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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AD] 5. 생과 사에 걸친 자 - 2   

 

 

 

 세이지는 동해안 지역에 번시라는,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항구
도시에서 태어났다. 거대 무역항인 유켈만 항구와 반 항구 사이에 존재하
는 이 소항구는 움푹 패인 만 형태의 해안 안에 숨어있어서 짠 내음이 잔
뜩 밴 베테랑 선원이 아니라면 그 존재유무의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런 지리적 환경 때문에 잘 알려지지 못한 번시는 그 이유에 걸맞게 작
고 음침하며 지저분한 항구다. 세이지는 그런 항구의 모습을 빼다 박은
모습으로 태어났다.
 작고 음침하며 지저분했다는 말이다.
 세이지의 천성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또래의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낙천적이며 순수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녀의 주변 환경은 그런 밝
은 모습을 시기했던 듯하다. 세이지의 모친은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창녀
였는데 외부고객이 드물 수밖에 없는 번시의 환경 때문에 벌이가 시원찮
았다. 그녀는 매번 비슷한 고객들을 접대하고 비슷한 수준의 돈을 벌며
자신의 인생을 허비했다. 가끔 덜 떨어진 졸부들이 오기도 했지만 더 젊
고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뺏기기 일쑤였다.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그녀
에게 실수로 생긴 세이지는 애물단지나 마찬가지였고, 자신의 직업상 세
이지의 존재는 당장 수입에 직결될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크면 돈
벌이로라도 써먹을 수 있을 텐데.’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세이지의 모친
은 세이지에게 동물이 가지는 모성애만큼의 애정도 주지 않으며 수시로
그녀를 학대했다. 그리고 접대해야 할 손님이 올 때는 그녀를 방구석 서
랍 안에다 가두고 절대로 소리를 내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태어날 때
부터 응당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한 세이지의 인생이 얼마나 고달팠을
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그것이 슬픈 것인지 모르며 자랐다. 그
녀의 주변에는 감정을 공유하며 관찰할 비교대상이 없었다. 세이지에게는
어머니의 방이 세상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언제부턴가 세이지는 손님이
온다는 것을 알면 스스로 서랍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동물처럼 길들
여진 세이지는 서랍장의 캄캄한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곤 바깥 소리에 집
중하며 매일매일을 보냈다. 자신에 삶의 대부분을 서랍장에서 보내게 된
세이지는 대략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면 자신이 서랍장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지도 파악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귀에 거슬리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 아저씨들이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부추겼고, 어머니는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꺼내며 더 큰 소리를 냈다. 희한한 것은 그런 시끄러운 소리와 이
상한 말들이 남자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마지막은
항상 남자들이 ‘아앗!’이나 ‘윽!’하는 소리를 내며 끝이 났다. 세이

지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귀에 거슬리는 소음을 들으며 잠을 청하곤 했
다. 매일이 그런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종말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와
평범한 일상을 깨부순다. 그날 역시 세이지는 서랍장 안에 있었고 여느
때처럼 어머니의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

 

 무언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남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욕하며 때
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펑펑 울며 악을 쓰고 있었고 남자는 더 큰 소리로
화를 냈다. 물건이 부셔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평상시에 듣지 못했던 끔찍
한 소리에 세이지는 겁에 질렸다. 듣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무서
워! 그녀의 절실한 기도가 닿은 것인지 소리는 급작스럽게 멎었다. 그리
고 정적이 다가왔다. 느닷없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완전한 정적
은 더 큰 공포가 되어 그녀의 숨을 조였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녀가 어머니에게 배운 건이라곤 서랍 속에 있을 때는 꼼짝도 하지 말
고 어떠한 소리도 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신은 어머니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어머니는 그녀가 배운 것을 잘 이행할 때마다 사탕 같은
군것질 거리들을 주곤 했다. 분명 조금 있으면 어머니가 서랍장을 열어줄
것이다. 어머니가 열어줄 것이다. 자신은 소리를 내면 안 된다. 조용히 있
으면 사탕을 먹을 수 있겠지. 어머니가 자신을 꺼내줄 것이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

