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408 추천 수 1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네년이 운요인가."




     현월은 필사적으로 류화에게 불편함을 호소했다. 가슴과 허벅지 사이에 끼인 팔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옷에 붙어있는 장식물들이 피부를 찔러대는 탓에 아프기까지 했다. 왼손을 필사적으로 빼내자 류화의 다리에 닿았다. 손목에 스냅을 주어 신호를 보냈다. 류화는 그제야 자신이 무리하게 현월을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자세를 고쳐 잡았다. 하지만 구속을 풀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어느 정도 몸이 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는 것 이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현월의 입은 여전히 막혀있었고,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누군가가 테이블을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네놈은 …제……의 …정이냐?"


     "요즘 집지…는 개… 말도 할… … 아는 모양이야."


     "……. 무슨 용건이지?"


     "머리가 나쁘군. …정이 하는 일이 ……… …은가?"




     운요와 방금 전 들어온 누군가가 대화를 나누는 모양이었지만, 군데군데 파열음이 섞여 끊어진 문장만이 들려왔다. 현월은 둘의 회화를 듣기 위해 최대한 귀를 기울였지만, 명확히 들리는 단어만으로는 대화의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다. 문을 박살내고 들어온 사람이 남자인 것은 확실했지만, 서강은 아니다. 현월이 확실할 수 있는 부분은 그것뿐이었다.




     다시금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는 점차 현월이 있는 테이블로 가까워졌다. 그와 맞물려 운요의 발자국 소리가 테이블에서 멀어져갔다. 다시금 소리가 끊겼고, 한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현월은 그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다. 온 몸이 근질거렸다. 긴장감이 문을 통해 들어오는 한기와 뒤섞여 현월을 죄어댔다.




     "어쩔래? 덤빌 거냐?"




     남자가 묻는다. 운요는 대답하지 않는다. 남자가 킥킥댄다. 침 섞인 소리가 끓는 기름에 감자튀김을 쏟아 넣은 것 같다. 썩은 기름 냄새가 코끝을 쑤시는 것 같아 구역질이 치밀었다.




     "뭐 어차피 다 죽여 버릴 예정이었으니……."




     말의 끝을 잡아먹으며 음성 대신 공기를 흔든 것은 분명 주먹이 신체를 가격할 때 나는 소리였다. 현월이 질릴 정도로 많이 들어온 소리. 피부와 피부가 접촉하고, 뼈와 뼈가 부딪히고, 살이 살을 뭉갤 때 생겨나는 충격이 자신의 존재를 호소하는 소리. 항상 통증을 수반하는 가학의 소리. 현월에게 있어서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아닌, 타인을 향한 타인의 폭력이 가해지는 상황에 던져진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자신의 신체 바깥에서 만들어진 그 소리가 매우 불쾌하게 느껴졌다. 폭력은 불쾌한 것이다. 당연한 사실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무감각해진지 오래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당하는 폭력에는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된 이후로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일이기 때문에 정의감이 반발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 그 타격음이 이제까지 들어온 그 어떠한 소리보다도 더한 격통을 담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현월은 류화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류화는 그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반사적으로 현월의 얼굴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현월은 고개를 들어 시야를 확보했다.




     등이 굽은 채로 공중에 띄워진 운요의 몸이 보였다. 먼지를 집어삼킨 바람 사이로 주먹이 보였다. 검은색 슈트의 재봉선을 따라간 곳에 셔츠 깃이 보였다. 말끔하게 면도된 턱이 으드득 소리를 내며 경합하는 누런 이를 훌륭하게 받쳐 들고 있었다. 구겨진 안면 근육이 덧씌워진 피부마저 일그러뜨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리 많이 노출되지 않은 눈동자는 살기로 충만했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죽어버리라는 순수한 살의가 안광처럼 뻗어 나와 그의 주먹 끝을 향하고 있었다.




     비정상적이었다. 보통 주먹을 휘두른 것의 결과물로 이런 형상은 나오지 않는다. 현월이 사람을 주먹으로 쳐서 들어 올리는 일이 일반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문제의 답 따위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광경이라는 것 정도는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저런 힘으로 누군가를 친다면 상대는 과연 어떻게 될까? 상대는 그런 힘으로 운요를 가격했다. 운요가 자신의 몸으로 가정에 대한 실례를 보여주려 하고 있었다. 더함도 덜함도 없이 죽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현월은,




     "우, 운요 누나!"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사람은 어째서 위급한 상황에 놓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일까? 위급할 때, 죽음의 위기에 놓인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그 행위에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수도 없이 부른 이름이다. 다시 부른다고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도 아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마지막 기억을 새기기 위해서인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상대의 마지막 모습을 필사적인 외침이라는 표식과 함께 기억 사이에 새겨 넣기 위해서인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일수록 목소리가 비례하여 커지기라도 하는 것일까? 죽어가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이름을 부른 나라는 사람을 기억해달라고 바라는 것인가? 온갖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패닉이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적절한 상태였다. 하지만 현월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시기상조였다. 상대방은 아직 죽지도 않았고, 죽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현월의 목소리를 들은 운요가 가볍게 고개를 돌렸다. 굉장히 화가난 표정으로 현월을 바라본다. 아니, 현월을 바라보지 않는다. 류화를 노려본다.




