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12 20:17

하림의 세계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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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이었다. 여학생들은 미여와 반려 주변을 감싸듯이 울타리를 형성했고 개 중에는 대결 자체를 놓고 내기를 벌이려는 학생도 보였다. 하지만 하림은 내기 따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뻔하니까.

미여는 예전과 같은 자신감을 되찾은 것 같았다. 미학에 따라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않고, 어떤 부탁도 에둘러 거부하지 않는 강한 미여. 그 망설임을 일으킨게 고작 임신 때문이었다니…… 미여도 여자로서의 운명은 피할 수 없나 보다.

하지만, 미여는 여자이기 전에 미여다! 미여는 미여였다.

네가 원하는 무기로 덤벼. 나도 검도로 응수할 테니.”

……날이 붙은 무기를 목도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으면 대결하는 의미가 없지 않겠어?”

……오호라, 그러면 내 공격도 피할 수는 있겠어? 기본이 살인을 기본으로 한 공격인데.”

검도로 단순한 겉치레 무술만은 아냐.”

그래. 그렇게 나오셔야지. 미안하지만, ……

반려가 자그마한 몸을 공중으로 날려 미여에게 뛰어들었다.

결코 사양하지 않거든!!!”

역시 체구가 작고 몸무게가 적게 나가니 저런 기교를 보일 수 있구나. 하지만 미여의 목도는 위치가 변하지 않았다. 반려는 중력가속도와 힘을 합쳐 미여에게 일격을 날렸다. 미여는 검으로 막고 다음 공격을 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건……

후후, 다음 공격을 받아라!”

반려는 갈라진 검날 사이로 미여의 목도를 봉쇄하고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미여에게 다음 공격을 펼쳤다. 다시 한 번 미여의 품으로 파고들어 공격을 시도한 것이다. 미여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얼굴을 보였으나 이내 굳게 결심한 듯 반려의 공격을 막았다.

…… …….”

체구가 작으면 장점도 많아지지만, 단점도 커지지.”

미여는 반려의 몸을 그냥 무릎으로 차버린 것이다. 덕분에 반려는 다시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미여는 목도의 균형을 흐트린 이검을 뺀 뒤, 다시 자세를 잡았다. 반려는 먼지구석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미친…….”

다음에는 정말로 죽일 각오로 와.”

오냐! 영원히 식물인간으로 살게 해 주겠다!”

순간 하림의 뇌리에서는 한분을 식물인간만든다고 농담한게 생각나 아찔한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미여가 식물인간이 되면……? 하림은 상상이 싹을 틔우기 전에 고개를 저어 허상을 없애버리고는 반려의 공격에 집중했다. 반려는 이제 온몸에 무장을 한 상태였다. 중무장 자벌레인가? 반려는 다시금 가벼운 몸을 공중으로 날렸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공격이 여러 방향이었다. 추살도. 녀석은 그런 것도 쓸 줄 알았다.

,이 공격을 다 피해 봐!”

확실히. 정면 공격을 막으면, 좌우 추살도에 찢겨나가겠고, 좌우에 신경 쓰면 반려 몸 곳곳에 붙어 있는 날에 치명상을 입기가 쉬울 것…… 4천왕 대결이 이리 살벌한 것이었더냐. 이 대결 멈출 수 없나 생각하고 있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 마, 소년. 저 땅꼬마는 미여를 이길 수 없어.”

매복수, 당신은 있으면 기척이라도 내라고! 그리고 매복수 선배의 말은 정확했다.

미여는 반려를 목도로 밀쳐내더니 그대로 주저앉혔다. 반려는 원래 체구도 작고 힘도 약해서 미여의 힘을 당할 수가 없었다.

미안…… 하지만, 시간이 다 됐어. 이제 힘의 차이를 알려나?”

……, 우우…….”

반려는 분하지만 미여 앞에 저항하기를 포기한 듯 몸 구석구석에 장착한 각종 날붙이 도구들을 해체해 치마 속으로 넣기 시작했다. 저렇게 많은 도구가 치마 속에 다 감춰지나? 실제로 그랬으니, 아마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4천왕 대결은 흐지부지로 돌아가고,

미여는 반려에게 손을 뻗었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라는 말이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반려의 자존심 상태로는……

지금이라면 환 선배 자리를 채울 4천왕이 될 수 있어.”

, 그런 제안에 당연히 응할 리가…….”

일손이 부족하거든.”

있다. 반려는 주저 없이 손을 잡았다. 사실 미사여구를 싫어하는 반려와 자신만의 미학을 추구하는 미여는 서로 닮은 꼴이었다. 이로서 새로운 4천왕 등극인가? 박수를 쳐줘야 하나? “그럼,” 어느새 미여 주변에는 미여와 반려를 포함한 4천왕 4명이 서 있었다. , 잠깐 4? 그렇다는건 저 중 누군가가 매복수 선배……?

모 란 선배 님을 구출하러 이만 조퇴하겠습니다.”

 

 

***

 

 

트윈 테일, 단발머리, 포니 테일, 샤기 웨이브. 4천왕들의 인상착의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갑작스럽게 조퇴라니. 하기야 호환마마가 어디로 또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연하게도 지금 당장 공격을 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너무 서두르는 경향이 보였다. 지 훈남 선생님도 당연히 반대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야. 허가할 수 없다. 나머지는 시찰에게 맡기고 수업이 곧 시작되니 어서 자리에 앉으렴. 다른 학생도 모두!”

