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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전통적인 소설”의 발전은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이미 꼭대기에 다다랐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발자크, 에밀 아자르 등의 소설가들에 의해 “전통적인 소설”은 정점을 찍었다. 예술 전역에 걸쳐 정체기가 다가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에 따라 혁명가들이 등장했다. 수많은 시도와 도전으로 많은 예술운동(카프의 기관지 아님.)을 벌였고, 21세기 현재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정도의 성과가 들어나고 있다.

장르문학의 시초는 무엇일까? 단순히 기원을 따지는 것이 아닌, 정형화 된 기점을 찍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협으로는 김용, 판타지로는 톨킨을 지목할 것이다. 우연히도 두 작가 모두 1950년대 중반에 처음 동양판타지소설(무협지)과 서양판타지소설을 각각 출간했다. 그 후 다양한 형태로 장르문학은 발전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전후로 퇴마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장르문학이 기지개를 편다. 그리고 채 20년이 가지 못해 심각한 지경에 이른다. 작가가 독자와 타협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독자가 작가로 올라서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출판사들은 돈을 위해 끊임없이 질 낮은 “양판소”라고 불리는 소설들을 책으로 찍어냈고, 장르문학의 질은 엄청나게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첫째로 지금까지의 장점인 접근성과 재미를 가져야 한다.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장르문학의 출발점은 대부분이 “재미”다. 읽는 이유도 “재미”다. 아마추어로서 쓴다면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장르문학을 쓰는 프로로서는 “재미”를 가장 중점으로 써야한다. 현재의 장르문학은 작품성으로만 성공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순수문학이라면 비평가들의 전문가적인 평가로 우뚝 설 수 있지만, 장르문학은 독자의 평가가 전부인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매니아”들을 위한 소설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독자의 흥미에 맞춰야하는 것이다.

둘째로 과감성과 논리력을 가져야 한다. 시대의 흐름이 빠르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컨텐츠 소모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그에 따라 엄청난 양의 컨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그 속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이냐. 그것은 바로 “새로움”이다.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하다. “돼지가 날아다니는 세계”를 떠올려 봤자, 5000만 명 중 이미 수십, 어쩌면 수백 명이 이미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새로움”을 어필해야 할까. 과감하게 상상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애매모호하게 “이러면 새롭겠다.”라고 생각해봤자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오라전대 피스메이커”라는 필자가 아주 싫어하는 소설이 있다. 전대물이다. 그 작가가 그 이후에 쓴 소설 중 “스트레이”라는 소설이 있다. 그 소설의 세계관은 묘하게 참신하다. (기억이 잘 안 나서 좀 논리력이 떨어지는데) 이계가 존재하고 주인공을 좇는 이들과 이계에서 온 남자(이계에서는 성별이 반대)가 도와주는 뭐 그런 내용이다. 필자는 2권까지 밖에 안 읽어 완벽히 평 할 순 없지만, 중세판타지에 너무 억매였던 과거에는 상당히 참신했다. 요즘은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도 많이 나오는 추세인 것 같지만, 당시(라고 해봐야 2008년이지만)에는 타 작품들보다 더 완성도 있었다고 하겠다.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단순히 지금까지 사람들이 만들어낸 세계 안에서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여 상상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함에 있어 논리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이 소설에서 인간의 피는 녹색이다.”라고 이유 없이, 근거 없이 말해봐야 독자들은 납득하지 않는다. “설정”에 따른 근거가 필요한 것이다.

셋째로 기본적인 학문 수양이 필요하다. 위의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도 있는데, 독창성과 논리력을 위해서는 그만큼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 또한 문학 공부가 바탕이 되어야 “양판소”라는 소리를 안 듣는다. 극단적인 예로 “투명드래곤”을 보자. 설명할 필요도 없이 “쓰레기”다.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심지어 편집부도 포기했는지 기본 맞춤법조차 제대로 고쳐지지 않은 모습니다.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장르문학이 문장력이 매우 떨어진다. 문장력이 좋지 않으면, 전달력이 떨어지고 거슬려서 읽을 때 집중력이 떨어진다.

