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9 05:05

화설(花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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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소유욕을 느끼고, 그 아이를 내 집에 들여 가꾸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신문에서 처음 발견한 그 아이가 신문의 그 천박한 종이 질에 상관없이 고 부분만 화선지를 곱게 이어 붙여 놓은 듯, 붓으로 보드랍게 그려놓은 듯 그렇게 고운 빛을 내고 있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여 나는 해가 저물 때 까지 꽃나무에 물을 주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그렇게 그 조막만한 사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 잉크가 베어버릴 정도로 매만져댄 것이 부끄러워 신문은 버려버리고 말았지만, 그 아이의 모습이 꿈에도, 현실에도, 그러니까 정원에 물을 대고 있노라면 수국이 청자색 무한화서를 이루는 게 그 아이 얼굴이 피는 것 같아 그 아이도 당장에 데려와 이 자리에 심어놓고 싶은 기분이 들고 마는 것이었다. 며칠을 그렇게 머릿속에 온통 그 아이 생각 밖에 없어 보고 나니 정원을 가꾸는 일도, 뒤뜰 연못에 헤엄치는 비단 잉어 몇 놈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일도 보람이 없이 느껴졌다. 이대로는 영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 싶어 창백한 몸뚱이에는 검은색 양장을 걸치고 길게 흘러내리는 머리는 뒤로 묶어 내리고 일전에 친구놈 하나가 찾아와 던져주고 간 핸드폰인가 하는 녀석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뛰쳐나가듯 그렇게 집을 나가 그 고아원을 찾아갔다.




     그렇게 대뜸 달려 나온 것은 좋았는데 생각해보니 대중교통이라는 걸 좀체 이용하지를 않아 뭘 타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택시라는 건 말하는 대로 가지 않던가 하는 데 까지 생각이 닿아서 지나가던 택시 한 대를 붙들고 고아원 이름을 부르니 이마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기사가 시큰둥하게 “거도 가죠. 거 여기서 별로 안 멀어요.” 하고 대답해 다행이다 한숨을 내쉬며 뒷자리를 얻어 탔다. 그리고는 조용히 창밖으로 지나치는 자동차 같은 걸 보고 있노라니 기사가 심심한지 말을 걸었다.




     “근데 그 고아원은 뭐 하러 가신답니까?”


     “애라도 데려올까 하고 갑니다.”


     “입양하시게요?”


     “데려와서 정원에다가 심으려고요.”




     그렇게 말하자 기사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가래 끓는 소리로 큭큭거리며 웃어댔다.




     “거 요즘 저런 애들 데려가려는 사람도 별로 없는 모양이던데, 좋은 일 하시는구만.”


     “아, 예.”




     그렇게 대화가 서먹하게 끊기고 나니 기사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 분위기를 틈타 나는 생각에 잠겼는데, 생각해보니 아이를 꽃처럼 심어놓고 가꾼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그제야 깨닫고 내가 뭐에라도 홀렸나 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 나는 그 아이를 양자로 삼고 싶은 것이리라. 왜 그런 충동이 들었는가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충동질이 고민질로 바뀐 사이에 택시는 굴러가는 것을 멈추고 고아원 정문 앞에 섰다. 아치를 그리는 내 키 정도 높이가 되는 철문 너머로 자그마한 뜰이 보였다.




     “여기가 그 고아원요.”




     택시기사가 그렇게 말하고 가운데 달린 계기판을 툭툭 쳤다. 나는 대충 지갑을 뒤져 지폐 한 장을 건네주고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 기사가 거스름돈을 가져가라고 말했지만 나는 적당히 됐다고 말한 뒤 슬그머니 군데군데 녹이 슬어 칠이 벗겨진 철문을 열고 고아원 안뜰로 들어갔다. 택시가 떠나는 소리가 잦아들자 건물 안으로부터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나와 살며시 귀에 앉았다.




     살금살금 안뜰을 지나 고아원 건물에 다가가면서 누구부터 찾아서 얘기를 해야 하나 하고 걱정하는 찰나에 마당 한편에서 원래 굽은 건지 굽힌 건지 굽은 허리를 하고는 작은 화단에 물을 주는 할머니 한 분이 보여 진로를 그리 바꾸고 작게 인사를 건넸다. 내 “안녕하세요.” 하는 소리를 들은 노인은 살짝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보더니 몸을 반듯이 세우고 “안녕하세요.” 그렇게 말하며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어떻게 오셨지요?”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찾아왔습니다. 그 아이를, 그러니까, 입양할 수 있을까 하고요.”




     나는 그 아이를 입양하고 싶은 거라고 택시에서 깨달은 사실을 되짚어가며 내 목적을 밝혔다. 여기서도 애를 데려가 정원에 심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면 큰일이 났을 것 같다는 생각에 왠지 안도감과 택시기사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거라면 원장님하고 얘기를 해 보시면 될 거네요. 조기 문을 열고 들어가셔서 왼쪽에 보시면 원장실이라고 문에 적힌 방이 있을 거네요.”




     다시 허리를 구부리고 일로 돌아가는 노인을 보며 간단하게 감사하다고 고개를 끄덕인 뒤 죽담에 구두를 벗어놓고 집에 올랐다. 문은 나무로 되어 있었는데, 몇 번이나 칠을 다시 한 듯 가까이서 보니 꽤나 지저분해 보였다. 낡기도 낡아서 삐거덕대는 꼴이 꼭 금방이라도 쪼개질 것처럼 불안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들은 대로 왼편에 원장실이라고 크게 글씨가 새겨진 문이 보였는데, 작고 네모나게 나 있는 창문 사이로 사람이 있는가 하고 들여다보니 적당 적당히 책이 꽂힌 책장과 그 앞에 놓인 책상에 앉아 찡그린 얼굴을 하고 종이에 무언가를 계속 적고 있는 여성이 보였다.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먼저 노크를 해야 하지 싶어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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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ory.aladdin.co.kr/snowofflower


 


에서 연재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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