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왔어.”
소년이 꽃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허리를 숙여 다정한 눈빛으로 말했건만 꽃은 아무런 반응 없이 가만히 있었다. 아무 감정이 없는 무표정엔 그것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했다. 정말로 차가운 마음을 하고 있는 한 송이 장미였다.
“보고 싶지 않았어?”
그래도 다시 만나 반가운 왕자가 말했다. 이전보다 퍽 성숙해 보였다.
“보고 싶었어.”
장미가 조용히 말했다. 그의 말에 안심한 소년이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아니야.”
“응?”
“지금은 보고 싶지 않아.”
“무슨 말이야?”
“네가 내 곁에 있으니까. 그걸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지금은 보고 싶지 않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꼭 알 필요는 없어.”
“그냥 고집이구나.”
“그래, 그런 거지.”
“그런 건 안 좋아.”
“알아.”
다시 한기가 돌았다. 그들 둘 밖에 없는 행성에 겨울이 온 듯 했다. 왕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 또 많은 것을 배웠고.”
“좋았겠네.”
“네 마음은 모르겠다. 분명 알고, 확신하고 온 것 같은데.”
“모르는 척 하지 마. 다 알고 있잖아?”
“... 그냥 고집이라는 거?”
“그래. 이건 그냥 고집이야.”
다시 정적이 흘렀다. 왕자는 짜증을 느꼈다. 안 그래도 피곤한 여정에 이런 환대라니.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작은 행성에 조용한 울림이 일었다.
“난 널 위해 성숙해져서 돌아왔어.”
“떠나지 말았어야지.”
장미가 울먹이며 따졌다.
둘은 오랫동안 등을 기대고 앉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