넷째로 작가의 가치관이 “반드시” 녹아 있어야 한다. 단순히 재미로 시작해 재미로만 끝난다면 읽는 독자도 가볍게만 느끼고, 문학적 가치가 없는 유흥소설일 뿐인 것이다. 가치관이 필요하다.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면 공감을 얻고 싶다면 단순하게 글로만 “사랑해”, “죽고싶어”, “죽여버릴거야” 해서는 안 된다. 작가의 가치관에 따라 소설 속 인물들이 “이유”를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그냥 이유 없이 행동하는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빈 깡통이 억지로 울고 웃는 것처럼 보인다. 이 또한 독자가 소설에 흥미를 잃는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독자들은 정말 수준이 낮으면서도 수준이 높다. 독자들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가끔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양보하여 글을 써도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독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자신들의 생각을 가진 “지성체”이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의 글을 접했을 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평가하고 선택한다. 수많은 독자가 존재하고 수많은 관심분야가 있기 때문에 “보편적인” 것을 가지되, 자신만의 특색도 함께 보여주어야 한다.(말이야 쉽지...)

필자는 중간문학을 추구한다. “프랑켄슈타인”, “셜록 홈즈”, “오즈의 마법사” 같은 중간문학들 사이에서도 더 경쟁력 있고 한국적인 글을 추구한다. “언데드”를 읽고 쓰는 이번 “독후감”은 이러한 기준으로 쓰겠다.

 

 

 

 

-본문

 

 

1. 흥미를 떨어트리는 것들

 

이 부분을 이야기 하는데 있어, 분류를 지루함을 주는 것으로 할지 혼란을 주는 것으로 할지 고민을 했다. 중간 중간 매 챕터가 시작되거나 장소의 변경, 회상 등에서 처음 나오는 설명부분은 중요도를 떠나 지루하다. 단순 서술이기 때문이다. 또한 소설의 흐름상 불필요한 정보도 많다. 과감하게 버릴 부분은 버리고, 늘어지는 부분은 새로운 형태로 서술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각 파트의 시작에서 같은 형식이 계속 반복된다. 영어에서 같은 단어의 반복을 피하듯, 한국어에서도 똑같다. 나아가 문장, 문단, 글 전체도 같은 것이 반복 되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참을성 있는 독자는 흔치않다.

 

“언데드” 1부는 추격과 전투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언데드들의 능력을 이용한 전투신이 단편적이거나 생략되고 있다. 언데드라는 것,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모습니다. 클라보가 물을 이용해 이동을 하거나, 세이지가 청각을 이용해 추격조의 인물을 추측하거나, 태풍을 만들거나, 리더스카이를 이용하는 등의 활용은 많이 했으나, 정면대결에서 그 능력들을 활용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살리지 못한 느낌이다. 전투 중간에 다른 스토리를 삽입 한 것 또한 전투신의 긴장감이나 몰입감을 감소시킨다.

적들의 나약함도 매우 거슬린다. 주인공들의 말로는 “저울이 기울었다”, “전력이 딸린다”, “북벽이라 피하고 싶었다” 등 말로만 적들을 높게 평가하지 실제로 맞붙으면 거의 피해 없이 “바르는” 수준이다. 전쟁이나 전투에서 피해 없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무력이 필요하다.

 

2. 혼란을 주는 것들

 

“언데드”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물음표를 던지면서 시작한다. 한마디로 작가가 “내가 이런 이야기 하겠소.” 하고 말하고 시작하는 셈이다. 필자는 그렇게 좋게 보지 않는다. 처음에 주제를 쓴 것이 못마땅한 것이 아니다. 소설이 전개됨에 따라 프롤로그에서 말한 주제가 묻어 나와야 하는데 너무 미약하게, 혹은 너무 단순하게 나타나면서 혼란을 주고 심지어 이질감마저 준다. 레이몬드와 루즈라벤 등이 언데드를 대하는 태도는 알자로가 언데드를 이끄는 태도가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 사이에서 언데드들은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알자로의 반대 측에서 (나름 배웠다는 사람들인 것 같은데) 탄탄한 논리와 확고한 의지로 주장을 펴지 못하는 느낌을 준다. 그로 인해 알자로 측으로 너무 기울어 가끔은 알자로의 반대 측이 상당히 멍청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한 나라의 중요한 기둥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쪽으로 기울면 긴장감이 감소하고 소설의 밸런스도 무너질 수 있다.

