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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AD] 5. 생과 사에 걸친 자 - 4    

 

 

 로한은 동료들을 밀어내며 뒤쪽으로 달려갔다. 성문에서는 이미 칼립소
의 기사단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대로 양쪽 전부를 포위당한다
면 그들의 도주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로한은 위험할지라도 약간의 무
리수를 두어야겠다고 판단했다. 안 그래도 소수인 현월단의 전력이 이 이
상 나눠지면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로한은 일찍이 궁성 에펠에
서 선보인바 있는 기술을 재현하기로 했다. 칼을 쥔 오른손이 아닌 그의
왼손에서 불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영속성과 한시적이란 기준으로
아름다움을 구분하기에는 그 기준이 몹시 모호하지만 실제 로한의 불꽃은
아름다웠다. 불은 그 생명이 짧은 만큼 더 격렬하고 화려하다. 로한의 팔
의 깃든 아름다움은 그런 것이었다. 그의 왼팔에 가득 일렁이는 불꽃은
옵슬레이 땅에서 느낄 수 없는 거대한 열기를 선사했다. 후끈해진 실내에
들어선 칼립소와 떡갈나무 기사단이 잠시 멈춰 섰다. 로한은 그들을 향해
웃어주었다.

 

 “불의 꽃은 아름다운 만큼 자양분도 많이 필요하지. 불만큼 한순간을
지배하는 아름다움을 본 적이 있나?”

 

 로한의 미소에 똑같이 미소로 화답해준 이는 없었다. 그들 모두 표정이
굳었다. 로한 역시 기대한 적 없는 미소를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다. 로한은 준비동작도 없이 벽에다가 자신의 주먹을 내리꽂았다. 화
려한 파괴. 거침없는 파괴. 강렬한 파괴. 짜릿한 파괴. 순식간에 무수한 파
괴가 생성되었다. 염뢰로 인해 균열이 일어났던 성벽은 로한의 일격에 버
티지 못하고 천장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떡갈나무 기사단의 칼립
소가 고함을 질렀다.

 

 “길을 막을 셈인가!”

 

 복도가 무너져 내리며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길이 막혔다. 후방에서의
공격을 원천봉쇄한 로한은 무너지는 파편에 휩쓸리지 않게 급히 몸을 뺐
다. 반대편 성문으로 통하는 길이 하나밖에 존재할리는 없지만 당분간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이 틈을 이용해 도주하면 되겠지! 로한은 뒤
를 돌아보며 앞의 상황을 살폈다. 그리곤 맥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상황
은 그대로였다. 룸바라고 하는 괴물은 스캇과 매튜의 연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세가 더 올랐다. 사방으로 휘둘러 대는 쇠몽둥이
는 역으로 스캇과 매튜를 몰아붙일 정도였다. 룸바가 목젖이 다 보이도록
호탕하게 웃어댔다.

 

 “푸캬캬캬! 신명난다. 신명 나! 네들 제법 춤 출줄 알잖아?”

 

 대체 무슨 기준이야? 그들의 당혹스러움에 아랑곳하지 않고 룸바가 고함
을 질렀다.

 

 “어이, 거기 불! 칼립소를 못 들어오게 하면 어쩌자는 거야? 제대로 된
춤판을 벌일 수가 없잖아?”

 

 “나는 파트너를 따지는 편이라서.”

 

 되는대로 대꾸해준 로한이 룸바에게로 달려들었다. 룸바 뒤로 계속해서
병력이 증원되고 있었고 칼립소의 부대도 언제 우회해서 나타날지 모른
다. 빠른 시간에 결판을 내야했다. 룸바와 로한의 무기가 맞부딪혔다. 으
아악! 로한은 자신의 몸이 오른쪽으로 확 뒤틀리는 것에 깜짝 놀랐다.

 

 ‘뭐 이런 미친 완력이 다 있어?’

 

 완전히 균형을 잃은 로한은 룸바의 발길질에 벽 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숨이 턱 막히는 막강한 일격이었다. 로한은 당장에 넘버 10 히브레를 떠
올렸다. 기량의 문제가 아닌 순수한 완력 때문에 밀리는 싸움은 로한에게
도 당혹스러운 것이었으니까. 미처 자세를 추스르지 못한 로한에게로 룸
바의 두 번째 일격이 날아왔다. 위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급하게 막은 로
한의 몸이 그대로 기울어졌다. 무릎을 꿇은 로한의 몸으로 룸바의 반대쪽
몽둥이가 날아왔다. 로한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자신의 입에서 울
컥하며 피가 쏟아져 나왔다. 아무래도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상대방
은 덩치에 맞지 않게 속도도 엄청나게 빨랐다.

