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22 06:30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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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고 복도에 나갔는데 아직 다솜이는 안 왔다. 내가 다솜이네 반 교실로 찾아가야 하는 건가. 그런데..


"기다려, 민군."


서연이 쟤는 갑자기 나를 왜 부르는거지.


"왜?"
"오늘 건전 앤 파이터 페스티벌인가, 다솜이라는 애랑 같이 가는거, 맞지?"
"응. 맞아. 그런데 왜?"
"나도 갈거야. 그때처럼 미니한테 무슨 일 생기는거, 못봐줘."
"다솜이한테는 서연이도 같이 간다는 얘기 안했는데.."
"치. 나빴어, 민군. 그래봐."


큰일났다. 서연이가 또 삐지기 시작했다. 지금 최대한 수습하지 않으면 나중에 곤란해.


"미안해, 서연아. 같이 가자."
"정..말?"
"다솜이한테는 내가 잘 얘기해볼께."
"진짜지.. 민군? 딴 말 하기 없기야. 약속!"
"윤민아, 미안. 많이 기다렸지?"
"앗.."


서연이가 삐진 것을 풀어주려고 하는데, 하필이면 이 때 다솜이가 왔네. 다솜이한테는 또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다솜아, 미안한데.. 서연이도 같이 가도 되지?"
"괜찮은데.. 건전 앤 파이터 안하는 애한테는 재미 없을텐데."
"그래도 괜찮아. 괜히 미니 그냥 보냈다가 미니한테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해."
"무슨 일이라니? 아.. 혹시?"


맞다. 그러고보니 지난주 코믹때 다솜이도 내가 아름선배 때문에 여장한 모습을 봤지. 후. 정말 그 때 그건 잊고싶다.


"괜찮아.. 서연아. 그런 일 없을거야."
"그래도.. 불안해. 그리고 나도 그거 좀 한적 있었어. 같이 갈거야. 나도."


이미 다솜이는 괜찮다고 했으니까, 나는 서연이, 다솜이 이렇게 둘이랑 함께 버스를 타는 곳으로 갔다. 이상하게 서연이랑 다솜이 둘 중 한명이랑만 있을때는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은데, 둘이 같이 있으니까 기분이 좀 이상해지는 이유가 뭘까.


저 멀리 호진선배랑 희연선배의 모습이 보인다. 저 두 분이 정말 서로 잘 어울리지. 찰떡궁합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몇 안되는 짝 중 하나야. 하지만 요새 나래랑, 그리고 서연이랑 얘기를 하고 있다보면.. 호진선배랑 희연선배 둘이 서로 알지 못했다면, 희연선배도 또다른 자기 짝을 찾았을 것이고, 호진선배 옆에는 희연선배가 아닌 나래가 있었으려나?


아차. 생각해보니 내가 신경쓸 일이 아니잖아 이거. 나 지금 뭐 하고 있는거지. 내가 다른 쪽에 신경을 쓰고 있는 동안, 누가 나 부른것 같은데..


"오빠, 언니들이랑 어디 가는거야?"


아차. 윤화네. 그 때 아름선배한테 끌려간 뒤로 내가 어디 가는것에 굉장히 민감한 것 같은데.


"아.. 건전 앤 파이터 페스티벌에 가는거야. 이번엔 서연이도 가니까, 그때같은 일은 없을거야."
"그때 봤던 윤민이 동생이구나. 반가워."
"서연언니가 같이 간다니까.. 믿어볼께. 그때 이상한 언니가 오빠 데리고 간 것 때문에 불안해서 그래."


그때 그 일 이후로 윤화도 아름선배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길래 왜 싫다는 사람 괜히 데리고 가서 그 망신을 당하게 만들었냐구. 그것도 그냥 데리고 가는거면 그나마 나아. 그 메이드복을 왜 남자인 나한테 입힌거냐구. 덕분에 윤화가 그 옷을 집에서 신나게 입고 있지만.


"걱정마. 별 일 없을테니까."
"요새 오빠 보면 걱정이 안 될리가 없잖아."


정말 요새 내 모습을 보면 계속 윤화를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요새 이상한 일들이 내 주변에서만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내가 정말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나마 서연이가 있어서인가 윤화가 살짝 안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일단 가기전에 뭔가 먹고 가긴 해야 할텐데.


그래서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김밥천당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마침 라디오가 들리고 있었다.


"박소현의 Tomorrow Perfume Radio! 오늘도 청취자 여러분과 언제나 함께하는 DJ, 박소현입니다."


