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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부터 내가 다닐 학교가 여기란 말이지?'

 

 짧게 스포츠로 밀어버린 머리를 쓸어넘기며 나는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사실, 스포츠 머리에 쓸어넘어갈 머리카락 따위는 없었지만, 길게 내려오던 앞머리를 쓸어 넘기던 습관 때문에 자꾸 손이 머리로 올라간다.

 

 스포츠 머리라... 여태껏 구축해온 나만의 패션이 무너지고 있었지만 어찌됐든 좋았다. 게다가 까슬까슬한 느낌도 이상하게 맘에 들고.

 

 [희망 고등학교]

 

 반항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단정한 옷차림에 스포츠 머리를 한 나는 예상대로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교문을 통과했다. 하긴 전에 다니던 학교도 나를 어찌하진 못했지. 금발염색에 풍성한 머리결, 쫙 줄여입은 교복을 입고 다녀도 왠만한 선생은 날 건들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그쪽에서의 이야기고 새로운 장소에선 그 곳의 룰을 따라야 하는 법이다. 게다가 큰 집까지 찾아가 그 인간이랑 전학을 조건으로 얌전히 지내겠다고 각서까지 쓴 마당에 등교 첫날 부터 문제를 일으킨다? 즉결심판으로 퇴학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단은 이 학교에 눌러붙어 있어야 한다. 이런 범생이 스타일 쯤, 나의 숭고한 목적을 위해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었다.

 

 

 

 [드르륵]

 

 전에 다니던 학교와는 다르게 이 학교는 문이 옆으로 열렸다. 담임이 먼저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 역시 담임을 뒤따라 천천히 문안으로 들어갔다.
 
 "자, 오늘 새로 전학생이 왔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그럼 전학생의 자기소개가 있겠다."

 

 그러고선 담임이 날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자기 소개를 하라고? 내가 잠시 주춤거리자 담임이 재촉하는 손짓을 보냈다.

 

 '아, 이런건 좀 생략하면 안되나? 자기 소개라니 귀찮게.'

 

 하지만, 러브 & 피스. 견딜 수 있었다. 그냥 쿨하게 담임이 하는 말 씹고 아무자리라 들어가 앉을 수도 있었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이니까. 이런 갑작스러운 이벤트도 웃으며 감내 할 수 있었다.

 

 "반갑다. 내 이름은 존나세. 이름 존나 웃기지? 그런데 내가 지은 이름은 아니니까 불만 있으면 우리 꼰대한테 찾아가서 따져. 왜 아들 이름을 그렇게 지었냐고. 참고로 그 인간 한화 사장실 가면 있으니까 거기가서 따지고. 다들 한화 알지? 전 세계 1위 기업. 그냥 격의 없이 가서 이야기하면 돼. 그럼 그 양반 성격에 야구 방망이 몇번 휘두를지 모르지만 그쪽 엉덩이 사정이야 내 알바아니고. 아무튼, 만나서 반갑다. 잘 지내보자고."

 

 말을 하면서 나는 천천히 반 아이들의 얼굴을 살폈다. 다들 무언가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하긴 나의 이름 쯤이야 이 지역에선 살아있는 전설일테니 날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단정하게 차려입은 60대 1의 전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테지.

 

 '그나저나 분명히 3반이라고 했는데...'

 

 다행히 야구 방망이 이야기가 나올 때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3분단 뒤에서 3번째 자리, 맨뒤 자리도 아니고 창가 자리도 아니고 교실 권력에서 애매하게 어긋나있는 그 자리에 그녀가 앉아있었다. 물론 나를 보는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른 채 잔뜩 일그러져 있었지만.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날 아는 누군가가 본다면 헤벌죽한 내 모습을 뜨악하게 봤겠지만 여기는 새로운 세계, 날 아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었다. 덕분에 반 아이들은 그저 의야한 눈으로 날 볼 뿐이었다. 물론 내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이 집중된 건 말할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잠시 교실이 웅성거렸다. 너무 나댔나? 하긴 전설이라 불리는 사나이가 너무 헤픈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작게 헛기침을 하고선 나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순식간에 웅성거림이 멎었다. 이럴 의도는 아니였는데 이 표정을 짓고나면 항상 주변이 이렇게 급속히 얼어붙는다. 이것은 그야말로 선택받은 유전자가 아닌가! 분위기만으로 좌중을 압도하다니!

