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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AD] 5. 생과 사에 걸친 자 - 5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공포와 그로 인해 비롯된 비슷한 숫자의 담력테
스트가 있다. 동물보다 훨씬 고등생물이라 주장하는 인간은 이 점을 이용
해 상대방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곤 하는데, 특히 수컷 무리에
암컷이 낄 경우 그 정도는 더 심해진다. 자신이 보다 우월하다고 증명하
기 위해 힘쓰는 수컷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때론 측은하기까지 하다. 결국
자신의 열등함을 증명하고 마는 그런 허망한 싸움에 결코 빠지지 않는 종
목이 있는데 그건 바로 고소공포증이다. 누구나 다 아는 이름이기에 쉽게
잊히지만 꽤나 많은 이가 이 증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고소‘공포’
라는 이름이 반증해주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서 그 담력을 테스트하기 위
해 좋은 위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수직적으로 굉장히 높게 지어진
브라말로카 요새의 성벽에 서면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평
정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물론 그런 용도로 지어진 성벽이 아니며 일반인
은 출입하기도 쉽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성벽 위에
서서 아무렇지도 않게 팔짱을 끼고 있는 사내가 남다른 담력의 소유자임
을 알아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단순한 고도의 문제가
아니다. 성벽 위에는 옵슬레이의 거친 바람을 막을만한 것이 없었고 자칫
발이라도 헛딛었다가 추락이라도 한다면 낭떠러지에 몸을 던지는 것과 별
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허나 초록색 눈을 가진 선한 인상을 가진 사내는
별 동요 없이 제자리에 꼿꼿이 서있었다. 마치 동상을 보는 것 같은 부동
성(不動性)이었다. 사내는 이 지역 출신이거나 태어날 때부터 추위를 타
지 않는 체질임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사내가 입고 있는 방한복의 두께는
보다 남쪽지방에서나 어울릴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내의 얇은 코트
자락은 옵슬레이의 거센 바람을 맞아 거칠게 휘날리고 있었다. 꼼짝도 하
지 않는 사내가 입고 있는 신들린 것 같이 춤추는 옷. 무언가 맞지 않는
듯 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조합이다. 사내의 모습을 잘 살펴보면 그런
기묘한 점을 몇 군데 더 찾아낼 수 있었다. 사람 하나 죽이기 힘들 것 같
은 선량한 얼굴을 가진 사내는 보기와 다르게 키가 크며 체격도 좋았다.
단단하게 잡힌 근육은 방한복 위로도 드러나 보일 정도였다. 그의 큰 체
구 때문에 얼굴이 작아 보일 지경이라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조
합이었다. 사내의 뒤로 떡갈나무 기사단의 기사단장 칼립소가 나타났다.

 

 “대장. 오셨습니까?”

 

 대장이라 불린 사내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칼립소요?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소이다.”

 

 선한 인상의 사내는 자신의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 대답했다. 어
쩌면 조화와 규칙을 파괴하는 것이 이 남자의 콘셉트인지도 모르겠다. 단,
남자의 목소리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마치 ‘높은 설득력도 동봉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땅굴을 이용해서 왔습니다. 예상대로 적들의 탐지능력에 걸리지 않았
습니다.”

 

