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AD] 1. 현월(弦月)의 밤 - 2

by yarsas posted Jun 0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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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AD] 1. 현월(弦月)의 밤 - 2
 

 


 튜더를 비롯한 보고병, 그리고 책상 위에 놓여있던 서류들까지 한꺼번에
뒤엎였다. 외부가 아닌 궁성 내부에서 일어난 폭발이었다! 전대미문의 사
건이 벌어지고 있어서일까, 튜더는 폭발로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도 이 상
황이 현실과 거리가 먼 일처럼 느껴졌다. 꽤나 큰 충격이 내부를 흔들었
지만 분명 염뢰는 아니었다. 염뢰라면 궁성 일부가 송두리째 날아가버릴
것이다. 튜더는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서도 생각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썼
다.

 

 ‘적들이 벌써 내부에까지 들어오다니! 목표가 내부에 있다면? 그들의
목적은…….’

 

 시선을 외부로 집중시키기 위해 염뢰를 세 번이나 폭발시킬 정도로 공을
들이면서까지 내부에 숨어 들어오는 적이라면 대체 누굴까? 저 먼 북쪽,
설원의 땅 루이즈번의 암살자들인가? 300년이나 이어져 온 오랜 대립의
골이 이런 방식을 초래할 만큼의 것이었단 말인가? 그들의 목적이라면 역
시……,

 

 ‘국왕 시해인가!’

 

 튜더는 소스라치는 느낌에 진저리 쳤다. 암살의 위협은 국왕이라면 누구
나 짊어져야 하는 숙명이었고 그에 대한 대비는 항상 만전에 만전을 기하
는 법이다.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사단의 불침조(不寢組)와 5명의
십인장(十人將)이 수도 수비에 전념하고 있는 이상 그 방어벽은 가히 철
벽이라 부를 만하다. 헌데, 이 불안감은 대체 뭐란 말인가. 한명이 기사단
을 괴멸시키고 있다는 보고는 불침조가 몇 명이든 위험하기 그지없다는
뜻이고, 염뢰까지 터뜨리는 저돌적인 공격방식은 그들의 공격의사를 유감
없이 보여주는 증거였다. 튜더는 다급해지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몸을 일
으켰다.

 

 “십인장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미 자신들의 거취를 분명히 해둔 탓인지 보고병은 막힘없이 대답했
다.

 

 “루이나 님과 인실롭 님은 지금 각자의 기사단을 이끌고 수도 정찰에
들어갔고 나머지 세분은 궁성 에펠에 있습니다. 악살라스 님은 아마도 주
무시고 계신 걸로…….”

 

 그 영감은 이 상황에서도 잠이 오나!“나머지 두 명은!”

 

 “루즈라벤 님은 궁성 에펠 상층부를, 레이몬드 님은 궁성 에펠 하층부
를 각각 맡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역시 십인장들이었다. 단지 궁성 수호를 명했을 뿐인데도, 알아서 각자
맡은 구역에 배치를 끝낸 모양이었다. 생각할 줄 아는 말의 가치는 위급
상황일 때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다. 알아서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들만한 인재가 없었다. 허나, 아직 미진하다.

 

 “악살라스를 깨워서 루즈라벤을 도와 상층부를 지키라고 하게. 아무래
도 적의 목적이 국왕폐하를 음해하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크니까. 그리고
내부폭발 보고는 아직인가?”

 

 튜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른 보고병이 들어왔다.

 

 “보좌관님! 궁성 내에서 있었던 폭발은 염뢰가 아니었고, 에펠 4층에서
에서 갑자기 나타난 금발의 사내가 일으킨 폭발이었습니다.”

 

 “상층부라고!?”

 

 “그렇습니다. 현관을 지키던 병사와 일층 로비를 지키던 레이몬드 소속
제 3기사단장 버팔로에게 전해들은 바, 1층을 통과한 이는 절대 없었다고
합니다. 그가 어떻게 상층부에서 나타났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금발의 사내는 특이한 술법을 쓰며 기사단을 교란시키고 있다고 합
니다.”

 

 “특이한 술법이라니?”

 

 “칼을 휘두르는 그의 주위로 화염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궁
성 에펠이 전소할 위험에 처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합니다.”

 

 튜더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화염을 일으키는 금발의 사내? 설마?!’

