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02 23:30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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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새빨갛게 기분 나쁜 저녁 노을이 뒤늦게 하늘을 가득 매웠다. 말에 박차를 가하여 근 세 시간동안 달려 도착한 동생의 저택 앞에 우두커니 서서 들어가는 것을 망설였다. 그렇지만 문 뒤에 있을 동생의 비밀을 알고 싶다. 그 어떤 요인이 나를 넘어설 만큼 우수했던 동생을 저렇게 나약한 인간으로 변모시켜 놓았는지 알고 싶었다. 나를 재치고 후계자의 자리를 얻게 된 동생이 어째서 이런 식으로.

  문을 열었다. 달랑 집사 하나 뿐이라고 했던 것은 거의 사실에 가까운 듯 했다. 그렇지만, 하인 하나 없는 이 넓은 저택의 장식물들엔 먼지가 없다. 늙을대로 늙어 자신의 몸을 거동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집사가 청소까지 도맡아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내가 불청객이라도 되는 마냥 환영의 말 한마디 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노인에게 물었다.

  “저택에 다른 거주인은 없는 것인가.”

  늙은 노인은 고개를 땅으로 푹 숙인 눈만을 깔아 올려 내 눈치를 보고 있을 뿐이다.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 그가 딱히 숨겨야 할 것이 이 곳에 있었기에 모든 하인들을 방출 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이 권위를 져 버릴 가치가 있는 무엇을 숨기고 있다 한들, 이제 곧 밝혀 질 것이다.

  “물러라. 들어가겠다.”

  나를 막으려는 시도는 몇번이고 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고 노인을 밀치고 들어가 왼 쪽 허리춤의 칼집에서 조용히 검을 뽑아들었다.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외로운 저택 안에 분명한 요인이 있다. 지금까지의 그의 행동으로 볼 때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발걸음을 내지 않고 걸어 가 1층 별실의 문을 조용히 열었다.

  작은 침대와 책장 뿐이 없는 별실은 먼지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이 곳은 아니다. 옆의 방으로 발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촛대에 불 조차 붙여지지 않은 1층의 고요하고 어두운 복도를 더 이상 들쑤시고 다닐 필요는 없다. 역시 윗층인가?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지하에 있을 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일단은 2층부터 둘러보기로 마음 먹고 다시 중앙 로비로 몸을 옮겨 걷는다. 천천히, 천천히 마치 아무도 없는 것 처럼.


 


  중앙의 로비에 도착하여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려보고 나서야 나는 우매한 동생의 실수를 눈 앞에서 맞이 할 수 있었다.

  “셰릴리.”

  절대로 살아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미 수 개월전에 차가운 변사체로 변해 있어야 할 비운의 여인은 그렇게 2층의 계단 끝에서 날 내려보고 있다. 알 수 있었다. 그 눈엔 두려움이 가득 차 있다. 내가 그 때에 동생을 추격자로 붙인 것이 크나큰 실수였던 것인가? 내전이 끝난 지금에 와서야 그녀는 이제 생사의 여부조차 중요하지 않은 인간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맹세를 그 때에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개인적으로 이뤄냈어야 할 사명을 동생에게 맞긴 것이 크나 큰 실수였다. 어머니를 살해한 가문의 인간이 버젓이 살아서 날 내리 깔아보고 있다. 그것이 내 혈육에 의한 결과라는 것에 부하가 치밀었다.

  “나의 자존심을, 인생을 그렇게 짖밟아 놓은것도 모잘라서. 여자 때문에 내게, 가문의 이름에 다시 한번 수치를 줄 샘이냐!”

  자리에 있지도 않은 동생에게 소리쳤다. 이베트 가家의 장남으로서 미래가 확실시 되었던 내 자리를 꿰어 차 놓고는 저 따위 하찮고 가증스러운 이유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동생의 안이함에 또 다시 분노가 치민다. 계단을 벅차고 올라가서 왼 손으로 그 여자의 목을 잡아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네 년의 끈질긴 목숨도 이제 종국을 맞게 되었구나.”