 옵슬레이의 눈 덮인 땅 밑에는 그 끝을 상상하기 힘든 땅굴이 숨어 있었
다. 물론 처음부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던 것은 아니다. 땅굴의 생성과정
은 브라말로카 요새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초창기 땅굴의 용도는 식
량 창고, 또는 기후가 극도로 악화됐을 때를 대비한 개인규모의 피난처였
다. 그것을 전략적인 요소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발키리들이 옵슬레이
땅에 들어와서 곳곳에 숨겨진 땅굴들을 발견하지 못한고 그냥 지나친다는
것이 알려지고 나서부터였다. 누가 딱히 명령한 것도 아닌데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취지에 맞게 땅굴을 파대기 시작했고, 거기에 세월이
더해져 지금의 형태가 된 것이다. 물론 그 뒤에는 브라말로카 요새의 참
모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유사시에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비밀통
로도 많이 있었다. 땅굴의 규모는 거의 옵슬레이 전 지역에 해당할 정도
이며 미궁이라 불려야할 땅굴의 완벽한 도면을 가지고 있는 이는 하이막
스와 그의 측근뿐이다. 그렇기에 옵슬레이 지역에 처음 방문한 인물들은
기척도 없이 나타나는 무장집단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되는데 현월단 역
시 이에 당한바 있다. 마찬가지로 현월단의 소재가 브로말로카 요새에 알
려지는데도 이 땅굴이 크게 일조했다. 현월단의 진로에 두 명의 기사단장
과 그들의 우두머리가 짠 것처럼 나타난 것도 이에 기인한다. 이제 한데
모인 무력이라는 면이 현월단이라는 점에 찍힐 일만 남은 것이다. 허나
그 무력의 정점에 서있는 사내는 팔짱을 낀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
국 칼립소는 자신의 대장을 보채기로 했다.

 

 “대장. 그들이 성문 밖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발이 닿는 곳마다 전설이 같이 따라다닌다는 자.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칭호가 부여되는 자. 겨울에 땅에 봄의 소식을 알려주는 이 시대가 낳은
무적의 무장. 선하기 짝이 없는 초록색 눈매를 가진 하이막스는 칼립소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칼립소는 눈밭을 달리고 있는 현월단
을 보며 조바심을 느꼈다.

 

 “대장, 저……”“칼립소 선생은 동물 중에서 육식동물이 차지하는 비
율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오?”

 

 “예?”

 

 “못 들었을 리는 없을 테니 선생이 남달리 이해가 느리거나 이 자의 혀
가 미욱하여 아직도 소통의 문제가 있는 것인가.”

 

 칼립소는 당황하여 급히 말을 내뱉었다.

 

 “어. 저기……, 그러니까 초식동물보다 조금 더 많지 않을까요?”

 

 “틀렸소이다.”

 

 “예?”

 

 “생태계에서 육식동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미만이오. 그보다 더 많
으면 초식동물의 씨가 말라버리게 되지. 좀 더 알기 쉽게 말하면 한 마리
의 독수리가 수많은 새를 먹고, 한 마리의 새가 수많은 벌레를 먹는다는
공식이오. 육식동물은 소수여야만 하오.”

 

 “그……렇군요.”

 

 칼립소는 존경하는 대장이 지금 상황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느꼈다.

 

 “참 이상하지 않소이까? 나머지 90%에 해당하는 초식동물들이 소수의
육식동물들을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 다시 말하자면 90명이 10명을
때려눕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인데.”

 

 칼립소는 꽤나 멀어진 현월단의 모습을 흘끔흘끔 보며 하이막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는 그렇지 않더이다. 세상의 정점은 소수의 맹수가
차지하고 착하디 착하고 여리디 여린 순한 초식동물들은 불만 없이 먹히
는 것이 세상의 순리요. 세상은 그렇게 비극적이고 아름답게 돌아가야만
하오.”

 

 칼립소는 하이막스의 변화 없는 어조와 표정 때문에 그가 농담을 하는
것인지 진담을 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하이막스는 자신의 오묘한
태도를 지속적으로 고수하며 칼립소를 곤란하게 했다.

 

 “그런데 신의 실수로 인해 인간들은 사고가 가능하다고 착각하게 만드
는 머리가 있게 됐소. 그래서 다들 주제도 모르고 육식동물이 되려고 애
를 쓰며 욕심을 내지. 자기가 초식동물인줄도 모르고 말이오. 바람을 내게
주시오.”