 

 왜 서랍장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시간이 이미 많이 지난 것 같은데. 아
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일까? 얼마나 기다려
야 하는 것일까? 제발 누가 말 좀 해줘! 소리가, 소리가! 소리가 없는 세
상은 죽음보다 무서웠다.
 세이지가 보안관에게 발견 됐을 때는 사건이 끝나고 무려 3일이 지난 후
였다. 보안관은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다 죽은 창녀의 시체를 조사하다 세
이지를 발견했다. 그 끔찍한 정적 속에서 그녀가 무엇보다도 갈망했던 살
아있는 자의 소리였다. 그녀는 구원을 받은 것처럼 숨이 막히도록 울었다.
하지만 그 손길은 구원이 아니었다. 고아원 같은 시설은 기대할 수도 없
는 소항구에서 세이지의 존재는 처치곤란하기 그지없는 꼬맹이일 뿐이었
다. 남의 일에 더 깊게 관여하기 싫었던 보안관은 그녀를 외부에서 온 패
거리들에게 적당한 값을 주고 팔아 버렸다. 그녀의 종착지를 따로 서술할
필요가 있을까? 태어날 때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어린 영혼은 죽음의 바
다에 닻을 내렸다. 세이지는 죽음 속에서 간절히 기원했다. 어머니의 소리
리를 듣게 해달라고. 아니, 그 순간 그녀가 가장 바랬던 건 어머니의 존재
보다도 자신을 구원받게 할 단 하나의 소리였을 것이다. 그녀가 얻은 뛰
어난 청각능력은 아마도 그런 강한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녀는
다시 태어났고 그 누구보다 예민해진 청각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아니.
다시 듣게 되었다. 새롭게 펼쳐진 그녀의 삶에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이질적인 존재가 나타난 것도 그 때였다.

 

 ‘너의 능력은 정말 귀한 것이다. 세이지. 나를 도와줄 수 있겠니?’

 

 세이지가 들은 것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
리는 선고였다. 충격 속에서 세이지는 그의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생각했
다. 그녀는 그가 만들어내는 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그가 만들어내는 소리
는……

 

 - 휘이익!

 

 화살이 날아와 세이지의 어깨에 꽂혔다. 세이지는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
졌다. 자신의 뛰어난 청각은 화살이 날아온다는 것도, 그 방향이 어디라는
것도 알려주었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녀의 몸으
론 도저히 빠른 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스캇이 포효하며 늑대인간으로
변신했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땅에 적갈색 털이 무성한 늑대가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표적이다. 스캇은 망설임 없임 그녀를
품에 안았다. 두 번째 화살 무더기가 스캇의 등 뒤로 꽂혔다.

 

 - 푸부부북!

 

 붉은 선혈이 눈밭위로 떨어졌다. 하얀 세상에 이질적인 색깔을 남긴 그
의 피는 파괴의 상징처럼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스캇은 신음을 흘리면서
도 능숙한 동작으로 세이지의 몸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세이지의 몸이
크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녀 역시 언데드다. 자신의 완력으로 순식간에
뽑아버리면 상처는 금방 아물 것이기에 시간을 더 지체할 수는 없었다.
조만간 세 번째 화살이 발사될 것이다. 자신의 몸에 박힌 화살 때문에 동
작이 여의치 않았던 스캇을 린이 구원해주었다.

 

 “스캇 오른쪽으로 달려! 안전한 장소로 가면 피트가 화살을 뽑아줄 거
야!”

 

 린이 자신의 염력을 이용해 매튜의 근력을 강화시켰다. 매튜의 근육이
크게 부풀었다. 린이 앙칼지게 소리쳤다.

 

 “막아! 지금은 네 쓸모없는 근육이 필요할 때야!”

