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06 06:02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조회 수 608 추천 수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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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조공명을 찾고 있었는데, 결국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되는구나. 아니, 조공명한테 잡혀온 거지만.


"너.. 도대체, 왜 내 친구들을 멋대로 잡아가는거야."
"훗, 친구?"


말투랑 표정 하나하나가 비호감 그 자체다. 정말 내가 저런 놈과 여태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건가.


"난 살다살다 미연시스러운 하렘을 정말로 만든 놈은 처음 봤다."
"하렘이라니, 설마 내가?"


조공명녀석은 여전히 그 기분나쁜 표정으로 날 비웃고 있다. 도대체 뭐냐.


"농담은 아니지? 네놈이 지금 만든게 하렘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는게.."
"나를 속이면서 도플갱어까지 이용하고.. 내 친구들을 데려간 이유가 도대체 뭐야."
"훗. 도플갱어? 네놈, 애니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각종 동인지 불펌으로 블로그 방문객과 자기 빠를 늘리고 있는 조공명 너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게 도플갱어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날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하나 있었지. 운이 좋게도 나한테 자취방을 빌려주고, 나를 도와준다고 했어. 덕분에 네놈 뿐 아니라, 하렘 구성원들 하나하나의 인적사항들까지 파악했지."
"뭐..?"


도대체 소문이 언제 이렇게까지 퍼진거야. 그것도 다른 게 아니라 조공명한테.


"소꿉친구, 동인녀 선배, 미녀 전학생, 게임을 좋아하는 여자애, 왕따 여자애, 그리고 고등학교로 월반한 꼬마까지. 게다가 여동생도 브라콘."
"..."


이 정도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그냥 무섭다. 막 무섭다. 저놈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다 알고 있는거지.


"너.."
"네놈이 어떻게 이런 하렘을 모았는지 몰라도, 고등학생의 몸으로 하렘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그러니까 그걸 조공명 네녀석이 왜 신경쓰는거야. 그것보다도 서연이랑 유정이가 무사한지가 문제인데.


"내 친구들한테.. 이상한 짓 한 건 아니겠지."
"걱정마. 걔네들은 무사해. 아무것도 안 했어. 일단 네놈부터 처리하고 나서."


처음부터 나를 제거하려는 생각이라니. 이거 내가 조공명을 어떻게 하지 않는다면 여자애들도 위험해.


"유일동에 내가 처음으로 만난 '크레센티아'가 살고 있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 크레센티아는 아쉽게도 작년에 이곳을 떴더군. 하지만 난 후회하지 않아. 크레센티아를 대신할 여자애들이 유일동에, 그것도 너 주변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걸."


크레센티아.. 조공명한테 처음으로 당한 피해자 얘기인가. 한때 유일동에 살았었다니, 정말 지금은 유일동을 떠난 게 천만다행이다. 설마 이 악독한 조공명이 이곳으로 올 줄 누가 알았겠어.


한때 아름선배가 이런 놈이랑 놀았다니. 그나마 아름선배 자신이 '재미없다'면서 멀리하긴 했지만, 둘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름선배 말로는 조공명과 재회했는데도 자기같은 사람은 열 트럭 갔다줘도 싫다고 했던가.


"도대체.. 아름선배랑은 무슨 관계인거냐."
"아름선배? 아, 루미 말하는거냐. 내 '딸' 중 하나였지."
"딸이라니? 아.."


맞다. 조공명이 이른바 '딸놀이'라는 걸 했지. 인터넷에서 알게 된 멋모르는 순진한 여자애들한테.


"설마.. 그 중에 아름선배가?"
"맞아. 루미 걔 처음에는 귀여워서 받아줬는데, 계속 놀다보니까 귀엽기는 커녕 징그럽기만 하더군. 아무리 '모에'라는 게 한계가 없다지만, 내가 어떻게 그런 애를 내 '딸'로 받아줬는지 나도 모르겠어. 그리고 인간적으로 어떻게 그런 애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나는 인간적으로 어떻게 조공명같은 놈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너.. 신이 두렵지 않아? 하늘이 천벌을 안 내릴 것 같아?"
"훗, 신이라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뭐야. 신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거야?"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게 뭔지 알아?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하며, 그 신이 자기를 구해줄 거라고 착각하는거야. 이 세상에 신 따위는 없어. 다만 힘이 있어야만 살아남을 뿐이지."


이런 말을 만약 국교가 있는 나라에서 했다가는.. 그야말로 신성모독죄가 되어서 목숨이 그 자리에서 달아나겠지.


