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8 14:31

거의 그런 느낌이다.

조회 수 4029 추천 수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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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그런 느낌이다. 내 인생을 관통하는 문장은 이것이 아닐까, 싶다. 똥을 쌀 때 담배를 피면 어딘가 똥이 잘 나오는 느낌이다. 컵라면에 물을 따를 때 약간 부족하게 따르는 게 더 맛있는 것 같다. 밥을 먹을 때 약간 남기는 게 적당한 느낌이다. 옷을 입을 땐 색이나 톤을 적당히 맞춰야 괜찮은 느낌이다. 내 인생은 왠지 잘 풀릴 거 같은 느낌이다.
어린 시절,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삶이란 불확실하고 불분명하며 예상은 언제나 빗나가기 마련이다. 시간과 운명이란 굴레 속에서 하찮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는 것 뿐이 아닐까. 삶이란 게 누군가의 생각처럼 반짝반짝 빛나거나 뜨겁지 않고 터무니없이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공허함에 휩싸여 좌절했다.
나이를 조금 먹으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미래나 일정이나 계획 따위가 아니라 그저 지금 현재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복권이나 저금, 보험 같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투자를 싫어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은 참다간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짓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당장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길을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좀 더 먹으니 생각이 또 바뀐다. , 그래 어른들의 말씀이 틀린 거 하나 없었구나. 공부하랄 때 공부나 할 걸, 글 쓰지 말라고 다들 말리면 하지 말걸. 나는 퍽 총명하고 괜찮은 학생이었는데 그때 마음만 잡았어도 평생을 이렇게 방황하며 살지는 않았을 텐데. 아직도 일반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나 인생계획이 절대적으로 맞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 길이 가장 쉽고 편안한 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잘 닦인 고속도로를 팽개치고 국도는커녕 비포장도로에서 맨발로 허우적대는 꼴이라니. 그저 부끄럽고 꼴사나울 따름이다. 거의 그런 느낌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이런 생각들을 했다. 대체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끝없는 자괴감과 자기비하의 늪에 빠져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버스에서 내리고 집으로 걸어오는 백여미터, 그 사이를 못 참고 정류장에 앉아 담배를 한 대 물고 뻐끔뻐끔 연기를 뿜었다. 그런데, 그 연기 속에서 흐려진 달빛이 별안간 내 뺨을 후려쳤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거의 50여미터를 팽개쳐져 날아가지는 않았고 같은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었지만 그 사이 세상은 바뀌어져 있었다. 잘 닦인 고속도로는 수명을 갉아 먹는 늪지대로 변하고 비포장도로는 따스한 봄햇살과 촉촉한 흙냄새가 풍기는 꿀 같은 길로 변했다.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우기도 전에 세상이 이렇게 극적으로 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내 옆에 앉은 여자는 딱 내 스타일인데, 줄무니 긴팔티에 물빠진 청셔츠를 걸치고 짧은 스커트를 입은 모습은 정말이지 딱 내 스타일인데. 이 여자가 보기에 세상은 내가 담배를 물기 전이나 뒤나 한치의 변화도 없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거의 그런 느낌이다. 나는 그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그 여자는 물방울 같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 그렇지, 이 골빈 년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리가 없지. 바다 속에서 흐려지고 있는 삶의 욕망 따위를 알리가 없지. 그저 내일부터 미샤에서 30% 세일을 한다는 사실 따위나 신경 쓸테지.
나는 담배를 털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걸친 옷가지를 순식간에 해체하고 미친 듯이 샤워를 하고 나오니 배고 고프다. 오늘은 저녁으론 무슨 반찬을 먹을까, 고민이다. 컵라면에 물을 살짝 부족하게 넣고 밥을 살짝 남길 생각이다. 왜 그러냐고 묻는 다면 딱히 할말은 없다. 그냥 나는 그래왔고 그렇게 하는 게 어딘가 좋을 뿐이다. 내 인생이, 삶이 누군가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어떻게 변할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저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만다. 그냥 거의 그런 느낌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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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슬라정 2014.04.18 15:51

    크-

  • ?
    ㅠㅠ 2014.04.19 01:01

    ㅠㅠㅠㅠㅠ

  • ?
    ㄷㅇ 2014.04.22 00:33

    그래.. 그냥 그런거지..

  • ?
    러크 2014.04.22 00:39

    우와....ㅠㅠ

    글 잘쓰시네요..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하는 모든 일들이 다 생각해보면.

    그저 그렇게 그냥 지나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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