 

 매튜는 말도 안 되는 린의 말에 대꾸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다.
그는 거친 기합소리를 내며 망치를 크게 휘둘렀다. 용의 아가리가 휘둘러
지자 마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거대한 풍압이 일어났다. 날아오던 화살
의 기세를 풍압만으로 꺽은 매튜의 업적은 실로 경이적인 것이었다. 화살
을 쏜 무리들이 크게 주춤했다. 매튜는 그 자신이 용이 된 것 마냥 거칠
게 소리쳤다.

 

 “우리가 무섭나? 숨어 있지 말고 나와라!”

 

 물론 상대방이 매튜의 부탁을 호의적으로 검토해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화살의 방향을 통해 적들의 위치는 이미 알려진 것이나 다름없었고, 기세
가 끊긴 잠깐의 틈을 로한은 놓치지 않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도약하
며 빠른 속도로 적들에게 돌진하는 로한의 모습은 매튜 이상의 묘기였고
그 속도 때문에 적들은 화살을 꺼내지도 못했다. 로한의 칼에 화염이 일
렁이기 시작했다. 적들이 로한의 공격에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칼을
뽑으려 드는 순간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들은 잠깐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공중에서 허우적거렸다. 로한이 일으킨 일
격으로 대열이 흐트러지자 그는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그들을 몰아붙였
다. 하지만 로한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 때문에 급히 나무 뒤로 몸
을 숨겨야 했다.

 

 ‘칫. 나를 쏘다가 동료가 맞아도 괜찮다는 건가? 생각보다 훨씬 거칠군.’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별벌레 용병단은 처음부터 현월단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수많은 무뢰배들을 상대해 온 그들은 천부적일 정도로 감정을 숨
기는 법에 능숙했고 그랬기에 단장조차도 적들의 적의를 눈치 채지 못했
다. 그 정도로 단련 된 전사들이 얼마나 강할지는 뻔하지 않은가. 그들은
자신들이 공격하기 좋은 위치로 현월단을 유인했고 적당한 포위진이 형성
되자 그대로 공격을 개시했다. 세이지와 스캇의 탐지 능력이 없었다면 깨
끗하게 제압당할 뻔한 일촉즉발에 상황이었다.
 로한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렇다면 왜 저 커피 같은 형제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 세이지나 스캇이
눈치 채지 못한 것일까? 적들이 갑자기 이렇게 많이 나타난 것도 그렇다.
이 정도의 숫자가 모일 때까지 알아채는 게 왜 이렇게 늦은 걸까. 조금만
늦었다면 포위진을 뚫고 나오기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로한은 몸을 숙
이며 그들에게 접근해 칼을 휘둘렀다. 파도가 아닌가싶은 그의 기세에 적
들이 썰려나갔다. 이미 용병단과의 싸움은 두 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로
한은 적들의 정체가 사실 언데드인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이들이 이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공격과
추적을 해왔다는 것은 쫓고 있는 부대가 하나가 아니라는 의미다. 최소
두 부대 이상의 병력이 번갈아가며 추격해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로한
은 단장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이 거지 같은 땅은 진짜
거지같다. 사방이 적의를 가지고 자신들을 조여 오는 것 같았다. 로한은
날아오는 화살 때문에 다시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몇 개의 화살은 로한
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맞았다. 로한은 참 지독한 것들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반대편을 쳐다보았다. 반대쪽에서는 매튜와 린이 분전하고 있었고
스캇이 피트와 세이지를 데리고 북동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로한이 고
함을 질렀다.

 

 “매튜! 린! 적당히 거리를 보면서 피트 쪽으로 가! 여기서 싸우면서 시
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최대한 대형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돌파한다!”

 

 “알고 있어!”

 

 격한 전투 속에서 로한은 단장을 생각했다. 그의 부재가 얼마나 큰 것인
지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로한. 내가 지금 쓰는 능력은 하루에 한 번 밖에 쓸 수 없는 능력이다.
최소 24시간 내에는 못 돌아온다. 단을 구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
이니 그때까지 단원들의 목숨은 네가 지켜야 한다. 내가 일러준 대로 행
동하면 우리는 분명 겨울의 땅을 밟을 수 있다.’

