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8 07:22

Obey me , Defy me

조회 수 495 추천 수 2 댓글 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

-그림자  왕국(1)-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에 사람들은 니콜라스 도프만 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좀 더 대중에게 인기 있는 이름으로는 '서 도프만' 인 듯 하다.
실례로, 나의 부관이라고 하는

 

"도프만 경. 곧 회의에 참석하실 시간입니다."
"알았네 솔트레이 부관."

 

해밀턴 솔트레이. 나의 부관이라고 자처한 자지만 분명 그렇다면 매일 봤을 사이임에도 이렇게나 낯설 수 가 없다.

마치 처음보는 사람을 이제 막 보기 시작한 것 같다.

 

"헌데, 솔트레이."
"해밀턴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예전엔 줄곧 그렇게 부르셨으니까요."
"아니 아니, 영 어색해서 말이지 그부분은. 자네 말대로라면 나는 자네에게 어색함이라던가 낯설다든가 계면쩍다든가 하는

감정을 가질리가 없는데 말야."
"서 도프만. 당신은 실종된 1년간 기억을 잃었습니다. 저에 대해 어려워 하시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좋아. 그건 나중에 찬찬히 살피도록 하고, 회의라니 보고 받은 게 없을텐데 지금쯤 '앙드레뉴' 가의 영애와의 선 자리가 있다고 들었네만."
"앙듀레뉴 가의 여식과의 친밀된 자리는 나중입니다. 그보다는 폐하의 소집이 우선입니다."

 

폐하라. '사자왕' 이라고 불리는 5년전만 해도 북방을 정벌하며 수라로 불린 벨루시 폰 그람스 베아트리체 3세. 현재는 정벌 간 의 피해수복에 주력하느라 얼굴도 보기 힘든 보기드문 정력적인 왕이였다만,

 

"폐하의 소집이라니. 별난 일인데."
"예, 최근 반년은 칩거하셔서 도통 얼굴을 내미시질 않았으니까요."

 

도프만과 솔트레이는 알현실로 가면서 약간의 잡담을 나누었고, 알현실에서 들어서서는 소소한 잡담은 일체 하지 않았다.
500년 왕조를 자랑하는 순혈 왕국인 베아트리체 왕국의 왕에 대한 예의로는 가장 큰 첫번째로 '왕' 이 입을 열기 전에 발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입을 뻥긋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왕'을 앞에 두고서는 불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경들을 이렇게 부른 게 내가 심심해서는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겠지."

 

지엄하고 지고하신 베아트리체의 왕 '벨루시 폰 그람스 베아트리체 3세'는 여전히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 1년간 기억을 잃었음에도 이 목소리는 각인된 것마냥 잊혀지지 않는 무거움이 있었다. 물론 행동하는 그 정력넘치는 일처리와는 전혀 상반되는 목소리긴 했지만 이 사자왕의 카리스마에 적어도 한 몫 했으면 했지 손해보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왕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도 힐끗 할 수 도 없이 목소리만 들어야되는 이 알현실에서는 더더욱.

 

"폐하, 신 루마노스.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아마 이곳에 모인 자들 중에서는 가장 신분이 높을 것으로 추측되는 페이백 폰 루마노스 후작이 벨루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그는 이 자리가 영 탐탁치 않은 듯 한 시선으로 주위에 선 자들을 연신 곁눈질하고 있었다.

 

"여기 모인 자들 중에는 아무래도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자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낡은 구닥다리 같은 생각은 관두시오 후작. 내가 저 냄새조차도 맡기 싫어진 잉크와 손에 검보다도 쥐기 싫은 펜을 쥐고 있던 반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경들을 부른게 아니라 했소."

 

후작의 발언에 벨루시는 쏘아붙이며 말을 이었다.

 

"여기 모인 경들의 공통점이 뭔 줄 알고 있소?"

 

사실 알 턱이 없다. 난 심지어 여기 모인 자들의 일부는 이런 성에 존재하고 있었나 하는 생전 처음보는 인물도 섞여 있었을 정도였다. 루마노스 후작이 듣도 보도 못한 자들과 한자리에서 왕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이 불편해 할 수 도 있을 법했다.-귀족의 입장으로서 말이다- 일단 방금 전 후작의 일례도 있고 해서 모두는 무언의 침묵으로 결속되었다. 그들은 왕의 다음 말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고 나 역시 그 중 하나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왕은 역시 우리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는 자가 단 한명도 없다니. 그대들이 정녕 5년전 '북방정벌'의 영웅들이 맞나 의심되는 순간이군. 이런 자들로도 이길 수 있을만큼 북방의 교활함은 둔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5년전 이라. 기억은 난다. 그 시절은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두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4년에 걸친 혹한과의 전쟁이었고, 그곳을 제패하고 있던 코젤리아의 지형과 기상을 이용한 교활함은 당초 원정 당시의 십만에 달하는 병력을 정벌 시작 반년만에 절반으로 줄이는 쾌거를 이뤄냈다. 지금도 그곳에서 일부나마 코젤리아의 영토를 일부 정복해 유지하고 있는 거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그 당시의 치열함은 베아트리체 역사상 '윈스턴의 난'빼고는 없는 듯 했다.