     "너 이 쓸모없는 새끼야. 애 하나 제대로 간수를 못 해?"




     너는 류화. 애는 현월. 그렇게 둘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했다. 현월은 류화가 자신에게서 약간이나마 손을 뗀 일을 격하게 나무라는 운요의 모습에 의문을 가지기보단 어째서 운요가 멀쩡한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애라고 불린 것에 투덜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운요의 손바닥이 남자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막았으니까 다치지 않았다. 공격을 막는다는 행위는 당연히 데미지를 입지 않기 위한 행동이다. 하지만, 운요가 방어에 성공한 것은 그런 심플한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덮어놓고는 얼굴도 목소리도 확인하기 전에 나를 쫓아낼 생각이었나?"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반대쪽 손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운요는 자신의 몸을 회전시켜 공중으로 튀어 올라 그대로 한 바퀴를 돌아 내려왔다. 회전하는 동안 두 손으로 상대의 주먹을 단단히 쥐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는 팔이 꺾여버리지 않을 정도로 자세를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주먹은 목표를 맞추지 못한 채 바닥과 마주하고 말았다. 콘크리트가 사정없이 부서져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저 너 같은 녀석의 상판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지."




     운요는 그대로 뒤로 돌아 남자를 업어 쳤다. 불안정한 자세로 서있던 남자는 순순히 운요의 공격에 몸을 맡겼다. 바닥에 충돌하기 직전에 남자는 남은 팔을 뻗어 바닥을 움켜잡았다. 마치 콘크리트가 찍어 누른 소보로빵처럼 부서졌다. 그와 동시에 운요는 공격을 그만두고 그에게서 떨어져 자세를 고쳐 잡았다. 남자는 한쪽 손을 콘크리트 안에 뭍은 채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믿을 수 없이 견고했다. 사람이 아니라 마치 동상을 꽂아놓은 것 같았다. 한쪽팔만으로 모든 충격을 견뎌내고도 여전히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생각보다 부수는 맛이 있겠어."




     남자는 팔을 굽혔다 펴는 동작을 취해 몸을 공중으로 밀어 올렸다. 빠르게 중심을 잡은 그는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전투자세를 잡았다. 그의 주먹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붉게 부어올라있었다. 주먹의 근육이 팽창해있는 것이다.




     "……. 덤벼."




     운요가 조용히 적을 도발한다. 남자는 말없이 팔을 한껏 뒤로 뽑았다. 디딤 발이 앞으로 나가고, 무게중심이 앞으로, 남자의 주먹이 운요의 얼굴을 향해 뻗어나가려는 순간 카페 안쪽에서 나지막한 여성의 말이 그 사이로 날아들었다.




     "백이십구번. 그쯤 하세요."




     남자는 즉시 동작을 멈추었다.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했다. 현월이 도착하기 전부터 혼자 카페 구석에 앉아 홍차 한 잔과 함께 독서를 즐기고 있던 여성이었다. 빈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는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정도가 지나친 폭력 때문에 벌써 수차례 경고를 받은바 있는 분이 계속 이렇게 행동하시면 곤란합니다."




     말에 가감이 없고, 감정이 실려 있지 않은, 그야말로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안경 너머로 비치는 탁한 눈동자와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조용히 있던 남자는 이내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난 내 방식대로 일하고 있을 뿐이야!"


     "한 번만 더 당신 방식대로 일을 마쳤다가는 제거대상이 되고 말 겁니다."




     남자는 이내 침묵한다. 이를 갈아댔지만 더 이상 공격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전투태세를 해제했다. 하지만 운요는 자세를 풀지 않고 계속해서 남자의 행동을 주시했다.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혹시라도 여자 쪽이 가세하게 된다면 불리해질 수 있다. 현월을 제외하고도 류화가 있으니 2대 2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월의 존재는 제외대상이 아니다. 싸움에 참여할 수 없는 이상 누군가가 지켜주어야만 했고, 그런 현월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존재일 뿐이었다. 운요의 눈동자가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경계했다. 운요가 주시 대상을 세 번쯤 바꾸었을 때, 여자는 테이블 위의 책갈피를 집어 책 사이에 넣고 독서를 중지했다.