 

 하이막스의 어조가 조금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칼립소는 그의 마지막
말에 조금 늦게 반응했다. 칼립소는 하이막스에게 바람을 주기 위해 부채
질을 하지는 않았다. 바람은 하이막스의 무기이름이다. 칼립소는 하이막스
뒤에 놓여 있는 바람을 들어올렸다. 설은으로 만들어진 바람은 은빛의 창
이었는데 무기전체에 화려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단순한 느낌으로만
따지면 장식용 무기 같은 화려함이었다. 칼립소는 날렵하게 잘 빠진 바람
의 모양을 관찰하다가 하이막스에게로 건넸다. 하이막스는 팔짱을 풀어
자신의 무기를 잡아들었다. 드디어 명령을 내릴 것인가? 칼립소는 다시
현월단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들은 벌써 활의 사정범위 바깥까지 도망친
상태였다. 하이막스가 그 모습을 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칼립소는 명령을
갈망하며 대장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허나 하이막스는 여전히 돌격명령
을 내리지 않았다.

 

 “이 자가 알기론 진짜 맹수는 대장군뿐이오. 그럼 우리는 무엇이오?”

 

 다행히 칼립소는 이번 질문에는 당황하지 않았다. 대답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무입니다.”

 

 “그렇소, 우리는 나무요. 먹이사슬에서 하위에 속하는 초식동물에게도
잎을 뜯기지만 그 어떤 육식동물도 거꾸러뜨릴 순 없는 우리는 나무요.
앞을 보시오.”

 

 평온한 어조 속에서 갑자기 명령을 내리는 하이막스의 독특한 화법에 어
느 정도 적응한 칼립소는 보다 여유로운 태도로 하이막스가 가르키는 방
향을 쳐다보았다. 그의 여유는 거기 까지였다. 칼립소는 숨을 들이쉬며 지
평선을 쳐다보았다.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하얀 풍경 끄트머리에서 붉은
선 같은 것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칼립소는 그때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브로말로카 요새에서 나팔소리는 전쟁을 시작한다는 의미다.
 하이막스가 성벽 가장자리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어 자칫하면 떨어질지도 모
르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그의 모습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균형잡
힌 완벽한 발 디딤이었다. 하이막스가 창끝을 비스듬하게 기울이며 루이
즈번의 땅을 바라보았다.

 

 “현월단의 도주가 마침표를 찍으려 하는 지금 이 순간, 발키리 부대가
나타났다는 것이 과연 우연이라 생각하오? 현월단의 리더인 단장이란 자
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소. 인실롭 선생의 판단에 따르면 단장
이란 자의 능력은 공간이동일 것이오. 겨울의 땅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
고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소이다. 이건 단순한 절도행위가 아닌 명백한 국
가 급의 사건이오. 준비하시오! 나무들이여!”

 

 하이막스의 마지막 말에 다시 한 번 웅장하게 나팔소리가 울러 퍼졌다.
그 소리를 뒤로한 채 까마득하다 느낄 정도의 고도에서 그가 성벽 밖으로
뛰어내렸다.

 

 

 


 루만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바함에게 다가가 밧줄로 그를
묶기 시작했다. 그의 뒤로 발렌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루만의 손이 잠시 멈췄다가 이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렌타인의
모습은 그가 평소에 알던 그녀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는 조금
주저하다가 말을 꺼냈다.

 

 “누구나 다 아는 말이지만 생소하게 들릴 거예요. 실제 저 같은 환자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까. 저는 이중인격이란 정신병을 앓고 있어요.”

 

 바함을 다 묶은 루만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중인격이라고?

 

 “사람들은 제가 운이 좋다고들 하지요. 그래요. 이런 젊은 나이에 점장
이, 그것도 궁성 내에 가게라면 참 대단한 일이죠. 하지만 아무도 제가 그
것을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어요.”

 

 루만은 의아함을 느끼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녀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점장님이 사고로 죽었기 때문에 이 카페를 이어받았다고 알려져 있죠?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아요. 점장님은 제게 살해당했어요.”

 

 루만은 충격 때문에 다리의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의자를 아무렇게나 잡으며 그 위에 앉았다. 자꾸만 가빠지는 호흡을 억누
르기 힘들었다.

