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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력 824년 10월 5일.


  레오나다 왕국 남부 알테르 지방의 영주, 듀아린 남작의 저택에서는 한창 파티가 진행되고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고급 음식들과 영롱히 빛나는 촛불이 여러 개의 테이블에 차려져있었고, 중앙 홀에선 오케스트라의 감미로운 음색에 맞춰 수 쌍의 커플들이 스텝을 밟고 있었다.


  화려한 꿈의 단편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인 파티이지만 정작 그 주인공은 그 자리에 없었다.


  “피곤해…….”


  오늘 열여덟 번째 생일을 맞음으로써 성인이 되는 듀아린 가의 외아들, 로드니 듀아린은 한적한 테라스에 홀로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구름에 가린 암흑의 밤. 다만 몇 개의 별빛만이 그 검은 하늘에 수 놓여있었다.


  오늘은 분명 기쁜 날이지만 그에 비해 로드니의 몸은 고단했다. 쉴 여가도 없이 아버지 듀아린 남작의 손에 이끌려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옮겨 다니며 지방 유력자들과 수도에서 내려온 몇몇 중앙귀족들에게 인사를 다닌 탓이었다. 남작의 말로는 로드니의 미래를 위해서라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한 것이겠지. 한심해.”


  그도 그럴 것이 듀아린 남작은 알테르 일대에서 악명이 높았다. 로드니의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알테르의 부유한 대지주이자 부르주아로 행세하던 그는 노예매매나 마약상 등으로 벌어들인 불법자금으로 더욱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그 자금을 이용, 수도의 중앙귀족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뿌린 그는 남작의 지위를 받아내 알테르의 영주로써 군림하게 되었다.


  뇌물로 빠져나간 막대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서 탐욕스런 남작이 할 만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영지의 주민들만 쥐어 짜일 뿐이다.


  백성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매일을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며 윗선에 아부해 뭔가 얻어먹을 궁리만 하는 아버지를 속으로 경멸하며 로드니는 자신의 부드러운 금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응?”


  언제부턴가 밤하늘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붉은 만월. 그러고 보니 양력인 제국력이 아닌 음력으로 오늘은 8월 15일. 적월(赤月) 룰티어스가 뜨는 8월이다. 마의 기운을 강화시키는 룰티어스였지만, 그 자태가 왠지 아름다워 로드니는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이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크으.”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로드니는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


  목이 마르다.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며칠이나 헤맨 듯이 조금도 버티기 힘들다. 지금 당장 무엇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복도로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로드니의 눈에 쟁반을 든 하녀가 비쳤다. 와인이 반쯤 채워진 몇 개의 글라스와 고급 와인병 하나. 지금 막 계단을 통해 중앙홀로 내려가려던 모양이었다. 로드니는 빠른 걸음으로 하녀의 앞으로 다가가 글라스 중 하나를 거칠게 낚아챘다. 평소 아랫사람들에게도 친절하고 부드럽게 굴던 그였지만 그런 것은 뒷전이 될 정도로 그의 신경은 곤두서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갈증이 원인이었다.


  “아!”


  하녀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지만 로드니는 개의치 않으며 글라스에 든 와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갈증. 모든 글라스를 비웠는데도 전혀 사그라지지 않는 고통에 로드니는 아예 병째로 와인을 마셔대기 시작했다. 하녀는 여전히 두 손으로 쟁반을 든 채 토끼눈을 하고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크아악!”


  역시나 해소되지 않는 갈증에 로드니는 소리를 지르며 와인병을 힘껏 던졌다. 와인병이 벽에 부딪혀 깨지며 남아있던 와인방울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꺄악!”


  로드니의 난폭한 행동에 놀란 하녀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렸는지 로드니는 신경질적인 눈빛으로 하녀를 노려보았다.


  로드니의 매서운 눈길에 하녀는 곧바로 입을 다물며 고개를 숙였다. 바닥으로 옮겨진 하녀의 시야로 깨진 와인병이 보였다. 일단 자신은 이 저택의 고용인인지라 하녀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자 쟁반을 복도 한 구석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깨진 병 조각을 줍기 시작했다. 평소 같지 않은 로드니의 행동에 긴장한 탓인지 그닥 힘이 들지 않는 일임에도 하녀의 이마 위로 땀방울이 맺혔다.


