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22 06:30

[꿈꾸는 마녀]야간 산책

조회 수 837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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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도 계시고, 조금 들뜬 마음으로 저녁을 맞습니다.


 분량이 저번에 짧았던 관계로, 이번엔 다소 길어질지 모르겠습니다.


=====================================================================================================================


"불빛이 보여?"


앞을 가리켜 윤진이 물었다. 어두운 숲,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인공적인 빛이 새어나는 것을 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선우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인류, 자신 같은 사람들을 볼 수 있을까. 이전까지 순찰에서 야수라면 수없이 마주쳤지만, 같은 인간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윤진은 이제 소리를 죽여 천천히 불빛을 향해 다가갔다. 나무 사이로 목표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마치 무슨 연구소나 창고를 연상시키는 단층 콘크리트 건물이다. 철제 현관문 위에 가스등 모양 랜턴이 있고, 건물 안에서도 창을 통해 빛이 새어나왔다. 건물 주위는 일부러 풀을 자르고 나무를 베어 정돈한 흔적이 보였다. 야수라면 이런 짓은 결코 하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문을 연 윤진이 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젊은 것들은 예의가 없어."


허스키한 여자 목소리가 먼저, 이어서 목소리의 주인이 건물 깊숙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체크무늬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 가죽조끼를 입은 긴 머리 여자다. 왼 손에 낡은 책을 펼쳐든 채, 코에 걸린 안경을 오른손 검지로 올려 쓰며 그것을 눈으로 따라 읽어내리던 여자는, 문 앞까지 나와서야 아쉬운 듯 한숨을 쉬며 책을 덮었다.


"너희, 뭐하는 녀석들이지?"


안경 너머로 쏘아보는 눈매가 매서웠다. 거기다 여자는 윤진이나 선우보다도 키가 컸다. 선우는 조금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윤진 역시 여자 기세에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그러는 넌, 누구야?"


"목소리가 낯이 익은 걸. 가만 보자. 혹시 너 아틀라스ATLAS 꼬맹이 아니냐?"


아틀라스란 '날개'를 가진 윤진의 정식 호칭이다. 윤진이 당황해 여자 얼굴을 자세히 들여 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기억나는 이가 없었다. 여자만 신이 나서 경계하는 표정을 풀더니, '뭐야, 너였어?'하고 친한 척 해댈 뿐이다.


다시 누구냐고 묻는 윤진의 질문에, 여자는 몰랐구나, 하며 중얼거리곤 그녀에게 답했다.


"엘페르라고 해둘게. 이 도서관 관장이다."


"도서관이라고?"


"문 옆에 간판 붙여놨잖아. 못 봤어?"


분명 여자가 가리킨 곳에 '도서관'이라고 새겨진 나무 간판이 걸려 있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보이는데, 일단 들어와. 차라도 대접할 테니."


엘페르란 여자 말에 따라, 윤진과 선우는 그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은 온갖 책들로 가득했다. 발 디딜 틈만 겨우 남기고 양쪽으로 책들이 쌓아올려진 모습을 윤진과 선우는 기막히단 듯 바라보았다. 이건 차라리 도서관보단 헌책방에 가깝겠다.


"정리가 아직 덜 됐거든."


엘페르가 쑥스러운 듯 설명을 덧붙였다.


조금 더 들어서자 4인용 탁자가 무지막지한 책 더미 사이를 비집고 제법 충분히 자리를 차지한 공간이 나타났다. 탁자에 둘러앉도록 권한 뒤, 엘페르는 더 깊숙이 들어가 차 세트를 꺼냈다. 각자 앞에 놓은 잔에 찻물을 붓자, 향긋한 허브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이상해."


잔을 앞에 둔 채 윤진이 엘페르를 노려보며 말했다.


"전혀 몰랐어. 당신 같은 게 이 동네에 사는지."


"그럴 수밖에. 최근 들어 입주했거든."