 

  불의 꽃. 자신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지나가는 자가 있었다. 드디어
무언가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 단신으로 기사단
을 상대하는 괴물이라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자
들이 진짜 괴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현재 상층부에 나타난 자가
정말 자신이 생각하는 인물이라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언데드’가 어떻게 바깥에 나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이유를 생각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들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더욱 중요하다. 민간인 사상자가 없다는 것부터 루이즈번의 암살자들에게
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들이라면 오히려 축제가 가장 절정에 이르
렀을 때 공격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편이 더 큰 혼란과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공격은 단 하나의 어떤 목적을 위해 이루어
지고 있다. 단지 그 목적이 어떤 것인지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어서
문제일 뿐. 방대한 사고를 거친 튜더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십인장들에게 당장 전파하라.”

 

 “어떤 명령이면 되겠습니까?”

 

 “적의 목적은 불명. 하지만 적은 언데드라 추정됨. 충분히 참고하고 상
대하라고.”

 

 “언데드라면?”

 

 “그렇게 전하면 알 것이다. 당장 전파하라.”

 

 “알겠습니다!”

 

 보고병이 나가고 나자 튜더가 있는 상황실에 정적이 흘렀다. 잠깐 동안
의 여유는 그의 머리를 차갑게 식혀 정신을 맑게 만들어 주었다.‘하필이
면 루만이 잠들어 있을 때……. 루즈라벤에게 직접 찾아가야겠군.’

 대장군의 보좌관직 의외에도 십인장의 수장을 맡고 있는 튜더는 재빨리
무기를 챙겨들고 상황실을 비웠다.

 

 

 


 레이몬드 소속 제 2기사단과 바함이 이끄는 소대원들 전원이 전멸했다.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는 거구의 사내 매튜는 자신이 이룬 업적에 몹시 만
족하고 있었다.

 

 “크하하핫! 이거 속이 다 시원하네. 너무너무 좋아서 너무 좋구만! 시
건방이 하늘을 찌르던 엘파하의 기사단들을 처리하니깐 말이야.”

 

 유일한 생존자인 바함은 손끝이 덜덜 떨리는 자신을 나무랄 수 없었다.
자신의 앞에 서있는 사내는 ‘진짜’ 괴물이었다. 30명의 기사단원들이
단 한명의 사내에게 전멸했다. 그가 괴력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힘으
로 망치를 휘두를 때마다 방어 불가능한 무참한 파괴가 일어났다. 매튜의
거구에 어울리는 우락부락한 근육은 망치 이상으로 끔찍해 보였고 상체에
그려져 있는 기묘한 문신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더욱 괴기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바함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를 향해 칼을 겨누었다. 매튜는 자
신에게 겨누어진 칼끝을 보며 싱긋 웃었다.

 

 “헤에, 용감한걸! 아직까지 나랑 싸울 배짱이 있다니. 도망치지 않는 건
책임감 때문이야? 아니면 겁에 질려서 도망갈 생각도 못하는 거야?”

 

 “나, 나는 적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매튜가 망치를 부여잡고 바함에게로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기사단보다 네가 더 맘에 드는걸. 치안대에만 있기엔 아까운 근성이야.
하지만 오늘 단장은 의지를 가지고 공격해오는 사람은 누구든 죽여도 좋
다고 명령했어. 전사라면 자신이 든 무기에 책임을 져야 해. 그렇기에 약
한 것도 죄지. 미안하지만 난 널 죽여야겠어. 옐카의 가호가 함께하길.”

 

 바함은 매튜가 지껄이는 말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단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죽을 것이다.

 

 ‘이미 전쟁터에서 전우들과 죽었어야 했을 몸, 미련 따윈 없다.’

 

 바로 그 순간, 압도적인 위압감으로 다가오던 매튜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누군가의 말을 들은 듯 대답했다.

 

 “뭐라고?”

 

 매튜는 갑자기 귀를 후비며 짜증을 냈다.

 

 “제길, 위험한 게 다가오는구만. 한 번 싸워보고 싶은데 단장이 절대로
상대하지 말랐으니 어쩔 수 없지. 뭐, 지금쯤이면 로한이 잘하고 있을 테
니까.”

 

 그 말과 함께 매튜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던 바함은 결국 다리의 힘이 풀려 쓰러지고 말
았다. 분명 죽으리라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기적인가. 바함은 갑자기 처자
식이 미치도록 보고 싶다는 생각에 코끝이 시려왔다. 죽음을 각오했었으
나 살아있음에 안도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 그는 눈을 감으며 살아 있음
에 감사했다. 그 때 먼 곳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 사람은!
 바함의 눈이 커졌다. 평상시에 쉽게 볼 수 없는 거물이 자신의 기사단을
대동한 채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레이몬드의 부대는 전멸인가?”

