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28 00:19

[UNDEAD] 3. 되찾은 미소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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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AD] 3. 되찾은 미소 - 5    

 

 

 

 인실롭 일행이 펠튼 항구 앞에 나타나자 문지기들은 그들을 막으려 했
다. 인실롭은 주저 없이 십인장패(牌)를 들어올렸다. 평소에 볼 일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평생에 볼 일이 없는 십인장패를 본 문지기들은 기겁했다.

 

 “십인장 인실롭이다! 비켜라!”

 

 문지기들이 황급히 몸을 틀었고 인실롭 일행은 난입의 속도로 펠튼 항구
에 들어왔다. 문지기를 족쳐봐야 아무런 득이 될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거
라 판단한 인실롭은 이미 얼어붙을 대로 얼어버린 그들을 더 이상 괴롭히
지 않았다. 굳이 질문하지 않아도 도시 분위기는 혼란스러워 보였고 기사
단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인실롭은 눈앞에 보이는
기사단장에게로 달려갔다. 십인장패를 들고 있는 인실롭을 알아본 발보프
는 목이 터져라 경례를 올렸다.

 

 “루더 소속 제 5기사단장 발보프입니다! 십인장 인실롭 님을 뵙습니다!”

 

 “수고하는군. 지금 꽤나 바빠 보이는데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겠나?”

 

 “예! 멜버크 가에 웬 괴한들이 침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해서 출동
중이었습니다.”

 

 “괴한?”

 

 “최초 보고에 의하면 건물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고 합니다. 멜버크
가에도 사병이 있으나 지원요청이 온 걸 보면 만만치 않은 녀석들인 것
같습니다.”

 

 그 때 하늘에서 리더스카이가 내려왔다. 대로 한 가운데 거대한 새가 착
지하자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물러섰다. 잘 다듬어진 그의 비행은 정말
조류라고 해도 믿을 것만 같았다. 리더스카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의
식하지 않은 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발보프를 더불어 모두가 웅성
거리기 시작했으나 인실롭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보고를 하려면
조류의 모습으로는 대답할 수가 없다.

 

 “인실롭 님. 건물이 불타오르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들이 분명한 것 같
습니다.”

 

 “좋아. 그들이 어디로 도주하는지 보고 다시 알려줘. 우리는 추격을 개
시한다!”

 

 리더스카이가 날아오르자 정리하기 좋아하는 클라보가 의문을 제기했다.

 

 “아직 떠나지 못했군요. 이제 와서 배를 구하려 해봐야 늦었을 테니 손
쉽게 잡을 수 있겠군요. 무슨 일로 난동을 부린 걸까요?”

 

 “그 모든 게 계획일지도 모른다. 방심은 금물이야.”

 

 인실롭은 칼을 뽑아들었다.

 

 “발보프라 했나, 그대? 출항금지령은 떨어져 있겠지?”

 

 리더스카이를 보느라 경직되어 있던 발보프는 인실롭의 질문에 거의 본
능적으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배는 철저히 출입을 단속하고 있고
엄중한 절차를 걸쳐야만 출항허가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수상한 선박은 없었겠지?”

 

 “지금까진 없었습니다.”

 

 “좋아! 기사단을 이용해 도주로를 차단해주게! 발이 빠른 그대들이니
신속해야 하네! 그리고 십인장 루더에게 나 인실롭이 왔다고 보고하고 협
조를 요청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사고를 칠건데 시민들 좀 수습해주게.”

 

 “예?”

 

