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21 01:11

[단편]패스트푸드

조회 수 260 추천 수 1 댓글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
 옛날은 하루가 48시간 쯤 되었던 건 아닐까? 요즘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바쁠까?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식사나 수면시간마저도 쪼개
야 하다니! 분명 예전보다 하루가 짧아진 게 확실해. 아니면 옛날 사람들
은 분신술을 쓸 줄 알았거나. 그 좋은 걸 왜 전수 안 했는지 모르겠네. 어
쨌든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는 너무 짧아. 하루가 짧아지다 보니 사람들은
자꾸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고 들어.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그 짧은
순간이나 밥을 먹을 때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걸 보면 우리 하루가
얼마나 짧아졌는지 알 수 있어. 정해진 시간에 한 가지 행동만 할 수는
없는 걸까? 내가 생각할 땐 인류는 점점 고등적인 생물이 되어가는 게 아
니라 산만해져만 가는 것 같아. 시간이 없으니 시간을 쪼개고 쪼개며 또
쪼개지. 밥 먹는 시간마저 아까워 패스트푸드를 사러 가는 게 과연 평온
한 걸까? 난 내 중요한 식사시간을 편안하게 앉아 느긋하게 보내고 싶은
데 말이야.

 

 2.
 패스트푸드점은 그 이름에 걸맞게 주문도 참 간편해. 입맛대로 골라 먹
을 수 있는 다양한 세트메뉴에 최소한의 질문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지. 간편함과 효율성으로 따진다면 이 시대가 만들어낸 위대한 시스템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런 간편함과 시스템에 학습된 친절
을 받으며 가슴 훈훈해진 사람 있어? 좀 너저분하고 불편해도 포장마차에
가서 주인아주머니랑 얘기도 하다 보면 힘들었던 하루가 녹아내리며 어깨
가 가벼워지는 걸 느껴본 사람 없어? 세상만사 모두 간편하고 효율적일
필요만은 없는 것 같아. 좀 다른 얘기지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엘리베
이터 대신 계단 타고 집에 올라가려고. 세상 어디 따스한 정 하나 후딱
만들어주는 패스트푸드점은 없을까? 가슴 좀 뜨끈뜨끈해지게 말이야.

 

 3.
 이 세상에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게 있는 건지 모르겠어. 나는 가끔 자신
의 견해만 피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해. 물론 그가 하는 말이 옳은 말
일수도 있겠지. 허나 세상엔 분명 다른 관점과 기준이 존재하기 마련이야.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체 안에서 이미 정론화 되어 있는 것도 그것이 꼭 
절대적일 순 없는 거야. 한국에서는 패스트푸드를 다 먹고 나면 본인이
스스로 정리를 하고 나가지. 그러지 않는 사람을 보면 손가락질을 하며
교양 없다고 욕할지도 몰라. 하지만 중국에서는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어
떤 패스트푸드점을 가도 직원이 알아서 해결해줘. 아무리 우리라도 그걸
가지고 교양 없다 욕하지는 못하겠지. 이렇듯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고 있
는 사고방식은 단지 한국 안에서만 통하는 것일 수도 있어. 사람들은 그
걸 알아야 해.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나 우리 사회에 일반적으로 굳어 있
는 생각들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같은 맥락인데 아메리카
노를 마시지 않으면 커피 맛을 모르는 거라느니, 회를 먹지 못하면 삶의
행복 하나를 잃은 거라느니 하는 개소리는 좀 안 했으면 좋겠어. 나 같은
싸구려 입맛엔 아메리카노는 쓴 보리차 마시는 거랑 똑같아. 당신네들이
가진 잣대로 사람을 모자란 사람 취급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4.
 오늘도 삶에 치이다 보니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한 끼를 해결했
어. 배가 불러도 배가 부른 것 같지 않네. 나는 이랬으면 좋겠어. 가끔 늦
잠을 잤거나,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시간이 없을 때 먹는 게 패스트푸드
였으면 해. 요즘 사람들에게 필요하기에 수요와 공급이 늘어나는 것이겠
지만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을 보면서 사람들이 점점 바빠지
는 것만 같아서 씁쓸하기도 해. 사람들은 점점 모든 것들을 후딱후딱 해
결하는데 길들여져 가는 건 아닐까? 그래서 사랑도 번갯불에 콩 튀기듯
짧게 만나고 헤어지는 게 되는 걸까? 우리네 삶이 숨이 찰만큼 여유가 없
다는 게 당연한 게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어.

 


==================================================================
 이러면서도 여친이랑 햄버거 먹고 커피 마시며 데이트 하는 게 함정.