 

"북방에서 크고 작은 승리들을 이끌면서 정벌의 공신이었던 자들이 바로 경들일세. 하지만 그렇다고 벌써부터 걱정은 하지 말게. 아직 코젤리아 녀석들의 코에 창을 꿰메줄 생각은 없으니까."

 

코에 창을 줄줄이 꿰메는 비유는 정복야욕을 비추기에는 제격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코젤리아 녀석들의 변태적인 습성을 지닌 처형방법으로 포로들을 죽일 때 쓰는 '코걸이' 라는 방식으로 콧구멍을 관통 시작지로 후두부로 창끝이 뚫고 나오게 하여 죽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비록 변태적인 방법일지 몰라도, 적어도 우리 군의 용맹을 추위와 더불어 저하 시킨 것으로는 탁월한 방법이었다. 실제로 모양새도 매우 비참하고 코걸이의 속도는 매우 천천히 라 콧속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창끝이 들어오는 고통을 온몸으로 맛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뾰족한 가시가 박힌 사슬이 달린 철퇴로 일격에 적의 머리를 수박처럼 박살내거나 혹은 안면을 두부처럼 으깨어 사방으로 튀는 피와 뇌수 등이 주는 공포와는 또다른 공포가 존재한다. 서 도프만은 그 당시 자신의 콧구멍 속으로 들어오기 직전의 창끝의 날카로움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창날'을 극도로 혐오했다.


아니, 무서워 한다고 보는 게 옳았다.


사설로 빠져버렸지만. 서 도프만은 악질적인 왕의 농담에 속으로 치를 떨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다들 그리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긴 그 처형방법을 안 보고서 살아 돌와올 순 없을 것이다. 4년간 보지 못했다면 반대로 코걸이를 당해 지금쯤 싸락눈에 파묻혀 있었을 테니까.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서 도프만, 앞으로."

 

방금 서 도프만이라고 부른건가. 서 도프만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혹시 비슷한 이름을 가진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하고 버텨보았다. 하지만 그의 청각이 아직 노화되어 자기 이름 조차 잘못 들을 정도로 나빠지진 않았기에

 

"니콜라스 도프만 경. 자네 말일세 자네."

 

다음 지명에는 별 수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절도있게 한발짝 앞으로 나왔다. 차각차각 하는 쇠부츠의 울림과 함께 주위의 이목은 니콜라스 도프만 이라는 자가 누구인지 열심히 생각해내고 있는듯 했지만 좀처럼 떠올릴 수 없는 듯해 보였다. 뭐 당연하게도 서 도프만은 그저 흔하디 흔한 기사 중 하나였을 뿐이지 혈혈단신으로 코젤리아 녀석들을 도발하고 함정에 빠트려 퇴각하는 아군을 추격하는 적군을 삼일간 묶어두었던 전설의 노장 '후안' 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를 바라보게. 내가 자네 얼굴을 볼 수 있게. 난 사람과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걸 선호하니까."

 

베아트리체의 왕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왕실 예법상-
생애 서 도프만은 자신이 알현실의 지엄하고도 케케묵은 역사만큼이나 위엄있는 법칙을 왕의 명령 하에 깨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한 표정을 속으로 간신히 감추며 마침내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모시는 최고지배자인 사자왕 베아트리체 3세 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는 호재 아닌 호재를 누리게 되었다.
-왕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는 건 알현실에서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다. 베아트리체의 지배하에 놓인 모든 영역에서는 자신이 섬기는 왕을 올곧이 바라볼 수 없으며, 이것은 국법으로 지정되어 있고 위법시 왕을 호위하는 '병' 이라면 그 누가 되더라도 '즉결처분'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우선 강렬하기 짝이없는 이 첫인상 부터 서술하자면 근엄하지는 않았다. 단지, 인식되어 있는 카리스마가 워낙 강렬했던지라 만만해 보이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모래빛의 거친 머리칼과 다부져보이는 육체. 그리고 북방정벌 당시 코젤리아의 국경군과의 첫 전투에서 당했다고 하는 오른쪽 뺨의 가로로 길게 난 창끝이 스친 흉터.

