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6 23:56

하이 눈-총잡이의 복수

조회 수 454 추천 수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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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실제 인물, 단체...아무튼 기타등등과 전혀 관계가 없는 완전한 허구입니다.



HIGH NOON
-Prelude : COWBOY FROM HELL


낡은 주점은 평소대로라면 동네 놈팽이들과 그들의 떠드는 소리, 총알 한 발로 황야 들소를 다섯 마리 잡았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허풍, 맥주의 시큼한 냄새, 쥬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한참 지난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질식할 것 같은 긴장감과, 아무도 쥬크박스에 동전을 넣지 않아 찾아온 침묵만이 다른 모든 것을 밀어내고 눌러앉았다. 주먹다짐이야 뭐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오늘의 불청객들은 뭐라고 해야 하나... 특이했다. 불길할 정도로 특이했다.

“선생들, 나가서 싸워요. 내 가게가 망가지잖아요.” 늙은 바텐더가 말했다. 목소리는 기어 들어가다 못해서 그의 쩍쩍 갈라진 손과 함께 카운터 밑에서 맴돌고 있었다. 싸움구경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평소라면 돈이라도 걸고 있었을 동네 어중이떠중이들은 구석으로 웅성거리며 피했다. 충분히 현명한 몇 명은 이미 바텐더에게 몇 푼 안 되는 팁을 쥐어주고 밖으로 나간 지 오래였다. 그도 그럴게 싸움의 당사자 중 하나는 물이라고는 한 달째 구경도 못 해본 것처럼 먼지투성이의 친구였는데, 구멍 뚫린 모자 챙-아마도 총알구멍-밑으로 비치는 섬뜩한 눈빛이나 제멋대로 자라난 수염이 아니더라도 그를 황야에서 만났다면 누구라도 가진 건 물론이고 옷까지 벗어서 던져주고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빌 게 뻔했으니까. 무엇보다, 그의 키는 얼핏 봐도 10피트가 족히 넘어갔다. 멀리서 보면 새끼 코끼리라고 해도 믿을 터였다. 게다가 차고 있는 그 총이라니. 들소 한 마리를 통째로 썼을 가죽 탄띠에는 모양만 리볼버지, 거한의 팔 만한 물건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그의 허리에도 오지 않을 키의 여자아이였다. 싸구려 바에도, 이런 별 볼일 없는 서부 깡촌에도 어울리지 않는 공주님 같은 옷과 아기고양이 같은 가녀린 모습. 하지만 그녀는 깍지를 끼고 앉아, 아무렇지도 않게 괴물 총잡이를 노려봤다. 총 따위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식의 기분 나쁜 미소까지 띄우는 그녀는, 살인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빌리는 어디에 있지?” 총잡이가 말했다. 묘비나 납골당이 낼 법한 목소리였다.

“너, 덩치와 총 잡는 꼴을 보아하니 개조인간이 틀림없구나? 하지만 너한테 빌리쨩이 있는 곳은 알려줄 수 없어.” 소녀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인데, 네년에게 허락되는 건 그 빌어먹을 새끼의 행방을 술술 토하거나, 잘 모르겠습니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여기서 기꺼이 죽어드릴게요 뿐이야.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릴 지껄이면 내 친구랑 좀 더 빨리 인사시켜 주겠어.” 허리춤에 있던 총잡이의 손이 잠시 잔상이 되나 싶더니, 이내 강철 괴물이 소녀를 겨누고 있었다. 주점 안에 짤깍, 하며 공이치기 당기는 소리가 울렸다.

“별 시덥잖은 소리 다 듣겠네. 이거나 먹어. 두번 먹으렴.” 소녀는 일어서며 총잡이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둘을 제외한 주점 안의 모두가 침을 삼켰다.

“하여간 이놈들은...! 말하는 데 다리는 필요 없다는 걸로 알아두지.” 총잡이의 거대한 그것이 불을 뿜었다. 놈팽이들은 저마다 눈을 가리거나, 탁자 밑으로 뛰어들어 한 달 전에나 청소한 바닥과 키스하거나, 자기네들이 그렇게나 싫어하는 계집애 같은 비명을 질렀다. 바텐더는 이제 도저히 못 참겠다는 표정을 하고, 밑에서 산탄총을 꺼냈다. 하지만 누군가 기대했을 광경과는 다르게 의자의 크고 작은 파편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소녀는 어느 새 총잡이의 뒤로 돌아가 그의 목에 매달려 있었다. 순간 총잡이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아하하하! 내 이름은 캘러미티 제인. 다시 말해줄게. 네게 빌리쨩이 있는 곳은 알. 려. 줄. 수. 없. 어. 왜냐면 넌 여기서 죽을 테니까!”” 제인의 몸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말하면서 그녀의 목소리도 허벅지만큼이나 굵어졌다. 예쁜 얼굴은 스테로이드를 잔뜩 맞은 불법 격투장 선수처럼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고, 이제는 총잡이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근육이 가득 차다 못해 삐져나오는 마당에 끔찍하게도 그녀의 나풀거리는 옷은 실밥 하나 터지지 않고, 몸에 맞춰 그대로 늘어난 듯 보였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보고 맨 정신을 유지하지 못할 법한 광경에도 총잡이는 등 뒤의 제인에게 총구를 다시 겨눴다. 총성이 울렸지만, 맞춘 건 애꿎은 대들보였다. 그리고 큰 금고에 얻어맞은 충격과 함께 총잡이는 순식간에 뒤로 크게 날아가 카운터를 들이받고 미끄러졌다. 그 서슬에 아슬아슬하게 쌓아놓았던 병과 잔들이 떨어져 쓸모없는 파편이 되었다.