박소현이 방송에 나올 때가 아닌 실제로도 저렇게 사람들과 함께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얘기 들어보면 전혀 안 그럴 것 같은데.


주문한 김밥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서연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니까 말하는 건데, 희연선배. 정말 나쁜 사람이야. 희연선배만 아니었다면.. 호진선배가 나래를 버릴 일이 없잖아. 미니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지 않을거야."
"잠깐. 서연이 너도.. 나래를 알아?"


나래는 다솜이랑 중학교 동창이었고, 나도 다솜이 때문에 나래를 알게 되었으니, 다솜이는 자기가 잘 모르는 애인 서연이가 나래를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란 것이 아닐까.


"응. 미니가 얘기해줬고, 나래하고도 얘기해봤어. 너야말로.. 어떻게 나래를?"
"나래가.. 내 중학교 동창이니까."
"내가 나래랑 알게 된 게, 다솜이랑 같이 있다가 우연히 만나서 알게 된 거였어."
"역시.. 미니가 요새 자꾸 다른 여자애들하고만 노니까."
"..."


솔직히 여기서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정말 그냥 모두 친해질 수 없는걸까.


"호진선배는 희연선배한테 넘어가서 나래를 그렇게 만든 거였잖아. 난 미니가 호진선배같이 되지 않게 할꺼야."
"호진선배한테만 책임이 있다고는 할 수 없잖아. 나래가 그랬는데, 희연선배가 호진선배한테 계속 달라붙어서 호진선배가 결국 희연선배랑 사귀게 된 거였대."
"거봐. 희연선배가.. 나쁜 사람 맞잖아. 겉으로는 그렇게 웃고 있으면서, 나래가 있었어야 할 호진선배 옆자리를 가로챈 거였으니까."
"그래도 희연선배도 호진선배가 좋아서 그런 거였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이미 늦어버렸으니까."


아까전에 호진선배랑 희연선배를 본 것 때문인가, 그리고 둘 다 나래를 알고 있어서인가 화제가 이미 그 쪽으로 기울어버렸네. 역시 여자애들은 뭔가 공통화제가 있으면 수다모드로 들어가는건가. 얘기하고 있는 사이에 주문한 김밥이 나왔다.


"주문하신 김밥 나왔습니다."


김밥은 나오고, 라디오에서는 노래가 끝난 뒤에 광고가 나가고 있었다.


'잠깜만~!'
"안녕하세요. 프레이아의 리더, 윤지영입니다. 사람은 살다보면 좌절을 겪게 될 때가 있죠. 저도 좌절을 겪었던 적이 한번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못하겠구나 하고도 생각했죠. 하지만, 제 곁에는 팬 여러분들이 있었고, 프레이아의 소중한 동생인 혜련이랑 윤경이도 있고, 결정적으로 아직 철이 없지만 귀여운 제 사촌동생 한명이 저를 많이 도와줘서, 저는 다시 가수로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리고 좌절을 겪을 때가 종종 있지만, 제 곁을 지켜보는 많은 팬 여러분들을 생각하고 좌절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좌절하려고 하지 마시고, 여러분을 지켜보는 사람이 여러분 곁에 있다는거, 잊지 마세요."
'잠깜만~! 우~~ 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가끔 라디오 중간에 나오는 '잠깜만'. 스타들이 좋은 이야기를 해 주는데, 오늘은 프레이아의 윤지영이 얘기하네. 윤지영의 사촌동생이 누군지 몰라도, 윤지영을 재기하게 해 준 데에 큰 도움이 되었으니 윤지영에게는 정말 은인이 아닐 수 없겠지. 누군지 몰라도 그 사촌동생도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라디오가 나오는 사이에 서연이랑 다솜이는 어느샌가 김밥의 절반 이상을 비워버렸지만. 여자애들은 이래서 무섭다. 내 동생인 윤화도 예외가 아니고.


김밥을 다 먹고 김밥천당을 나선 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서연이는.. 건전 앤 파이터, 얼마나 한 거야?"
"미니가 같이 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레벨 29까지 키우고 접었어. 집 컴퓨터로 렉이 하도 자주 걸려서."
"무슨.. 직업으로 했는데?"
"소환사."
"소환사가.. 원래 렉이 잘 걸리는 직업이야. 하지만.. 잘 키우면 사냥은 잘 하는데."
"렉 걸리는것도 있고, 내가 원래 손이 느려서 남들 안 껴주는데도 미니랑 둘이서 죽어라고 한 건데, 내가 접은 뒤에 미니는 길드 들어간 뒤에 거기서 또 신나게 해서 지금 고렙됐고."
"나도.. 윤민이가 나랑 동갑인줄, 나랑 같은 학교에 입학할 줄 몰랐어."


