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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많은 사람들이 탄다. 현월도 그 무리에 끼어들어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계단 방향으로 움직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려는 사람과 계단으로 올라가려는 사람의 무리가 나뉜다. 현월은 도대체 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시간을 낭비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별로 없을 때라면 모를까, 앞뒤로 꽉 막혀있는 줄에 서고 싶지 않았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계단으로 향하는 무리를 따랐다.




     현월이 첫 계단에 발을 올리는 순간 누군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분명히 그렇게 느낀 현월은 깜짝 놀라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지만, 우에서 좌로 이동하는 정장 차림의 아저씨가 스쳐지나가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만큼 사람이 있으면 무리지어 이동하는 도중 우연치 않게 몸이 부딪히거나, 발을 밟거나, 손이 스칠 수도 있다. 그 점은 현월도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런 정도라면 당연히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방금 전 누군가가 고의로 어깨를 잡았다는 느낌이 확실히 남아있었다. 다른 누군가와 착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현월은 오른 어깨에 손을 올리고 속도를 높여 사람들 사이로 움직이며 계단을 올랐다. 액세서리가 주위에 걸리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며 출구를 향했다.




     출구를 빠져나간 현월은 잠시 동안 대로변을 걸었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하늘 꼭대기를 향해가는 태양은 반쯤 구름에 가려 영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한동안 지나가는 자동차를 셈하며 걷던 현월은 차도를 뒤로하고 골목 안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좌나 우로 꺾어 사라져가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현월은 클라우드피아로 향하는 길을 따로 외우려고 시도한 적이 없었다. 처음 운요의 손에 이끌려 간 이후 단 한 번도 그곳을 찾아가는 데 애를 먹은 적이 없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현월은 별로 길을 찰 찾거나 외우는 편이 아니었다.




     어느새 클라우드피아의 하얀색 문 앞에 도착한 현월은 잠시 그 앞에 서서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떼어 두 번, 먼지를 털듯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클라우드피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약간 어둡고, 약간 따듯했다. 밖의 날씨가 변하는 것과 상관없이 항상 일정한 기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감도는 독특한 향 또한 언제나 똑같았다. 운요는 이런 것을 잘 관리해야 카페의 특별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월은 찾아오는 손님도 드문 곳에서 그런 걸 관리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생각했다. 지금도 구석에 앉아 하늘색 커버의 책을 읽으며 밀크티를 마시는 숙녀 한 분을 제외하면 손님은 전무했다. 도대체 어떻게 카페를 유지하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꼭 물어볼 것 까진 없다고 생각했다.




     "현월이 왔네!"




     카페의 중앙 테이블, 이인용 소파가 사방으로 놓아져있는 자리에서 현월의 입장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화였다. 그 소리를 들은 운요는 카운터 밖으로 상반신을 내빼고는 문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어서 와라."




     그리고는 다시금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손님 정도는 제대로 나와서 맞아."




     현월은 그렇게 쏘아붙였다. 주방에서 큰 소리로 답변이 들려왔다.




     "찻값도 한 번 안 낸 녀석이 무슨 손님이야!"




     이내 류화가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현월은 굳이 재차 대꾸하지 않고 중앙의 테이블로 향했다.




     "댁도 돈 낸 적 없잖아. 뭘 웃어 웃기는."


     "아냐 인마. 제대로 계산 하고 있거든? 내가 넌 줄 아냐?"




     소파에 앉아있는 줄 알았더니 드러누워 있었다. 류화는 고개를 뒤로 젖혀 현월과 시선을 맞추며 진지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한 번도 돈 내는 거 못 봤는데?"


     "내 공연 티켓 줬잖아."


     "내가 말을 말지."




     현월은 그렇게 대화를 일단락 시키고 류화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면 추리닝 차림으로 소파를 통째로 차지해버린 류화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월의 한숨에 류화가 반응한다.




     "뭐, 불만이라도 있냐?"




     몰라서 묻는 건가? 그렇게 생각했다. 저래 뵈도 류화는 나름 인기 있는 인디 밴드의 멤버로, 실력파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인물이었다. 백스테이지에선 항상 늘어져있는 모습만 보인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시도 때도 없이 트러블을 일으키느라 정신이 없는 다른 멤버들에 비하면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야 어떻든 간에 류화가 연주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현월에게는 전부 뜬소문일 뿐이었다.




