해하는 힘이 있다구? 둘이 뭔가 타고난 극상성인건가.


"그게.. 우연일 수도 있잖아."
"그 힘이.. 우리 엄마랑 싸우다 같이 죽은 퇴마사 있잖아. 그 퇴마사보다는 약하긴 해도.. 비슷한 힘이었어."


그러고보니 그 도플갱어가 말했지. 멸족한 줄 알았던 퇴마사한테는 두 명의 동생이 있고, 각기 다른 집에 입양되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데, 지금 혜인이 말대로라면.. 그 중 하나가 윤화?!


"그리고.. 내가 윤민이한테 지금까지 말을 못했는데, 학교에서도 비슷하게 날 방해하는 힘을 느꼈어. 담임선생님한테서."
"담임선생님이.. 누군데?"
"이선화 선생님. 영어 가르치시는 분."


뭐야.. 윤화는 그렇다 쳐도, 영어선생님한테까지 혜인이의 마력을 방해하는 힘이 있다니. 그러면 호진선배가 말했던 게 사실?


지금까지 이 모든 것을 정리하면..


영어선생님하고 윤화는 둘 다 혜인이네 엄마랑 싸웠던 퇴마사의 동생이고, 각기 다른 집에 입양되어서 둘이 친자매인 것도 모른 채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고, 그 둘한테 혜인이의 마력을 방해하는 힘이 있고..


아냐. 영어선생님은 몰라도 윤화는 그런 애가 아닐거야. 그냥 우연히 그게 들어맞는 것 뿐일거야.


"나랑 윤화.. 친남매 아닌거, 맞아. 그래도.. 친남매랑 다름없이 사이좋게 지냈는데."
"집에 돌아가면.. 윤화를 조심해. 윤민이.. 이제는 윤민이 몸 안의 마력이 곧 생명력이라.. 윤화 곁에 있으면.. 윤민이 몸이 약해질거야. 그나만 그 퇴마사보다는 약한 게 다행이야."


하지만 윤화는 내 동생인데. 그 동안 윤화랑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친동생이 아니라고 해도 내 동생으로서 잘해줘야 하는데 지금까지 잘해주지 못한 내가 못난 놈이니.


흔히들 말하지. 사람은 뭔가를 잃은 뒤에야 그것의 소중함을 느낀다고. 정말 그 말이 맞다. 이번에는 내가 정말로 죽을뻔, 아니, 죽다 살아났으니. 내가 몸이 약해진다고 해도, 윤화한테 내가 잘 있다는 것은 보여줘야 하니까.


"그래도.. 상관없어. 집에서 윤화가 나 많이 걱정하고 있을테니까. 집에는 가야 돼."


혹시나 해서 내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부재중 전화가 20통?! 그리고 전부 윤화. 윤화한테 나 잘 있다고 얘기해야 하는데.. 휴대폰 안테나가 한 칸도 표시가 안 되어있는데다가, 0월 0일 00:00? 이거.. 도대체 뭐야?


설마, 그 때 게임세계에 빠졌던 것처럼 여기가 혹시 우리 집하고는 또 다른 차원인거야?


"혜인아. 이 휴대폰.. 이상해. 왜 날짜가 이렇게 써 있는거지."
"아.. 맞다. 우리집 주변에 내가 결계를 쳐놨어. 내가 혼자 살다보니까.. 가끔 이상한 사람들이 들어오고는 하는데, 그 사람들한테는 우리 집이 아예 안 보일거야."


결계라니.. 맞아. 혜인이는 마녀였지. 설마했는데 결계까지 칠 정도였다니.


"그런데.. 내가 휴대전화는 안 쓰니까, 그 결계가.. 휴대전화까지 방해할 줄은 몰랐어. 내가 휴대전화를 안 쓰니까. 미안해. 아마.. 밖으로 나가면 휴대전화가 잘 될거야."


가끔 판타지소설 같은거 보면서 결계가 뭔지는 알겠지만, 설마 그 결계가 휴대폰 전파까지 방해한단 말인가. 이거 좀 많이 무서운데.


"그리고.. 이제 윤민이도 나같은 존재가 되었으니까, 내가.. 새롬이를 왜 조심하라고 했는지, 이제.. 알려줄께."


혜인이가 유난히 새롬이를 많이 경계했지. 새롬이도 혜인이의 정체를 알고 난 뒤 혜인이를 '마녀'라면서 무서워했고. 도대체 왜 그런걸까 평소부터 계속 궁금했는데.


"새롬이.. 걔, 인간이 아니야."