그리고 나는 다솜이가 여자애인줄도 몰랐지. 게임에서와는 달리 얌전한 애일줄은 더더욱 몰랐고. 아까 김밥집에서 나래라는 공통화제가 생긴 뒤에 어느샌가 말을 서로 트게 된 서연이랑 다솜이였다.


얘기하고 있는 사이에 버스는 도착했다. 역시 토요일이라서 그런가 버스 안에는 사람이 장난 아니다. 아무리 오늘이 놀토가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주말이라 어디 놀러가는 사람이 많기에.


역시 길이 막히니까 버스는 엄청 느리게 간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전철타고 갈 걸 그랬나.


"페스티벌 몇시부터 시작하는거야?"
"두시."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는데.. 버스가 이렇게 느리니까, 걱정이네."


버스에서도 라디오는 여전히 나오고 있었다. 아직 Tomorrow Perfume Radio는 안 끝났네. 지금의 Tomorrow Perfume Radio를 듣고 있으면 이게 정말 전에 남자DJ가 했던 방송인가 믿기지 않는다. 그 사람이 필리핀에서 돌아오게 되더라도 절대로 다시 Tomorrow Perfume Radio로 복귀하지는 못할거야. 박소현이 아무리 길거리 캐스팅으로 스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이렇게 빠른 시간내에 도착한거지.


다행히도 버스는 그렇제 늦지 않게 코엑스에 도착했고,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니 건전 앤 파이터 페스티벌을 하는 위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줄이 진짜 장난없이 길다. 건전 앤 파이터가 아무리 운영을 개판으로 해도 인기 하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게임이긴 하기에.


그리고 그 긴 줄 속에서 다솜이는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난 모양이다.


"어, 다솜아!"
"미란이도 왔구나. 버스가 밀려서 늦었어."


미란이라는 애.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다솜이랑 아는 애라.. 설마 그때 코믹에서 마법사 2차 레어아바타 코스프레를 한 애였나. 지금은 코스프레는 안 했는데.


"옆에 있는 애.. 혹시 코믹에서 메이드복 입은 애야?"
"..."


어휴. 정말 왜 다들 나만 보면 메이드복 얘기인거야. 정말 아름선배 때문에 내 이미지가 제대로 망가졌네. 아름선배 정말 이거 어떻게 책임질거예요.


입장시간이 되어서 줄은 점점 짧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가 들어가려면 멀었다.


"민군. 멀었어?"
"아직도.. 줄이 꽤 남았어."
"지루해."


그리고 드디어 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장난이 아니다 이거. 아까 줄이 길다는 것에서도 느꼈지만, 안에 사람들 있는 걸 보니까 더 장난이 아니야.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또 다시 눈에 띄는 사람이 보였다. 그런데 저 분이 여기 계실만한 분이 아닌데.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 윤민이? 그리고.. 다솜이?"


영어선생님이 왜 여기에 계시는거지. 설마 영어선생님도 건전 앤 파이터 게임을 하시는건가.


"선생님도 이 게임 하세요?"
"아니.. 오늘 외국에서 어떤 유명한 사람 온다기에.. 그 사람 통역하러 온 거야. 인터넷에서 유명한 사람이라는데."


역시 영어선생님이라서 통역까지 하시는구나. 그런데 오늘 온다는 인터넷에서 유명한 사람, 그것도 게임 관련 이벤트에 올만한 사람이라면 딱 한사람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AGRN.


Angry Game Review Nerd의 약자. 언제나 화내면서 육두문자를 섞어가면서 저질 게임들을 리뷰하는 서양의 리뷰어. 그런데 그 AGRN이 온다는 곳이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이면 건전 앤 파이터 페스티벌이냐.


뭐, 건전 앤 파이터가 대차게 까야 하는 게임인 것은 맞지만, AGRN까지 이걸 까면 파장이 장난이 아닐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도 꽤나 유명한 AGRN인지라.


"안녕하세요! 건전 앤 파이터 라디오 진행을 하고 있는, 손예지예요!"


손예지. 전혀 반갑지 않다. 요새는 그나마 윤화 때문에 손예지가 방송할 시간에는 못하니까 그렇다 쳐도, 한때 죽어라고 하던 때는 6시만 되면 고정적으로 방송이 들렸지. 자기 남자친구인 '블랙스퀘어'와 함께 고강 아이템 사기를 계속 치고 있는 손예지. 게다가 돈을 얼마나 썼는지, 그 사기를 고발하는 글만 보면 그 아이디를 영구정지 먹이고. 그냥 답이 없다.