 

 놀랍도록 아름다운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에 어울리는 우아한 외모와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돋보이는 날렵하게 잘 빠진 몸매. 한 눈에 보아도
빼어난 미인이 그에 어울리는 백마를 타고 나타났다. 마치 흑진주처럼 반
짝이는 그녀의 긴 머릿결은 너무나도 훌륭했다. 바함은 후들거리는 다리
를 겨우 일으켜 그녀에게 경례했다.

 

 “시, 십인장 루이나 님. 치안대 소대장 바함입니다. 송구스럽게도 병력
은 전멸했습니다.”

 

 수도를 지키는 5명의 십인장 중 유일하게 여성인 루이나는 그녀의 미모
덕분에 명성이 자자했다. 바함 역시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 미모에 넋을 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 외모
만큼이나 아름다운 목소리로 바함의 귀를 간질였다.

 

 “두려워 마라. 그대는 최선을 다했다. 너희들의 실력으로는 막지 못했던
게 당연하다. 이제 이곳은 나에게 맡기고 대피하라. 목숨이 아깝다면 말이
야.”

 

 남자들의 마음을 녹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녀의 말투는 사내의 그것이었
다. 하지만 바함은 그것마저도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그는 방금 전까지 아
내를 생각했다는 것이 거짓말인양 홀린 표정으로 그녀의 명령에 따랐다.
그녀의 외모 때문에 반쯤 정신이 나간 바함은 매튜가 루이나가 다가오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루즈라벤 소속 제 1기사단장 벨루카는 방금 전까지 붙어있던 오른팔이 
날아가는 것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전에는 그런 일
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상대방은 그에게 그런
고민거리를 안겨줄 생각이 없었던 듯했고 두 번째 일격으로 벨루카는 자
신의 몸을 다른 각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벨루카가 자신의 목이 하늘을 날면서도 그 점에 대해 고민했는지는 아마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긴박한 전투 속에서 그 점을
진지하게 고찰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눈으로 직접 보는 앞에서 지휘관의
목이 날아갔지만 기사단원들은 용맹하고도 거칠게 적에게 돌진했다. 하지
만 그들의 적은 너무나도 손쉽게 자신들을 베어 넘겼다. 갑자기 궁성 에
펠 4층에 나타난 금발의 사내는 매튜가 바깥에서 일으켰던 파괴 이상의
학살을 일으키며 궁성을 공포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미 불바다가 되어버
린 현장은 적을 먼저 상대해야 할지, 불을 먼저 꺼야할지도 모를 만큼 혼
란스러웠다. 순식간에 화상을 입으며 쓰러진 기사를 짓밟으며 두 번째 기
사의 목마저 잘라버린 금발의 사내는 자신의 머릿결을 한번 어루만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가하게 산책이라도 한 것 같은 태도였다.

 

 “대충 이 정도면 충분히 시끄럽나?”

 

 금발의 사내는 매튜가 도망치면서 말했던 로한이란 자였다. 로한은 날렵
한 얼굴선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으며 탄탄하게 잘 빠진 근육질 몸매의
사내였다. 체격이 매우 좋은데다 귀족 같은 용모를 가진 그는 상대방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어서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누구라도 사귀어보
고 싶은 인상이었다. 특히 질문의 대상이 여성이었다면 그 긍정적인 평가
는 더 큰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기사단원들에게 있어 그의
외모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가장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칼솜씨도 그다
지 매력적이지 못했다.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썰리는 입장이었기 때문
이다. 로한은 왼손을 들어 덤비라는 시늉을 했다.

 

 “미적지근한데. 좀 더 화끈하게 덤벼라. 심장이 뛰고 있다면 말이야. 너
희들 엘파하의 기사단이잖아?”

 

 방자한 그의 태도를 보고 루즈라벤 소속 제 2기사단장 압투버가 분에 받
혀 소리쳤다.

 

 “대체 네 놈은 누구냐! 목적이 뭐야?”

 

 로한은 칼끝을 내리며 왼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예의가 없군. 보통 상대방에게 그런 질문을 하려면 자기소개부터 해야
하지 않나?”

 

 압투버는 씹어 먹을 듯한 표정으로 이를 갈며 대답했다.

 

 “엘파하 기사단 루즈라벤 소속 제 2기사단장 압투버다! 대답하라! 그대
는 누구인가!”

 

 “대답하기 싫은데.”

 

 “개자식! 대체 자기소개는 왜 하라고 한 거야?”

 

 로한은 빙긋 웃으며 다시금 칼끝을 들어올렸다. 칼끝에서 화염이 이글거
리기 시작했다.