"설마 신이 있다고 해도, 그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아. 만약 전지전능하다면 신이 선하지 않다는 것이겠지. 처음부터 '선'이라는 것 자체가 높으신 분들이 만든 가식이긴 하지만."
"너.. 알아둬. 이 모든 것이 다 드러나면.. 이 나라의 법이 너를 심판하게 될 거야."
"계속 헛소리만 하고 있군."


하지만 헛소리를 하는 건 조공명 너잖아. 여자들을 건드린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놈은 사상 자체가 위험해.


"법이라는 것도, 결국 힘있는 자들이 그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 만든 거야. 너같이 힘이 없는 것들은 그냥 조용히 힘이 있는 사람의 말만 들으면 되는거야. 소크라테스도 말했잖아. 악법도 법이라고."
"그렇다면, 내가 힘이 없으니까 너한테 내 친구들을 순순히 내놔야 한다는거냐."
"정답. 이제야 상황 판단이 되는군."


하지만 그건 비극이야. 저런 놈한테 내 친구들이 넘어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그런데 조공명 저녀석 지금 뭘 꺼내는거야.


설마.. 총? 하지만 우리나라는 개인이 총기 소지를 할 수 없는 나라니까. 그런데 저게 진짜 총이든 아니든, 총이 나오니까 정말 겁난다.


"어차피 네놈을 살려둘 생각은 없었으니까, 네놈이 믿는 신이 있다면, 그 신에게 구원을 바라던가. 그런 게 있을리가 없지만. 굳이 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나같이 힘이 있는 자가 신세계의 신이 된다고 할까?"
"그런 가짜 총 따위로 어떻게 나를 죽인다는거냐."
"아직도 상황 판단을 못하는군. 이건 진짜 총이야. 이 총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글록 17'이라서, 멍청한 세관 놈들이 그냥 보내줬더군."


뭐.. 진짜 총? 화약이 들어있는 총알이 안에 들어있는 진짜 총? 이거 정말로 미쳤구나.


"날 어떻게 하더라도, 내 친구들한테는 아무 짓도 하지 말고 그냥 보내줘. 너를 인간으로 생각하고 하는 마지막 말이야."
"싫다면? 어떻게 얻은 수확인데, 내가 그걸 가만히 놔둘 것 같아?"


역시 인간 이하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면 안된다. 그런데 문제는 왜 나는 아무런 힘도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고, 저런 것들한테만 힘이 있는 것일까.


정말 저놈의 말대로 이 세상에 '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사람들은 흔히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하지. 그래. 그 말이 맞아, 일은 반드시 바른대로 흘러가. 너같이 힘없는 것이 만든 하렘은 다 나한테로 넘어오게 되어 있어."


사필귀정은 그런 뜻으로 쓰는게 아니겠지. 오히려 사필귀정이 되기를 바라는 건 나니까.


"잘있거라, 유일동의 하렘마스터 주윤민. 너를 저 세상에 보내고, 너의 하렘은 내가 대신 관리해주겠다. 저 세상에서는 언제나 평안해라."


총구는 나를 향하고 있다. 이제 저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 나는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겠지.


유정아, 서연아..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탕!


내가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었다. 그때 내가 다솜이랑 함께 '건전 앤 파이터' 세계에 빠졌을 때 거기에서 블랙스퀘어랑 싸웠을 때 그 속도로 총알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래. 이런 속도는 보이는 대로 피하면 되는거지. 정말 사람이라는 것은 극한상황이 되면 누구나 초인이 되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신이 도운 걸까.


"제길, 빚맞췄나."


조공명이 또다시 총알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알은 아까같이 눈에 보이는 속도로 날아왔고, 난 그 총알을 또 아까같이 피했다. 총알은 피한 건 좋지만, 내가 피한 벽에 총알이 박힌 것이 보인다. 만약 맞았다면 난 더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정말 식은땀이 쫙 흐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공명 쪽의 표정이 굳은 것이 확실히 보인다. 원래 인간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총알을 피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총알이 눈에 보이는 속도로 날아갔기 때문에 이런건지.


"너.. 도대체 뭐야."
"너 입으로 말했잖아. 사필귀정이라고. 일은 반드시 바른대로 흘러간다고."


신이 정말 있긴 한가보다. 그 어떤 신이라도 조공명같은 녀석은 용서할 수 없겠지. 정말로 조공명의 막장행각을 보고 신이 날 도왔다면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에잇..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꼭 너를 죽이고 말테다!"