 

 “뭐라고?”

 

 떨고 있던 발렌타인은 추운 듯 자신의 양팔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마치
상처 입은 새끼의 모습처럼. 녀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는 그녀를 화이트라고 불러요. 제 안에 있는 또 다른 인격이죠. 그녀
는 지독한 살인본능에 절어있어요. 잔인하고 무섭죠. 저는 그녀가 나오지
못하도록 애를 쓰지만 가끔씩 그녀에게 주도권을 뺏기기도 해요. 아차 싶
으면 끝이죠. 그 날도 그런 날이었어요.”

 

 루만은 그가 잘 알고 있는, 아니, 한 때 그렇다고 믿었던 여인을 바라보
았다.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루만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느
껴졌다. 자신의 천사가 사실 악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루만은 소스라
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루즈라벤 님이 나타나신 것은 정말 운명의 만남이라고 생각해
요. 그 분은 단번에 제가 저지른 일이 평범한 살인사건이 아닌 것을 깨달
으셨죠. 그 분은 제 질환에 대해 관심을 가지셨고 제 과거를 덮어주셨죠.
저는 그 분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빚을 졌고 그 것을 갚기 위해 그 분의
실험에 동참했어요. 오해하지 말아요, 루만. 저는 그 분의 강요 때문에 언
데드가 된 게 아니에요. 저는 제가 화이트에게 잠식당할까봐 두려웠어요.
살인본능에 미친 괴물이 아니라 언제까지고 발렌타인이기 위해.”

 

 그녀가 천천히 루만에게로 다가왔다. 루만의 앞에 무릎 꿇은 발렌타인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루만의 몸이 꿈틀
했다. 그 반응 때문에 그녀의 손길이 멈칫했다. 루만은 그런 반응을 보인
자신을 저주했다. 무언가 변명하기 위해 그녀를 올려다본 루만은 발렌타
인의 표정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
다. 그녀의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서 새는 듯한 가녀린 소리가 흘러 나왔
다.

 

 “루만. 당신이 있으면 저는 언제나 발렌타인일 수 있어요. 당신의 능력
은 제게 있어 구원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루만을 끌어안았다. 루만은 딸꾹질을 했을 때보다 더
심한 호흡곤란을 느꼈다.

 

 “당신이 제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저에 대한 마음이 변할까봐 참 두려웠
어요.”

 

 포옹은 상대방과의 거리가 가장 가깝기에 껴안은 대상의 얼굴을 볼 수
없는 독특한 애정의 확인법이다. 루만은 자신을 끌어안은 발렌타인의 얼
굴을 볼 수 없었고 그 점에 대해 묘한 상실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하게 자신의 마음을 두드렸다.

 

 “안아줘요. 루만.”

 

 루만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를 위해 무릎도 꿇었다. 그의 손이
확신을 가지고 그녀의 등을 어루만졌다. 굳이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이 감정이라면 시각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진짜 진심일지도 모른다. 루
만은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그녀를 느낄 수 있었다.

 

 

 


 현월단은 꽁무니에 불이 붙은 사람처럼 눈밭을 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그토록이나 염원했던 루이즈번의 땅에 들어섰지만 당장 상황이 나아진 것
은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눈밖에 없었고 그 점이 자신들
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눈 때문에 현월단
은 도주속도를 올릴 수가 없었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푹푹 빠지는 발
과 거세어지는 눈발은 그들의 도주를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
인 점은 바람이 거세지면 최소한, 저격의 위험은 없다는 것이었다.
 빠밤! 빠밤-! 그들의 뒤로 눈밭을 불사르는 것 같은 나팔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전쟁이다! 전군 전투 준비!”

 

 굳이 세이지가 아니더라도 성벽 위에서 들려오는 함성을 듣는 것은 어렵
지 않았다. 린이 다급하게 물었다.

