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26 05:02

Undertopia

조회 수 765 추천 수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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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 내 할머니께서 자주 들려주시던 이야기가 하나 있지.


 


옛날에 에고웨어가 한명 살았어. 그 에고웨어는 이야기 지어내는걸 너무너무 좋아해서,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생각해내거나 어딘가에 이야기를 적고 있었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어. 그가 지어내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기분나쁘거나 이해할수 없는 내용이었거든.


...그 날도 그는 벽에다 열심히 이야기를 쓰고 있었어.


 


한 소녀가 있었어.
그녀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벽에 쓰여진 글씨들을 보게 되었어.
호기심에 자세히 다가가 보니, 그건 하나의 이야기였어.
아주 긴 이야기를 한줄로만 써서, 저쪽 벽 보이지 않는 끝까지 써져있을 정도였지.
소녀는 자신의 목적지도 잊어버린채, 그 이야기를 따라 읽어가기 시작했어.


이야기는 정말정말 너무나도 길어서 아무리 읽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소녀는 이야기에 푹 빠져버려서 배고픈것도, 다리아픈것도, 집에 돌아갈 시간이 늦었다는 것도 까먹은채, 계속 이야기를 읽으며 걸어나갔어.
왜 그 소녀가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었는지는 소녀 자신도 잘 몰랐어. 마음속으로 재미없고 지루한 이야기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지만, 글씨를 읽어가는 눈과 그에 따라 걸어나가는 발이 왜인지 멈춰지지가 않았데.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녀는 한 에고웨어를 만났어.
그는 골목길 구석 막다른 곳에 쪼그리고 않아서 벽에 쓰인 이야기의 완성되지 않은 끝부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어.
소녀는 그에게서 조금 두려움을 느꼈어.
그 에고웨어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거든. 그냥 두꺼운 철판 한장뿐이었어.


에고웨어는 소녀가 나타난걸 눈치채고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어. 소녀는 두려움에 한발짝 물러섰지. 그녀에게 말을 걸고싶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입도 없었어.
대신에 그는 자신의 철판같은 얼굴에다 글씨를 썼어.


'내 이야기를 읽은거니?'


소녀는 에고웨어가 손도 대지 않고 글씨를 쓴 것에 신기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자 에고웨어는 한쪽 손으로 얼굴을 훔쳐 글씨를 지우고 다시 글을 썼어.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 모르겠어.'


그의 '말'에 소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지.


"여자로봇과 소년의 사랑이 이루어져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에고웨어는 글씨들을 바라보다가 소녀의 말대로 마지막부분을 썼어.
그리고 소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는 어디론가 떠났어.


 



한 일주일쯤 지났을까?
소녀는 또다시 벽에 쓰여진 이야기를 발견했어.
이번엔 다른 이야기였지.
그녀는 또다시 이전처럼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이야기를 읽어가기 시작했어.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자, 전에 봤던 그 에고웨어를 또 볼수 있었지.
에고웨어는 소스라치게 놀랐어.
자신의 이야기를 두번이나 읽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


'또 내 이야기를 읽어준거니?'


그녀는 이번엔 웃으면서 끄덕여줬어.



그 후로도 그들은 계속 마주쳤어.
에고웨어가 이야기를 쓰면 소녀는 읽었고, 소녀가 읽으면 에고웨어는 다음 이야기를 준비했어.
소녀가 생각해낸 이야기를 에고웨어가 쓰는 날도 있었고,
둘이 같이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도 했어.
매일매일 만나서 이야기를 만드는게 그들의 일상이 되었지.
소녀는 그떄 아주 행복했었데.
이다음에 커서 이 아저씨와 결혼할거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세월이 흘러 소녀는 아가씨가 되었어.
그때까지도 에고웨어와 소녀는 매일매일 이야기를 만들었지. 둘은 인간과 바코드처럼 뗄레야 뗄수 없는 사이였어.
하지만, 어느날부터인가 아가씨가 된 소녀는 더이상 에고웨어를 찾아오지 않았어.
눈물을 글썽이며 에고웨어를 한번 돌아보던 모습이 마지막이었어.
에고웨어는 '내일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가 올거야' 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냈어.
왜 그가 이야기를 쓰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냈냐면, 그에게 이제 소녀 없이 이야기를 쓴다는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거든.
하지만 몇일이 가고 몇달이 지나고 몇해가 지나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지.


에고웨어는 아직도 소녀를 기다리고 있어.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던 그 구석지고 막다른 골목에 앉아서말이야.


 


 


 


 



그리고 지금, 그 소녀의 손녀가 이야기쟁이 에고웨어 한명을 데리러 왔어. 어서 타, 소녀가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몇십년동안 못봤던 자신의 바코드를 보고싶어해.


 


 


 


 


 


 


 


 


 


 


 


 


 



Tales Weaver OST - Reminisc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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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다크조커 2009.05.26 05:02
    개인적으로 이런 글 좋아합니다. 시간될 때 다른 글도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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