 현장과 상황실의 해묵은 대립이 이곳에서도 일어났다. 전장에서 직접 무
기를 들고 싸우는 병사와 후방에 안전한 지휘소에서 전략을 구상하는 지
휘관은 이유 불문 전쟁터에서 필수불가결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이가 좋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서로의 입장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완전한 이해’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것이 가능했다
면 행동대원과 지휘요원이 대립하기에 앞서 전쟁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실롭과 튜더의 사이가 안 좋은 건 인
실롭이 ‘자잘한 것을 신경 쓰다가는 현월단을 놓치고 말테니 그들을 붙
잡기 위해선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고 행동해야 하고, 어차피 
언데드는 이제 공식적으로 표면에 올라오기 시작했으니 수습은 보좌관한
테 맡기면 되지.’ 라고 판단하는 이런 사고를 치기 때문이다.
 결심한 것을 미루지 않는 단호한 성격인 그는 즉시 클라보에게 신호를
내렸고 클라보 역시 주저 없이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 그들을 건물 지붕으
로 끌어올렸다. 사람들은 괴물들의 등장에 비명을 지르며 혼란을 표출했
다. 기사단들도 머리가 어지럽긴 마찬가지였다. 발보프도 입을 쩍 벌렸지
만 이내 그의 직책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즉시 시민들을 수습하기 시작했
다. 시민들의 동요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어느 누구라도 사람이 새가 되고
물이 되는 현실에 신의 역사가 없었다고 생각하긴 힘들 것이다. 발보프는
순식간에 도시를 혼란에 빠뜨리는 인실롭이 원망스러웠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직위에 대항할 수는 없었다. 물론 튜더라 해도 어쩔 수는
없었을 것이다.

 

 “좋아, 기합 좀 넣었으니 한판 거하게 벌려보자고.”

 

 시끄럽기 그지없는 도심 속에서 인실롭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애초
에 이미 벌려진 판, 얼마나 개판이 되던 이기는 자가 법이다. 높은 곳에
올라서자 시력이 좋은 클라보는 금방 리더스카이를 찾아내었다. 딱히 시
력이 좋지 않아도 도심 위를 날아다니는 거대한 새는 쉽게 눈에 띄었다.
모두들 리더스카이의 비행궤적을 따라 신속한 추격을 개시했다. 건물 지
붕을 발판 삼아 신속하게 지붕과 지붕 위를 건너뛰다 구조상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곳은 클라보의 힘을 빌어 넘었다. 리더스카이의 비행이 부럽지
않은 속도였다.

 

 “리더스카이가 포구 쪽으로 날아가는군요! 그들을 찾은 모양일까요?”

 

 몬반은 코웃음을 쳤다.

 

 “흥! 도적단이니 배를 탈취해서라도 떠나겠다는 심보인가? 포격을 면치
못할 텐데?”

 

 그 때 리더스카이의 비행궤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아래로 강하한다 싶더
니 급속도로 방향을 돌려 다시 자신들에게로 날아오고 있었다. 인실롭은
불안감을 느꼈다.

 

 ‘설마?’

 

 그들은 이동속도를 조금 늦췄고 리더스카이 역시 속도를 늦추며 하강해
왔다. 트로고스라 해도 도시 건물 사이사이를 저런 식으로 비행하지는 못
할 터였다. 몬반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멋진걸.”

 

 리더스카이는 공중제비를 돌며 그들 앞에 착지했고 발락은 그런 모습을
보며 ‘짜식이 벼락을 덜 맞았나.’라는 생각을 했다. 인실롭은 리더스카
이를 재촉했다.

 

 “왜 돌아온 거지?”

 

 “죵말 이상합니다. 인실롭 님.”

 

 “뭐가?”

 

 “도시 위를 쥬욱 돌아봤는데 그들이 완죤히 사라죳습니다.”

 

 “숨어버린 건가?”

 

 “혹시나 싶어 바다 쬭으로 가보았는데 배 한 척이 출항하고 있었습니다.”

 

 인실롭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확인해 보았나?”

 

 “깃발을 보니 르쉬프 상단의 선박이었습니다. 그것도 상쥬가 직접 타고
있는 배예요.”

 

 인실롭은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리 까다로운 절차라도 상단의 상주가 타고 있는 배라면 얼마든지
출항이 가능하지. 특별히 문제될 소지가 없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출항하
기 가장 쉬운 선박이 상주의 선박이다.”

 

 클라보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신원 파악 정도는 할 거 아니에요? 그들이 공간이동으로 배를
탄 것만 아니라면 그 배에는 그들이 안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거 아니
에요?”

 

 “상주가 타고 있는 배라면 호위병들의 수준도 제법 높을 거다. 만약 수
상한 녀석들이 갑자기 탔다면 난동이 일어났을 텐데, 혹시 뭐 수상한 낌
새는 없었나?”

 

 “죤혀요.”

 

 인실롭은 턱을 긁적이다가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다.

 

 “리더스카이! 그대는 항구 전체를 다시 한 번 순찰해 봐. 우리는 포구
로 간다.”