 

 “우리 때문에 전쟁을 하겠다는 심히 영광스러운 얘기는 아니겠지?”

 

 피트가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단장이 제 때 시간을 맞췄나 봅니다!”

 

 단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매튜가 자신의 망치를 빙글빙글 돌리며
외쳤다.

 

 “그럼 발키리 부대들이 나타났다는 얘기로군. 근데 왜 안 보이는 거지?”

 

 “지금 저희들의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나타났을 겁니다. 그래
서 성벽 위에서 저 난리가 났겠죠.”

 

 세이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앞쪽에 많은 움직임이 느껴져. 단장의 위치가 잡혀?”

 

 엘로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렇게 많은 무리들 속에서 단장만을 찾기가 쉽지 않군요. 수도 때는
처음부터 여러분의 위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단장은 이미
제 탐지거리에서 벗어난 지 오래에요.”

 

 “뭘 걱정하는 거야! 당연히 와 있겠지! 단장인데!”

 

 매튜의 단순하면서도 호탕한 말에 단원들이 웃음 지었다. 그 때였다. 세
이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모두 피해---!!”

 

 단원들 중에서 탐지능력이 가장 우수한 세이지의 반응에 단원들이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탐지 가능한 거리에서의 공격이라면 특별히 위
험한 것이 없을 텐데……! 그들은 경악했다. 그것은 파도가 밀려오는 것
과 흡사했다. 눈밭이 바다고 눈이 물이라면 말이다. 단원들을 향해 날아
오는 눈의 파도에 단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다행히 조준점이 조금 빗나
간 모양인지 눈의 파도는 아슬아슬하게 단원들을 빗겨갔다. 자신들의 오
른쪽으로 휘몰아치듯 사라져가는 눈 폭풍은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드는 공
포를 선사했다. 그들은 잠시 동안 도주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망각하고 말
았다. 눈밭 위로 눈이 휩쓸려 간 자국이 하나의 직선이 되어 선명하게 남
아있었다. 약간만 왼쪽으로 더 틀어졌어도 방금 날아온 눈덩어리들은 단
원들 전부를 쓸어버렸을 것이다. 단원들은 기가 막혀하며 눈밭 위에 그려
진 선 끝에 서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군요. 정말 장관입니다.”

 

 성벽 위에 병사가 칼립소에게 말했다. 칼립소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것이 단신으로 발키리 부대를 전멸시켰다는 대장의 능력이다.
바람이란 이름은 그래서 붙여졌지.”

 

 칼립소는 몸을 돌려 병사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대장처럼 성벽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니 대장 쫓아가려면 개발에
땀나듯 뛰어야겠지? 바깥으로 진군한다! 궁수들은 성벽 위에 대기한 채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 단참나무 기사단이 무너진 이상 우리들이 북벽
을 지켜야 한다!”

 

 칼립소가 양손에 곡도(曲刀)를 들어 올리며 크게 소리쳤다.

 

 “우리는 대장을 위해 숲이 되려 하는 존재들이다!”

 

 칼립소가 성문 밖으로 나가기 위해 계단으로 내려가자 그의 기사단이 그
뒤를 따랐다.

 

 

 


 하이막스가 창을 빙빙 돌리기 시작하자 강력한 풍압이 일어나기 시작했
다. 그의 몸이 크게 기울며 땅에서부터 긁어 올라가듯 창끝이 위로 치솟
았다. 빗자루로 낙엽을 쓸 듯 눈이 휩쓸려 가는 모습은 눈을 뗄 수가 없
는 장관이었다. 그의 손에서 일어난 무참한 파괴가 정확하게 현월단을 향
한 순간 공격궤도가 흔들렸다.

 

 - 챙!

 

 불시의 기습이었지만 하이막스의 동작은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는
다시 안정적인 자세로 창을 고쳐 잡으며 자신의 공격궤도를 바꾼 이를 쳐
다보았다. 그의 눈앞에는 흑의를 걸친 사내가 서있었다. 도화지에 잘못 흘
린 먹물처럼 사내의 모습은 하얀 풍경을 불사르며 그의 앞에 나타났다.
하이막스는 사내의 붉은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선생이 알자로요?”