 

 "에, 존나세 학생은 일단 빈자리에 가서 앉도록."

 

 담임의 말에 나는 짦게 고개를 끄덕인 후 남아있는 자리를 찾았다. 마침 맨 뒷자리에 자리가 하나 비워져있었다. 오, 이런 명당자리라니! 등교 첫날 부터 운이 좋네. 나는 성큼성큼 맨 뒷자리로 걸어나갔다. 아이들이 시선이 저절로 나를 따른다. 아, 이놈의 인기. 잘생기고 터프한 남자는 어딜가나 이 모양이네. 하지만 주변의 시선에 압도당하면 결국엔 지는 거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책상 옆에 대충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그럼, 공지사항을 알려주겠다. 먼저......"

 

 그 후로 담임은 한참 동안이나 체육대회니 현장학습이니 하는 말들을 주절주절 떠들었다. 당연히 나야 이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리가 없고, 알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 담임이 무슨 소리를 떠드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심심해진 나는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맨 뒷자리에 앉은 탓에 그녀의 뒷모습 밖에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나 관심과 사랑을 표현했는데도 저렇게나 냉랭한 반응이라니. 조금은 섭섭한 느낌이 들었다. 나 같으면 사랑을 위해 전학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절세미남 에이스의 우수에 찬 눈동자라도 은근슬쩍 바라볼텐데. 이름이 소나기라고 했지.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였다.

 

 '아, 이제 뭐하지.'

 

 그녀의 무관심에 입맛을 다시고는 나는 길게 기지개를 폈다. 등교 첫날이라 잠을 좀 설쳤더니 몸이 좀 뻐근했다. 게다가 별 날파리 같은 애들만 곁눈질로 날 힐끔거리는 탓에 얼굴도 따갑고.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은 딱 하나 밖에 없었다. 나는 책상 위로 머리를 눕혔다. 살이 없는 편이라 머리에 와닿는 손목의 쿠션이 그닥 좋지는 않았지만, 학교 책상이라는 것이 요술 책상이라 이렇게 머리를 대기만 하면 잠은 순식간에 찾아온다.

 

 그 사이 담임은 어느샌가 할말을 마치고 교실을 떠났고 마침내 1교시 종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여전히 책상 위에 코를 박고 있을 뿐이었다.


*   *   *


 "이거 완전 미친년 아냐?"

 

 호준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긴 이런 개무시도 오랜만이지. 이 지역에서 우리 써클의 위용을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까.

 

 사건의 발달은 이랬다. 저기 얼굴 못생긴 년. 건물 앞에서 사이 좋게 담배를 나눠 피던 우리를 보더니 옆에 서있는 여자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하는게 아닌가! 가던 길이나 얌전히 갈 것이지. 우리 입장에선 직접적으로 들이대는 놈들보다 뒤에서 이빨이나 까대는 놈들이 더 쥐약인걸 모르나?

 

 "너 이름 뭐냐?"

 

 그런데 못생긴 년보다 더 골치아픈 년이 있었다. 바로 이 년. 내 질문에도 대답할 생각은 않고 화가난 듯 인상을 구긴 채 서있는 여자. 나름 예쁘장하게 생긴 듯 한데, 생긴 것 믿고 너무 나대는 거 아냐?

 

 "소나기?"

 

 나는 여자의 교복에 붙은 이름표를 확인하듯 물었다.

 

 "너 무슨 소나기 내리던 날에 태어났냐? 이름 존나 웃기네."

 

 세상에. 우리 아버지 말고도 자식 이름 이렇게 짓는 인간이 있구나. 나는 이상한 동질감에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내 얼굴로 무언가가 날아오는게 아닌가!

 

 하지만 나의 반사신경이 그런 것쯤 막지 못할리가 없었다. 나는 나의 오른쪽 뺨을 향해 날아오는 그녀의 손을 가볍게 붙잡았다. 순식간에 팔목이 붙잡힌 그녀는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나의 힘은 자비가 없었다. 세상에, 감히 나의 아름다운 얼굴에 흠집을 내려 하다니!

