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12 05:30

제목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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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사는 마을의 광장에는 검이 한자루 꽃혀 있었다. 마을의 오랜 전통에 따르면, 그 검을 뽑는 자는 정의의 용사로 추앙받으며 마을의 커다란 지원을 받을수 있었다. 검을 뽑는데는 어떤 자격도 필요하지 않았다. 힘이나 기술 또한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 검을 뽑는 자는 적어도 한번은 그 검으로 악을 처단해야 한다는 이상한 조건만이 걸려 있었다.
 소년에게 그 조건은 아무런 제약이 되지 못하였다. 그는 아주 어릴적 부터 마왕-인간을 잡아먹는 종족 마족의 우두머리-를 처단하하여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을 꿈으로 삼아 왔고, 그것을 위해서 라면 자신의 생활 쯤은 얼마든지 포기 할 수 있었다. 이제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 생각한 소년은 검을 뽑았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정의의 용사로 추대했다.
 마왕을 물리치겠다는 소년의 말에 사람들은 환호하며 많은 지원금을 냈다. 그 돈은 마을에서 가장 큰 상점으로 보내져 그를 위한 물건들을 사는데 쓰였다. 상점 주인은 착한 사람이었다. 모든 물건을 전부 구입 하는 데는 액수가 부족했지만, 그는 기꺼이 손해를 감수했다.
"이건 어떠십니까, 용사님?"
"조금 무겁군..."
"그럼 이건 어떠신지요? 가볍고 견고한, 우리 가게 최고 물건입니다."
"이봐, 그런걸 함부로 줘도 돼는거야? 만약 내가 죽게될경우 입게 될 손해는 생각하지 않아?"
"하하, 그럴 일은 없습니다. 용사님이 가지신 검엔 놀라운 힘이 잠들어 있거든요."
소년이 놀라 말했다.
"이봐, 그렇다면 이 검을 뽑는다면 누구든지 마왕을 무찌를수 있다는 거야?"
"예,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까지 아무도 이 검을 뽑지 않았지? 많은 사람들이 마왕에게 피해를 입었잖아. 누구든 마왕을 무찌를수 있었다면 벌써 누군가 마왕을 물리쳤어야 하는 것 아냐?"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마왕에게 피해를 입어 왔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남의 일 이니까 상관 없다는 거야?"
"그것도 틀립니다. 모두들 그 일이 자기에게도 올수 있고, 또 그렇지 않다 해도 간접적으로 자신에게 피해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바쁘고, 마왕보다 더 중요한 자신만의 일들도 있습니다. 마왕의 문제가 당장 눈앞에 닥치지 않는 한, 그런 것들을 전부 팽개치고 마왕을 물리치러 가기는 힘든 노릇이죠."
"모르겠어... 하지만,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을 아무도 하지않았다는 건 이상해."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생활과 삶의 방식이 있는겁니다. 뭐, 용사님은 잘 모르실수도 있지요."
"저기, 그렇다면 마을사람들의 지원도 이 검 때문일까? 내가 마왕에게 당할리가 없으니까 이렇게 도움을 주는 걸까?"
"흐음, 궁금한게 많은 분 이군요. 굳이 말하자면 몫의 문제 겠지요."
"몫의 문제?"
"마왕을 물리치는 일을 자신의 몫으로 여기는 사람은 용사님 뿐 입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도 지원금을 내는 일 정도는 자신의 몫으로 생각할수 있는 것 이죠. 비유하자면, 간혹 홍수에 시달리는 마을에서 제방을 만들자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만, 제방을 만들때는 모두가 힘을 합칠수 있다는 것과 비슷하지요."
 아무래도 잘 알아들을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로선 두려운 마왕과의 싸움이 생각보다 쉬울 것이란 것으로 충분했다.
 상점에서의 볼일을 마친후 소년은 촌장의 집을 방문했다. 마을의 촌장은 그에게 축복을 내리고 여행의 전날 밤을 보내게 해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여행을 떠나려는 소년에게 촌장은 줄에 묶인 여러마리의 처음 보는 짐승을 몰아왔다. 그것은 처음엔 원숭이를 닮아 보였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쿠리쿠리라고 하는 종족일세. 순하고 묵묵히 주인을 따라 장기여행시 식용으로 데리고 다닌다네."
"이걸 먹는다고요?"
 깜짝 놀란 소년은 다시한번 그 짐승을 바라보았다.그것은 사실 원숭이보다는 인간데 가까웠다.까무잡잡한 피부에 네발로 걷긴 했지만.
"저기, 이 짐승은 아무래도 너무 사람같은데요."