원래 미쳤다고밖에는 할 수 없지만, 지금 표정을 보니까 광기에 찬 표정이다. 그런데 총알은 어찌어찌 피했지만,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데?!


갑자기 조공명이 쓰러졌다. 뭔가 큰 소리가 난 걸 보니까, 누가 뭔가를 던져서 맞은건가. 도대체 이번엔 또 누구야.


조공명 옆에는 의자 하나가 떨어져 있다. 조공명을 건드려봤지만, 반응이 없다. 그냥 시체인 것 같다. 결국 희대의 인간말종은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구나.


이제 유정이랑 서연이가 무사히 있나 보려고 했는데.. 저 앞에 있는 낯선 여자는 도대체 누구지.


"주윤민. 너도.. 이능력자였어?"
"넌.. 도대체 뭐야."
"바보같은. 너가 여태까지 도플갱어라고 알고 있는게 바로 나야."


저렇게 평범하게 생긴 여자가 도플갱어라니.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못믿겠어? 그러면 보여줄께."


내 눈 앞에서 자기가 도플갱어라고 말한 여자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유정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유정이..?"
"어리석은, 너 친구 중 하나라는 유정이의 모습으로 변한거야. 그런데 모습만 변했더니 다들 이상하게 보니까, 뭔가 이상해졌다는 걸 들켰으니까."


당연하지. 내가 알고 있는 유정이는 점심시간에 식당에 안 가는데다가, 내가 알고 있는 서연이는 나를 내 정확한 이름인 '윤민이'라고 안 부르니까.


유정이의 모습으로 변한 도플갱어는, 다시 원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갔다.


"도대체.. 왜 조공명이랑 손을 잡은거야. 그런 인간말종이랑."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앞에 있는 유정이, 아니, 유정이의 모습을 한 도플갱어의 입에서 말이 바로 튀어나왔다.


"훗. 인간말종? 원래 인간들이 다 말종 아니었어?"
"인간들이 말종이라니, 이건 또 무슨 위험한 말이야."


역시 초록은 동색이라고, 비슷하게 위험한 것들끼리 어울리는구나. 그런데 인간들이 다 말종이라는 건 또 뭐야.


"내가 초등학교 4학년때였어. 어느 날 물건을 손 대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나한테 생긴 걸 알게 되었지. 사람들이 말하던가? 그게 염동력이라고."


그러면 아까전에 조공명한테 의자가 날아온 것은, 의자를 던진 게 아니라.. 염동력?


"맞아. 바로 봤구나. 눈치는 빠르군."


뭐야. 저 녀석도 내 생각을 읽고 있는건가. 조심해야겠어. 이거 예상치 못한건데. 그런데 하도 둔하다는 얘기만 듣다가 눈치가 빠르다는 얘기를 들으니, 이건 좀 이상한데.


"둔하다는 건 여자관계 얘기겠지. 너같은 녀석은 딱 여자들의 마음을 모르게 생겼으니까. 뭐 나랑은 상관없지만."
"하던 얘기나 계속 해 봐."


듣다듣다보니까 얘기가 삼천포로 빠지려고 하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듣기나 해야겠어.


"그런데 문제는 그 때부터였어. 그 능력을 사람들 앞에서 썼는데, 처음에는 '신기하다 보여줘봐' 이러던 애들이 점점 나를 '이상한 애'라고 하기 시작한거야. 누군가는 '사탄이 씌였다'라고까지 말했고, 그 뒤로 내가 무당집으로도 끌려가고, 교회로도 끌려가고.. 그랬어."


역시 뭔가 특이한 것이 있으면 그걸 좋게 보지 않는구나. 흔히들 말하지.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가 한국에서 태어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위인이 되지는 못했을 거라고.


"하지만 그 뒤에도 내 염동력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악마에 씌인 애' 라는 말을 학교 선생님한테까지 들은 뒤로.. 난 더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었어. 그 뒤로 생각했어. 언젠가 내가 커서 나를 이렇게 버린 세상에 복수를 하겠다고."


자기를 그렇게 만든 세상의 사람들이 아무리 싫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 아니잖아.


"그만해. 내 친구 중에서도 조금 특이한 애가 있지만, 걔는 학교 잘 다니고 있어."
"걘 조금 특이한 정도가 아니라, '마녀'잖아."


뭐?


혜인이가 마녀인 걸 알고 있는거야?


