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에서

by 욀슨 posted Dec 0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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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 중에 한 산골마을에 들렀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 마을은 성인식을 위해서는 집을 하나 지어야 하는 그런 풍습이 있었다. 둘러보던 와중, 나는 허리가 굽고, 수염이 희끗희끗한 노인 하나를 만났다. 그는 마을 구석의 공터에서 목재니 돌을 다듬고 있었다. 누가 봐도 엄청난 수고를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법한 건축자재들이었다. 


"이것은 어르신 것입니까?" 내가 말했다.


"그렇소." 노인은 내게 눈길조차도 주지 않고 말했다.


"어르신은 집을 짓는 젊은이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을 주며 생계를 꾸리고 계시는군요."


"무슨 헛소리요? 다듬고 있는 돌도 나무도 전부 내 것이오. 아무에게도 줄 수 없소. 나는 완벽한 집을 짓기 위해 건축자재를 다듬고 있다오. 집이 완성되는 날이면 먼 마을에서도 나를 보러 찾아오고, 내 이름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되겠지.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가 되면 젊은이도 초대하리다." 노인은 다시 일로 돌아갔다. 


즉슨, 그는 아직도 성인식을 치르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거기다 그가 다듬고 있는 목재니 석재를 다시 보니, 으리으리한 궁궐에나 어울릴 법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다지고 있던 땅은 누가 봐도 노인 하나 들어갈 수 있을 오두막 정도의 넓이였다. 나는 노인에게 하고 있던 일에서의 행운과 앞으로의 안녕을 빌며 다른 곳을 둘러봤다. 집 하나를 짓다가 말고 다른 집을 짓고 있는 중년, 기둥은 세우지도 않고 지붕과 마루만 지어놓고 허송세월하는 영감, 이도저도 아니고 자신이 만약 집을 짓게 되면 어떻게, 얼마나 아름답게 지을 것인지 종일 이야기만 나누는 노인들이 있었다. 며칠 뒤 내가 마을을 나섰을 때, 산 너머에서 몰려오는 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큰 바람과 비를 몰고 올 법한 그런 구름이었다. 자기 집 없는 사람들은 무사할까? 이제 집 짓는 것은 포기하고 다른 마을로 가서 화전火田이라도 부쳐 먹고 살 것인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비바람이 모든 것을 날려버리건 말건, 그들 중 아직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계속 재료를 다듬고, 짓던 집을 두고 다른 집을 짓고, 지붕과 마루만 지어놓고, 지을 집에 대해 종일 담소만 나누리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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