"그렇지. 본래이 짐승은 두발로 걸었으니까."
"두발로 걸었다고요?"
"그렇다네. 본래 이 쿠리쿠리족은 동남쪽 척박한 땅에 서식하며 종족 남자들은 마을에 식량을 조달하러 떠나지. 이들의 활동 영역은 너무 광범위하여 인간의 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네. 그래서 오래전 다른 용사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다네."
 소년은 혼란에 빠졌다. 쿠리쿠리를 먹는다는 데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인간과 닮은 이 종족을 짐승처럼 만들고, 지배하고 먹는다는것은 이상해요."
 촌장은 되려 소년에게의아해 하였다.
"이상하다니? 무엇이 말인가?"
"그러니까...쿠리쿠리는 분명 인간과 닮았는데..."
"인간과 닮았다는게 문제인가,지배하고 먹는다는게 문제인가?"
 소년은 명확히 대답할수 없었다.촌장이 이어 말했다.
"자네는 돼지나 소를 먹지 않아왔나? 단순히 외견의 차이로 쿠리쿠리를 먹을수 없다는 말인가?"
"단순히 외견만 닮은게 아니잖아요. 이들은 인간처럼 행동했고, 두 발로 걸었어요."
"그렇다 한들 이들은 인간이 아닐세. 우리와 달라."
 소년은 뭐가 뭔지 알수없게 되버렸다. 여지껏 처음 겪어보는 고민에 어린 그가 논리적으로 생각할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었다. 하지만 촌장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수 없었다. 그런 소년을 바라보던 촌장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정 자네가 싫다면 이들을 데리고 돌아가겠네.하지만 그리하면 자네는 마왕이 있는 곳 까지 가지 못할걸세."
 그럴수는 없었다. 좀 더 고민하던 소년은 결심하고, 쿠리쿠리를 데려가기로 했다. 촌장은 쿠리쿠리는 피를 먹는 것 이라며 방법을 알려주었다.
 마을을 떠나며 소년은 각오를 굳히듯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곤 다짐했다. 지금은 쿠리쿠리를 먹을 수 밖에 없지만 나중엔 이들에게도 평화를 가져다 주겠다고. 자신은 인간을 위한 용사가 아닌,모두를 위한 용사가 되겠다고.


 마왕에게로 가는 길은 길고 험난했다. 용사는 쿠리쿠리를 먹지 않으려고 최대한 굶었지만, 나중엔 배고파 쓰러질 지경까지 몰렸다. 그 이후로 용사는 쿠리쿠리를 먹을때마다 조촐하게나마 쿠리쿠리의 장례를 치뤘다. 그 후로 용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쿠리쿠리를 먹는데 익숙해졌다.
 쿠리쿠리를 세 마리째 먹을때 그음 용사는 마족의 땅에 진입했다. 간혹 마족들과 조우할때면 용사는 확실히 검의 힘을 느낄수 있었다. 검이 자신의 몸을 이용해 휘둘러 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정신을 차려 보면 마족들을 척살한 뒤였다. 그렇게 또 이틀이 지나고, 용사가 마왕을 찾는 방법을 고심할때 즈음 한 마족이 그를 찾아왔다.
"너는 누구냐?"
싸움에 익숙해진 용사가 차갑게 물었다.
"나는 네가 찾아 헤메던 마왕이다. 결전을 치루자."
"네가 마왕이라고?"
용사가 놀라 말했다.
"네가 마왕이라면 어째서 내게 모습을 드러냈지? 내게 이길 자신이 있는건가?"
"아니, 나는 네가 가진 검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무슨 대수인가? 어서 덤벼라."
예상 외의 전개에 당황했지만 용사는 가까스로 중비했던 말을 꺼냈다.
"너희 마족들이 인간을 잡아먹어 우리들은 피해를 입고 있다.마왕인 네가 더이상 마족들이 인간을 해치지 않겠다 약속한다면, 나도 조용히 물러나겠다."
 그것은 모두를 위한 용사가 되겠다는 맹세에 의한,작은 행동이었다.
"아니, 그럴수는 없다.어서 덤벼라."
 마왕의 태도는 막무가내에 가까웠다. 용사는 당황을 넘어 약간의 황당함을 느끼면서도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조금이나마 소년이 인간중심적인 생각을 버렸기 때문일것이다.
 예로부터 용사가 마왕을 물리치는 이유는 모든 마족을 전부 죽일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족들의 왕인 마왕을 죽인다면 마족들에겐 큰 피해일것이니, 용사들은 지금까지 마왕을 죽여왔다.-그러나 과연 정말 마왕이 죽는것이 마족에게 큰 피해인것일까?만약 마족들이, 자신들을 해치는 용사가 마왕을 없애 돌아간다는걸 안다면?