 

 단장, 지금 두 시간 버티는 것도 죽을 맛이라고. 로한은 수도에서 싸웠던
일이 재현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 땅의 주민들은 듣던 것 이상으
로 거칠었다. 로한은 다시 한 번 큰 폭발을 일으키며 적들의 진형을 부셔
트렸다. 사망자제조기의 기세로 적을 쓸어나가자 전멸은 순식간이었다. 그
때 뒤쪽에서 기습공격이 들어왔다. 하지만 오랜 전투 경험으로 굳어진 로
한의 본능은 그 공격을 가만히 맞게 놔두지 않았다. 로한은 걷는 것과 비
슷한 동작만으로도 기습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본좌의 칼을 피하다니! 보이는 거와 달리 제법이구려!”

 

 ……로한은 칼을 잡고 있는 손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에스프레소였
다. 젠장,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는 작명법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는 공격
방식이야! 반칙이라고!

 

 “본인의 칼을 피할 수 있을까?”

 

 넌 더 싫어! 형과 한 세트인 아메리카노의 공격이 이어졌다. 나무랄 데
없는 몸놀림과 검술이었다. 다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로한은 아메리카노
의 칼도 어렵지 않게 피하며 그의 얼굴에다 불주먹을 꽂아주었다.

 

 “아아아아악!”“아메리카노!”

 

 아메리카노의 얼굴이 당장에 화상으로 일그러지며 쓰러졌다. 로한은 에
스프레소의 동작이 눈에 띄게 흐트러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로한이 발
로 에스프레소의 다리를 걷어차서 자세를 무너뜨리고 목을 베는 것은 기
지개를 피는 것만큼이나 여유로워 보였다. 넘버 3의 실력이 어떤 것인지
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형님!”

 

 로한이 그의 형을 죽이는 동안 아메리카노는 이미 일어서 있었다. 그의
눈빛이 로한의 불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타오르고 있었다.

 

 “형님을 죽이다니!”

 

 “우리를 죽이려 드는데 너희를 죽이면 안 되나? 남한테 행하는 것을 자
신한테는 행할 수 없다고 떼를 쓰는 철부지였나?”

 

 아메리카노가 분노에 차 소리쳤다.

 

 “그럴 수 있을 때 충분히 거만을 떨어라! 조금 있으면 칼립소 님이 오
신다!”

 

 로한은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하이막스의 다섯 그루 어쩌고 하는 놈 말이냐?”

 

 옵슬레이 출신인 매튜가 알려준 바는 이렇다. 옵슬레이에도 수도의 대장
군과 십인장 같은 존재들이 있었다. 옵슬레이의 대장군이라 할 수 있는
하이막스, 그리고 그의 곁을 보좌하는 5명의 남자가 바로 십인장 격이라
할 수 있었는데 춘신의 무장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작명법이다. 옵슬레
이의 5구역을 지키는 5명의 남자-다섯 그루의 나무들. 이 지역의 나무는
칼립소인 모양이다. 별벌레 용병단의 수장인 커피 형제들이 꽤나 훌륭한
수준의 실력을 가졌음에도 저런 발언을 한다는 것은 나무들의 실력이 엄
청나다는 확실한 보증이다. 로한은 시간을 더 끌어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로한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이지. 앞 쪽에도 적이 있나?”

 

 엘로린의 텔레파시가 날아왔다.

 

 -있어. 우측으로 틀어서 도망가야 할 것 같아.

 

 “좋아. 브라말로카 요새까지 빨리 진격한다.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하이
막스가 오기 전에 우리는 이 지역을 돌파한다!”