 

 "사과해!"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난 그만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건 그야말로 적반하장 그 자체가 아닌가.

 

 "이 미친년이!"

 

 나한테 바락바락 대드는 그녀의 모습을 참지 못하겠는지 마침내 호준이 손을 들어올렸다. 저 기세라면 한 대 찰지게 들어가겠네. 나는 손을 들어 호준을 제지했다. 

 

 "사과를 하라고?"
 "그래! 내 이름이 뭐가 그렇게 웃겨. 우리 엄마 아빠가 지어주신 이름이 뭐가 그렇게 웃기냐고!"

 

 그때 문득 그녀의 팔목을 잡은 내 손가락에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저 맨살일텐데 뭔가가 울퉁불퉁했다. 힘줄인가 싶었지만, 힘줄은 가로로 생기지 않으니까. 나는 그녀의 팔을 내 눈 앞까지 당겼다.

 

 "뭐야, 이거 안놔!"

 

 생각대로였다. 그녀의 팔목에는 몇차례나 그어진 상처가 있었다. 몇차례나, 몇번이나 삶을 거부한 흔적. 우리 엄마의 팔목에 그어진 그것과 같은, 죽으려 했지만 마지막 힘이 부족해 모질게 파고들지 못했던 칼날의 흔적이 그녀에게도 있었다. 나는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손목에 상처있는 사람 처음봐?"

 

 그녀는 아픈 곳을 후벼파인 것처럼 예민한게 반응했다.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그녀의 사정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그리고 내가 지켜주지 못한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잘 계실려나? 아들은 잘나신 아버지 덕택에 잘 먹고 잘 사는데,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배고프진 않을지.

 

 나는 잡았던 그녀의 손을 슬며시 놓았다. 그녀는 잡혔던 손목이 아팠던 모양인지 인상을 쓰며 손목을 쓰다듬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지금 다시 보니 얼굴도 엄마랑도 많이 닮았다. 나는 그녀를 향해 선언하듯 말했다.

 

 "너, 내 여자친구해라."


 내 말에 나기는 황당한 얼굴로 대꾸했다.
 
 "미친새끼."

 

 아, 그때 그녀의 표정이란, 사진이라도 찍어 두었어야 했는데. 마치 한꺼번에 어둠속에서 튀어나오는 바퀴벌레를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싫어."

 

 그녀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정말. 이 몸이 사귀어 주시겠다는데 감사합니다, 하고 절은 못할 망정 이렇게 고자세라니. 이래가지고는 전혀 대화가 안되잖아. 어쩔 수 없지. 내가 좀 수준을 맞춰주는 수밖에.

 

 "그럼, 사귀어줄때까지 쫓아다니면서 괴롭힌다?"
 "그러든지 말든지."

 

 그리곤 그녀는 아직까지 겁에질려 눈치만 보고있는 못생긴 여자의 손을 붙잡곤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중간에 내 일행들이 앞을 막아섰으나 내가 고개를 젖자 다시 길이 트였다. 여자는 잠시 멈춰선 채 고개를 돌려 날 노려보았지만 그것도 잠시, 화가난 듯 성큼성큼 걸어나간 그녀는 순식간에 시아에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남자가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지. 

 

 '그나저나 뭔 여자가 성격이 저렇게 터프해?'


*   *   *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뭐야 지금 몇시야? 내가 몇 시간이나 잔거지? 나는 아직 잠이 덜깬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시계를 보니 대충 일교시가 끝난 시간이었다. 나는 뻐근해진 몸을 길게 쭈욱 늘였다. 근육이 풀리면서 시원한 느낌이 온몸을 관통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잠에서 깨어나자 뭔가 주변 분위기가 이상했다. 힐끔힐끔 나를 훔쳐 보는 애들도 많고. 내가 아무리 잘생겼기로니 그렇다고 남자들의 시선까지 반가운건 아니였다. 나는 찜찜한 마음으로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나기의 자리가 비워져있었다. 어딜 간거지?