"패배할걸 알면서도... 내 조건을 무시하면서까지 싸우겠다는거냐?"
 마왕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렇다."
"너는... 당신은, 죽기위해 나를 찾아온것인가?"
"..."
"마왕을 퇴치하면 용사는 돌아가니까...다른 마족들을 대신해 죽어, 나를 돌려보내려는 것 인가?"
"...흥."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것이지?지금까지 모든 마왕들이 그래왔는가? 나도, 다른 용사들도 마족들이 인간을 먹지 않았다면 너희들을 찾아오지 않았을텐데!"
마왕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마족들은 인간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수 없다."
"뭐? 어째서?"
"어째서라니... 너희들은 소나 닭을 먹지 않으면 살수있는가? 우리에게 인간을 먹는다는것은 그런 문제인 것이다."
 용사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짐승을 잡아먹는것과 저들이 우리를 잡아먹는것이 같다고? 지금껏 그런 생각은 해본적도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은 나쁜일이니 마족은 나쁘다는 결과적인 생각만 했었지, 그 원인은 여지껏 아무도 떠올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살기위해서 어쩔수 없이 인간을 잡아먹었다는말?"
"말이 조금 이상하군. 너희들은 무언가를 먹을 때에 일일이 '살기위해 어쩔수 없이'라고 생각해가며 먹는가?우리는 살기위해 인간을 먹는다. 그리고 용사는 우릴 물리치지. 그래서 네말대로 용사에게 입는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마왕을 만들었다. 그것이 우리 마족들이 사는 방식이다."
 용사는 할 말을 잃었다. 더이상 어찌해야할지 알수 없었다. 사는것과 관련된 문제니 더이상 마족들에게 인간을 먹지 말라 할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마족들이 인간을 먹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다. 본래의 목적은 마왕을 없애는 것 이었으나 이제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마족들을 전부 없애는 방법은, 그것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용사'라는 맹세에 위배되었다.
"하지만...어째서 인간인 것 이지? 오만한 말일 수도 있지만,우리 인간을 짐승과 같게 볼수는 없잖아?"
"너희가 쿠리쿠리족을 어떻게 했는지 잊은건가? 너 자신도 여기에 오면서 까지 쿠리쿠리들을 먹어 왔을 텐데."
"그, 그건 달라! 나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뿐이야. 말 그대로 '살기위해서 어쩔수 없이' 먹은것 뿐이야! 나는 희생한 쿠리쿠리들을 위해 장례까지 치뤄 주었어. 다른 용사들이 장례를 치뤄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입장만은 나와 같았을거야!"
"장례라고? 그것은 위선이군. 중요한건 쿠리쿠리들은 잡아먹혔다는거야. 그래, 네 말 대로 용사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치지. 그렇다면 다른 인간들은 왜 그들을 짐승처럼 만들고, 때론 잡아먹는가?"
"그건..."
"그리고,그렇다면 너희 용사들은 왜 마족들을 죽였지? 그것도 선택의 여지 때문은 아닌 듯 하군. 우리가 인간을 먹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앙갚음이로군."
 마왕과 만나기 전까지 용사는 그저 마왕에게 인간을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거나 마왕을 물리치면 인간에게 평화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약속에 대한 것도 다짐을 떠올리며 억지로 한 생각이었지, 사실 마족을 없애는게 꺼림칙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었다. 그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아주 어릴적부터 마족은 인간을 잡아먹는 나쁜 종족이고,마왕은 반드시 물리쳐야할 존재라고 생각해 왔으므로. 또 그것은 그가 속한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지금은 차라리 어릴적 그 시절로 돌아가, 지금의 복잡한 생각들을 모조리 잊고 싶다고 생각했다.얄궂은 일 이었다. 지금껏 그가 생각해온 평화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고, 진짜 평화는 그보다 훨씬 복잡한 것 이었다.
"제기랄! 그렇다면 난 더이상 인간의 입장에서 말하지 않겠어! 어째서 우린 대립해야하지? 인간은 쿠리쿠리를, 마족은 인간을, 용사는 마족을 공격하는건 악순환일 뿐이잖아!"
 마왕의 어조는 여전히 담담했다.
"우리 두발로 걷는 자들은 원래 그렇다. 서로 다른 존재와는 이런식으로밖에 엮일수 없지."
"도대체 어째서?"
"..."
 마왕은 한층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파괴신님이 정하셨다."
"파괴신이...?"
"그래. 파괴신님이 이 세상의 규칙을 창조하셨지."