 

전지적 작가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전개됨에 따라 대화 이외의 곳에서 구어체가 등장한다. 작가의 생각인지, 소설 속 인물의 생각인지 모를 문장들이 보인다. 그것들이 혼란을 준다. 작가의 생각이라면 과감하게 삭제하고, 인물들의 생각이라면 작은따옴표를 사용하여 정리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또한 세부적으로 초반에 작가적 시점에서 초반에 알자로라고 칭했으나, 그 이후에는 계속 단장이라고 칭한다. 전지적인 작가가 이야기를 문어체로 객관적인 서술을 하는데, 알자로라는 멀쩡한 이름을 두고 단장이라고 계속 칭하는 것은 혼란을 주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장소와 시간의 잦은 변화도 혼란을 준다. 알맞게 변화한 곳도 있으나 그렇지 않아 혼란을 주는 부분도 많다. 왜 이 부분에서 이렇게 보여주어야 하는가를 작가 스스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는 왜 추격하는 쪽을 보여주어야 하며, 클로드의 이야기가 중간에 나와야 하며, 세이류드가 추리하는 내용은 왜 끊어져 나와야 하는지, 왜 현월단원들이 과거 이야기가 그곳에 나와야 하는지 등 말이다. 독자가 혼란을 덜 느끼고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살리기 위해, 다시 검토하여 정리가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춘신의 무장 편에서 크레센트호를 놓친 인실롭 일행은 발락과 클라보의 능력을 이용하여 소규모 태풍을 만들어 해로를 봉쇄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의문이 생긴다. 태풍의 생성원리는 현실세계에서든 판타지세계에서든 같은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물과 전기로 태풍을 일으켰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태풍은 해수면의 온도가 높아져 증발하면서 상승기류를 만들어 구름을 다량 생성해 만들어진다. 그 후의 세력 확장이나 이동 경로 등의 상세한 것을 빼더라도 설명이 부족하다. 설사 전기로 물을 가열했든 어쨌든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언데드”의 세계관 안에서 몬반이 태풍의 생성원리를 이해하고, 제안을 했을 때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없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바다 위의 전투에서 로한이 능력을 쓰는 장면도 앞서 다 설명이 된 부분이지만 조금 불편한 느낌이 있다. 로한이 능력을 쓰는 장면에서 묘사가 조금 미묘하다는 느낌을 준다.(이 부분은 개인적인 것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인물들의 기복 또한 거슬린다. 튜더나 세이건, 인실롭 등의 지휘를 하는 이들의 행하는 전략들이 가끔은 허를 찌르기도 하지만 가끔은 너무나도 기대에 못 미치는 행동을 한다. 그에 따라 캐릭터 설정이 불안정해 보인다. 소설의 다양한 설정은 언제나 변화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소설에서는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억지성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작가의 역량이다. 설정은 조금이라도 반드시 변한다. 그에 따른 자연스러움은 작가가 고민해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본다.

 

3. 살리지 못한 것들

 

전개가 너무 빠르다. 일반 판타지 서적으로 분량을 비교 했을 때 한권을 다 채우기도 전에 1부가 끝난다. 단순히 추격전이기 때문에 빠르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다. 서술에 있어 전투신이나 추격을 위해 전략을 토의하는 장면, 인물이 특정 행동을 하는 이유 등이 너무 간략하거나 생략이 많이 되어있다. 단순히 분량을 늘이기 위해 내용을 채워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독자는 작가가 만든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친절한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다만 단순히 설명을 늘어놓기만 한다면 앞서 말했듯 지루해 질 수 있다. 말이야 언제나 쉽다...)

