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자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작품을 잘 알아야 한다는 마음에 아주 오랫동안 방치했던 제 게임을 다시 플레이해보았습니다.
그 때에도 느꼈지만, 장점과 단점이 아주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 장점: 알만툴 게임치고는 상당히 중후하고 몰입도 높은 전개.
분량은 결코 긴 편은 아니지만, 풍부한 연출과 대사가 보완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사극을 보고 온 듯 했습니다.
이 부분은 기호가 엇갈릴 수 있겠지만, 스토리를 끌고 가는 방식이 다채롭고 트랜디한 성향을 지향하는 요즈음 게임과는 확실힌 다른 물건을 만들고 있었구나라는 감회가 들었습니다. 당시 제 제작 스타일 때문인지 여러모로 소프트맥스사가 만들었던 창세기전 시리즈, 특히 <서풍의 광시곡>과 유사했습니다. 본래 <비욘드 더 월드>라는 게임이 창세기전 시리즈 중 가장 명작으로 손꼽히는 2편의 SRPG 방식을 구현하지 못한 자충수로 정통 RPG를 택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요즈음에는 거의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미소녀와 미소년 캐릭터 등 상업적인 요소들을 거의 배제시키고, 스토리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열정은 지금 생각하면 굉장했다고..
> 단점: 밸런싱을 비롯한 기술력 부족, 단조로운 인간묘사와 갈등구조
기술력 부족 때문에 스토리에 모든 것을 다 바쳤다라는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이게 굉장히 심하게 게임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르의 묘> 파트의 경우에는 무한으로 사용이 가능한 회복아이템을 넣은 것은 명백한 실수였습니다.(제작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넣은 것이 이유였습니다만..) 스킬이나 행동패턴이 너무 제한되다보니 전투의 긴장감이 부족했고, 레벨업이나 능력치 성장 등에서 플레이어에게 플레이의 성취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스토리 전개 쪽으로는 큰 골격의 이야기는 나름대로 잘 살리고 있었지만, 인간들이 너무 평면화되어 있다보니 인간드라마를 풍부하게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삼국지연의 원전을 읽는 느낌이라고 하면 딱 적절한 표현이겠습니다. 요즈음 좋은 스토리로 칭송받은 작품들은 사건의 전개 뿐 아니라, 그 안의 인물들의 드라마에도 많은 정성을 들인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이는 등장인물은 그가 속한 세계의 살아있는 표상이라는 제 등장인물 창조철학과도 부합합니다.
> 앞으로 개선할 방향
기술력 부분은 현시점에서 단시간에 끌어올리기 힘든 부분이고, 현실적으로 인물에 대한 풍부한 설정을 부여해야겠습니다. 과거에는 캐릭터보다 서사를 중심으로 게임을 기획하는 편이었는데, 지난 몇 년동안 다른 방면으로 다양한 캐릭터들을 창조한 경험을 살려 이쪽 노하우를 많이 발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물에게 풍부한 설정이 붙으면 좀 더 치밀하고 강렬한 인간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고 믿습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만든 파트는 도입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에서는 제가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