"손예지 정말 재수없어, 윤민아."
"다솜이가 보기도 그렇지?"
"손예지가.. 뭘 했길래 그래, 민군?"
"지금 얘기하기에는 길어. 나중에 말해줄께."


손예지는 사용자들이 자기한테 얼마나 불만이 있는가는 상관없이, 곧 새로 나온다는 '여성거너'를 열심히 소개하고 있었다. 아무리 이성직업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많아도 그렇지, 저렇게 모든 캐릭터마다 남녀를 다 만들어놓으면 분명히 마비놀이처럼 남자가 여캐를 하고 여자가 남캐를 하는 성전환 게임이 되는데.


그런데 역시 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남자들이 많아서 그런가, 다들 여거너에 환호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은 곧 나올 새로운 스킬. 그렇지 않아도 거너가 개편 안한 지 오래된 시점에서, 나도 지금 거너를 하고 있는데 기대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보여주는건 런처꺼네. 나는 스핏파이어를 키우고 있는데.


반대쪽에서는 게임 캐릭터를 코스프레한 사람들이 보이네. 역시 제작사에서 섭외해서 그런가 개인이 한 코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고 그 미란이라는 애가 한 코스프레가 차원이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지만.


"와, 여기 이거 봐. 디게 이뻐, 민군."


뭔가 했더니, 마법사 기본복장이네. 건전 앤 파이터 게임이 마법사가 확실히 귀엽지. 분명히 로리콘들을 노리고 만들었겠지만.


그런데 저쪽에 사람들이 몰려 있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역시나.


마침 AGRN의 내한 시기에 맞춰서 페스티벌 주최측에서 AGRN을 초청했나본데, 그것도 우리 학교 영어선생님한테 저런 분을 통역하도록 맡기는지.


예상대로다.


"F***! F*** F*** F***! S***!"


그럼 그렇지. 내 이렇게 한번 대차게 까일 줄 알았다. 선생님은 완전히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고, 뒤에서 누군가가 세트 뭐라고 말해주고 있는게 들리는 걸 보니 세트를 맞춰 입으라고 하는데, 세트 가격을 말해주자 또다시


"F*** F*** F*** F***!!"


게다가 지금 AGRN이 스킬버튼을 눌렀는데 하필이면 '스턱'이 뜨면서 적이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다.


"F***!!!!!!!!!!!!!!!!!!!!!!!!!!!!!!"


AGRN의 길고 굵은 비명은 건전 앤 파이터 페스티벌 행사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관계자들은 결국 사람을 불러서 AGRN을 쫓아냈지만, 이미 분위기가 저 모양이 된 페스티벌. 수습은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가는 것이 보인다. 서연이랑 다솜이는 이미 아무 것도 할 수 못한채로 굳어있었다.


그럼 그렇지. 운영을 막장으로 한 댓가를 이렇게 고스란히 받는구나.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AGRN한테 까였으니.


"죄송합니다. 방금 돌발 사태가 있었습니다."


진행자는 애써 태연한 듯 페스티벌을 계속 진행해보려고 하지만 이미 사람들은 다 빠져나간 상태고, 진행자 역시 얼굴이 일그러진 것을 숨길 수 없었다.


결국, 우리 셋도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서연아.. 미안해. 같이 왔는데, 별로 재밌지도 않았고."
"아냐. 미니한테 별 일 없어서, 다행이야."
"나도.. 전에는 AGRN 동영상 봤는데, 요새는 집에서 컴퓨터 못하니까.. 못봤어. 그런데.. 직접 보니까 장난이 아니네."


나도 살다살다 설마 AGRN의 그 영어욕을 현장에서 그렇게 생생하게 들을 줄은 몰랐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갔는지 날은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명히 옷을 껴 입고 왔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추운거지. 아니. 이건 춥다기보다, '한기'가 왔다고 해야 하나.


"민군.. 추워."


서연이는 그냥 교복만 입고 있어서 그런가, 추위를 많이 타는 듯 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입은 잠바라도 입으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 민군. 항상 느끼지만, 이래서 민군을 미워할 수 없나봐."
"뭘.. 당연한 건데."


밖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은 정말 춥다. 이제 3월 말이 되었는데, 꽃샘추위라는 것은 언제쯤 풀릴지.


다행히도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왔다. 그리고 길은 이번에도 무지하게 막힌다. 역시 그냥 전철타는게 좋았으려나. 한 번 후회해놓고서 또다시 잊어버리고 후회하게 된다.