 

케릭터들의 특징도 잘 각인 되지 않는다. 소설이 전개됨에 따라 등장하는 인물이 많음에도 이유가 있다. 그러나 각각의 케릭터가 존재하는 이유를 어필하는데 있어 근거가 너무 미약하다. 가끔은 전개의 필요를 위해 억지로 만든 느낌을 주는 케릭터들도 있다. 잠시 “연기” 이야기를 해보겠다. 연극에서 “배우”가 단순히 사실적인 행동과 말을 한다고 연기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연극도 영화도 극본, 대본이 있고 “작가”가 있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글)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표현 하는 것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더 과장되게, 더 미미하게 연기를 하여 부각시킬 부분은 더 부각 시켜야 한다. 소설도 같다고 생각한다. 의미를 가지고 존재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마련이고, 결국 소설 속에서 조연으로조차 빛을 바라지 못하고 “팽” 당한다. (필자도 그리 잘 쓰는 편이 아니니까, 한명의 독자가 느낀 점으로 봐주시고... 버물리라는 분도 지적하듯 뭔가 “상상”하기에 설명이 부족하지 않을까 한다.)

글을 읽고 독자는 머릿속에서 자유롭게 이미지를 그린다. 하지만 그 자유로운 상상을 위해서는 작가의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무에서 유를 상상하는 것은 엄청나게 피곤한 일인데, 피곤하려고 글을 읽는 독자는 (적어도 장르문학 독자 중에서는) 없다.

 

중간에 들어간 개그들도 약간 어색하다. 끝.

 

 

4. 그 밖의 것들

 

한 회 분량 안에서도 글의 기복이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읽히면서 재미를 주는 부분과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공존한다. 프로로서 가져야 할 것 중 하나는 꾸준함이다. 기복이 있으면 그만큼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그런 의미로도 필자는 영 글을 못 쓴다.)

 

문법적, 논리적 문제점이 들어나는 문장들이 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다.

 

“저희들한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인 설은이 바다에서 채취되는 것도 거기에 이유가 있죠.”

 

라는 부분이 있다. 바다의 성질을 띄는 물질이 언데드의 재생력을 방해하는 점을 말하는데, 일부러 설은을 바다에 담가놓고 채취하는 느낌이다. 설은이 바다에서 채취되는 이유가 언데드에게 피해를 주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 마음대로 바꿔보자면 이렇다.

 

“저희들의 재생 능력을 저하시키는 물질인 설은도 바다에서 채취 되죠.”

 

필자가 집중해서 읽지 못하여 놓쳤는지, 설은이 언데드의 재생력을 막는 것 외에 작용을 하는지 모르겠다. 또한 알자로가 클라보의 목을 잘라 한방에 죽인 장면에서도 설은이 언데드를 죽일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증명하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단어는 과감하게 빼는 것을 추천한다.

 

 

 



 

-결론(은 없다.)

 

우선 이번 독후감은 일부러 단점만 언급했다. 단점을 최대한 찾아내고자 어쩌면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을 수 있다.(혹시나 이 부분은 이해가 안 되거나 이상한 부분은 지적해주시길..)

필자가 게으른 관계로 쓰다가 귀찮은 부분은 설명이 이상할 것이며, 지금 쓰는 결론도 이상하다...

또한 필자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필자 스스로의 자기변명이고 그냥 “이런 저런 부분에서 이런 점을 이렇게 느꼈다.”라고만 이해하고 퇴고 할 때 참고했으면 한다.


사실 기존에 책으로 나온 장르소설 중에는 “언데드”보다 못한 것들도 많다. 그러나 이번 공모전은 진출 폭이 훨씬 좁기 때문에 완벽할수록 좋다고 본다. 필자는 마구잡이로 되는대로 독후감을 썼지만, “언데드”의 퇴고는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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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예스맨... 2013.01.15 23:43
    필자란 접니다.
  • profile
    yarsas 2013.01.16 00:15
    윤주 님에 이은 두 번째 비평! 분량이 만만치 않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평에서 제 글에 대해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셨다는 게 묻어나옵니다 뉴_=... 노력하며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니겠죠.. 반성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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