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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어떤 종교이든 간에, 악을 인정하는 종교는 없다.


그렇다면 선(善)의 대척점인 그 악(惡)은 누구인가?


다른 신을, 다른 형식을 통해 신을 모시는 사람들인가?


혹은, 인간 자신이 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연 인간들의 악은 누구란 말인가?






대륙의 서편, 이베리아 반도의 접경선.




"라미레스 장군을 따르라-!"




전장에서 흔들리는 깃발은 흰색.


전장에서 분투하는 병사들의 갑옷 역시 흰색.


그리고 전장에서 백마를 탄 체 오만하게 쏘아보는 장군의 모습 역시 백색 일색.




'성기사' 혹은 '백색의 악마' 라고 불리는 라미레스 장군의 군대였다.




라미레스 장군이 검을 뽑아 든다.


함성이 터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그의 흰 빛 군대와 상대편의 군대는 충돌했다.




"Dios(신이시여!)!"


"Dios(신이시여!)!"




그렇게 어느 한쪽은 정의를, 어느 한쪽은 수호를 위해 서로를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계속해서 죽인다. 이미 광기와 광신에 물들어버린 인간들에겐 정상적인 판단 따윈 남지 않았다. 남는 것은 무참한 살육 뿐. 이 끔찍하고도 한없이 미쳐버린 광경이 먼 훗날 성전의 이베리아라 불리게 된 전쟁의 시초라고 한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믿을까?






"이런 것이 성전(聖戰)이라니… 인간들의 수준도 알 것 같군."




그 광경을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남자는 특별히 오만한 분위기도 없이, 마치 당연하다는 것처럼 담담하게 말한다.




"Reconquista! Reconquista! Reconquista! adiós!


Reconquista! Reconquista! Reconquista! Ah Dios!


Reconquista! Reconquista! Reconquista! adiós!


Reconquista! Reconquista! Reconquista! Ah Dios!


Reconquista! Reconquista! Reconquista!"

그리고 군가와 경보가 겹치는 전장에 맞춰서 남자가 낮고 작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다는 듯이, 이상하다는 듯이. 옛날 어딘가의 나라의 병사가 전장에서 흥얼거린 군가를. 여성의 감미로운 농염한 목소리로. 남성이 지닌 광기의 노랫소리로. 낮게, 작게, 높이, 전쟁 찬미가를 노래한다.

정말로 재미있다는 듯이.
정말로 유쾌하다는 듯이.
정말로 이상하다는 듯이.


 




Reconquista → Reconquista → Reconquista! adiós!


재정복 → 재정복 → 재정복하자! 작별이다…




Reconquista → Reconquista → Reconquista! Ah Dios!


재정복 → 재정복 → 재정복하자! 아아… 신이시여!




Reconquista → Reconquista → Reconquista! adiós!


재정복 → 재정복 → 재정복하자! 여기에서 작별이다…




Reconquista → Reconquista → Reconquista! Ah Dios!


재정복 → 재정복 → 재정복하자! 아아… 우리들의 신이시여!




Reconquista → Reconquista → Reconquista!


재정복 → 재정복 → 영토를 재정복하자!


노랫소리가 전장에 조용하게 스며든다. 용해하고, 서로 섞이고, 하나가 된다. 노랫소리와 전장. 조용하게, 농밀하게, 녹아든다.






쉬어가는 의미로 여기서 잠시 구약 성서의 이야기를 해볼까.


아주 오래 전, 신은 진흙을 빚어 남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신은 남자의 갈비뼈에서 여자를 만들었다.


신은 이들에게 영생을 주어, 낙원에서 머물게 할 작정이었다.




그래, 그들이 뱀의 꾐에 빠지지만 않았다면.




신의 분노로 인해 황야로 쫓겨난 남녀는 형제를 낳았다.


성장한 형은 땅을 일구고, 동생은 양을 길렀다.


신은 그 결과를 공평히 받았건만, 형은 동생이 더 총애 받는다고 생각했다.




전쟁의 역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신에게 바치는 공물, 피의 향기, 분노어린 시선, 태어난 살의, 즉 친족 살해….




그 결과 탄생한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Cain).


그 이후로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살육은 빠질 수 없는 단골 요리로 등장하게 된다.






다시 시점은 현재로 돌아온다.




한참을 무심하게 전장을 바라보고 있던 그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신이 지닌 커다란 낫, 그 흉악한 포름 그대로. 불길함과 공포를 양식으로 하는 어둠의 미소. 하지만, 그 미소를 눈치 챈 자는 없다. 누구 하나도.




"계속되는 전쟁… 인간이란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로군. 명계로 갈 영혼을 스스로 준비해주다니 말이야."




Thanatos, the Lord of Hades, and the Dead men's king


명왕, 신 하데스, 그리고 죽은 자들의 왕.


그 자는 명계의 지배자이자 망자들의 왕.




The livings are terrified by fear of the God of death.


산 자는 죽음의 신이 초래한 공포에 의해 몸을 떤다.


지상의 사람들이【사신】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하는 존재.




그는 거리낌 없이 전장에 난입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극히 필연이란 듯이, 한 치의 망설임이나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찰나의 주저도 티끌만큼의 배려도 없이 양 편의 군대를 향해 외쳤다.




"지금에 이르러 형제끼리 서로 죽이는 것인가? 인류제군이여! 내가 바로 죽음이자 그대들의 적이다!"




Thanatos. His stare conveys Death.


명왕의 영구한 침묵. 그의 응시는 죽음을 나른다.




"뭐냐 저 녀석은?! 보는 것만으로 인간을 죽이다니?!"




그제야 정신이 든 라미레스 장군은 직감적으로 전장에 나타난 '그'가 자신들의 적임을 확신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말한 대로 인류의 적이라 칭하는 것이 옳으리라. 저것은 존재해선 안 된다. 이 세상에서 말소되어야 할 존재. 저것이야 말로 이다. 악, 악, 악(惡)!




"에에잇! 지금은 우리들끼리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다! 네놈들도 봤겠지?! 저것을 악이라 부르지 않으면 무엇을 악이라 부를 수 있겠나! 모든 병사들은 저 자를 중심으로 싸우도록 해라!"




이렇게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다름 아닌 명왕의 출현으로 인해서. 하지만, 그렇게 상황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라 앞으로 있을 길고 긴 성전의 서막이 올랐다라고 해야겠지만. 이제야 성전이 성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인간들끼리 서로 죽이는 살육전에서 공동의 적을 목표로 인류가 단합하게 되는 광경은 실로 보기 드문 이례중의 이례일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이 세계에 평등 따위는 없다는 것을. 그(Thanatos) 이외에.




무자비한 여신이 관장하는


이 세계에 평등 따위는 없다는 것을. 그(Thanatos) 이외에.




늦던 빠르던 찾아올 이별.


누구라 할지라도 운명(Moira)에서 자유롭지 못하단 것을.




이제 곧 모든 것이 끝나고,


한 남자의 손에 의해 저승의 문이 열린다.




그것이야말로 영원한 신화의 끝임을 고한다.


그리고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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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시라노 2009.01.19 10:31
    한편으로 끝나는 단편인가 뭔가 더이어질것도 같으면서.. 흐음.. 흥미롭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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