"파괴신은... 어디에 있지?"
"찾아갈 생각이냐? 파괴신님은 이곳보다 북쪽, 아무것도 없는 대지의 끄트머리에 계신다. 하지만 가지 않는걸 권하지. 그곳엔 간 인간도 적을 뿐더러 무사히 되돌아온 인간도 없다. 네가 괜찮은 인간 같아 말해주는 것이다."
"가겠어."
"정 그렇다면 할수없군. 아무래도 너는 날 해칠 생각이 없는 듯 하니, 나는 돌아가겠다."
 마왕은 천천히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갔다.용사는 그것을 지켜본 후, 지체하지 않고 북쪽을 향했다.


 파괴신은 용사에게 있어 자신의 꿈의 최후의 보루였다. 파괴신을 만나서 복잡했던 모든것이 마법처럼 풀리기를, 그리고 세상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랬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 대지는 정말 횡하니 빈 땅이어서 길을 잃고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게 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용사는 파괴신을 만나겠다는 굳은 집념과 의지로 끝까지 똑바로 걸었다.
 마침내 소년은 파괴신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그것은 사방 녹색과 파랑의 지평선으로 빙 에워싸진곳, 걸어도 걸어도 변화없는 지금까지의 땅을 정신이 혼미해지도록 걷다 갑작스레 눈앞에 펼쳐졌다. 검은 울림이 사방을 메웠고 저 너머 그림자처럼 보이는 성이 나타났다 서서히 사라졌다. 대신 파괴신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이 파괴신입니까?"
"그렇다."
"마왕에게 듣기를, 두 발로 걷는 자들의 싸움을, 아니 모든 만물의 먹고 먹히는 악순환을 만든것이 당신이라 들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것을 알려 여기까지 왔는가?"
"네?...그렇습니다."
파괴신은 기분 나쁘게 웃었다.
"인간이 만든것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군. 마왕을 물리치고 인간들의 환호 속에서 자신이 세계평화를 다 이뤄낸 양 착각하는것이 네 역할일텐데."
 무슨 말인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소년은 우두커니 있었다. 파괴신이 말했다.
"그래. 내가 모든 규칙을 만들진 않았지만, 적어도 먹고 먹힌다는 기본 틀은 내가 만들었지."
"어째서 그런 짓을 했습니까?"
"그런짓이라니? 말이 심하군. 그것은 세상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균형이라구요?"
"그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옛것은 죽고 새것은 태어난다. 하지만 반목과 대립 뿐인 세상에서는 그것에 의해 질서가 기울어져 결국 고정되어 버릴수 있지. 그래서 먹고 먹힌다는 관계를 만들었다. 세상이 물결치며 끊임없이 요동치도록."
"하지만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며 균형을 맞출 수도 있잖습니까? 어째서 먹고 먹힌다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까?"
"그것은 어쩔수 없다. 그것이 파괴신인 나의 방식이니까. 세상은 평화의 신이 없는 한 나의 규칙대로 돌아갈수밖에 없다."
"그런..."
"그리고 그 규칙의 이전엔 너희들, 두 발로 걷는 자들의 끊임없는 싸움이 있다. 서로 다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너희들이 결국 이 규칙을 만들어 낸 것이지. 이미 세상은 이 규칙에 너무 길들여졌다. 쿠리쿠리족을 저지경으로 만든것도, 용사와 마왕도 내가 만든것이 아니지."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규칙이 없으면 오히려 세상은 평화를 일궈낼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럼, 시험해볼텐가? 그 검으로 나를 죽여보아라. 그렇게 하면 내가 만든 규칙은 깨어지고, 태초의 혼돈만이 남을것이다."
"예? 당신은 신인데, 인간인 내가 죽이는것이 가능합니까?"
 파괴신은 킬킬거렸다.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네가 정의의 용사인것 처럼 네가 가진 검이 정의다. 모두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지만 사실은 당연하지 않은것이지. 인간은 신을 죽일수 없다. 이것은 분명 만들어진 규칙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인간들은 이를 망각했지. 아니, 차라리 오만함에 가까운 그들의 정의에 의하면, 인간이 할수 없는것은 없다."
 소년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만일 이대로 파괴신을 죽이고, 태초의 혼돈부터 다시 시작하면 세상은 평화와 조화를 이룰것인가? 소년은 마왕을 떠올렸다. 그는 죽을 지경에 몰렸음에도 규칙에 순응했다. 소년은 촌장을 떠올렸다. 그는 쿠리쿠리들에 대해 아무 의문을 가지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마왕이 동족을 해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활을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지금의 세상에 의문을 갖는것은 자신 뿐이었다. 모두들 자신의 독단을 힐난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후엔 모든것이 원래대로 돌아가겠지.