 

 "야! 너!"
 
 내가 손으로 대충 한 녀석을 가리키자 녀석이 움찔거리며 대답했다.

 

 "나?"
 "그래, 너. 너, 나기 어디간지 아냐?"

 

 그러자 녀석이 한층 더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 모르겠는데?"

 

 이젠 땀까지 흘리는 모양이었다. 음, 이상한데? 나도 모르게 협박모드가 작동했나?

 

 "몰라? 그럼 너는?"
 "나, 나도 잘 몰라."

 

 하아, 이것들이 뭔가 숨기는게 있구만?

 

 "야, 너네들 내가 누군지 알아, 몰라?"
 "..."
 "아냐고, 모르냐고!"
 
 내가 마침내 소리를 지르자 녀석들이 주춤거리며 뒤걸음질 쳤다. 불쌍한 놈들 그러니까 처음 물어볼 때 제대로 불었으면 좋잖아.

 

 "나기 어디갔어? 엉!"
 "그, 그게... 아까 일진 애들이 데리고 나갔는데..."
 "일진? 그 새끼들 이름이 뭐야?"
 "몰라. 이름은 정말 몰라."
 
 일진이라니 이 여자는 대체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는거야? 하긴 오락실 앞에서 우리 패거리한테 대들었던 걸 생각하면 학교라고 다를건 없겠지만.

 

 "어디로 갔는데?"
 "나도 잘..."
 "아, 또 빡치게 만드네. 야, 내가 우스워보이냐?"
 "아, 아니."

 

 그러자 뒤에 서있던 녀석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학교 뒤에 공터로 갔을거야. 잘은 모르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뒷문을 박차고 복도로 달려나갔다.


*   *   *


 "야, 너 얼굴 좀 반반하다고 어디서 남자 하나 꼬셔왔나본데. 야, 니가 그러면 우리가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았냐?"

 

 머리에 심하게 파마를 준 여자가 나기의 볼을 손가락으로 툭툭쳤다. 하지만 나기의 눈빛은 전혀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

 

 "이 년이 겁대가리를 멸치랑 같이 볶아 먹었나. 그냥 눈깔을 확!"

 

 위협하듯 손을 들어올리던 여자는 나기가 여전히 눈을 부릅뜬채 자신을 노려보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나기의 뺨을 올려부쳤다. 금새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애미 애비 없는 년이라 남자 후리는 것도 존나 쉽겠지. 그런데 어쩌냐? 우리 오빠 한주먹이면 뭐? 존나세? 그 새끼는 그냥 한방이야 알어?"
 "방금 그 말 취소해."

 

 나기가 다시 파마머리의 여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이 없네. 지금 자기 서방이라고 챙기냐? 미친년아 지금 네 년 상황이 어떤 줄이나 알긴 아냐고?"
 "우리 엄마 아빠 욕한거 취소하라고!"
 
 분을 참지 못한 나기가 소리를 지르며 파마 여자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아! 이 개같은 년이! 이거 안놔?"

 

 파마머리 여자가 불의의 습격을 당하자 주변에 서있던 일진 여자들이 놀라 나기에게 달라 붙었다. 그리고 마침내 바닥에 내팽겨쳐진 나기.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나기는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금새 일진녀들에게 붙잡혀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와, 진짜. 똘아이년인줄 알았는데 이거 완전 미친년아냐?"

 

 파마머리 여자는 공들여 세팅한 머리가 망가진 것이 화가난 듯 인상을 구겼다. 게다가 그렇게 쎄게 잡아 당겼으니 아프기도 엄청나게 아픈 듯 했다.

 

 "미친새끼. 야, 밟아!"
 "거기까지."

 

 여자애들이 놀란 듯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어떻게 찾았는지 존나세가 숨을 헐떡이며 서있있다. 그는 놀란 그녀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곤 무릎에 손을 올린채 거칠게 숨을 몰아 쉬었다.

 

 "아 씨발, 학교 존나 넓네."
 "뭐야 이새끼는."

 

 말은 그렇게 해도 이 근방에 소문이 자자한 60대 1의 전설을 마주하는 순간 기세등등했던 기세가 팍 수그러들었다.

