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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자를 처음 보았을 때 왜 그토록 흠칫했을까? 마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구정물 같은, 몇 달은 감지 않은것만 같은 길고 더러운 머리카락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머리카락 사이로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한 쌍의 딱정벌레 같은 눈동자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허옇고 마디진 긴 손가락 끝을 장식하는 시꺼멓고 갈라진 손톱들때문이었을까.

 

 이 아파트에서 산지 이제 일 년쯤 되어갔지만, 옆집의 그녀를 보게 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처음 이사온 뒤 인사를 하려 했지만 아무도 없는 듯 했고, 밖에서 보니 창문에 틈새없이 신문지를 온통 발라놓았기에 인테리어 공사라도 하나보다 싶었고 지내는 동안 들어오거나 나가는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기에 빈집이려니 하고 있었는데 살고 있긴 했나보다. 오늘도 여느때의 금요일 밤처럼 학교 친구들을 죄다 불러놓고 막걸리와 과자로 술판을 벌였는데, 날씨가 더워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 이웃도 빈집이겠다, 한창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놀고 난 뒤 한두 놈씩 쓰러지고, 슬슬 자려다가 현관문을 열어둔 것이 생각나 방에서 나와 문을 닫는데 어둠 저편 옆집의 현관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 틈 사이에, 얼굴을 덮은 더럽고 긴 머리카락과, 그 사이에서 반짝이던 눈과, 길쭉한 손가락과 시커먼 손톱이 있었던 것이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현관문은 요란하게 닫혔다. 잠시 술기운에 헛것이라도 본게 아닌가 싶었지만, 방에 들어와 누워도 그 꺼림칙한 형상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도대체 그 여자는 인기척도 없이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지금껏 나를 저렇게 몰래 보고 있었던 것을 아니었는지, 그 동안 저런 모습의 사람이 문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살짝 끼쳤다.

 

 다음날, 숙취에 찌든 몸을 이끌고 정신 없이 알바를 하느라 어제 있었던 일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렇게 힘들게 일을 마치고 해가 완전히 질 때쯤 집에 도착했는데, 현관 앞에 작은 박스가 놓여있었다. 물건을 주문한적도 없기에 택배일 리도 없었고, 쓰레기를 내놓는 날도 내일이었기에 누군가가 실수로 떨어트린 거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박스는 입구가 테이프로 봉인되어 문 앞에 놓여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박스를 집어 들었는데, 은근히 묵직했다. 테이프를 뜯어 안을 열어보았는데 매우 불쾌한 냄새가 풍겼다. 박스 안에는, 동물의 시체로 추정되는 살점들이 털과 함께 지저분하게 섞인 채 들어있었다. 기겁하며 박스를 떨어트리자 안에서 주먹만한 덩어리가 굴러나왔고, 곧 그게 토끼의 머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순간 어젯밤 일이 생각나면서 이 작은 선물을 준비한 게 그 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이 모습을 문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상자를 발로 차 밀고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간 뒤, 이 상황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저 불쾌한 장난이 옆집 여자의 소행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고, 단순히 그녀의 기괴한 몰골 때문에 오해를 한 것은 아닌가도 싶었다. 일단 냉정을 찾고자 차가운 것이라도 마시기로 했다. 그런데 냉장고를 열자, 냉장고 안에 시뻘건 물이 가득한 페트병이 가득 차 있었다. 그냥 빨간색이 아니고, 약간 탁한, 검은 빛을 띤 빨간색의 액체였다. 냉동실에도 빽빽하게 페트병이 차 있었다. 감히 내용물을 확인해볼 생각은 하지 않고, 폰을 꺼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놈은 술자리인지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장난스럽게 전화를 받았다가, 나의 심각함을 알아채곤 진정하고 금방 집으로 찾아오기로 약속했다. 친구가 집에 오기 전까지 집을 좀 둘러보기로 했다. 어디선가 들었던 괴담처럼 여자가 행여 집 어딘가에 숨어있지 않을까 싶어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식칼을 들고 집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여자는 집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세심한 데코레이션이 집 이곳저곳에 남겨져 있었다. 침실에는 사람의 머리카락 길이로 보아 그 여자의 것은 아닌 듯 했다 이 바닥에 고르게 깔려 있었고, 베란다의 창문은 신문지로 반쯤 도배되어 있었다. 아마 시간이 부족해서 남겨둔 듯 했다. 내가 집에 들어오기 직전까지 신문지를 붙이고 있었을 여자의 모습을 상상하니 소름이 끼쳤다. 하이라이트는 책상이었다. 처음엔 책상 위에 헝겊 같은 것을 깔아놓은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손톱이나 발톱으로 추정되는 것들을 빽빽하게, 가지런하게 깔아놓은 것이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친구려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폰 화면을 보았다. 새까맸다. 무언가로 초인종을 가리고 있는 듯 했다.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어 누구냐고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신고하겠다고 소리를 지르자, 천천히, 인터폰을 가리고 있던 것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인터폰의 창백한 빛에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시체와도 같이 허옇고 이상하리만치 커다란 눈동자의 기괴한 얼굴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그 여자였다. 나야. 그녀의 첫 마디였다. 그리고 그녀는 인터폰에 꽉 쥔 손을 들어다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펼쳐 쥐고 있던 물건을 보였다.

 

그것은 열쇠였다.

 

 

 

 

 

--- 

 

 

 

자밍 안와서 그냥 일찍 올려여 ㅎㅎ 괜찮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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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다시 2011.07.15 13:11

    저는 좋아요, 좋아..

    님과 함께면..ㅋㅋㅋㅋ

  • profile
    윤주[尹主] 2011.07.15 17:28

     두근두근이 아니잖아요;; 읽다보니 소름이 쫙 끼치네요 ㅎㅎ

     잘쓰신 글 비평할 여지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어찌됐건 노력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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