 

 

 


 현월단이 수도 엘파하를 습격했을 때 보여줬던 십인장들의 신속한 결정
과 행동력은 익히 알려져 있는 바, 생각하는 말의 가치를 증명하는 사례
였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도 십인장의 위엄은 그 가치를 발하고 있었다.
십인장 중에서 악살라스와 더불어 노장에 속하는 루더는 수도 습격에 대
한 보고를 받은 후부터 펠튼 항구에 직접 내려와 자유의 기사단들을 지휘
하고 있었다. 엘헤미아에 십인장들이 군림한 이래 매번 이런 탁월한 기량
과 수완을 증명해 보였기 때문에 여러 번 있었던 귀족원들의 반대를 잠재
울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루더는 인품 면에서도 평판이 좋은 인물이었
다. 가장 겸손한 십인장으로 손꼽히는 루더가 그의 충실한 오른팔인 1기
사단장 알로에와 함께 포구를 돌아다니는 모습은 포구를 지키고 있던 수
많은 이들에게 경외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소문은 발보다 빠르다 했던가.
정확한 진실이 퍼지기도 전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수도 엘파하가 습격당했
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고 지금 루더의 등장은 그들의 상상력을 더
욱 부추기고 있었다. 웬만한 사태가 아니고서야 십인장인 루더가 직접 포
구에 나와 순찰을 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루더는 주름살과 더불어
그의 외관을 더욱 노련해 보이게 만드는 긴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흠, 멜버크 가문에 습격이 있었다고……. 직접 가보는 편이 좋겠구나.”

 

 여성 기사단장 알로에가 고개를 갸웃했다.

 

 “만약에 그들이 수도를 습격했던 테러리스트라면 항구로 오지 않겠습니
까? 그들이 그 강력한 언데드라면 항구를 직접 지키시는 편이 낫지 않으
시겠습니까?”

 

 알로에는 루더가 가장 신임하는 기사단장이었고 그렇기에 그녀에게 십인
장이 해결해야할 상당수의 대소사들 역시 일임하고 있었다. 루이나처럼 
여성 십인장이 되는 것이 목표인 알로에는 재능 면에서 뛰어난 두각을 나
타내며 루더의 눈에 들었고 현재는 딸처럼 지도받고 있었다. 루더는 알로
에를 정말 친딸처럼 여겼고 알로에 역시 그를 친아버지처럼 따랐다. 주변
에서 루더가 노망이 나서 젊은 여인에게 반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를 낳고 있는 점만 뺀다면 그들은 제법 잘 어울리는 부녀였다. 그런 확고
한 신뢰가 있었기에 일개 기사단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언데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항구에는 이미 5개의 기사단을 배치해두었으니, 나는 자유의 기사단과
알로에 너를 믿고 있단다. 알겠느냐? 항구에서 배를 탈취하려 든다면 알
로에 네가 막도록 하여라. 멜버크 가문은 엄연한 귀족 가문. 가문이 박살
났다는데 십인장인 내가 얼굴 한번이라도 비춰야 하지 않겠느냐.”

 

 “소녀, 책임지고 임무 완수하겠습니다.”

 

 루더는 흡족한 표정으로 알로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멜버크 가문 방
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마 다른 십인장들은 귀찮아서라도 그런 일
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와 인품을 중시하는 루더가 하는 만큼 다른
십인장들이 행동했다면 아마 그들을 반대하는 세력의 절반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때 보고병이 신속하게 뛰어왔다.

 

 “루더 님. 현재 펠튼 항구에 동(同) 계급인 인실롭 님이 들어왔습니다.”

 

 루더는 쓰다듬던 턱수염을 잔뜩 꼬았다.

 

 “그가 드디어 이곳에 도착했는가."

 

 인실롭은 십인장 내에서도 강경하기로 소문이 나있는 인물이어서 루더는
그가 온 것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큰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인물
이었다. 엄연히 이 구역의 담당자는 자신이었으나 힘으로 그를 억누를 자
신이 없었다.

 

 "게다가 괴이한 능력을 쓰는 자들과 같이 포구를 향해 오고 있습니다."

 

 "괴이한 능력?"

 

 "새로 변신하는 인간과 물로 변신하는 인간 외에도 2명의 인물이 더 있
으나 능력은 알 수 없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정의와 자유의 이름으로 맹세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루더는 빙긋 웃었다.