  “읏!”


  너무 긴장한 탓일까. 작은 유리조각을 집던 하녀의 검지에서 피가 흘렀다. 상처가 꽤 심한지 핏줄기가 바닥을 적셨다. 반대 손으로 상처를 지압하며 하녀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런 그녀의 손을 부드러운 손길이 붙잡았다. 흠칫 놀란 하녀가 고개를 들자, 깨진 와인병위로 한쪽 무릎을 꿇은 로드니가 보였다.


  “로드니 님, 위험합니다. 비켜서세요!”


  하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로드니는 하녀의 손을 잡은 채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하녀가 다시 말하려는 찰나,


  “로, 로드니 님?!”


  하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로드니가 자신의 손가락을 입에 넣어 게걸스레 상처를 빨아댔기 때문이다. 지혈을 위해 상처를 빠는 행위가 더러 있음에도 하녀는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꼈다.


  신분의 차이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한, 마치 종(種)의 차이와도 같은 괴리감. 그리고 로드니의 행위가 상처의 지혈을 위해서가 아닌, 그저 상처에서 나오는 피를 탐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하녀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로드니의 뺨을 힘껏 올려붙였다.


  큰 소리와 함께 로드니가 물러섰다. 하녀는 자신의 손가락에 묻은 그의 타액을 옷에 문질러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그제야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깜짝 놀라 로드니를 향해 고개 숙이며 사과했다.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였다.


  “죄, 죄송합니다, 로드니 님. 제가 감히…….”


  대답은 없다. 다만 로드니는 깨달았다. 자신의 갈증은 인간의 음료 따위로 채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이 갈증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피.”


  핏발이 선 눈으로 로드니는 하녀의 새하얀 목덜미를 노려보았다. 무언가를 심하게 갈구하고 있는 그의 눈빛.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하녀는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로드니 또한 하녀를 향해 한걸음을 내딛었다. 하녀가 또 한걸음 물러섰다. 로드니도 또 한걸음 전진했다. 오케스트라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긴 복도에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로드니와 하녀는 마치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는 듯한 커플을 연상케 하며 소리없는 추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절대로 뛰어선 안 된다. 절대로 소리쳐선 안 된다. 하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치 사나운 맹견을 대하듯이.


  경쾌하게 변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로드니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갈증에 대한 인내는 거의 바닥났다.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피에 대한 갈망. 하녀의 뒷걸음질도 점차 빨라졌다.


  이윽고 쿵하는 소리와 함께 하녀의 등이 벽에 부딪혔다. 예상하지 못하여 꽤나 세게 부딪혔지만 비명을 지르지 못한 것은 아픔보다 더한 공포가 하녀의 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로드니는 여전히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그는 단순한 맹견이 아니었다. 야수. 한 마리의 흉포한 야수였다. 뛰어선 안 되느니, 소리쳐선 안 되느니 하는 것은 이제 소용없었다. 최대한 크게 소리를 질러서 사람들을 불러야한다. 도망칠 틈도 없는 이 상황에선 그것이 최선이었다.


  “누가 좀……!”


  두려운 와중에 쥐어짜낸 하녀의 비명이 얼마 안가 멈춰버렸다. 간신히 빠져나온 목소리마저도 결국 오케스트라의 경쾌한 연주에 맥없이 묻히고 말았다. 전과 달리 길고 날카롭게 돋아난 로드니의 송곳니가 하녀의 목덜미에 깊숙이 박혔기 때문이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위였지만, 로드니는 송곳니를 박은 그대로 능숙하게 하녀의 피를 빨아먹기 시작했다. 가축의 몸에 달라붙은 흡혈박쥐처럼 로드니는 인간이라 생각되지 않는 악력으로 하녀의 팔을 붙들었다. 살점이 터지고 뼈가 부서졌지만 하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육신에서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느낌. 하녀는 저항할 힘도 없이 극도의 고통과 공포 속에 몸을 떨었다.


  일순간에 갈증이 채워지는 느낌. 로드니는 이성을 잃은 몽롱한 정신 속에서 흡사 오르가즘과 같은 강한 쾌감에 몸을 떨었다.


  흡혈하는 자와 흡혈당하는 자.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떨림 위로 창밖의 붉은 만월이 음산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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