“이젠 더 이상 못 참겠소. 말했잖소! 내 가게가 망가지니까 밖에서 싸우라고!” 바텐더가 샷건을 제인에게 겨눴다. 그는 행여 자기를 쏘지나 않을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걸 듣고 제인은 성큼성큼 걸어가, 천사-묵시록에나 나올-의 미소를 지으며 바텐더의 머리를 붙잡았다. “시끄러워♥” 바텐더의 머리가 이상한 각도로 돌아갔다. 그는 방아쇠를 당겨보지도 못했다. 뻣뻣하게 굳은 바텐더의 몸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제인은 카운터 뒤에 있던 총잡이의 멱살을 잡고 카운터에 기댔다. 그리고 신나게 패기 시작했다. “네가! 뒈질 때까지! 때리는 걸! 멈추지 않겠어!” 총잡이는 처음엔 좀 저항하는가 싶더니 세 대째부터는 그저 두들겨 맞고만 있었다. 맞을 때마다 반질반질한 카운터가 점점 가라앉았다. 마지막으로 총잡이의 다리 사이를 걷어찬 다음, 제인은 일어나서 머리를 다듬었다. 총잡이는 유리조각과 나무파편을 뒤집어 쓴 채로 눈을 까뒤집고 있었다.

“흐흥, 그런데 너희들.” 제인이 말했다. 도망갈 기회를 놓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주정뱅이들이 화들짝 놀랐다. “내 모습 봤지? 그치?” 그들은 하나같이 다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그럴 리가 없죠. 저흰 원래 다 장님이랍니다.” “마음의 눈으로 본 제인 님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우십니다. 핥핥.”

“그런데 저희는 지금부터 어떻게 되는 거죠?”

한참 칭찬을 듣다가, 제인은 갑자기 더 마귀 같은 표정으로 돌변했다.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 마! 이 모습을 본 이상 모두 죽을 것이다!” 주정뱅이들은 아차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 지 오래였다.

제인이 주정뱅이들의 척추를 신나게 접고 있는 동안, 바 뒤쪽에서 총잡이가 천천히, 몸에 묻은 검불 하나도 떨어지지 않을 법한 움직임으로 일어났다. 그렇게 두들겨 맞았는데도 최소한 겉으로 보기엔 몹시도 양호한 편이었다. 가게가 기둥째로 흔들리는 것 같은 굉음이 울려퍼졌다. 동시에 한참 주정뱅이 하나의 목을 꺾고 있던 제인의 팔이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손가락 몇 개만이 남아 바닥에 뒹굴었고, 그녀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체크메이트.” 총잡이가 입꼬리를 올렸다. 총은 여전히 흉물스러웠고, 이제는 초연까지 뿜어올렸다.

이 비겁한 자식! 어떻게 귀여운 숙녀에게 이딴 짓을!” 제인이 총잡이를 노려봤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너, 거울은 보고 다니냐? 한번 더 기회를 주지. 빌리가 어디 있는지 말하면 팔 한 짝으로 끝내 줄 테니까.” 하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닥쳐, 고자새끼야! 죽어! 죽어버려! 나도 모르니까 못 말해줘! 젠장! 이래서 헬스 안 한다는 거였는데!” 소용없다는 걸 알고는 있었겠지만, 제인은 앞으로 뛰어나갔다. 물론 반보 나아가기도 전에 명치 위로 몸이 전부 증발하며, 그녀의 얼마 남지 않은 몸뚱이가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벌써 떠나는 거요?” 마구간지기가 말했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럼. 원래는 바로 뜰려고 했지만, 그랬다가는 댁들이 내게 타르 옷을 입히고 깃털으로 꽃단장을 시킨 뒤에 철봉 차에 태울 것 같아서 말야.” 총잡이가 말했다. 그는 말에 타고 있었는데, 말도 만만치 않게 컸다. 안장 뒤쪽에는 가죽 수통과 자루가 주렁주렁 늘어져 있었다.

“아쉽군. 제대로 한잔 걸치지도 못했는데. 나중에 들를 일 있으면 들르라고, 거인 양반. 그 때는 내가 거하게 한 턱 쏘지.”

“...아아.” 총잡이가 배를 툭 차자 말이 한번 울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마구간지기는 동이 트는 가운데 점점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그들을 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후까지 일어나지 않을 셈으로, 신발도 벗지 않고 드러누웠다.




To be continued...?


--

 6월 말에 밑의 글 하편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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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2.06.07 07:39

    여자애가 주인공인가? 의아해했는데 알고보니 총잡이가 주인공이었네요;;
    어쨌거나 잘 봤어요. 서부극 무대에 SF적 설정...이런 것도 좋네요 ㅎ

  • profile
    클레어^^ 2012.06.08 07:32
    헉, 제인은 죽은 건가요?
    그나저나 왜 총잡이들은 빌리를 찾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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