 

 "지금 너님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세요?"
 "지랄을 하네. 니가 무슨 이년 보디가드라도 되냐? 괜히 오지랖 넓혀서 어따 쓰려고?"
 "그건 내 사정이고. 너님들은 그냥 이대로 꺼져주셨으면 좋겠는데."

 

 나세가 일진녀들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두 손은 바지주머니에 넣은 채였지만 나세가 다가선 만큼 일진녀들도 한걸음씩 물러났다.

 

 "야, 너네들. 이 여자 앞으로 내 여자니까. 두번 다신 건들지 마라."

 

 나세의 말에 쓰러져 있던 나기의 눈빛이 그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지금 무슨 개수작이냐라는 의미를 가득담은 눈빛이었다.

 

 "가라. 다음 번엔 여자라도 가만히 안둘테니까."

 

 나세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나세의 그런 태도에 파마머리 여자가 분한 듯 이빨을 갈며 말했다.

 

 "이대로 넘어갈 거란 생각은 마. 니가 어디선 짱이였는지는 몰라도 여기선 그게 아니니까. 밤길 조심하는게 좋을꺼야."
 
 그렇게 일진녀들은 서둘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세는 여전히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나기를 향해 밝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나기는 나세의 손은 외면한 채 자리에서 혼자 일어났다.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라니?"

 

 나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가 도와달래?"
 
 차가운 표정으로 나기가 나세를 노려보았다. 나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런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화를 가라앉히는 듯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는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야, 어디가!"
 "..."
 "어디가냐고!"

 

 나세는 그녀를 따라 붙으며 재차 물었다. 계속해서 달라 붙는 나세가 지겨웠는지 마침내 그녀가 몸을 돌려 세웠다.

 

 "따라오지마."
 "싫거든? 내가 너 괴롭힌다고 했잖아. 사귀어 줄때까지."

 

 나세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인상을 팍 구기며 걸음을 다시 옮겼다. 나세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내가 미친게 아니고서야 저런 여자가 뭐가 좋다고 이 지랄인지. 나세도 자신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얼굴이 엄마를 닮아서? 하지만 그녀는 엄마가 아니었다. 아무리 닮았다고 할지라도 그녀가 엄마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럼 뭐 때문에? 그날 나세의 손가락이 더듬었던 그녀의 간절한 외침이 나세에겐 너무도 크게 들렸던 것일까?

 

 하지만 어찌됐든 좋았다. 이유를 몰라도 지금 이순간 그녀가 좋았다. 그럼 그뿐이었다.

 

 "야! 같이가!"

 

 어느새 멀리까지 가버린 그녀를 향해 나세가 달려나갔다. 길 위에는 봄날의 생그러움을 가득 안은 벗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5월의 붉은 요정들이 구름하나 없는 맑은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고 돌았다. 그렇게 무척이나 자비로운 봄의 기운이 그들에게도 아낌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

나기? 그러고 보니 칸나기? 후와후와?

아무튼, 이것은 3류 하이틴 로맨스 찌라시.

?
  • ?
    乾天HaNeuL 2011.09.05 06:57

    전 도저히 존나세라는 이름은 못 쓰겠더라고요. ㅡ,.ㅡ; 그래서 조나세로 성을 갈았음...;;;

  • profile
    시우처럼 2011.09.05 16:32

    전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네요. 캐릭터 성격 변주가 심해서... ;

  • ?
    다시 2011.09.05 08:57

    ㅋㅋㅋ 시우처럼이 하이틴 소설을 쓴다면

    ㅋㅋ 잘 봤습니다

  • profile
    시우처럼 2011.09.05 16:32

    감사합니다. ^^

  • profile
    시우처럼 2011.09.07 21:58

    댓글 이젠 달리나?

  • profile
    윤주[尹主] 2011.09.08 17:35

     하이틴 로맨스군요 ㅎ

     뒷얘기 붙어있으면 꽤 볼만할지도요. 잘 봤습니다^^;

  • profile
    시우처럼 2011.09.08 18:51

    이런 스타일 글은

    계속 써내려갈 내공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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