 

 사실 가장 하고픈 말은 3번이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수박을 못 먹습니다.
비교적 못 먹는 사람이 적은 항목이라 자꾸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곤
해요. 다른 것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아마 주변에 보시면 이런 걸로 시비 거는 친구들 많을 겁니다. 아니면
이런 종류로 사람들한테 시비를 걸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거나.

 

 제 최고 절친은 모서리 공포증(몸이 아파도 주사를 맞지 않습니다)에 습
기혐오증(국을 먹을 때 모락모락 나오는 김이 사라져야만 먹습니다)을 가
지고 있고 거기다 약간의 결벽증도 있지요. 절친이라고 적으신 거 보면
알겠지만 서로 만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남한테 피해 주는 선이
아니라면 상대방의 특이점은 그냥 이해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
다.

?
  • profile
    Yes늙은조카Man 2012.12.21 06:31
    ... 이제 님 글은 보면 안되겠음... 염장글..ㅠㅠ
  • profile
    yarsas 2012.12.21 06:43
    아, 예상치 못했는데 그렇게 되는군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12.21 06:36
    자기와 다른 사람, 다른 사례를 많이 못 접해보다보니 오해가 생기고, 하나의 삶 방식밖에 모르게 되는 게 아닐까 싶네요. 한 마디로 식견 부족이죠. 저도 솔직히 중국인들의 패스트푸드점 이용 습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던지라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시야가 좁다보니 오해하고, 좁다보니 보다 더 빨리 달리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갑니다. 잘 봤어요.
  • profile
    yarsas 2012.12.21 06:45
    확실히 해외에 나가보고, 다른 나라 문화를 많이 접해보면 안 보이던 것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저도 여행 좀 많이 다녀야겠습니다.

  1. 『1999년 6월 20일』타임슬립 로맨스! 장기일【17화】

    Date2013.01.01 Category By♀미니♂ban Views417 Votes1
    Read More
  2.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기억해줄래 - 18. 밝혀지는 관계

    Date2013.01.01 Category By클레어^^ Views490 Votes1
    Read More
  3. [후일담] 어린왕자

    Date2012.12.30 Category By다시 Views428 Votes1
    Read More
  4.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Date2012.12.28 Category By시우처럼 Views571 Votes1
    Read More
  5. 사랑은 마약

    Date2012.12.28 Category By시우처럼 Views451 Votes1
    Read More
  6. 프리라이더 (3)

    Date2012.12.28 Category By윤주[尹主] Views493 Votes2
    Read More
  7. [진짜 오랜만이네요 ㅠㅠ]기억해줄래 - 17. 일훈의 고백

    Date2012.12.26 Category By클레어^^ Views342 Votes1
    Read More
  8. [밀린 숙제/가보지 않은 곳] 프로비던스, 스완 포인트 묘지, 흐림

    Date2012.12.24 Category By욀슨 Views376 Votes1
    Read More
  9. 현실과 꿈 아저씨편-19

    Date2012.12.24 Category By다시 Views661 Votes2
    Read More
  10. [일종의 독후감] 보지 않은 책에 대한 감상문 : 옥타비아 버틀러,<야생종>

    Date2012.12.23 Category By윤주[尹主] Views340 Votes1
    Read More
  11. 이데아 4화

    Date2012.12.23 Category By모에니즘 Views250 Votes1
    Read More
  12. 『1999년 6월 20일』타임슬립 로맨스! 장기일【16화】

    Date2012.12.22 Category By♀미니♂ban Views223 Votes1
    Read More
  13. [단편]패스트푸드

    Date2012.12.21 Category Byyarsas Views260 Votes1
    Read More
  14. 프리라이더 (2)

    Date2012.12.20 Category By윤주[尹主] Views246 Votes1
    Read More
  15. 현실과 꿈 아저씨편 - 18

    Date2012.12.19 Category By다시 Views310 Votes2
    Read More
  16. 거울 방

    Date2012.12.17 Category By비밀의수 Views353 Votes1
    Read More
  17. 반죽

    Date2012.12.17 Category By덧없는인생 Views353 Votes2
    Read More
  18. 이데아 3화

    Date2012.12.17 Category By모에니즘 Views254 Votes3
    Read More
  19. 방관자.0 (스토리)

    Date2012.12.17 Category By사설_ Views395 Votes3
    Read More
  20. [단편]머리카락

    Date2012.12.15 Category Byyarsas Views421 Votes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130 Next
/ 130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제휴문의] | [후원창구] | [인디사이드연혁]

Copyright © 1999 - 2016 INdiSide.com/(주)씨엘쓰리디 All Rights Reserved.
인디사이드 운영자 : 천무(이지선) | kernys(김원배) | 사신지(김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