 

 국경 전체를 막고 있는 브라말로카 요새는 엘헤미아 내에서 가장 긴 길
이를 자랑하는 요새다. 펠튼 항구로 도망쳤다는 소식을 접한 하이막스는
분명 요새의 서쪽 부분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다. 단장은 하루 종일 달려
도 기동력이 줄어들지 않는 언데드의 이점을 이용해 순식간에 브라말로카
요새 중앙으로 돌진해 그를 따돌리자는 계획을 세웠다. 이 위험한 땅에서
단 하루 만에 탈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단, 실패하면 반드시 죽게 되
는 도박이었다. 하루 종일 능력을 쏟아 붓게 되면 언데드는 수면시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힘을 아끼며 전진하다간 사방에 적들과 싸우
며 시간을 낭비해 마찬가지로 잡힐 수밖에 없다. 이 도박에 현월단의 생
사가 걸려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힘을 아
껴둘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브라말로카 요새의 정예병들을 뚫고 지나가
야 하는 것이다. 로한은 주저 없이 아메리카노마저 베어 버렸다. 떨어져
나가는 그의 목을 보며 로한은 짧게 애도했다.

 

 “그래, 너희들 말대로 인생의 쓴맛이 가득한 곳이군.”

 

 

 


 튜더의 상황실에 십인장들이 모두 집결해 있었다. 악살라스는 그들의 모
습을 보며 고개를 두어 번 가로저었다.

 

 “북방정벌 이후 십인장들이 이렇게 자주 모이는 건 처음이로군. 참 기
묘한 시대야.”

 

 루이나 역시 수도 치안을 기사단에게 맡겨둔 채 참석해 있었다. 그녀는
튜더에게 질문했다.

 

 “인실롭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보좌관.”

 

 튜더는 여자 인실롭처럼 보이는 루이나를 잠깐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동
계급인 그녀에게 하대를 듣는 것이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지만 루이나는
너무 어리다. 건방진 것 같으니. 하지만 튜더는 대장군이 있는 위치에서
엄격하게 자신의 감정을 감추었다.

 

 “그렇다네. 보고에 따르면 루더와 인실롭은 서해안에서도 현월단을 잡
는데 실패한 모양이네. 지금쯤이면 옵슬레이에 도착해 있겠군.”

 

 루이나는 심통난 표정을 짓고는 다리를 꼬며 자리에 앉았다. 갑옷을 벗
고 나타난 그녀의 몸매는 조각처럼 아름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튜더
는 날씬하게 잘 빠진 그녀의 다리를 보는 대신 대장군을 쳐다보았다.

 

 “현월단이 옵슬레이 땅을 밟았다면 하이막스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이번에야말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자리는 예측을 듣고자 모인 게 아니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은
그만하게. 튜더.”

 

 튜더는 할 말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리를 비키며 루
즈라벤을 쳐다보았다. 루즈라벤이 튜더 대신 상황실 중간에 서서 목소리
를 좀 가다듬었다.

 

 “이 자리에 대장군 각하와 십인장들을 부른 이유는 언데드에 관해서 말
씀드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언데드는 이제 세상 밖에 나오기 시작했고
이제는 어둠 속의 가려진 존재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있을
연구에 앞서 보다 더 정확하게 언데드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이 자리의 귀
한 분들을 모았습니다. 우선 시간 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겠습니다.”

 

 적당한 예의와 적당한 박수가 오갔다.

 

 “오큐벨라스가 고대국가 옐마론에서부터 내려온 것은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신족이 다뤘던 뛰어난 능력과 연구의 결정체인 오큐벨라스는 이
전부터 십인장들에게 뛰어난 능력을 선사해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점
을 사람에게 사용해 언데드를 만들어 내고자 한 것은 대장군님의 발상이
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10년 동안 보좌관과 제가 이 프로젝트를 맡아 연
구해 왔습니다. 에둘러 말하지 않겠습니다. 언데드는 사람의 생명을 가지
고 노는 기술입니다. 보다 자세한 메커니즘은 설명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만, 간략하게 요약해보겠습니다. 하나의 언데드를 만드는데 필요한 인간의
수는 10명이 아니면 20명입니다.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지하관리실에는
전문적으로 언데드를 생산할 수 있는 실험실이 있습니다. 실험실 바닥에
는 옐마론의 서적을 연구해 완성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고, 그 문양 각 꼭
짓점 안에 10명의 사람을 배치합니다. 그 다음 문양 정중앙에 있는 구멍
에 오큐벨라스를 박고 실험에 쓰이는 인원 전부의 피를 한데 섞어 뿌리면
의식이 발동됩니다. 말로 표현하면 참 쉽지만 그다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희들 연구에 대부분의 시간은 옐마론의 문양을 연구하는데 쓰였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되면 오큐벨라스의 힘이 증폭되며 인간의 육과 영혼은 그
힘을 견디지 못합니다. 실험체들은 반드시 죽게 됩니다.”