 

 “곧 죽을 녀석이 시끄럽군. 내 이름은 레이넌 로한. 명령을 받은 자. 목
적은 명령을 수행하는 것.”

 

 그 말과 함께 불붙은 칼날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튜더는 어렵지 않게 십인장 루즈라벤을 찾을 수 있었다. 상층부를 맡고
있는 루즈라벤은 기사단의 배치를 끝내고 본인의 연구서류들을 들여다보
고 있었다. 튜더는 속이 뒤집어 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잠을
청하는 악살라스나 연구서류나 뒤적이고 있는 루즈라벤이 뭐가 다른가?
뒤늦게 튜더를 발견한 루즈라벤은 과장된 자세를 취하며 그를 맞았다.

 

 “호오-, 보좌관님 아니십니까? 아, 방금 염뢰 얘기를 듣고 끝내주는 발
상이 떠올라서 말이죠. 폭발력을 더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집어치우게. 루즈라벤.”

 

 십인장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기사단의 우두머리들이었다. 엘헤미아 각지
에서 모인 최정예들로 구성된 기사단을 지휘하는 최고봉이 바로 10명의
십인장들인 것이다. 배경에 상관없이 십인장의 작위는 기본적으로 백작
이상의 대우를 받는데, 실질상 그들 위로 군림할 수 있는 건 대장군 세이
건과 국왕뿐이다. 그런 십인장 중 무려 6명이 수도에 있는데 한 명은 십
인장의 수장이란 이름만을 달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 대장군 보좌만 담당
하는 튜더가 있다. 나머지 5명은 수도 수호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데 그
들의 명성은 저 북방지역 얼음의 나라 루이즈번에도 자자하다. 지금 튜더
가 만나로 온 루즈라벤 역시 그 십인장 중 한 명으로 과학 분야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염뢰의 발명자이기도 한 루즈라벤은 머리가 좋은 대신 매사
를 실험으로 여기는 괴벽이 있는데다가, 한번 영감이 떠오르면 쉽게 정신
을 차리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튜더의 성격상 지금 루즈라벤의 태도
는 공해라 할 수 있다.

 

 “대체 어떻게 된 건가!”

 

 “무얼 말씀이신지?”

 

 “어째서 언데드가 엘파하에서 날뛰고 있냐 이 말이야!”

 

 “보고는 전해 들었습니다. 근데 그럴 리가 없다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
까. 제가 3시간 전까지도 그들을 관리하다 왔는걸요. 이탈한 녀석들은 없
었다고요.”

 

 “그래서 4층에 가보지도 않고 지금 이러고 있나! 확인은 해 보았나?”

 

 “조만간 기사단들이 보고할 겁니다. 지하에도 비서를 내려 보냈다고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금방 돌아올 겁니다.”

 

 튜더는 대장군 명에 의한 언데드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였다. 그는 과학
적인 지식이 풍부한 루즈라벤을 참모로 삼고 서로의 두뇌를 합쳐 10년이
넘는 연구 끝에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얻어내었다. 헌데 그 결과물 중 일
부라 추정되는 이들이 수도에서 날뛰고 있다. 튜더는 타오르는 눈빛으로
루즈라벤을 쳐다보았다.

 

 “만약 관리가 소홀했다면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네.”

 

 루즈라벤은 여부가 있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고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비서가 나타났다. 루즈라벤은 비서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서야 능글맞은
웃음을 거두었다.

 

 “큰일 났습니다. 루즈라벤 님! 7명의 언데드가 사라졌어요.”

 

 튜더는 격노했다.

 

 “루즈라벤!!”

 

 “그럴 리가…….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은 두꺼운 삼중 철문으로 막혀
있는 지하에 있다고요. 넘버 2 발락이라 해도 부술 수 없는 철문입니다.
제가 자리를 비운지 얼마나 됐다고! 관리 차트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이
럴 수가 없다는 걸…….”

 

 “하지만 일어났어! 변명은 집어치우게. 루만이 자고 있다고. 지금 당장
악살라스와 함께 위에서 날뛰고 있는 넘버 3 로한을 잡아!”

 

 루즈라벤은 허겁지겁 병력을 이끌고 4층으로 올라갔다.

 

 

 


 루즈라벤 소속 제 2기사단장 압투버는 끝끝내 알지 못하고 로한에게 죽
임을 당했지만 로한이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는 명령을 받은 자였
고 그 명령을 내린 자는 현재 궁성 에펠의 지하 깊숙한 곳을 걷고 있었
다.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오다 홀연히 모습을 감췄던 흑의의 사내.
바로 그가 이 테러의 주모자였다. 그는 어느새 궁성 내 가장 은밀하고도
깊은 부분까지 침투해 있었다. 그리고 그 걸음이 멈췄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원하지 않던 것도. 그의 눈
앞에 십인장 중 한명인 레이몬드가 나타나 칼을 빼들고 있었다.