 

 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자신이 공격궤도를 바꾸지 않았다면 단원
들은 꼼짝없이 하이막스의 공격에 당했을 것이다. 단장은 자신의 손끝을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하이막스의 공격에 놀라움을 느꼈다.

 

 “소문대로의 사내로군. 하이막스.”

 

 “그렇소. 이 자의 이름은 하이막스요. 즐겁게 대화를 나누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평화로운 대화는 이쯤 하십시다. 훔친 물건이 꽤나 소중한
거라서 이 이상은 못 지나가겠소.”

 

 그의 평온한 어조 어디에도 공격의 신호는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시작된
공격의 기세는 그 끝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맹렬했다. 휘두
를 때마다 거센 바람이 일어나는 하이막스의 창 때문에 단장은 번번이 균
형을 잃으며 비틀거렸다. 단장의 몸이 크게 흔들리는 순간 하이막스의 창
끝은 세심하게 단장의 목을 노려 들어갔다.
 단장의 모습이 사라졌다.
 하이막스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반응했다. 그
의 목을 노리는 단장의 공격이 후방에서 날아왔다. 채 몇 초도 걸리지 않
는 시간이었지만 하이막스는 완벽하게 단장의 공격을 방어할 뿐만 아니라
풍압을 이용해 단장의 몸을 몇 미터나 날아가게 만들었다.

 

 “선생의 능력은 잘 알고 있소. 그 정도로 이 자의 목을 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좀 더 현명해지기를 충고하겠소.”

 


==================================================================
 드디어 하이막스가 등장했습니다. 본인 스스로 꽤나 좋아하는 캐릭터인
지라 언제 등장시킬까 많은 고민을 했지요. 이 친구 마음에 들었으면 좋
겠습니다.

 

 분량 조절 실패라면 실패일까요. 한 화면 끝날 줄 알았는데 쓰다 보니
한 화가 더 진행되어야 1부를 끝낼 수 있겠더군요. 다음 주에 진짜 마지
막 화를 들고 돌아오겠습니다. 앞 내용을 꾸준히 읽어주시고 제대로 기억
해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다음 화는 꽤나 흥미로울 겁니다. 기대해주십시
오.

Who's yarsas

profile

 인간의 망상은 한계가 없지

?
  • profile
    욀슨 2012.11.25 08:27

    그야말로 클라이맥스군요. 분량조절 실패라고는 하셨는데, 솔직히 하이막스가 이번 화만 나오고 끝났다면 그건 그것대로 아쉬웠을 것 같아요. 그것보다 바람이라. 브라말로카 요새가 지금까지 함락되지 않았던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능력이네요. 재미있게 봤어요. 

  • profile
    yarsas 2012.11.25 10:50
    번개 같은 속도의 댓글이로군요 ㅇ_ㅇa;; 깜짝 놀랬습니다.

    하이막스는 혼자서 군단을 상대할만한 괴물입니다. 짧은 분량이라 더 자세한 설명은 못 했지만, 본인의 태도를 '나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옵슬레이 지역 바깥으로 나가지 않지요. 저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북방정벌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2.11.27 07:49
    하이막스가 드디어 등장했네요. 그동안 보면서 예상해왔던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지만, 역시 기대만큼 대단한 위세입니다 ㅎ

    어찌보면 알자로와 하이막스가 정확히 대비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이 싸움이 라이벌 매치가 될지, 아니면 또다른 주연 등장을 위한 오프닝 무대가 될지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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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rsas 2012.11.28 06:42
    하이막스는 일부로 보다 가벼운 남자로 설정했습니다. 십인장들 대부분이 농담을 하지 않죠. 무거운 캐릭터가 너무 많기도 하고 소문과 다른 이미지가 더 재미날 것 같아서 그렇게 설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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