 

 ‘이 녀석, 히브레 이상이다.’

 

 로한은 이미 절실히 깨닫고 있었지만 옵슬레이 지역에 대한 평가를 또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 지역에는 인간이 아닌
자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 점이 로한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이 지역에서는 너희들이나 우리나 같다 이거지?”

 

 괴물이라는 게 딱히 훈장감이 아니라는 거로군. 로한은 유쾌한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매튜가 로한의 뒤로 다가왔다.

 

 “로한, 괜찮아?”

 

 “태울 값어치가 있는 땅이다.”

 

 “뭐?”

 

 “비켜라. 매튜, 스캇. 너희들까지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다.”

 

 매튜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자신의 예감이 맞다면 로한은 지금 그
기술을 쓰려는 것이다. 자신도 단 한 번 밖에 본 적 없는 로한의 진짜 실
력을. 스캇이 늑대로 변신한 채 세이지와 엘로린 쪽으로 다가갔다. 그녀들
을 지키려는 그의 행동을 본 매튜는 안심하며 자신도 물러났다. 피트가
매튜의 어깨를 붙잡으며 홀린 듯 로한을 쳐다보았다.

 

 “저렇게 불붙은 로한의 모습은 오랜만인데요.”

 

 이제껏 로한이 일으켜왔던 불길은 전부 신체부위나 칼에 사용하는 소규
모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불러들이는 불길은 차원이 틀린 것이
었다. 불러들이다? 피트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불러들인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로한이 지금 일으키는 불길은 다
른 차원에서 끌어들인 불인 것 같았다. 지금 그의 모습은 지상에 강림한
불의 마수였다. 로한의 전신이 불타고 있었다.

 

 “작화염제(灼花焰帝).”

 

 불 그 자체가 된 로한의 몸이 룸바에게 직격탄이 되어 날아들었다.

 

 

 


 바함은 루만을 가장자리 쪽 의자에 앉게 했다. 발렌타인 때문에 루만은
어떠한 반항도 하지 않은 채 바함의 말을 따랐다. 서로의 거리가 멀어지
자 바함은 보다 여유로운 자세로 발렌타인을 붙잡았다. 그녀의 가녀린 몸
은 당장에라도 바스라질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바함은 그녀의 몸을 자신
에게 기대게 한 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가씨. 다른 상황이었다면 제법 괜찮은 만남을 가졌겠지만 오늘은 이
렇게 거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주길 바래요. 평소에는 부드러운 남자니
까 오해하지는 말고. 하하핫!”

 

 루만은 구역질난다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녀에게 이 이상 손대지 마라!”

 

 바함이 빙그레 웃었다.

 

 “좋아좋아. 나 역시 정보를 얻기만 하면 되니까.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나는 우리가 보다 평화적으로 대화를 끝냈으면 싶고, 이 아가씨에게도 아
무런 해 없이 끝났으면 좋겠거든. 그러니 쓸데없는 기 싸움으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도, 서로가 더 으르렁 대지도 않았으면 좋겠네.”

 

 바함은 목이 컬컬한지 약간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대장군의 목적은 에펠로스 왕가의 대를 끊는 것인가?”

 

 루만은 묵묵히 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대장군은 그런 것 따위에 관심이 없다.”

 

 바함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이어이, 이것 봐. 설마 진짜 대장군이 북방정벌을 위해서 언데드를
만들었다고 얘기하는 거야? 솔직하게 말하시지. 조금만 정치에 민감한 이
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잖아. 북방정벌이라는 것은 허울 좋은 거짓
이라는 것을.”

 

 “…….”

