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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 후, 제국력 830년 9월 27일.


  “이봐, 얘기 들었나?”


  “앞으로 일주일 남은 영주님의 생신날 말인가? 도시 곳곳에서 축제준비가 한창이던데?”


  “그래. 올해 축제는 특별히 규모가 더 클거라더군. 올가을은 그야말로 최고의 풍년이었으니까. 도시 수익도 더욱 늘었고 말일세.”


  “어쨌든 이번 축제는 정말 기대되는구만. 영주님 만세일세, 만세! 하하하!”


  활기차고 왁자지껄한 주점. 구석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서 3명의 중년남자들이 반쯤 채워진 맥주잔을 들고 큰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취기가 한창 오른 듯 하나같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주제를 바꾸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려할 때, 또 하나의 맥주잔이 테이블 위로 올려졌다.


  “잠시 합석해도 괜찮겠습니까?”


  세 남자의 눈이 쏠린 자리에는 가죽배낭을 멘 채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백발의 미검사가 서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결이 좋은 백색머리카락을 가진 그는 검사치고는 굉장히 맑고 깊은 흑갈색 눈동자와 뽀얀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려한 외모와 약간 말라 보이는 호리호리한 몸매는 도저히 검사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입고 있는 레더 아머와 옆구리에 찬 나무 검집의 장검이 그의 직업을 알게 해주었다.


  “이방인이군. 용병… 같은 건가?”


  세 남자 중 머리가 반쯤 벗겨진 남자가 물었다. 검사는 미소를 유지하며 대답했다.


  “용병은 아닙니다. 일종의 여행가랄까요.”


  “그런가. 그런데 우리에겐 무슨 볼일이지?”


  “세 분은 이곳 주민이시죠? 조금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흐음… 일단 앉게나. 내 이름은 제럴드. 이 친구들은 스캇과 바렛일세. 내 40년 지기들이지.”


  “40년은 빼! 나이 들어 보이지 않나? 어쨌든 반갑구만, 젊은이. 스캇일세.”


  “바렛이라고 하오. 앉으시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스캇과 코가 큰 바렛이 웃으며 인사했다. 검사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호의에 답했다.


  “반갑습니다. 크림슨 블레온이라고 합니다. 그럼 잠깐 실례를.”


  크림슨 블레온이라는 이름의 젊은 검사가 자리를 잡고 앉자, 제럴드가 또 한 번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무엇을 묻고 싶다는 거지?”


  “이곳 알테르의 영주, 로드니 듀아린 남작에 대한 것입니다.”


  소란스러운 배경 속에서 네 남자가 앉은 자그마한 테이블 만이 일순간의 정적에 휩싸였다.


  어째서 이 자는 그런 것을 묻는 것일까? 자기 말로는 그저 여행가라지만 혹시나 듀아린 남작과 사이가 나쁜 수도의 중앙귀족들이 보낸 암살자는 아닐까? 암살자에게 2m나 되는 장검은 어울리지 않지만.


  몇 초간의 침묵을 깬 것은 스캇이었다.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크림슨에게 물었다.


  “이봐, 뭣 때문에 이방인이 우리 영주님에 대해 묻는 거지? 무슨 꿍꿍이속이야, 아앙?”


  직설적으로 말을 내뱉는 스캇을 두 친구가 만류했다. 크림슨도 당황했는지 말을 얼버무렸다.


  “아, 아뇨. 상당히 살기 좋은 지방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영주의 생일 때문에 벌이는 축제에 모든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서는 것을 보니 분명 영주의 정치가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제가 뭔가 실수한 거라도 있습니까? 왜…….”


  “그, 그런 거였나?”


  세 남자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특히나 열을 낸 스캇은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아, 아닐세. 내가 잠시 오해를 한 모양이군. 미안하네! 하하하!”


  “오해… 라뇨?”


  크림슨은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듀아린 남작은 선대와 달리 중앙귀족들과의 관계가 대단히 나쁘다는 것이로군요. 암살자가 보내질 정도로.”


  “글쎄. 무지한 우리들은 조금 전처럼 그렇게 생각하오만,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군.”


  바렛이 대답했다. 스캇이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킨 뒤 덧붙였다.


  “선대의 영주는 중앙귀족들에게 뇌물을 바치느라 혈안이 된 인간이었지만, 6년 전 그가 사망한 이래로 새로 즉위하신 지금의 영주님은 중앙귀족들과의 관계를 바로 끊어버리셨지. 그 대신 영지의 발전에 힘을 쏟으셨고 말이야. 우리도 그에 호응했고, 덕분에 이렇게 단시간 만에 알테르 영지의 형편은 놀랍도록 발전했지. 선대의 막대한 뇌물을 챙기던 중앙귀족들은 아쉽겠지만 말야, 하하하!”


  “그렇군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여러분이 암살자까지 생각하실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물론이네. 문제는 1년 전쯤이었지. 아무래도 선대 때의 막대한 뇌물을 포기하기 힘들었던지 중앙귀족들이 직접 이 알테르를 찾아왔다네. 하지만 그들은 영주님에 의해 창피만 당하고 쫓겨나다시피 했지. 그런데 하필이면 그들 중 하나가 왕실의 권위자여서 영주님과 중앙귀족들 간의 반목은 더욱 심해지게 된 걸세.”


  크림슨은 제럴드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잔을 기울였다. 이후 30여분 동안 크림슨은 세 남자로부터 로드니 듀아린 남작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로드니 듀아린에 대한 주민들의 지지는 실로 대단했다. 선대의 탐욕에 의해 가난 속에서 착취당하던 자신들에게 훌륭한 내정과 모범적인 청렴함으로 풍요를 건네준 로드니 듀아린에 대해 그들이 큰 성원을 보내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주민들의 그런 존경심을 이해하면 할수록 크림슨의 마음은 더욱 씁쓸해졌다.




  “대화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 분께 폐라도 끼친 것은 아닌지…….”


  “아닐세. 우리야말로 이방인과 대화할 수 있어 즐거웠다네.”


  “오히려 조금 전에 오해한 것 때문에 내가 더 미안하구먼. 다시 한번 사과합세.”


  “괜찮습니다. 오해로 인한 실수였을 뿐이잖습니까?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크림슨이 미소 지으며 세 남자에게 인사했다. 계산을 하고 주점을 나서려 할 때, 등 뒤에서 바렛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주님은 하루에 한번 도시를 둘러보시오. 이 시간이라면 시장을 지나 겔리스 거리에 들어서셨을테요. 영주님을 뵙고 싶다면 그쪽으로 가보시오. 그리 멀지는 않으니.”


  “감사합니다.”


  크림슨은 한 번 더 고개 숙여 인사한 다음, 등을 돌려 주점 밖으로 나왔다. 아직 시간은 초저녁, 붉은빛이 알테르의 하늘과 대지를 적신다. 주점 밖으로 맥주에 취한 스캇의 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알테르의 영주, 로드니 듀아린 남작님께 테라 - 목축, 곡물, 풍요의 여신 - 의 축복을!”


  “테라의 축복을! 와하핫!”


  주점의 모든 사람들이 그에 호응해 환호했다. 크림슨은 주점을 등지고 걸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쓴웃음이 드리웠다.


  “나도 거짓말이 많이 늘었군. 일단은 겔리스 거리로 가볼까.”


  어디선가 불어든 서늘한 가을바람이 크림슨의 백발을 조심스레 훑고 지나갔다. 곧이어 크림슨의 뒤를 쫓는 검은 로브에 부딪힌 바람은 금세 수 갈래로 흩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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