자기 잔을 채워 세련된 몸짓으로 잔을 끌어당겨 한 모금 맛본 뒤, 엘페르는 우아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윤진마저 잠시 말을 잊을 정도로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실은 휴가 중이거든. 여긴 시끌벅적하지도 않고, 책이나 실컷 읽으려 온 거야."


"이 '이어도'도 당신 거지?"


선우는 거의 느끼지 못하는 기운을 가리켜 윤진이 묻자, 엘페르는, 제법 예리한데, 라고 중얼댔다.


"맞아. 내가 펼쳤어. 한동안 여기 있을 거니까, 혹시나 뜨내기들이 들러붙지 않도록 경계용으로 엷게 펴 놨지."


"'이어도'를 가지고 있다니, 당신 뭐야? 신? 사자?"


아무것도 아냐. 엘페르는 쓴웃음 지으며 답했다.


"엘페르, 코코아."


기척도 없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윤진과 선우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7, 8세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맞은편에 앉은 엘페르를 보며 말한 것이다. 산발한 머리가 장딴지까지 내려오는 파자마 차림 여자애를 달래듯 엘페르가 말했다.


"지금 손님과 얘기하는 중이잖아."


"코코아. 나도 마시고 싶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여기 이쁘게 앉아 있어."


엘페르가 빈자리를 빼 주자, 여자애는 냉큼 그 자리에 앉아 그녀 하는 양을 빤히 바라보았다. 코코아를 어디선가 가져와 타기 시작한 엘페르에게 윤진이 물었다.


"설마 딸이라 변명하는 건 아니지?"


"안 믿을 거 알고 있어. 완전 남남이야."


"대체 뭔데, 저건?"


기분 나쁘단 표정으로 여자애를 보며 윤진이 물었지만, 엘페르는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다.


"실은 나도 몰라. 어느 날 갑자기 여길 찾아왔어."


"왜 그러는데?"


선우가 묻자 윤진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뭐랄까, '잡종 중에 잡종'이라 해야 하나. 마치 잡다한 고깃덩어리를 한데 모아 다져놓은 것 같은 게."


소름끼쳐, 윤진은 채 마지막 마디까지 내뱉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역시 이상해, 여기."


"그 말은, 네 권한으로 우리를 내쫓기라도 하겠단 거야?"


엘페르의 말에 선우가 오히려 놀라 윤진을 보았다. 윤진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보았다.


"천만에, 좀 더 두고 볼 거야."


"잘 됐잖아. 아무래도 우리, 앞으로도 자주 보겠는걸."


엘페르는 즐거운 듯 웃었다. 선우가 이상해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좋은 거예요?"


"마침 너무 책만 보다보니 심심해지기도 했고, 저 얘도 사람을 보면 즐거워하거든. 때때로 시간나면 한 번씩 들려줘. 언제라도 환영이니까."


"여길 없애러 온대도?"


그럼 조금 곤란할지도 몰라, 하면서도 엘페르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선우는 왠지, 정체모를 그녀가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


 부딪치고 싸우는 얘기를 쓸 때면 부담감부터 드는데, 엘페르와 얹혀사는 꼬마애 얘기는 쓸 때도, 다시 지금 읽으며 올리면서도 스스로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집니다. 아무래도 이 쪽이 맞는 거겠죠.


 이런 생각을 하게된 건, 아무래도 지금 쓰는 글에 이 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시 나오기 때문일까요.


 확실히 비축분이 있으니까 꾸준히 올리게 됩니다. 이 기세가 언제까지 갈 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연초는 저로서는 상당히 폭발적인 기세로 쓰고 있네요.


 마지막 화는 주말쯤에 천천히 올리겠습니다. 재미있게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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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사 2009.01.22 06:30
    잘 봤습니다. 어떻게 전개 되어 나갈지 궁금하네요. ㅇ_ㅇ
  • profile
    시라노 2009.01.22 08:58
    흐음... 복합적 에피소드 인건가 아니면 하나로 이어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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