 

 “보좌관의 보고는 들었다. 언데드가 대체 어떻게 바깥에 나와 있는 것
이지?”

 

 흑의의 사내는 양손을 들어 후드를 걷어 내렸다.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
가 레이몬드를 직시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대답이 아닌 질문이었다.

 

 “내가 이곳에 올 걸 어떻게 알았지?”

 

 놀랍도록 창백한 빛깔을 띠는 하얀 피부. 짙은 흑발과 흑의로 인해 그
점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잊게 만드는 강렬한 붉
은 눈이 레이몬드를 삼킬 듯 바라보고 있었다. 한번 보면 쉽게 잊지 못할
인상을 가진 젊은 청년이었다.

 

 “겉모습은 새파란 애송이로군. 하지만 속은 괴물인 인간병기란 말이지.”

 

 흑의의 사내가 타오르는 홍안(紅眼)으로 상대방을 쳐다보다 다시금 짧게
내뱉었다. 약간 허스키한 음색이 무척이나 묵직하게 들렸다.

 

 “두 번 묻지 않겠다. 내가 이곳에 올 걸 어떻게 알았지?”

 

 레이몬드는 젊은 나이에서 뿜어져 나온다고는 믿을 수 없는 상대방의 기
백에 조금 움찔했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게 어지간히 맘에 안 드는 모양이군, 언데드 꼬마.”

 

 레이몬드는 상대방이 공격해 들어오지는 않을지 주의 깊게 살피며 상대
방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적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한 섣불리 접근하면 위험하다. 레이몬드는 전부 다 알고 있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 녀석들의 목표는 내 뒤에 있는 바로 이거지?”

 

 무표정하던 흑의의 사내의 눈썹이 꿈틀했다. 재미있어진 레이몬드가 더
크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부를 공략하기위해 외부에서 폭탄을 터뜨리고, 지하로 오기위해 상
층부에 폭발을 일으킨다라.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말이야. 퍼포먼스가 지
나치면 의심을 사게 되는 법이지. 나 같으면 어차피 속일 거 축제가 절정
일 때 폭탄을 터뜨렸겠어. 사상자들을 수습하느라 더 정신이 없어질 테니
까. 다음부터는 전략을 짤 때 참고하라고. 뭐 다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너희들과 다르다.”

 

 “뭐?”

 

 “죽음을 맛본 우리들은 너희들과 다르다고 했다. 우리는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다. 오늘 우리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이들은 너같이
의지를 가지고 우리들에게 칼을 겨누는 자들이다. 아, 그리고 칭찬하지.
솔직히 놀랐어. 그만큼 공을 들였는데도 눈치 채다니. 그래, 우리의 목적
은 국왕 시해가 아니다.”

 

 “역시 오큐벨라스를 노리고 있었군.”

 

 “내일 있을 혈광식 때 쓰이는 엘헤미아의 상징적인 물건, 신이 주신 성
물(聖物)이라 불리는 너희 민족들의 자부심. 그리고 네놈들에게 있어선
우리 같은 언데드를 만들 수 있게 해준 도구였지.”

 

 흑의의 사내가 순식간에 칼을 뽑아들었다. 레이몬드는 흠칫하며 자세를
낮추었다. 맙소사! 십인장인 자신이 감탄할 만큼 놀라운 발검속도였다.

 

 “질문하나 하지. 기사단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 이곳을 지키고 있는 건
네 오만함 때문인가?”

 

 레이몬드는 칼을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이며 상대방을 경계했다. 적은 언
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사내였다. 이상하게 공격의지가 분명해 보이
는데도 어떤 공격을 해올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흑의의 사내는 막강한
위압감을 뿜어내며 말을 이었다.

 

 “오늘 네 오만함을 두고두고 후회해라. 오늘밤 너희들이 그리려 했던
역사는 지금부터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거다.”

 

 레이몬드는 분노한 듯 그에게 고함쳤다.

 

 “건방진! 시체나 다름없는 것들 따위가 뭘 할 수 있다고! 너희들은 우
리들의 소모품일 뿐이다!”

 

 “우리의 육은 죽었을지 몰라도 영혼은 아직 죽지 않았다!”

 

 폭발적인 외침이 지하 내를 쩌렁쩌렁 울리며 십인장 레이몬드와 언데드
알자로의 격돌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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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많이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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