 

 “처음에야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으니 싸웠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생
각해봐. 엘헤미아 같이 풍요로운 나라가 무엇이 아쉬워서 루이즈번을 정
복하려고 하지? 미녀와 보석 때문에? 분명 탐나는 전리품이긴 하지만 전
쟁을 해서까지 얻어야 하는 물건인가? 얻는 것 보다 잃을 게 많은 그런
전쟁을 계속 하는 이유가 뭐겠어?
 뻔하지. 개혁이 두렵기 때문이야.
 이전부터 꾸준히 내려온 군사정권을 전부 부수고 새로운 정권을 확립한
다는 것이 큰 부담이기 때문이야. 군사정권이 유지되려면 적이 필요하고
우리에게 존재하는 유일한 적이 루이즈번 밖에 없기에! 그렇기 때문에 에
펠로스 왕가는 영웅이나 전쟁을 미화하며 백성들에게 지속적으로 참전을
요구하지. 그리고 그런 정권의 정점을 찍은 이가 현 대장군이 아닌가. 그
가 이토록이나 군사력을 강화시키는 이유가 앞으로 있을 왕권 싸움에서
보다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것 외에 뭐가 있지?”

 

 바함의 해박한 지식을 듣고 루만은 잠시 침묵하더니 피식 웃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뭐?”

 

 “그래, 일개 소대장 치고는 제법 아는 게 많은 건 인정하겠다. 네 말처
럼 엘헤미아가 루이즈번을 정복해야 할 이유는 없다. 300년이란 긴 시간
때문에 이미 전쟁무용론(戰爭無用論)이니 휴전이니 꽤나 시끄러웠지. 불
과 20년 전쯤에 있었던 북방정벌에서의 대패는 그런 주장에 힘을 붙이기
도 했었다.”

 

 한 나라 안에 있는 많은 군사력을 서로가 차지하려 든다면 그 나라는 온
전한 평화를 유지하기 힘들다. 폭주하는 힘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평
화를 유지할 해결책이란 무엇일까? 바로 공적이란 존재다. 인간의 묘한
본성은 공적이 정해지면 그 외의 존재를 아군으로 받아들이는 편리한 구
조를 가졌다. 엘헤미아의 풍요로운 삶과 찬란한 평화를 위해 루이즈번이
공적으로 정해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습기까지 한 그런 이유 때문에
얻을 게 별로 없는 전쟁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에펠로스 왕가가
별 어려움 없이 14대까지 명맥을 유지한 것도 이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
런 점들은 이미 대부분의 학자들을 통해서 공론화 된 적이 있다. 그리고
……

 

 “완벽한 거짓말이지.”

 

 “뭐?”

 

 “바꿔서 물어보겠다. 얻을 게 별로 없는 전쟁이라는 것은 반대로 말하
면 잃을 게 많은 전쟁 아닌가? 한 나라 안에서 서로가 물어뜯고 싸우는
거랑 300년 동안 계속 전쟁을 치르며 피해를 보는 것. 마찬가지로 똑같이
별 이득이 없다. 에펠로스 왕가가 유지되기 위해 루이즈번을 증오의 땅으
로 만들고 300년이나 공격해 왔다고? 네 놈 말대로 전쟁이 그런 이유에
서였다면 진작 전쟁은 끝나고 서로 휴전했을 것이다. 네 놈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그 머리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라. 그런 이유로 네 놈은 필요
없는 전쟁을 300년이 넘게 끌어올 수 있나?”

 

 루만의 신랄한 말투에 바함은 당혹감을 숨기기 어려웠다. 바함은 한 번
도 그런 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루만은 칼날을 뱉듯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말했다.

 

 “엘헤미아는 루이즈번을 정복해야만 한다. 에펠로스 왕가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고 그 점을 지금껏 숨겨왔을 뿐이다. 귀족원도 그 진실의 일부
는 알고 있지. 그렇기 때문에 지금껏 전쟁이 계속될 수 있었다.”

 

 바함은 충격적인 사실에 몸이 굳는 걸 느꼈다. 북방정벌이 거짓말이 아
니라고?

 

 “대장군은 에펠로스 왕가를 끊는 것에 관심이 없다. 루이즈번에서 얻게
될 미래에 대해 관심이 있지.”

 

 “그게 뭐지?”

 

 “그건……”“말하지 마세요.”

 

 바함은 깜짝 놀랐다. 지금껏 대화에서 배제되어 있던 이가 갑자기 그들
사이에 끼어든 것이다. 루만 역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화의 난입한 이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떨림을 멈춘 발렌타인이 루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만, 당신의 구속능력. 잠시 동안 멈출 수 있죠?”

 

 “어, 그렇긴 한데……. 아니 잠깐, 그걸 발렌타인이 어떻게 알지?”

 

 “그럼 당장 멈춰요.”

 

 “뭐?”

 

 “멈추라고요!”