     "지금 여기서 계속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말한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어?"




     갑자기 류화가 끼어들었다. 상당히 떨리는 목소리였다. 여태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건 긴장한 탓이었던 모양이었다.




     "……. 아직 공식적인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시면……."


     "아니, 그걸로 충분해."




     운요가 말을 끊었다. 여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 백에 책을 집어넣고 옷을 정리한 뒤 운요와 남자가 대치하고 있는 자리로 걸어왔다.




     "오늘 그쪽에 끼친 피해는 제대로 보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사견이지만, 사실을 숨기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이만."




     여자는 말을 마치고 걸어 나가며 창백한 손을 들어 남자에게 손짓했다. 남자는 여전히 씩씩대고 있었지만, 잠자코 그녀를 따라갔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가게 안에는 부서진 파편들과, 차가워져버린 공기와, 긴장이 풀려버린 세 사람만이 남았다. 류화는 천천히 현월에게서 떨어졌다. 조심스레 사과를 건넸지만, 현월은 대답하지 않았다. 허리를 펴 소파에 기대 편한 자세로 앉았다.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살핀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아직 감조차 잡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주변 상황을 살피지만, 그런 것들로 추론해낼 수 있는 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모두 생소했다. 운요가 다가왔다. 현월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본다. 괜찮은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머릿속이 복잡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뒷목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백이십구번이라는 남자. 믿을 수 없는 괴력. 대등하게 싸우는 운요. 이해할 수 없는 대화. 갑자기 끼어든 여자. 여자가 하는 말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에게 순순히 따르는 남자. 마지막에 여자가 사실을 숨기는 건 좋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건 운요인가? 무엇을 누구에게? 운요가 무언가 말을 한 모양이었지만, 현월은 그조차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문득 느껴지는 간지러움에 팔을 보았다. 상처가 나 있었다. 무리하게 팔을 빼낼 때 찢어진 모양이었다. 상처 위로 흘러내리는 새빨간 피를 보는 순간 현월은 그것을 핥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러고 보니 아침도, 점심도 안 먹었구나.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식욕에 현월은 뱃속이 비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월은 비어있는 테이블을 보며 중얼거렸다.




     "……배고프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4340 홈페이지 2 idtptkd 2010.01.19 313 1
4339 홈런 1 꼬마사자 2010.07.25 267 3
4338 혼자말 idtptkd 2010.07.06 259 1
4337 혼자 2 Egoizm 2009.06.21 589 2
4336 혼란 네이키드 2010.09.25 701 0
4335 혼돈의 나날. The_Black 2009.01.13 572 1
4334 호흡불능 1 O-rainger 2009.10.22 560 2
4333 호접몽 1 생강뿌리즙 2010.06.05 217 1
4332 호박전에 대한 단상 1 권비스 2009.12.30 465 1
4331 혈액중독자와 패배한 에란드 보이즈 1 losnaHeeL 2009.09.19 435 2
4330 혈액중독자와 패배한 에란드 보이즈 1 losnaHeeL 2009.09.22 423 1
4329 혈액중독자와 패배한 에란드 보이즈 losnaHeeL 2009.10.09 536 1
» 혈액중독자와 패배한 에란드 보이즈 1 losnaHeeL 2009.09.27 408 1
4327 혈액중독자와 패배한 에란드 보이즈 losnaHeeL 2009.10.28 451 1
4326 혈액 중독자와 패배한 에란드 보이즈 losnaHeeL 2010.02.02 314 2
4325 혈액 중독자와 패배한 에란드 보이즈 1 losnaHeeL 2010.01.21 322 3
4324 혈액 중독자와 패배한 에란드 보이즈 2 losnaHeeL 2010.01.21 330 3
4323 혈액 중독자와 패배한 에란드 보이즈 1 losnaHeeL 2010.01.22 273 2
4322 혈액 중독자와 패배한 에란드 보이즈 losnaHeeL 2010.01.22 353 2
4321 혈액 중독자와 패배한 에란드 보이즈 1 losnaHeeL 2010.01.24 338 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20 Next
/ 220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제휴문의] | [후원창구] | [인디사이드연혁]

Copyright © 1999 - 2016 INdiSide.com/(주)씨엘쓰리디 All Rights Reserved.
인디사이드 운영자 : 천무(이지선) | kernys(김원배) | 사신지(김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