평소에 윤리 교사가 저랬던가? 윤리를 가르치는 주제에 학생들의 탈선을 묵인하는 태도를 보이던 교사 말종이 아니었던가. 그런 저 사람이 이제 와서 본분 운운을? 하지만 맞는 말이었기에 학생들은 모두 자리에 앉았다.

4천왕들을 제외하고.

어서 앉지 않으면 결근 처리를 하겠다.”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건 저희 책임이니까요.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미여와 윤리 교사가 서로 눈씨름을 벌였다. 지영 선배와 하던 것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이걸 바로 세대 차이라고 하던가? 윤리 교사는 눈을 붉으락푸르락 뜨더니 이내 체념한듯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잠시 후 윤리 교사의 모습이 사라졌다.

힘으로라도 막는 수밖에!”

어느새 윤리 교사는 미여의 앞에 서 있었다. 미여가 깜짝 놀랄 틈도 주지 않고 윤리 교사는 미여를 밀었다.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나 해!!”

나가떨어진 미여의 몸은 하림쪽으로 날아왔고, 하림은 힘겹게 미여의 몸을 간신히 지탱할 수 있었다. 저 정도면 체육 교사 수준이잖아? 하림은 악귀 같은 면상의 제 사길 교사를 떠올렸다. 윤리 교사에게 저런 면이 있을 줄이야……

, 너 정체가 뭐야…….”

반려는 떨리는 목소리로 무기를 움켜쥐었다. 윤리 교사의 공격이 그들을 향해 작렬했다!

선생님에게는 존댓말을 쓰란 말이다!”

반려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윽고 쿠당탕탕! 소리가 들려왔다. 남은 4천왕 두 명은 하림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상당히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과 장소에서 적을 만나버렸으니. 윤리 교사는 수업종이 쳤어도 수업을 시작하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너희들은 애당초 수업에 대한 열의가 부족해! 만약 오늘 빠진 수업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당연 너희들 인생은 추락이지. 내가 이렇게 막아준걸 고맙게 생각해라.”

선생님, 수업 시간 시작됐는데요…….”

?”

평소와는 다른 윤리 교사의 모습에 반장도 주춤했다. 하지만 반장은 반장의 의무를 다할 필요가 있었기에 윤리 교사의 횡포를 더 이상 막아야 했다.

?”

, 선생님……, 수업을…….”

너 까짓거도 날 방해하는거냐!”

반장의 몸도 미여와 다를 바 없이 교실 안으로 날아왔다. 이미 윤리 교사의 횡포는 도를 넘어섰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그것도 방해라니?

뭔가 돌아가는 분위기가 이상했다. 단순히 조퇴를 막는데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남은 두 4천왕들마저 밀리는 분위기 가운데 미여는 생각을 굳혔다.

하림, 도와줘.”

하림은 할 수 없이 나서기 싫은 상황이었지만 일어서서 윤리 교사를 막아보기로 했다.

넌 뭐냐.”

정말 평소 윤리 교사가 맞는가. 하림은 자기에게도 쏟아지는 살기를 간신히 이기며 말했다.

선생님, 다른 교실 수업시간에도 방해되니 이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신상태가 글러먹은 것들이 무슨 수업을 듣겠다고!”

하림도 미여나 반장처럼 여지없이 밀쳐졌다. 하지만 남자의 악력으로 간신히 버텨냈다. 흘끗 살펴보니 남은 4천왕들은 각자 교실바닥에 내팽개쳐져 쓰러졌다. 저 중에 매복수 선배는 있으려나.

너희들은 머리로 듣지 말고 몸으로 익혀야 하겠어.”

2타가 날아온다.

무엇보다 교사에게 말하는 태도가 글러먹었어! 너희같이 썩어빠진 정신상태를 가진 녀석들은!”

2타를 막으니, 날아오는 제3.

선생님이 어떤 존재인지 다시 한 번 일깨워줘야겠어!”

3타를 제압하고 제4타를 막아냈다. 윤리 교사는 건방진 학생주제에…… 라고 노려보며 무릎으로 하림을 쳤다. 몸을 지탱할 수 없게 된 하림에게 깍지를 껴 막장공격을 날린 윤리 교사는 그 움직임이 너무 커 하림에게 반격할 기회를 만들어줬다. 그러나 하림은 신경 쓰이는 시선 때문에 차마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옆 학급들의 시선이 모두 하림네 반을 향해 있었다. 그 가운데 한분의 시선도 있었다. 하림은 순간 집중을 잃었다.

하여간 다짜고짜 우리 계획에 훼방 놓는 녀석들에게 주는 선생님의 사랑의 벌이다!”

…….’

어느새 윤리 교사는 하림의 몸을 향해 정면으로 공격을 할 위치에 있었다. 이대로 맞으면 하림도 의식을 잃는다. 평소와는 다른 학교 일상에 하림의 체력이 슬슬 다해가는 상황이었다. 하림은 눈을 질끈 감았다. 무서운걸 피하려는 본능이 아니라 직감적으로 포기했기 때문에.

하지만 하림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윤리 교사는 고통스럽게 몸을 둥글게 말고 부들거리고 있었다. 미여가 도와준 것이다. 하림이 미여를 바라보니 미여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남자의 급소를 차버렸어.”

하림은 잠깐이지만 윤리 교사가 불쌍해졌다. 아마 독신을 지키는 기간이 더 길어질 것이다. 그렇게 부들거리는 윤리 교사를 뒤로 하고 미여 외 4천왕은 출동했다.

그리고 그 뒤 접한 소식은 실패했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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