"그 퇴마사 가문과 마녀 얘기는 들었어. 둘이 서로 물리고 물리는 관계인데, 결국 그 퇴마가문의 여성과 마녀가 서로 크게 싸우다가 둘 다 죽고 말았지. 퇴마가문은 대가 끊겼고, 그 마녀의 딸이 너 주윤민의 친구 중 하나인 변혜인이잖아."


이 도플갱어. 아까전의 조공명하고는 다른 의미로 무섭다. 도대체 그 얘기까지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그걸.. 어떻게 다 알고 있는거야, 도대체."
"조공명한테 알려줄 정보를 찾으러 주윤민 너에 대해 뒷조사를 하다보니 전혀 의외의 사실이 걸려서 뒷조사를 했지. 설마 마녀까지 녹일 줄이야."


능력자는 능력자를 알아보는건가. 혜인이가 이상한 애라고 생각하는 애들은 많아도 혜인이가 '마녀' 라는 걸 눈치챈 사람은 없을텐데. 내가 돌아왔을 때 있었던 애들 말고는.


그런데?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까 윤화다. 역시 내가 계속 안오니까 걱정되어서 전화하는건가.


"윤화야. 미안. 나 지금 전화받을 상황이 아냐. 나중에 전화할께."
"오빠!"


윤화한테는 미안하지만, 지금 정말 내가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나중에 전화해야지.


"그리고 죽은 마녀, 그러니까 변혜인의 엄마가 되겠지. 그 마녀랑 싸우다 죽은 퇴마사에게는 두 동생이 있었는데, 그 가문이 아마 맏이만 퇴마사가 될 수 있었나봐. 그래서 두 동생들은 각각 다른 집으로 입양됐어. 막내가 태어나기 전에 둘째는 이미 입양되었으니까, 둘째는 자기 동생이 있는지도 모르고, 막내는 자기한테 작은언니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각자의 집에서 잘 지내고 있겠지."


혜인이는 그 퇴마사 가문이 멸족한 줄 알고 안심하고 있었을텐데, 동생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건 또 뭐야. 언젠가 그 동생들이 퇴마사가 되어서 혜인이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긴가.


"그런데 복수를 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도 아닌 왜 하필이면 조공명이랑.."
"나도 조공명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한 명의 여자로서 좀 아니다 싶었어. 하지만 조공명이 모두를 망가뜨려 놓은 뒤에, 조공명을 처리하려고 했으니까. 이독제독이라는 거지."


그렇게까지 이 세상이 싫었던 건가. 하지만 그런 과한 복수심은 오히려 사람을 망쳐.


"그런데.. 염동력은 그렇다 쳐도, 어떻게 도플갱어가 된거야."
"작년에 책방에서 책이라도 빌려보러고 갔는데, 뭔가 좀 이상한 책 하나가 있었어. 신기해보여서 빌렸는데, 무슨 알 수 없는 글씨랑 도형만 있었어. 그래서 사기당했구나.. 생각했는데 그 책을 읽은 뒤로 몸이 이상해져서 일주일 간 앓아 누워있었어. 다 나은 뒤에, 내 염동력이 좀 약해진 것 같았지만, 내가 확실히 기억나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게 된 것을 알았어. 흔히 말하는 '도플갱어'가 된거지."


가만. 책방의 이상한 책을 읽고 나서 그렇게 됐다는 건.. 블랙스퀘어도 그렇게 되었다는 것 같은데. 틀림없다. 혜인이가 잃어버렸다는 그 '마도서'다.


"나한테는 다행이었어. 염동력보다 도플갱어가 내 복수에 도움이 더 되니까. 먼저 나를 괴롭혔던, 악마가 씌인 애라고 몰았던 사람들을 망가뜨렸어. 재미있더라. 살면서 그렇게 기뻤던 적이 없었어."


복수라는 것에 맛들리면 결국 복수 대상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서 자기 자신도 망치게 된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어.


"하지만 그걸로는 모자랐어. 이제 '세상'에 대한 복수를 해야 했어. 그러던 중에 인터넷에서 조공명에 대한 얘기를 듣고, 여기에 파라파라라는게 왜 있는지 몰라도, 그거 때문에 마침 조공명이 이 동네에 오고싶어해서 조공명이 자취하라고 방을 줬어. 조공명을 이용해서 복수를 본격적인 시작하려고."


자기 능력 때문에 오히려 차별을 받아서 마음이 아픈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 이건 일을 너무 크게 벌려놓았잖아.


"자기들이랑 조금 다르다고 날 버린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게, 그 '조금 다른' 것을 이용한 복수를 하려고 했는데, 조공명이 하는 짓을 보니까 오히려 내 복수에 방해만 될 것 같아서 그냥 처리한거야. 하지만 상관없어. 조공명 따위는 없어도 되니까."