새롬이가 인간이 아니라니. 혜인이가 마녀고 정초혜가 도플갱어라고 하지만 걔들도 결국 인간이고, 새롬이도 우리처럼 눈코입이 멀쩡히 달린 인간인데. 설마 판타지 속에 나오는 엘프라던가 드워프, 오크, 고블린, 키스킨 이런게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을거고.


"내가 알고 있는게 맞다면.. 새롬이.. '호문클루스'야. 새롬이한테.. 호문클루스 특유의 이질감이 있어."


호문클루스.. 뭐였더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갑자기 까먹었네.


"호문클루스라는 건, 누군가가 마력을 이용해서 '인공적으로 만든' 생명체야. 겉으로 보기에 어려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모습이 변화가 없기 때문에 방금 만든 호문클루스인지, 아니면 만든 지 오래된 호문클루스인지는 마력으로 탐지하지 않는 한.. 알 수 없어."


뭐라고, 인공생명체?


어쩐지 새롬이를 볼때마다 뭔가 이상했어. 윤화가 만든 요리를 맛있다고 하지 않나, 초등학생 나이로 고등학교에 멀쩡히 다니고 있질 않나..


도대체.. 이 세상이 정말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혜인이가 마녀라는 것에서 시작해서.. 염동력자가 나타나지를 않나, 내 동생 윤화가 퇴마사 일족일지도 모르지 않나.. 그것도 모자라서 새롬이가 마력으로 만든 인공생명체라니..


"그런데, 호문클루스를 만들 수 있는 연금술사가 이 나라에는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상하네."


이걸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말했다가는 영락없이 히틀러가 지구 안쪽 깊숙히 새로운 나치제국을 차려서 UFO를 띄운다는 음모론을 말하는 사람들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혜인이가 마녀라는 것과 염동력자 도플갱어의 존재는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으니까.


이전같이 살기 힘들다는 얘기는 바로 이런 건가. 이 모든 것을 모른 채로 그냥 살아갈 수는 없는걸까. 아니, 이미 알아버렸으니 늦었다. 왜 아는 것이 병이라고들 했는지 이제 알겠다.


"무서워.."
"걱정마, 윤민아.. 윤민이한테 무슨 일이 생기게.. 그냥 놔두지는 않을 테니까."


생각해보면 내가 혜인이를, 그리고 지금 혜인이가 해준 얘기들을 몰랐다면 그냥 평범하게 살게 되겠지. 다른 애들과 별 다를바 없이.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러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혜인이는 좋은 애다. 단지 낯을 가릴 뿐이지. 무엇보다도 혜인이가 아니었다면 지금 나는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학교에는.. 윤민이 감기몸살로 결석이라고 얘기했어. 서연이한테 잘 말했으니까.. 서연이가 윤화한테 얘기 잘 했을거야."


하지만 그런다고 안심할 윤화가 아니다. 윤화는 내가 여태 혜인이랑 있었다는 걸 알면 펄쩍 뛸 애니까.


특히 최근 들어서 내가 윤화를 많이 걱정하게 했으니까, 내가 윤화때문에 몸이 약해진다고 해도, 생명에 지장이 생긴다고 해도 윤화한테 돌아가야 한다. 윤화한테 오빠로서 잘 해주지도 못하고 죽을 뻔 했으니.


윤화뿐 아니라, 언젠가 돌아오실 부모님이 내가 이런 모습이 된 걸 알면 어떻게 하실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내가 중학교 때부터 해외로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고 한 거였는데. 그나마 통장으로 생활비가 들어와서 사는데는 지장이 없지만..


뭐 그 뒤로 윤화의 각종 요리실험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나였다. 나는 그나마 내성이 생겼지만, 지금까지도 피해자가 꾸준히 나오고 있으니 걱정이다. 나중에 윤화한테 남자친구가 생기면 그 남자친구가 어떻게 될 지는 안봐도 DVD다.


"혜인아. 집 좀 둘러봐도 돼?"
"응. 하지만 조심해. 우리집에 마력이 담긴 것들이 좀 많으니까."


뭐, 위험한 게 있으면 알아서 조심하면 되니까.


"혹시 모르니까.. 윤민이한테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안되니까, 내가 같이 있을께."


그런 편이 나한테도 좋다. 얼마나 누워 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의 나는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났으니까.


내가 누워있는 곳이 아마 혜인이의 방인 것 같다. 그냥 평범하게 고등학교 교과서들이 놓여있긴 하지만, 다른 여자애들과는 달리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은 없다. 내 동생 윤화도 FT에 제대로 빠져있으니. 요새는 그나마 전보다는 덜한 것 같지만 작년엔 정말 제대로였지. 역시 연예인같은데는 관심이 없는건가. 아니, 연예인을 잘 모르는걸까.