  그래. 나는 인정 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레뮬레트 가문의 장녀의 별은 그 때에 하늘에서 떨어졌어야 했다. 어머님의 묘지에 우두커니 서서 그들의 피가 섞인 마지막 한명까지 처단하겠다는 내 맹세는 죽지 못한 소녀를 죽임으로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태해진 동생에게 가문의 이름을 이을 자격은 없어!”

  주저 없이 셰릴리 레뮬레트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았다. 고통에 몸부릴 칠 여지도 없이 여자는 경련을 일으키다 이내에 축 늘어졌다. 여자의 몸에서 검을 뽑아내자 내 상반신에 대고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피범벅이 되어 버린 백색의 예복을 가만히 내려봤다. 이로서 나의 염원이 종결을 맺었다. 계단을 따라서 여자의 피가 한 없이 흘러내린다. 무심코 흘러나오는 웃음을 막을 필요는 없었다.

  ’레뮬레트와의 악연도 여기서 끝이다.’

  그리고 뒤를 돌아 계단을 내려오려 하였을때에 몸을 주체 할 수 없이 떨고 있는 동생과 눈을 마주쳤다. 그래, 이것이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곳에서 조금 전 까지 삶의 첫번째 목표를 끝 마쳤고, 다시 정점에 설 수 있는 영광을 손에 얻게 된다. 나태하여 자신의 위치 마저 자각하지 못하는 동생에게 나라의, 나의 미래를 맞길 순 없다.

  “셰릴리이이이이!”

  여자의 이름을 외치며 절규했다. 여자의 몸에서 뽑아내어 피가 흥건한 내 검은 결코 칼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이미 이베트 가문의 원수를 숨겨두어 해를 끼친 배신자일 뿐이다. 그렇지만, 내 손으로 그를 베고 싶진 않았다. 아무리 나약하고 비열한 배신자라지만 나의 벗이요 형제였다. 그가 끝까지 어리석은 길을 걷지 않기를 빌었다. 그의 떨리는 눈동자를 위에서 내려보며 안주머니의 천으로 검에 묻은 더러운 피를 닦아냈다.


 


  “어째서…….”

  그렇게 나의 아우는 검을 뽑아들었다. 계승전쟁때의 나의 첫 살인검이 되었던, 아버지의 애검인 혼무곡도魂舞斛刀는 이제에 와선 아우의 손에 버젓히 들어가 나를 겨누고 있다. 이름 그대로의 혼을 지배하여 춤을 추게 하는 저 곡도는 나 조차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아버지께 다시 되돌려드린 물건. 미숙한 동생이 그것을 빼들었다는 것은 곧 멈출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어떤 것에서도 날 능가하지 못한 그에게 왕의 권위에 오를 자격 따윈 없었다.

  “어째서!”

  분노에 이성을 잃고 뛰어 들었다. 계단을 치고 올라와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일격. 서로의 검을 맞대며 눈이 마주쳤다. 분노가 몸을 지배해버린 그에게 회유 따윈 통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아무리 요도라도 쓰고 있는자의 기량이 부족하여 그저 날뛰는 군상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극한의 상황이라 할 수 있는 정황에 그의 한계가 여실 없이 들어난다. 아버지가 동생을 후계자로 선택했다는 것을 인정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2격이 들어오기 전에 검막으로 그를 튕겨내며 칼자루를 밀어내어 몸을 돌려 그와 거리를 벌렸다. 몸을 쓰는 타격전이 특기인 동생의 이점을 하나 줄이는데에 성공했지만, 통제가 불가능한 극한의 분노상태에 자신의 기술 마저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달려들기만 하는 동생은 얼간이나 다름없었다. 3격을 필중하고 그와의 거리를 재기 위해 천천히 정자세를 취했지만 예상 외로 심상치 않은 자세를 잡아 보였다. 어깨축이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왼발에 힘이 실렸다. 검의 축이 점점 낮아지나 싶더니 당장이라도 찌르고 들어올 것 같은 기세를 내뿜었다.