"제가 생각하기엔... 지금의 규칙이 깨어져도, 사람들은 평화를 이룰수 없을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 흐음. 더이상 나눌 대화는 없는듯 하군. 난 이만 가겠다. 잘가라."
파괴신의 말이 끝나고 기분나쁜 울림과 희미하던 성의 윤곽, 유일하게 명확한 모습이었던 파괴신의 모습 까지 모든것이 꿈처럼 사라졌다. 용사는 원래 있던 황야로 돌아왔다. 용사는 허탈해하며 탄식하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굳은 집념과 의지를 잃은 용사는 순식간에 길을 잃었다. 하지만 용사는 그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걸었다. 발이 물러 터지도록 걷던 언젠가, 용사는 대지에 돋아난 풀 두어포기를 발견했다. 아무것도 없다는 이름답게 며칠을 보냈지만 아득한 지평선 외엔 정말 아무것도 없던 땅인지라 용사는 아무것도 아닌 잡초에도 신비로움을 느꼈다. 풀잎을 바라보던 용사는 그것을 만져보기 위해 내려앉았고, 그 순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쿠리쿠리중 하나가 그것을 먹어버렸다.
 문득 용사는 지독한 허기짐을 느꼈다. 파괴신을 만나고 돌아오는동안 용사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용사는 단숨에 쿠리쿠리를 세마리나 먹었다. 이제 남은 쿠리쿠리는 암수 한쌍 뿐이었다.
 용사는 문득 쿠리쿠리의 장례를 잊었다는것을 깨달았다. 뒤늦게 치뤄주려다 이제는 장례를 치룰 필요가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어느순간부터 쿠리쿠리에 대한 죄의식은 사라지고, 장례식은 형식만 남았던 것이다. 용사는 쿠리쿠리를 먹는데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살아있다는것은 그 자체가 악이니 생명있는것은 모두 죄인이구나. 그래도 세상 전부를 용서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적어도 나 자신만은 용서하지 않겠다."
 이렇게 말한 용사는 정의의 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결국 그가 단죄할수 있던 것은 스스로의 죄 뿐이었다. 남겨진 쿠리쿠리 한쌍만이 텅 빈 황야에서 슬피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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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에테넬 2009.02.12 05:30
    중간에 파괴신이 마왕으로 써진 파트가 있슴.

    ㅡ.ㅡ;

    뭐, 약육강식이라는 것이 사실 골 때리는 문제긴 하죠. ㅋ
  • ?
    월계수이파리 2009.02.12 21:19
    수정완료..
  • ?
    Evangelista 2009.03.14 21:03
    까달라시길래 까드리오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ㅡ.ㅡ;

    우선 전체적으로 문체가 너무 딱딱하고 거의 설명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글은 솔직히 말하자면 재미가 없는데 왜냐 하면 위에 말한 설명조란 것과, 추가로 주제의식 자체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화 및 은유의 방식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으로 주제를 표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강압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독자들로서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끽해봐야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군요. 하는 정도의 대답밖에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또한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너무 무리하고 있습니다. 소나 돼지는 먹으면서 단순히 '인간과 닮았기 때문에' 쿠리쿠리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은 무척이나 주관적입니다. 어쩌면 원숭이를 먹는 관습을 가진 사람들은 이 글에 깊은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또한 그 때문에 일반 독자들조차도 주인공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쿠리쿠리를 먹으라고 말하는 아저씨의 말 조차도 공감하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 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식인 풍습'에 대한 교육된 거부감이 용자의 쓸데없는 지적 때문에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독자에 대한 설득도 위에 말한, 1. 지나친 설명, 2. 작가의 생각을 강요, 3. 너무 노골적으로 표면에 드러난 주제, 4. 말하려 하는 주제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일반 독자들에 대한 거부감을 전혀 유화시키지 못한 등의 이유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용자가 자살하는 장면도 무리가 심합니다. 애초에 이런 짧은 분량으로 용자의 고뇌를 알기에는 무리인 데다가 그 짧은 분량마저도 용자의 심리 표현보다는 상황 설명에 주력함으로써 독자들이 용자에게 감정을 이입할 기회를 원천 차단하고 있습니다.

    대충 한 번 읽어보고 지적할 사항은 이 정도입니다.

    습작기에 글을 쓸 때에는 거대담론을 주제로 할 것이 아니라 작은 소재와 작은 주제부터 파고들어가는 것이 쓰기도 편하고 실력도 비교적 빨리 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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