거실에 나와보니, 고물TV 한 대가 보인다. 그것도 얘기로만 들었던 다이얼을 돌리는 리모컨 없는 완전 구식TV. 혜인이도 TV는 보는구나.


"혜인이 TV 자주 봐?"
"가끔.. 쉬고 싶을 땐 봐."


TV에서 지금 뭐가 나오고 있는지, 한번 켜봐야지. 휴대폰도 지금 안되고 있으니.


"이박~ 삼일!"


헉. 지금 벌써 일요일 저녁인건가. 분명히 조공명을 만난 날짜는 금요일일텐데. 이거 시간이 지나도 너무 지났다. 황금같은 휴일이 이렇게 날아가버린건가.


"오늘.. 벌써 일요일이야?"
"응. 윤민이.. 이제라도 깨어난 게 다행이야."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여기 빨리 둘러보고 나서 어서 집에 가야지.


다른 방으로 가 보니까, 뭔가 오래된 것 같은 책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다 낡은 빗자루 하나도.


"이 책들.. 뭐야?"
"마도서들인데.. 나도 아직 다 읽어보진 못헀어. 우리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것들이야."
"이 빗자루.. 혜인이가 이거 타고 나는거야?"
"우리 엄마가 생전에 쓰던 거였어. 나도.. 이걸 타고 날 수는 있는데, 내가 빗자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얼핏 들은 얘기로, 마녀들의 직업병은 치질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빗자루를 타는 동안 그곳을 계속 건드려서.. 아아아아아! 혜인아, 그만. 내가 잘못했어.


"윤민이는.. 다 좋은데, 가끔 이렇게 이상한 생각을 하는게 싫어. 내가 그래서 빗자루를 타기 싫어하는거야."
"미안.. 혜인아."
"하지만.. 윤민이가 원한다면, 잠깐만 보여줄께."


그리고 혜인이는 빗자루에 몸을 실은뒤, 뭔가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웠는데!?


...정말이다. 정말 공중에 떠있어. 마녀가 빗자루 타고 하늘을 난다는 얘기가 동화속에 나오는 얘기만은 아니구나.


"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혜인이는 다시 내려왔다.


"꼭 빗자루를 타지 않아도, 내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때도 공중에 뜰 수 있긴 해."
"그 때 그 수호천사 모습?"
"맞아. 하지만.. 내 마력을 좀 많이 쓰니까, 변신을 자주 하지는 못해."


그리고 방 한쪽 구석에는 각종 약병들이 있었다. 이것들은 또 뭐지.


"마도서에 나온 대로.. 물약을 만들어본거야. 마력이 있는 사람이 쓰지 않으면.. 부작용이 생겨. 나중에 가르쳐줄께."


그밖에 마법진처럼 보이는 것도 보였지만, 지금은 저거에 신경쓸 때가 아니다. 나중에 혜인이한테 물어봐야지.


"이제.. 가볼께. 나 살려줘서.. 다시한번 고마워."
"뭘.. 윤민이는, 나한테 특별한 애니까. 나중에도.. 윤민이네 집에도 한번 들러볼께."
"우리집엔 윤화 때문에 오기가 쉽지 않을텐데."
"아.. 그랬지."


혜인이도 윤화가 자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눈치채고 있으니.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게다가 윤화가 자신의 숙적인 퇴마사 가문일지도 모르는데도 혜인이는 윤화를 별로 싫어하지는 않고 있다. 내가 혜인이를 제대로 보고 있다면.


"맞아. 내가 왜 그 도플갱어를 눈치챘냐 하면.. 내가 자고 있는데, 목소리가 들렸어. 낯익은 사람으로 변해서 사람을 홀리는 도플갱어가 나타나고 있다고. 그래서 유정이랑 서연이가 뭔가 이상했다 싶었는데 알고보니 도플갱어가 각각 유정이랑 서연이로 변해서 날 홀리고 있던 거였어."
"누구 목소리였는지.. 모르겠어?"
"내가 모르는 목소리야."
"맞아. 마도서 찾고 있는 중에.. 나한테도 목소리가 들렸어. 하지만.. 누구 목소리였는지는 모르겠어. 윤민이가 위험하니까 유일동으로 빨리 돌아오라는 목소리였어. 그래서.. 그 때 마침 마도서도 찾았겠다.. 윤민이한테 온거야."


누군지는 몰라도, 나랑 혜인이한테 목소리를 전해준 사람이 같다면, 정말 제대로 고마운 사람이다. 아니,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도 되었으려나. 아니면.. 내가 모르고 있는 또다른 존재?


뭐, 이제 뭐가 나타나도 놀랍지가 않다. 마녀에다가 도플갱어에다가 호문클루스에다가.. 이미 난 평범한 일상을 보내기는 늦었으니.


