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02 23:29

Undertopia

조회 수 714 추천 수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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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땅을 만든 적이 있었어.
뭐, 그냥 심심풀이였지.
하나를 다 만들고 나서 바로 옆에다 하나 더 만들려고 했는데, 만들다가 귀찮아져서 그만 뒀어.
잠깐 은하수에 가서 목욕이나 하고 왔는데, 그새 먼저 만든 땅이 달라져있더라.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안을 좀 들여다 봤는데, 언제 생겨났는지 크고 작은 온갖 생명체들이 내 땅 위에서 살고 있더군.
그런데 그때 내 얼굴에서 안마르고 맺혀있던 별들이 몇방울 떨어진거야.
떨어진 별방울들은 내 땅을 적시고 바다에 섞이고, 한 종류의 생명체를 감싸안았어.
별에게 축복을 받은 그 생명체들은 점점 똑똑해져서 두발로 걷는 방법을 배우고, 서로 이야기를 할수 있게 되고, 도구를 만들어내고,
자기들끼리 뭉치면 두려울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
별로 신기하진 않았어. 보다가 지루해져서 블랙홀속에 들어가서 한숨 잤어.


자다가 일어나서 다시 와보니까, 그 생명체들이 내가 자는 동안에도 계속 똑똑해졌었나봐.
다른 생명체들을 노예로 만들고, 도구를 넘어서서 기계를 만들어내고, 무기를 만들어서 온 지구를 뒤덮고 있었어.
제일 웃긴건 내 땅을 자기들끼리 나눠서 '소유'하고 있더군.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 생명체들은, 왜인지 모르게 서로가 서로를 싫어해.
왜그런지 궁금해서 그 생명체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고, 아무도 몰래 땅에 내려갔어.
그들은 자신들을 '인간'이라고 부르고 있었고,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인간에도 꽤 많은 종류가 있었어.
땅을 자기들끼리 나눠서 가진걸 '나라'또는 '국가'라는 개념이라더라.
하여간, 인간들에게 왜그렇게 서로를 싫어하냐고 슬쩍 물었더니, 대답이 가지각색이었어.

"저놈들은 과거에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적이 있어요."
"저놈들은 피부가 까매서 더러워보여요."
"저놈들은 멍청해요. 총이 뭔지도 몰라요. 그래서 우리가 정복했죠."
"저놈들은 야만적이예요. 고기를 익히지도 않고 먹는다니까요."
"저놈들은 힘이 약해요. 우리가 괴롭혀도 아무런 반항도 못해요."
"저놈들은 머리털이 샛노래요."
"저놈들은 매일 짝퉁만 만들어요."
"저놈들은 우리의 신을 믿지 않아요."
"저놈들은 키가 작아서 기품이 없어요."
"저놈은 잘하는게 너무 많아서 샘나요."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이 저놈들의 땅에서만 나는데, 저놈들이 그 자원의 가격을 배로 올렸어요."
"저놈들은 코가 높아서 징그러워요."
"저놈들이 먼저 우릴 싫어하니까 우리도 저놈들을 싫어해요."

나는 좀 고민됐어. 별로 신경쓰고싶진 않지만, 어쨋든 내가 만들어낸거니까 책임을 져야지.
아무도 서로를 싫어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끝에 난, 모든 인간들을 똑같게 바꾸기로 결심했어.
외모도, 능력도, 신앙도, 지능도, 정신도, 환경도.
그렇게 하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싸우진 않겠지.
그땐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아니었나봐.
그들은 그들의 모든 것이 같아져도 여전히 서로 싸우기만 했어.
물론 이번에도 땅에 내려가서 인간들에게 이유를 물었지.

"이놈이 나보고 자긴 하기 싫으니까 나보고하래요."
"이놈이 나보다 키가 큰것같아요."
"내가 이놈보다 더 세요! 진짜예요!"
"그깟 문제쯤 실수해서 잘못 풀었을 뿐인데, 저놈이 계속 바보취급해요."
"이년이 자기가 더 이쁘다고 지랄해요."
"저놈은 그냥 맘에 안들어요."
"나랑 똑같이 생겨서 싫어요."

이쯤되면, 나에게도 방법이 없지 않겠어?
그냥 나몰라라 했지. 저렇게 싸우고싶어하는데 내가 어떻게 막아.
?
  • ?
    언제나‘부정남’ 2009.05.02 23:29
    십시일반 에필로그에
    '사람들은 저마다 의견차이라든지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 등으로 싸우지만 정작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자신과 다른 점을 찾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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