버스는 동네에 도착하고, 다솜이는 자기 집 방향으로 갔다. 그리고 서연이가 또다시 나한테 말을 걸었는데.


"민군. 아까 그 다솜이라는 애.. 있잖아."
"응?"
"의외로 좋은 애같아. 유정이나 새롬이보다는."
"왜 그렇게 생각해?"
"그냥.. 얘기가 통했어. 미니를 괴롭힐 애 같지는 않아."


아까전에 김밥집에서 둘이 얘기한 것 때문에 다솜이를 좋게 보고 있는걸까. 다행이다.


"서연아, 아까.. 많이 지루했지?"
"좀.. 그렇긴 했지만, 그래도 미니한테 별 일 없었으니 그걸로 됐어."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바로 옆집에 사는 서연이랑도 헤어졌다. 그나마 오늘은 서연이가 토라지지는 않았다는게 다행이다. 다솜이랑 같이 있었던 게 의외로 시너지 효과였던 걸까.


"다녀왔어."
"별 일 없었어, 오빠?"


윤화는 여전히 그 메이드복을 입으며 이리저리 패션쇼를 하고 있다. 그 옷이 윤화한테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지만, 지난주에는 내가 그 옷을 입고 코믹월드에서 눈에 띄었다는게 한숨만 나온다.


"그 AGRN이 내한해서 게임 실컷 깐거 말고는, 별 일 없었어."
"다행이네. 서연언니라도 같이 있었으니까 그런거야."


사실 서연이가 끼지 않고 다솜이랑 둘이 갔어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알 수 없는 오한을 느끼고 오늘의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일요일이 되었다.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윤화랑 놀아줘야 하는구나. 아름선배가 나를 코믹월드에 데려가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윤화한테 잡혀 지내지는 않을텐데.


에이. 엔젤헤일로나 봐야지. 예상대로 어제 AGRN이 건전 앤 파이터를 깐 것이 제대로 화제가 되었구나. '통쾌하다'라는 얘기에서부터 '저건 너무 심했다'는 얘기까지. 건전 앤 파이터 동시접속자도 덕분에 확 줄었다고 하고.


여성거너를 공개한 건 좋았지만, 하필이면 AGRN한테 까였으니 그 게임 앞날이 어떻게 될까 걱정이다.


"그러니까 오빠도 게임은 줄여. 건강에도 안 좋고 학교 성적도 나빠져."
"윤화 너는 게임 죽어라고 해 봤어?"
"아니."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 게임이 얼마나 재밌는건데."


윤화 말대로 게임에 빠지면 공부가 안 되는 건 맞는 말이다. 초등학교때도, 중학교때도 언제나 그랬으니. 하지만 요새는 게임 말고 다른 이유로 공부가 안 되고 있으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오빠."
"왜."
"반찬거리 다 떨어졌어."


조공명이 유일동으로 자취방을 옮긴 현 시점에서, 윤화를 보낼 수는 없지. 내가 가서 사와야겠다. 그렇게 돈을 들고 문 밖에 나갔는데, 뭔가 바깥 풍경이 달라졌다. 하늘 색깔도 평소와는 달리 누리끼리해. 왜 이런거지.


대문을 나서니까, 뭔가 아래가 허전하다. 이런. 낭떠러지야. 설마 우리 몰래 동네를 재개발하는건가. 밖에 포크레인 소리는 안들리는데. 나, 이렇게 죽는거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정신을 잃었다.


...


눈을 떠 보니, 완전히 낯선 곳이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까 낯설지가 않아. 이 보석으로 둘러쌓인 방. 어떤 게임에서 많이 봤어. 낡은 보물상자가 하나 있고, 쓰러진 내 앞에는 회색의 머리카락을 한 어떤 여자가 보인다.


"오셨어요?"


설마. 이거 '차원이동'이라는 거 아니겠지. 이거 '건전 앤 파이터' 랑 완전히 같잖아.


- 다음회에 계속 -


네. 이번 회는 다솜이와 함께 건전 앤 파이터 페스티벌에 간 윤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AGRN이 그 게임을 대차게 깠기 때문에 페스티벌은 완전 난장판이 되고, 나오면서 뭔가 오한을 느낀 윤민이. 그 다음날에 집 문 밖에 나섰는데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고 눈을 떠 보니까 윤민이 눈 앞에는 게임 '건전 앤 파이터' 속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최근 다음 지도에서 서비스하기 시작한 로드뷰. 서울의 거리를 직접 보는 것처럼 사진처리한 것이 멋집니다. 소설을 쓰면서도 참고가 많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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