 

 담담한 말이었지만 실로 소름끼치는 말이다.

 

 “그 때 사망한 사람들의 영혼이 보이는 놀라운 현상이 일어납니다. 몸
에서 붉은 기운 같은 것이 뽑혀져 나오는데 저는 그것을 사람의 영혼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망자들의 영혼이 한데 섞여 붉은색 결정체
가 됩니다. 저는 그것을 핵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핵은 스스
로 사망자 중의 한 명을 선택합니다. 마치 저희들의 무기가 선택되듯이
말이지요. 만약 선택이 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 10명을 집어넣습니다. 이
제껏 20명을 집어넣어서 실패한 사례는 없습니다. 그 핵이 사람의 심장으
로 스며드는 순간 언데드가 탄생합니다. 그 의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저희
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선택은 오큐벨라스가 하며 아직까
지도 어떤 이가 선택 되는지에 대한 뚜렷한 이유는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언데드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는 수도테러사건으
로도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루즈라벤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
던 이야기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듣게 되자 충격은 더 크게 다가왔다.

 “이쯤설명하면 언데드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 아셨을 겁니다. 자, 그
럼 제가 이 자리에 여러분을 모은 진짜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언
데드 프로젝트에서 오큐벨라스는 빠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저희들은
그것을 도난당했으며 어쩌면 현월단은 루이즈번에서 언데드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할지도 모릅니다. 대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들이 오큐벨라스를
훔쳤는지는 아직도 불확실하지만, 저는 그것이 못 돌아올 수도 있다는 가
정 하에 새로운 실험을 계획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0년 동안의 연구자
료를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저는 성공할 것을
자신하고 있습니다.”

 

 튜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군 역시 루즈라벤의 마지막 말을 기다렸다.

 

 “언데드의 몸속에 있는 핵. 작지만 분명 오큐벨라스와 똑같은 성질의
것입니다. 저는 인간이 아닌 언데드를 이용해 보다 강한 언데드를 만들어
낼 계획에 착수할 것이며 대장군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넘버 10이하에 거
의 쓸모없었던 존재들을 서열 10위권에 쏟아 부어 보다 강한 소수 정예들
을 만들어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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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데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밝혀졌습니다. 1부가 마무리 되어감에
따라 설명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서술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렇
다 해도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1부를 끝낼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읽은 이로 하여금 답을 알려주지 않고 너무 긴 시간을 끌어가는 거에 대
해 사실 흥미를 잃을까봐 걱정되긴 합니다. 그래도 2부가 시작되면 그 모
든 의문점이 풀어질 거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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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주[尹主] 2012.10.28 08:41
    의문점은 많이 있지만, 대답이 시원스럽게 내려지지 않아서 흥미를 잃어가는 단계는 아닌 거 같아요.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형태로 해답이 주어지리라 기대합니다 ㅎ

    이건 제 생각이지만 현월단이 습격받는 장면에서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란 문장은 빼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거 같네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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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rsas 2012.10.28 10:59
    일단은 스토리 전개와 분량에 중점을 두고 쓰고 있습니다. 나중에 1부 완성되면 대대적인 수정이 들어갈테니 그때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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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욀슨 2012.10.28 22:59
    사람을 써서 만드는 것까지는 짐작했는데, 저런 거였을 줄은 몰랐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머지 않아 1부도 완결이니, 그때까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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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rsas 2012.10.29 08:26
    1부 마무리까지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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