     "그, 연주하는 거 기타였던가?"


     "베이스야 베이스……. 뭐야, 너 혹시 드디어 이 형님의 환상적인 연주가 듣고 싶어지기라도 한 거냐? 티켓 줄까?"


     "댁 연주에는 관심 없네요."




     현월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입을 닫아버렸다. 류화의 연주에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참여하는 공연은 항상 미성년자 관람 불가였고, 스테이지 밖에서는 한 번도 연주를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적당히 말을 꺼내면 들려주겠지만, 한도 끝도 없는 잘난 척이 부록으로 딸려올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굳이 조르거나 하지 않았다.




     "왜 애한테 포르노 티켓을 주려고 그러냐? 그리고 자세 똑바로 안하면 죽는다."




     어느새 주방에서 나온 운요가 테이블에 홍차와 커피를 나란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왜 내 콘서트가 포르노야!"




     류화는 느릿느릿 일어나 앉아 커피 잔을 집어 들었다.




     "매 번 미성년자는 들이지도 않지, 사람들은 옷이나 벗어젖히면서 춤추느라 정신없지, 가사는 저속하지. 왜 네 콘서트가 포르노가 아니냐?"




     류화는 애써 변명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그저 작은 목소리로 "암만 그렇게 얘기해도 그만둘 생각 없거든?" 하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 외에도 "나름 좋은 녀석들인걸." 이나 "가사는 내가 쓴 게 아닌데." 같은 말 또한 중얼거렸지만, 입을 열 때마다 목소리가 한없이 작아져간 탓에 나중에 한 말들은 아예 들리지 조차 않았다.




     "누가 언제 그만두래? 식기 전에 커피나 마셔. 현월이 너도."


     "조금만 식히고."




     현월은 뜨거운 음식을 쉽게 입에 대지 못했다. 어렸을 적 끓는 물을 삼켜야 했던 이후로는 뜨거운 음식을 입에 넣을 때마다 구토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아직 서강형은 안 왔나보네?"


     "어? 그러고 보니 오늘은 연락도 없이 늦네. 근데 너 왜 서강이만 형이라고 부르냐? 나도 너보다 나이 많거든?"


     "댁은 나보다 정신연령이 낮잖아."


     "무슨 근거로 네가 나보다 정신연령이 높다는 건데?"


     "형이라고 부를 만하면 그렇게 부를 거야. 언젠가는 그렇게 부를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날이 안 오더라도 지구가 멸망하기 하루 전에는 꼭 형이라고 불러줄게."




     현월은 그렇게 말하고 바로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류화가 노려봤지만 개의치 않고 천천히 찻잔을 기울였다. 맛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었지만, 운요가 만드는 음식은 항상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홍차 향이 그득히 올라와 콧속을 메웠다. 현월은 내용물의 양이 살짝 줄어든 찻잔을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 순간 똑똑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강형인가?"




     현월은 문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운요와 류화 또한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문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현월은 왜들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시금 홍차를 입에 가져다 대고 찻잔을 기울였다. 홍차 한 모금과 함께 문득 방금 전의 노크 소리가 석연치 않다는 생각이 흘러들어왔다. 사람들은 보통 카페에 들어가기 전에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똑, 똑, 두 번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운요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문을 열어 바깥에 있는 사람을 맞이하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주먹을 쥘 뿐이었다. 운요도, 류화도 긴장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현월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현월이 잠시간의 정적을 참지 못하고 도대체 왜들 그러는 것인지 물으려는 찰나, 나무문이 굉음을 내며 부서져 실내로 날아들었다. 류화가 현월의 몸을 감싸 눌렀다. 시야가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날아든 문은 다행이도 현월이 앉은 테이블 쪽으로 날아오지 않았다. 순식간에 반대편 까지 날아간 문은 벽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노크를 네 번이나 했으면 문을 열어줘야 할 거 아냐?"




     껄렁껄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월은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몸을 일으키려했지만, 류화는 쉽사리 비켜주지 않았다.




     "서비스가 아주 개판이구만?"


     "카페 문을 노크하고 누가 마중 나와 주길 기다리는 놈이 정신이 나간 거지."




     운요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다시 침묵. 누군가가 걸어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와 손가락 마디를 꺾는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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