-이제 와 생각해보지만 서 도프만의 주관으로는 코젤리아는 '창' 이라는 무기를 굉장히 선호하는 것 같았다.-

 

키는 커보였고-왕이 앉은 단상이 꽤나 높은데다 옥좌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얼굴은 준수한 편에 가까웠다. 저게 내가 섬기던 왕이라는 자인가. 하는 증거로는 오로지 그가 옥좌에 앉아 금색의 왕관을 쓰고 오만한 자세로 니콜라스 도프만을 재밌는 놀잇감을 본 것 마냥 바라보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서 니콜라스 도프만이 국왕폐하를 뵈옵니다."
"아아, 그래. 그대가 그 '하얀 죽음'을 격퇴시켰다는 자로군. 그 순간을 기점으로 우리 군의 전황이 크게 바뀌었다고 들었네만."
"그렇지 않습니다. 영민하시고 용감하신 폐하의 지략과, 폐하에 대한 충성으로 가득 찬 우리 베아트리체 군의 잘 훈련된 움직임의 산물이지요."
"그건 지능적으로 날 무안하게 만드는 거 같은데. 자네는 지금 짐의 귀가 옳지 못한 소리를 들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영민하긴 커녕 아둔하다고 해야겠군. 그런 거짓부렁 하나 밝혀내지 못하다니 말이야."

 

뭐하자는 거냐 지금. 니콜라스 도프만은 왕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도통 읽을 수 가 없었다. 어서 빨리 이 불편한 자리를 끝내고 싶은데 도통 왕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코젤리아의 '하얀 죽음'을 이기지 못했어. 심지어 나조차도 그에게는 패배했지. 비록 한번이라고는 하나, 자네는 그 요물을 물리쳤네. 해서 내가 일을 하나 맡기려고 하네만 괜찮은가."
"신의 능력이 미천하여 감당키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루마노스 후작 같은 인재도 있으신데 어찌하여 그러십니까."
"들어보지도 않고 거절이라. 짐이 우습게 보이나 보지. 나는 분명 자넬 지목했네 니콜라스 도프만 경."

 

처음이었다. 서 도프만의 머릿속에 이 변덕적인 왕의 목을 치고 싶다는 살심이 생긴것은. 그러나, 그는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아는 이였다.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서 도프만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을 이었다.

 

"기사, 니콜라스 도프만. 국왕폐하의 명을 받습니다."
"그래, 그 대답을 기다렸다. 짐이 명한다. 여기 있는 자들을 전원, 포박하라."

 

순간이었다. 기묘한 정적이 약 2초정도 흐르면서 좌중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과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오고갔다. 만감이 교차하는 군. 이 무슨 해괴한 놀음인가. 니콜라스 도프만은 일단 움직이지 않은 채 다음을 기다렸다. 마치 잘 못들은 것 마냥. 그리고 곧이어

 

"두번 말하지 않는다. 여기 있는 자 전원, 포박하라. 대항하는 자는 죽여도 좋다."

 

왕의 선고가 내려졌다.
뭐 대단치도 않은 걸 말하는 느낌으로. 이게 무슨 상황인지 그의 머리론 도통 이해할 수 없지만.

일단, 서 도프만은 자신의 부관인 해밀턴 솔트레이 에게 몸을 돌렸다.

 

"내 검을 가져오게. 포승줄도 같이."

 

해밀턴 솔트레이는 유능한 부관인 것 만큼은 틀림없었다. 군말 하지 않고 어떠한 기색도 내비치지 않은 채 자신의 상관만큼이나 심란한 마음일진대도 고개를 숙여보이고 즉각 알현실을 나섰다. 모두가 너무 놀라 벙찐 얼굴로 그 행동을 저지하지 못했고 그 와중에 그래도 간신히 침착을 되찾은 루마노스 후작이 입을 열었다.

 

"폐하, 어째서입니까. 이게 갑자기 무슨 명이십니까!"
"언성을 높이도록 허락한 적도. 발언하라 한 적도 없는걸로 안다 루마노스 후작. 짐의 명이 불만인가?"
"부당합니다!"
"많이 컸구나. 페이백 당신이 나에게 후작위를 수여 받던게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니콜라스 도프만, 기사로서 내 '명'을 받들지 않았는가? 뭐 하는가. 아직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것은."
"...실례하겠습니다.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있으신다면 얌전히 묶기만 하겠습니다만, 목숨이 아깝지 않으신 분들은 저항하셔도 좋습니다."