 

 "자네가 미치지 않았음을 알고 있네. 물러가도 좋네."

 

 물러가는 보고병을 보던 알로에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언데드를 대놓고 드러내는 군요. 소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보좌관도 다 생각이 있겠지. 인실롭의 독단이라면 이거 파급효과 엄청
나겠구만. 알로에. 인실롭의 성격은 내가 잘 아니 그가 무례하게 나오더라
도 가만히 있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보고병이 사라진지 체 얼마 지나지 않아 인실롭은 루더가 있는 포구에
도착했다. 인실롭은 루더를 보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랜만이군. 십인장 루더."

 

 알로에는 대번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동 계급이라 할지라도 중년에
나이에 지나지 않는 인실롭이 이렇게 대놓고 하대를 할 줄은 몰랐다. 하
지만 루더는 개의치 않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구려. 오랜만이오. 십인장 인실롭."

 

 "지금 바쁘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어. 방금 출항한 배는 직접 검사한 건
가?"

 

 루더는 이미 멀어지고 있는 르쉬프 상단의 배를 한번 쳐다보았다.

 

 "르쉬프 상단의 배 말인가? 물론이오. 상주가 직접 타는 배이니 만큼 막
을 수 없다는 거 잘 알지 않소. 배에 탄 인원 모두가 르쉬프 상단 소속이
었소."

 

 인실롭은 잔뜩 인상을 구겼다.

 

 "제길, 그럼 어디로 숨어들어갔다는 거지. 급하니만큼 당연히 배를 탔을
거라 생각했는데."

 

 "허허, 성격 여전하구려. 수도에 있는 당신들이야 잘 모를 테지만 르쉬프
상단은 2년 사이에 크게 성장한 신생 상단이오. 상주 수완이 좋다고 소문
이 자자하오. 나도 몇 번 그들이 판매하는 고가의 물건을 본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고, 상단들 내에서는 벌써 무시 못 할 정도의 거물이라오. 상주
가 직접 출항하는 배이니 분명히 또 큰 건이 있는 모양이지. 크레센트
(Crescent) 호가 뜨면 보물선이 뜬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이니. 허허."

 

 루더의 말을 반쯤 흘려듣고 있던 인실롭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다시 한 번 말해봐."

 

 "응, 뭐라고 했소?"

 

 "그 선박명이 뭐냐고!"

 

 인실롭은 거의 루더의 멱살을 잡을 기세였고 알로에 역시 반쯤 칼을 뽑
은 상태였다. 그러나 루더 역시 그 순간 자신이 놓치고 있던 부분을 깨닫
고 충격을 먹고 말았다.

 

 "크레센트 호……. 현월단!"

 

 

 


 르쉬프 상단의 상주가 타는 배는 대량의 물건을 운송해야 하는 거대 자
유무역선과 달리 소형 범선이었다. 르쉬프 상단에서 최고의 속도를 자랑
하는 쾌속선 크레센트 호는 4개의 돛대에 달려있는 돛을 이용해 빠른 속
도로 만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르쉬프 상단뿐만 아니라 펠튼 항구 내에
어떠한 배도 크레센트 호가 내는 속력을 따라잡지 못할 만큼 그 배는 최
신형이었고, 그것은 르쉬프 상단이 가진 어마어마한 부를 의미하는 것이
다. 상단으로 치면 2년 정도에 짧은 역사를 가진 걸음마 상단인 르쉬프가
어떻게 그런 막대한 부를 축적했을까? 그것은 그들이 취급하는 항목이 값
을 매기기 어려울 만큼의 고가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상단에서
구하기도 힘든 물품을 르쉬프 상단은 어떻게 독점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그 상주에 있었다.
 쾌속으로 나아가는 배에 선미에 서서 아름다운 노을을 보는 르쉬프 상단
의 상주는 유유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하얀 장갑을 끼고 검은 정복
을 빼입은 그의 모습은 수려하면서도 강인해 보였다. 현월단의 리더이자
르쉬프 상단의 상주인 알자로를 쳐다보던 로한은 금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허탈하게 웃었다.

 

 "놀랠 노자로군. 피트만 빼고 우리 모두를 속이다니, 너무한 거 아냐?"

 

 "그래! 너무했어! 설마 르쉬프 상단의 상주가 단장이었다니. 상상도 못
했어."