 

 루만의 언데드 구속능력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발현되는
특수한 능력이다. 단, 잠깐 동안은 스스로의 의지로 멈추는 것은 가능하
다. 그런데 발렌타인이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루만은 이성보다도 무의
식적인 느낌을 통해 그녀의 말을 이행했다.
 그리고 상황은 순식간이었다.

 

 “힉?”

 

 루만은 볼품없는 소리를 내며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곤 딸꾹질을 하기 시
작했다. 사람은 가끔 자신이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눈으
로 보면서도 그 사실을 머리로 인식하지 못한다. 지금 루만의 상황이 딱
그러했다. 자신의 눈은 바함을 짓밟고 있는 발렌타인을 선명하게 보여주
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루만은 자신이 보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야, 이 미친 턱수염 새끼야. 생긴 것도 그지 같으니까 하는 짓도 그지
같구나. 숙녀의 목에 칼을 갖다 대는 개 같은 매너는 어디서 배워먹은 거
냐? 이 또라이 새끼야.”

 

 루만이 하는 말이 아니다. 루만은 그녀의 말투를 들으며 격심한 호흡곤
란을 느꼈다. 작은 카페 에펠리의 점장 발렌타인은 그 카페에 어울리는
단아한 모습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깔끔한 패션과 우아한 몸짓, 심지어 귀
를 씻겨주는 것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까지. 그녀는 평소와 똑같은 그 유
명한 모습으로 바함의 몸을 미친 듯이 짓밟고 있었다.

 

 “병신 새끼. 개 같은 새끼. 명란젓 같은 새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루만의 의식이 흐트러졌다. 그 때
문에 다시 자신의 능력이 발동됐다. 바함을 향해 격렬한 욕설과 발길질을
하고 있던 발렌타인의 몸이 뚝 멈췄다. 그녀는 잠시 동안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는 것 같더니 똑바로 서서는 루만을 뒤돌아보았다. 루만은 그녀의
시선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헤헤, 루만 씨. 언젠가는 말할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에서
야 하게 되네요. 넘버 5 발렌타인이라고 합니다.”

 

 루만의 딸꾹질이 멈췄다.

 

 

 


 단참나무 기사단의 수장 룸바는 춤을 사랑하는 아루가라는 소수민족 출
신이었다. 옵슬레이에는 지방 특성상 각 지역에서 몰려든 많은 소수민족
들이 살고 있었는데 아루가 족은 원래부터 옵슬레이 땅에 있던 민족이었
다. 소수민족들이 자신들만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것이
야 당연하지만 아루가 족은 그 특성이 유독 심했다. 그들은 육성(肉聲)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것보다 몸짓을 통해 상대방의 감정을 읽는 것이 더
고차원적인 방법이라 생각했고 일정 경지에 오르면 신의 뜻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그들의 믿음 때문에 아루가 족은 말보다 몸과 춤으
로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할애하며 시간을 보냈다.
몸짓만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 경지에 오르게 되면 그들은 민족의
이름인 ‘아루가’를 하사받을 수 있었고, 부족민들은 그 이름을 무엇보
다도 소중하게 여겼다. 룸바는 젊은 나이의 아루가의 이름을 받은 탁월한
재능의 소유자였고 그의 상응하는 자부심을 갖춘 긍지 높은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하이막스를 만난 후 그의 밑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을 때 부족
의 장로들은 모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춤을 받
친다는 것은 부족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부족 내에 젊은 층
의 지지를 받던 룸바가 터전을 버리고 하이막스에게로 가자 대부분의 젊
은이들이 그를 따라 나섰다. 장로들과 충돌을 하면서까지 부족에서 나온
룸바는 조금도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민족을 인정
해주고 임무를 맡길 수 있는 사내에게 자신의 춤을 받치기로 했다. 룸바
는 언제라도 화려한 춤을 출 수 있게 된 자신의 삶을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긍지를 버린 적이 없기에.
 룸바는 자신을 불사르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격렬한 몸짓으로 춤을 추
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불타오르면서도 결코 쇠몽둥이를 놓지 않았다. 그
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휘둘러지는 그의 팔과 다리가 전
부 하나의 몸짓이 되어 춤이 되었다. 끔찍한 불길 속에서 룸바는 미소 짓
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진정 최고의 춤이었다. 자기 자신을 모조리
불태우는 춤을 보며 로한은 힘을 거두었다.