이녀석. 조공명하고는 다른 의미로 무섭다. 도대체 왜 나는 이런 것들하고만 얽히는거야.


"여자애들은.. 무사한거야?"
"난 개인적으로 여자애들 건드리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다만 조공명을 이용하기 위해서 비위를 맞춰준 것 뿐."


자기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게 더 무섭다.


"뭐, 더 이상 긴 얘기는 안 하겠어, 주윤민. 이제 저 세상으로 가서 지금 이 세상에서 태어난 걸 후회해. 아, 내 이름을 안 말해줬구나. 난 '정초혜'라고 해. 짧은 인연이었지만, 악역으로 남아서 유감이야."


정초혜.. 가만. 그러고보니 들어본 기억이 있어. 그 이름. 초등학생인데 학교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자 그 뒤 자퇴했다던가. 그런데 알고보니 염동력자에 도플갱어라니.


생각할 틈도 없이 이 방에 있는 모든 물건이 나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까전 조공명이 쏜 총과 마찬가지로 내가 피할 수 있는 속도다. 정말 신이 나를 돕는 것일까.


"제법이군.. 하지만 이건 어떨까."


정초혜는 뭔가를 주머니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실뭉치같은데, 실뭉치로 뭐하겠다는 거지.


"그냥 조용히 보내주려고 했더니 안되겠어. 이 자리에서 확실히 끝내야겠어."


실뭉치 속에 있는 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건 아까전 총알이나 물건보다 더 피하기 까다로운걸. 불규칙적으로 막 날아오는 걸 어떻게 피하라고.


결국 실을 피하지 못하고 실에 완전히 묶여버렸다. 실이 너무 팽팽하게 묶여서 몸이 심하게 조여온다. 안돼. 이대로는.. 숨쉬기도 힘들어. 답답해. 풀어줘. 이러다가는 숨막..혀 죽는.. 다구.


혜인이라도.. 있었으면 그나마 복수의 화신을 막을 수 있지만.. 혜인이는.. 언제 돌아올 지 모르는데다 돌아와봐야 내가 이러고 있는 걸 알리가 없겠지.


내 짧은 17년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기 시작한다. 옆집 사는 서연이랑 유치원때 소꿉놀이도 했고, 아무것도 모르고 내 동생으로 입양이 된 윤화랑도 처음엔 많이 다퉜고, 지금도 가끔 다투지만 친동생 못지 않게 잘해줘야 하는데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칭기자 박찬놈을 알게 된 뒤에 여러 여자애들을 알게 되었고..


모두에게.. 미안하다. 끝까지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그리고 위험한 복수를 시작하려는 도플갱어 정초혜를 막지 못해서..


날 저 세상으로 데려가려는 저승사자가 벌써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다.


그리고 나같은 보잘 것 없는 것의 죽음은 세상이 전혀 기억하지 않겠지. 나와봐야 TV뉴스나 신문의 한쪽 구석만 차지하겠고.


...


눈을 떠 보니까, 내 눈 앞에 펼쳐진 곳은 지금까지 못보던 곳이다. 침대에 누워 있긴 한 것 같은데.. 고등학교 교과서가 막 보이고. 도대체 여긴 어디야. 정말.. 내가 죽어서 사후세계에 도착한거야?


그리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들어, 윤민아?"


- 다음회에 계속 -


28. 정초혜 : 2x세. 자신이 염동력자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 뒤로 세상이 그녀를 버리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이 세상에 복수를 하려고 시도한다. 그것도 조공명을 이용해서.


네. 이번 회에는 조공명과의 1대1 승부와, 여자애들로 변한 문제의 도플갱어 정초혜가 나온 회입니다. 조공명의 위험한 사상을 듣고도 어찌하지 못했지만, 신이 도왔는지 윤민은 조공명의 총알을 피했고, 도플갱어 정초혜는 처음부터 자기의 복수를 위해서 조공명을 이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윤민의 일생일대의 위기. 조공명이 죽은 뒤에 납치되었던 여자애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그리고 윤민이 깨어난 곳은 과연 어디일지.


참고로 총알은 절대로 사람이 보고 피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은 그냥 픽션일 뿐이니 여러분들은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그리고 조공명이 말한 '크레센티아'에 대해서는 전작을 보셨다면 아실듯.


역시 개강이라서 많이 바쁩니다. 이제 연재가 좀 늦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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