 

 매튜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외쳤고 린이 그의 말을 받았다.

 

 "정말, 어쩜! 단장, 나 진짜 자꾸 반하게 만들면 어떡하겠단 거야? 강한
데다 재력까지 갖춘 남자는 정말이지 환상이라고!"

 

 “그럼 우리가 저택에 있을 때 단장은 출항절차를 밟고 있던 거야?”

 

 세이지의 질문에 피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한마디씩 떠들
때 스캇은 배 위에 묵묵히 앉아 단장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
은 무언의 존경이었다. 단장은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는 뒤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단원 전부를 한명씩 죽 살펴보았다. 그의 붉은 눈이 노을과 함
께 불타오르고 있었다.

 

 "말하지 않았나. 날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린은 감탄하며 단장을 쳐다보았고, 다른 단원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
다. 피트가 웃으며 설명했다.

 

 "단장과 함께 이 계획을 세울 때 저는 반드시 상단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저희가 훔친 수많은 물건들을 세탁해 팔면서 저희들의 계
획에 필요한 자금을 얻는 동시에 이 날을 위한 대비책이었죠."

 

 “너의 노고에 특히 감사한다. 피트. 네가 아니었다면 이 계획은 결코 성
공할 수 없었을 거다.”

 

 성냥개비로 성을 쌓는 일을 마치 종이접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 피트였
지만 단원들 모두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손을 썼는지 짐
작할 수 있었다. 엘로린이 질문했다.

 

 "그럼, 이제 르쉬프 상단은 없어지는 건가요?"

 

 단장은 가볍게 조소했다.

 

 "천만에. 이 배의 출항과 함께 서류 절차는 모두 끝났어. 나대신 새로운
허수아비 상주가 르쉬프 상단을 이끌어가지. 법적으로도 르쉬프 상단을
어떻게 할 수 없어. 상주가 바뀌었으니까. 이제 판매품목에 대한 검사가
까다로워져서 예전만큼 돈을 벌어들이지는 못하겠지만 어차피 이미 계획
에 필요한 만큼의 자금은 충분히 모았다."

 

 모두들 전율을 느끼며 단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단장의 얼굴에는 자신
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기분은 좀 어떤가? 엘로린."

 

 "상쾌하네요."

 

 "바다가 대답 해주던가?"

 

 "예?"

 

 "바다는 아무런 대답이 없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말이야. 하지만 대부
분은 답을 얻어 돌아가. 놀랍지 않나?"

 

 단장은 여유로운 자세로 배 위에 놓여있는 덱체어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
았다.

 

 “지금 그 감정을 잊지 마라. 엘로린.”

 

 엘로린은 가슴 벅찬 전율 속에 고개를 끄덕였다. 단장은 피식 웃었다. 그
의 음색이 파도소리와 함께 깊은 울림이 되어 단원들에게 전해졌다.

 

 "우리들의 앞에 걸림돌은 없다."

 

 단장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 손으로 쏠렸다. 내밀
었던 손으로 주먹을 꽉 쥔 단장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세상을 훔친다."

 


==================================================================
 챕터 끝!

 

 저는 이상하게 되찾은 미소 챕터가 좋습니다. 제대로 된 전투신 한 번
없이 사건으로만 구성되었고 인실롭의 추격이 목 언저리에 느껴질 만큼
조여오지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좋네요.

 

 주말에 글을 올리려 했는데 서버가 다운이 됬었는지 안 들어와 지더군요.

한 주 어긋났던 것 이렇게 분량 맞췄고, 다음 챕터는 9월 7일에 올립니다.

 

 9월 달 되면 복학인데 꾸준히 분량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군요.

?
  • profile
    욀슨 2012.08.28 06:57
    전혀 예상도 못 했는데 5편이 올라오다니... 단장 머릿 속의 계획은 대체 어디까지 뻗어 있는 걸까요. 재미있게 봤습니다. 아, '패'같은 경우에는 牌쪽이 더 어울리는 한자일 것 같군요.
  • ?
    강건마 포인트맨 2012.08.28 06:57
    10점 뽀오나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profile
    yarsas 2012.08.28 09:01
    뜨악. 왜 저 패가 써져있는지 보고 본인이 놀란.. 쿨럭
    나름 중국 유학파인데 이런 실수를.. 부끄럽구로 //_//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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