 

 “지독한 놈.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로한은 무릎을 꿇었다. 아직은 쓰러지면 안 되는데……. 자신의 몸에 한
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로한은 자신의 몸이 강제수면에 빠질 거라는 걸
직감했다. 스캇과 매튜가 로한에게로 다가왔다.

 

 “괜찮아? 로한?”

 

 “칠칠맞은 것들아. 저런 건 좀 네들이 알아서 처리하라고.”

 

 매튜가 로한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나서지 않아도 우리가 해결했을 거야.”

 

 “염병.”

 

 물론 매튜가 로한이 이루어낸 업적을 저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그
럴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로한의 일격으로 성벽이 녹아내리고 있었고 단
참나무 기사단들은 전멸했다. 엘헤미아의 북벽이라 불리는 굳건한 성문도
세상에서 짝을 찾을 수 없는 열기에 볼품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압도적인
파괴력을 과시한 로한은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며 허물어졌다. 스캇이
로한을 들춰 업었다. 로한은 정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성 밖을 보았
다. 그들이 이 땅을 밟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며 쉬지 않고 달려
왔던가. 그들의 눈앞에 루이즈번의 설원이 보이고 있었다. 벅찬 기분을 느
낀 피트가 한발자국 내딛었다.

 

 “여러분, 나갑시다. 단장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

 

 빠밤! 빠밤-! 귀를 울리는 거대한 나팔소리가 피트의 목소리를 삼켰다.
모두들 불현듯 들려온 자극적인 소리에 흠칫하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
런 종류의 소리는 대체로 전장에서 사람들을 극도로 흥분시킬 때 사용된
다. 귀가 멍할 정도로 저릿저릿한 나팔소리는 요새 내부와 설원 전체에
울러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성벽 위에서 우렁찬 목소리
가 터져 나왔다.

 

 “하이막스! 하이막스 님이 오셨다!”

 

 충격적인 내용이다. 내가 그들을 지켜줘야 하는데……. 로한은 아득해지
는 정신을 붙잡으려 노력하다 결국 수면에 빠지고 말았다. 단원들 모두
할 말을 잃은 채 성벽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나팔 소리
보다 더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요새 전체가 진동하는 것 같
았다. 성벽 위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이 옵슬레이 전 지역을 울리고 있었
다. 그것은 종말의 사형선고다.

 

 “하이막스 님이 오셨다!”

 


==================================================================
 컨디션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음 주 토요일에 정상적으로 언데드 1부
마지막 화가 연재됩니다.

 

 토요일에 일이 있어서 하루 일찍 연재합니다.

?
  • profile
    윤주[尹主] 2012.11.17 05:58
    발렌타인도 언데드였군요;; 거기다 이번 마무리 소름끼쳤어요 ㅎ 나중에 다듬으실 계획이라고 하셨는데, 잘 손보면 진짜 전율이 흐를 명장면이 될 거 같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요새 많이 바쁘신 거 같은데, 무리하지 않고 건강하셨으면 좋겠네요. 서울도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ㅠ
  • profile
    yarsas 2012.11.17 20:32
    다음달 전체가 기말고사라서.. 이번 달로 1부를 완결 지을 생각입니다. 좀 쉬어야죠.

    소름끼쳤다는 말에 제가 다 소름이 돋는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다음 화에는 드디어 하이막스가 나오네요:-)
  • profile
    욀슨 2012.11.18 11:56
    엎친데 덮친 격이군요...... 이로서 1부도 클라이맥스로. 다음 한 주도 기다리느라 즐겁겠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profile
    yarsas 2012.11.18 17:19
    제가 이 정도로 꾸준히 연재할 수 있을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 profile
    역전 2012.11.18 17:36
    혹시 어디다 저장하고 복붙하시는 거면 현재까지 연재분량
    note012459@naver.com 여기로 보내주실 수 있나요 ㅠㅠ 이미 너무 멀리 온 거 같은데 재밌어
    보이고, 밤에 텍본정도로 폰으로 보면 딱일 거 같아서요 ㅠㅠ
  • profile
    yarsas 2012.11.18 20:08
    죄송합니다만 제 개인 자료를 남한테 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글로 실력을 갈고 닦아 출판을 해보는 게 꿈이며, 언데드도 지금은 모자라지만 언젠가는 퇴고를 거쳐 내보고 싶습니다.
    읽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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