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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참외를 나누어먹고 유희는, 정리할 것이 있다며 방에 틀어박혔다. '아가씨' 역시 부엌으로 들어갔으므로 마루에는 잠시 나 혼자 남았다.
 눈부신 봄 햇살이었다. 처마지붕이 드리운 그늘 아래서 보면 날씨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였다. 마당에서 키우는 철쭉이며 목련, 무화과 따위 나무는 볼 때마다 푸른빛을 더해 갔다.
 그 가운데 동백꽃은 유달리 눈에 띄었다. 풍성한 붉은 꽃잎 가운데 노란 술이 달린 꽃은 마치 라틴댄스 무희가 입은 팔랑거리는 붉은 드레스를 연상시켰다.
 어릴 때부터 왜인지 그 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지금 사는 회사 근처 집 주변에선 동백이라곤 전혀 볼 수 없지만, 때때로 아무 예고 없이 머릿속에 그 인상적이도록 새빨간 환상이 한가득 꽃피우곤 했다. 그것은 이 집과, 엄마와, 여기 사는 두 여자들을 떠올리게 했다.
 어째서 유희 쟤까지 떠올라 버리는 거지?
 '아가씨'가 부엌에서 나와 음료수가 담긴 컵을 내밀며 옆에 앉았다. 때마침 유희는 아직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두 사람에 대해 유희 몰래 물어볼 것이 있다면, 지금뿐이다.
 "아가씨, 정말 유희랑 무슨 관계에요?"
 잠시 고민하다가 당연하단 듯 아가씨는 대답했다.
 "혼인관계라고, 그 이가 말하지 않던가요?"
 물론 들어서 아는 얘기였다. 혼인, 신랑, 반려. 아가씨를 처음 본 날, 유희 역시 그렇게 이 여자를 소개했다. 말이라도 맞춘 걸까. 어째서 부부라고 말하지 않고 혼인관계라고 말하는 거지? 아니, 애당초 동성끼리 결혼이 가능한 걸까?
 이런저런 궁금증이 일었지만 직접 물어볼 순 없었다. 이 '아가씨', 곤란한 질문은 돌려 말하거나 아예 대답하질 않으니까. 비밀주의, 능구렁이 같은 면만 따지면 저 유희보다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
 "그럼 두 사람, 언제 어떻게 만난 거죠?"
 "꽤 유명한 캠퍼스 커플, 이었을까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해놓고 내 반응을 살피며 웃고 있었다. 분명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농담이에요. 사실 저이에게는 큰 빚을 졌어요."
 그러다 갑자기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어 듣는 입장에서 당혹스러웠다. 애초에 제대로 대답을 들을 거라곤 기대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빚이라면 어떤?"
 "제 목숨을 구해줬어요. 붙박여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저를 위해 기꺼이 심장을 꺼내 줬거든요."
 또다시 아가씨는 즉답을 회피하고 돌려 말한다. 무슨 의미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직접 물어볼 수 없으니, 뭔가 위험한 일이 있었나보다 지레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뜻 모를 말을 꺼내곤 아가씨는,
 "죽음도 무릅쓴 사랑, 멋지지 않아요?"
 다시 자기만의 공상 속에 빠져 들었다. 어른스럽고 자상하다가도 돌연 낭만적 공상에 빠진 소녀처럼 변하고, 능청스럽다가도 순진해 보이는 20대 초반 가량의 여자. 이것이 내가 아는 '아가씨'의 모습 전부이다. 더 이상 캐물어봐야 그보다 더 알기란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아가씨와 이야기를 하면서, 유희가 왜 유독 이 아가씨를 곁에 두고서 반려라고 부르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가씨라서, 마녀라도 그냥 놓아두지 못하는 게 아닐까.
 …….
 무슨 소리 하는 걸까, 나도 참.


 아가씨를 처음 본 날이 언뜻 기억난다. 유희랑 한바탕 다툰 그 다음 주 주말, 또다시 집을 무단 점거한 그 마녀를 내쫓으려 왔을 때였다.
 아가씨는 싸리비를 든 채 마당에 서서, 붉고 탐스런 동백꽃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유희와 심각하게 다투던 당시엔 매주 찾아오면서도 눈에 들지도 않던 꽃이었다. 엄마 죽은 이후로 잊고 있던, 마당 구석에 핀 동백꽃은 그날따라 더욱 예뻐 보였다.
 "누구시죠?"
 대문을 막 들어서려다 말고 나는, 처음 보는 아가씨에게 물었다.
 "여기, 저희 집인데요. 아가씬 누구세요?"
 그 때도 나는 처음 보는 여자를, '아가씨'라고 불렀다. 왜였을까?
 청바지 위에 티셔츠를 입은 평범한 차림이었다. 얼굴은 갸름했고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대도시에선 흔해빠졌을지 몰라도, 이런 시골 마을에선 보기 힘든 인상이었다. 그렇다면,
 "아가씨, 혹시 유희 아는 사람이에요?"
 왠지 그녀가 데려왔을 거란 생각이 들어 묻자, 아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자기소개를 해야겠단 생각에 앞서, 제 집처럼 멋대로 쓰면서 다른 사람까지 불러들이는 마녀에게 화가 치솟았다. 씩씩거리며 좁은 마당을 가로질러, 집 안으로 들어가 마침 거실에 있던 유희에게 소리 질렀다.
 "당장 나가!"
 "오늘도 왔어? 그만 할 때도 된 거 같은데."
 볼 때마다 머리칼 한 줌씩 쥐어뜯다간 성한 머리가 남아나지 않는다느니, 매주 차로 몇 시간씩 걸리는 데까지 꼬박꼬박 찾아오는 거 질리지도 않느냐 느니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전부 무시했다.
 "생전 모르는 네가 엄마 집을 물려받았다는 거, 인정할 거 같아? 애당초 그 유언장도 가짜지?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너야 날 모를지 모르지만, 말했잖아."
 한숨 푹 쉬더니 유희는, 항상 꺼내는 말을 똑같이 내뱉었다.
 "나도 유희 딸이라고. 너희랑 같이."
 그 다음 순서는 평상시랑 같았다. 내가 달려들어 머리칼을 쥐어뜯고, 할퀴고, 유희도 나를 밀치고 떼어내려 애쓰며 방 안을 뒹군다. 분이 풀릴 때까지 서로 그렇게 뒤엉켜 들 고양이처럼 다투느라 반나절을 보내는 게 보통이지만,
 "이러지 마요, 두 사람 다."
 그 사이에 끼어들어 우리 둘을 떼어놓은 게 그 아가씨였다. 여전히 분이 안 풀려 씩씩대는 나를 껴안다시피 끌고 마루로 데려가선, 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내 귀에 대고 몇 번이고 말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러지 말아요.
 진이 빠져 서럽게 울면서 주저앉은 나를 안은 채, 아가씨는 한참 동안 그대로 같이 앉아 달래 주었다.
 그런 아가씨 때문이었을까. 그 후 한 동안 나는 그 집을 찾아가지 않았다. 더 이상 유희와 예전처럼 다투지 않게 된 것도 그 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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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이라 사람이 없나요..


방학 되면 나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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