 


  나는, 이것의 자세를 알고 있다. 분노는 점점 살기로 변해 공기를 자극했다. 뒤로 물러나야 한다고 몸이 전체의 세포가 대답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내는 것에 시간을 쏟을 필요는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젖을 때지도 못했을 적에 딱 한번 목격 했던, 어머니가 무참하게 살해 된 현장에서 암살자 둘을 일격에 찢어버린 일격의 괴기. 나는 그 광경을 잊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찌르기 위해 뻗은 검의 칼날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여 두 남자의 심장을 동시에 관통하는 그 괴상한 풍경이. 아버님은 검의 주인을 착각하신것도 모잘라 그에게 이러한 것 마저 인계 해 버린 것인가.

  “그것은 아버지의…….”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그 일격의 찌름이 어깨쪽으로 파고들어왔다. 피할 수 없었다. 검을 들어 그의 찌름을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었다. 그 전에 왼쪽으로 돌아 저지하는 것 조차 공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문득 뒤에 어떤것이 있는 지 깨닫고 몸을 뒤로 힘껏 누워 재꼈다. 1층의 로비까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나는 일순간이었지만 검이 어깨쪽에서 급격하게 꺾여 내 목으로 파고들어 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그때에 내가 본 아버지의 기술이 분명했고 또한 일격필살이라는 것 조차도 부정 할 수 없었다. 때 마침 몸의 균형을 무너뜨릴 계단이 바로 뒤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내 목은 저 기이한 검의 꺾임에 뚫리고 말았겠지.

  “형제여…….”

  그때에 아버지의 일격을 경험하고 아버지를 뛰어 넘기 위해 지금까지 단 한번도 수련을 게을리 한 적이 없다. 내가 오로지 금욕의 자세로 무도에 열중 할 수 있었던 유일무이의 이유는 아버지의 그 일격을 뛰어 넘을 만한 무언가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그의 일격필살 조차도 상회하는 내 완성된 자세를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것으로 내 가치는 증명 될 것이다. 분노에 이성을 팔아버린 우매한 동생은 추락하여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는 이것으로 절대적인 강자가 되어 하늘로 날아 오를 수 있다. 아버지를 초월하여 정점에 군림하는 남자가 될 수 있다.

  달려 내려 온다. 그는 찌르기 위해 달리고 나는 베기 위해 섰다. 나의 검은 정자세에서 부터 반달 모양을 그리며 흘러 올라간다. 괴기한 각도로 내 심장을 꿰뚫기 위해 뻗어오던 그의 곡도는 이내에 힘을 잃고 어깨서부터 베어진 왼 팔과 함께 바닥으로 떨구어져 간다. 팔을 잃고 충격에 휩쌓인 그의 표정과 지금의 상황이 아주 느리게 흘러나아간다. 내 검은 형제의 피를 머금으며 다시 힘껏 올라가 그의 왼쪽 무릎을 절단한다.

  내 앞에 힘 없이 쓰러진다. 1층 로비의 벽엔 피가 흩뿌려져 있고, 바닥은 이미 흥건하게 매워져 있다. 왼팔과 왼 다리를 잃고 이미 정신은 없음애도 끝까지 자신의 분노와 광기를 관철하며 내 바짓자락을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내가 다리를 옮기는 것 만으로도 그의 팔은 뿌리쳐진다.

  “너의 나약함을 원망해라.”

  팔과 함께 떨어져 나간 곡도를 주워 들었다. 언제가 되도 익숙해 지지 않을 것만 같은 이 요기에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남은 피를 모조리 흘리며 천천히 죽어 갈 것이다. 그의 숨이 멎을 때 까지 수 시간동안 그의 어리석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형제로서의 마지막 자비였다. 정문으로 나아가기 전에 다리가 풀려 쓰러져버린 늙은 집사가 눈에 띄었다. 목 언저리에 칼을 박아 넣었다. 노인의 피가 정문의 바깥까지 솓구친다.

  그리고, 이제 결코 열리지 않을 저택의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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