"아.. 맞아. 윤민아. 나.. 윤민이랑 입맞춤.. 또 해도 될까? 윤민이랑 하면.. 기분이 좋아."


내 첫키스 상대가 다름아닌 혜인이라서 혜인이랑 키스하는 것이 싫지는 않은데, 문제는 이런 모습을 윤화라던가 서연이라던가 유정이가 알면 난리가 난다는거지. 뭐 여기는 어차피 혜인이네 집이니까 그런 모습이 들킬 리는 없겠지만.


혜인이의 입술. 차갑다. 많이 차갑다. 하지만 이런 혜인이를 따뜻하게 해 줘야 할 의무가 나한테 있다. 나를 살린게 혜인이니까.


"윤민이는.. 따뜻해."


그리고 내 바램은, 학교의 다른 애들이 혜인이에 대한 편견을 하루빨리 버렸으면 하는 것.


"잘가.. 내일 학교에서 봐. 그리고.. 몸 조심해. 지금 윤민이도 마력을 쓸 수 있긴 한데.. 마력을 너무 쓰면.. 윤민이 몸이 위험해."
"걱정마. 내가 마력이 있다고 해도.. 평소에 마력을 쓸 일이 있을리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미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기에는 루비콘 강을 건넌 것처럼 늦어버렸지만, 그래도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런데 혜인이네 집에서 나와보니, 여기 어디야. 유일동 맞긴 맞아? 아.. 저기 홈마이너스 마트가 보인다. 그래. 저 길을 따라가면 집으로 갈 수 있어. 그런데?


"잘못했어.. 안그럴께."
"어딜, 건방지게!"


이건 또 뭐야. 지금까지도 학교폭력이 저렇게 이어지고 있다니. 그것도 여자애들끼리. 게다가 저걸 캠코더로 찍고 있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만해."
"어쭈. 넌 뭐야. 말라빠진 개뼉다구가."
"얘야. 착하지. 어서 집에나 가라. 좋은 말할때."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든 해야 해. 당하고 있는 애가 정말 불쌍하니까.


"유일고.. 교복? 유일고에 보라폭풍은 진작 빠졌는데."
"냅둬. 그냥 자기 무덤을 파고 싶어서 그런거지."


뭐야. 쟤들 지금 나한테 달려오는거야? 뭐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그 때의 기적이 또 다시 터지기를 바랄 수밖에. 정말 그 마도서 때문에 나한테 그런 능력이 생겼다면, 또 다시 터지지 않을 리는 없겠지만.


퍽.
퍽.
퍽.


"그러니까 자기 무덤을 파지 마란 말야."


역시 그건 신이 도왔던건가. 사람이 낄 데랑 안 낄 데는 정말 구분해야 하나 보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서 뭔가 이상한 단어들이 생각난다. 이거 뭐지. 한번 이 단어들을 말해볼까.


"flxksldksms fhflzhsdlek dlqudals von emfznekftm..."
"으으으.. 아아아아아아!"


뭐야. 설마 이게 마력이라는건가. 저 여자애들. 제자리에 주저앉았어.


"너.. 도대체 뭐야. 정체가 뭐야!"
"나? 그냥 사람."
"..가만.. 안 둬. 너.. 우리를 이렇게 만든 이상, 살아서 집에 못 갈 줄 알아!"


죽다 살아났는데 또 다시 죽는다니. 말이 안되지. 또다시 내 머릿속에 생각난 단어들을 말해야지.


"xpxmfltm gprtk roffjrm qhrmfqhrmf sjrnfl tmxmflxmvkdlxj..."
"아아아아..."


휴. 겨우 상황을 해결했네. 학원폭력같은 사회악은 없어져야 한단 말이지. 다들 기절한 상태에서, 방금 전까지 당하고 있었던 여자애가 나한테 다가왔다.


"고마워. 나.. 너 누군지 알것같아. 유일고 다니는 주윤민.. 맞지?"


- 다음회에 계속 -


네. 이번회에는 혜인이의 마력으로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윤민이었습니다. 그새 날은 훌쩍 지나가버려서 일요일이 되었죠. 혜인이의 도움으로 살아난 윤민이. 다행히도 혜인이는 마도서를 찾았고, 윤민이는 혜인이한테 여러가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고, 더 이상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기가 불가능해졌다는 얘기를 들은 윤민이. 그리고 자기 몸이 약해진다고 해도 윤화한테 돌아가겠다고 하는데. 그 중간에 자기 마력을 결국 써버린 윤민. 과연 이번에는?


하렘메이커라는 거 아무나 하는게 아닙니다. 플래그를 쌓는것도 노하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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