 

이런 개같은. 누군가가 내뱉은 욕설이었다. 뭐 쉬울 거라고 예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넌 너무 성급하군. 니콜라스 도프만은 일단 전원 비무장이란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여기로 무기를 가져올 수 잇는 자는 이제 자신뿐이다. 아무리 북방정벌의 생환자라고 해도 무기가 있고 없고는 검을 쓰는 자로서 결정적인 우위를 두고 싸우는 것이다. 그는 아마 팡세 백작이라고 하는 자 였을 것이다. 5년동안 재대로 된 싸움이라고 해본적이 없을 백작이라는 신분과 다르게 니콜라스 도프만은 북방정벌 이후 한시도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정확히 4년 정도는. 일년정도는 기억이 통째로 날아가 없으니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북방정벌의 혹독함이 너무나도 끔찍해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4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강도 높은 훈련과 대련을 반복해오고 있었다. 그는 백작에게 다가가 대뜸 백작의 멱살을 잡고 바닥으로 끌어내리며 쇠부츠로 정강이를 걷어찼다. 백작은 외마디 비명 한마디를 토해낸 뒤 정강이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르고 싶었지만 여전히 멱살을 서 도프만에게 쥐여진 채였다.

 

"끄윽, 네놈, 일개 기사나부랭이 따위가..지금 누구 몸에 손대고 있는 지 알고나 있는 것이냐!"
"나는 왕의 칙령을 받고 있는 자다. 백작, 그 말은 지금 저기 앉아계신 폐하께 하는 것으로 왕실모독으로 간주하여 가중처벌 해도 되겠나."

 

이건 진짜야.

 

팡세 백작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내친 서 도프만은 일부러 위압적으로 보이도록 그의 턱을 올려찬 뒤 소리쳤다.

 

"움직이지 마라!"

 

무슨 바보같은 짓거리인가. 혼자서 이 인원을 전부 상대하겠다니.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실제로 왕은 그에게 무기를 내주지도 병력을 주지도 않았다. 다만, '왕권' 이라고 하는 모든 수단을 끌어 쓸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을 잠시 빌려줬을 뿐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이용한다. 이것은 솔트레이의 기지를 시험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만약 생각한대로라면 솔트레이는 딸랑 검 한자루와 밧줄이 아니라 원군을 끌고 올 것이기 때문이다.

 

"어명이다. 얌전히 무릎을 꿇고 손을 머리 뒤로 깍지 껴 돌려라. 반항하는 자는 죽이겠다."

 

왕. 벨루시 폰 그람스 베아트리체 3세는 그가 시간을 벌 뿐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현명하다. 이렇게 모두가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원하는 것이 당도하길 기다린다.
실로, 쓸만하도다. 그의 푸른눈은 투명하게 눈 앞의 광경 전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상대로 모두는 왕의 명에 따라 순순히 저 기사나부랭이에게 포박을 당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 이유도 모르는 명령에 불복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건 지금 반항을 하면 죽는다는 거다. 그들은 비무장이고, 저 기사나부랭이의 부관이 이제 막 알현실 문을 열어 젖히며 알현실 주위를 지키고 있던 병력을 죄다 끌어온 모양새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늦었군 부관."
"인원이 좀 많아서 말입니다."

 

일단, 순순히 굴면 죽지는 않는다. 그러면 왕이 왜 이런 명령을 내렸는지 연유를 들을 수 있다. 설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겠나가

그 대다수의 생각이었다.
먼저 항복하는 자가 늘자 최후에 수치심에 얼굴이 울긋불긋해진 루마노스 후작 조차도 콧김을 연신 내뿜으며 항복의 의사를 표했다.

 

"폐하, 여쭙겠습니다. 어찌하여 이러십니까."

 

생전 처음으로 밧줄에 온몸이 묶여본 루마노스 후작이 얼굴을 땅에 쳐박은 채로 물었다.

 

"음, 그래. 이제 연유를 말해주도록 하지. 페이백 폰 루마노스 후작. 그대를 필두로 현재 포박된 전원의 작위를 박탈하고 모든 재산을 몰수하겠다. 연유는 다음과 같다. 그대들이 운영하고 있던 불법도박장 과 불법 성매매. 특히 어디서 구했는지 몰라도 후작, 그대의 집에는 매매가 금지되었던 '엘프' 까지 있더군. 나라의 골수를 빨아먹는 그대들 같은 해충을 이 나라 요직에 올려두고 있을 이유는 하등 없으며, 아울러 루마노스 후작. 그대는 아무래도 줄을 잘못 탄 게 아닌가 싶은데 안 그런가. 센즈 감찰관."


센즈 감찰관.
루마노스 후작은 처음엔 누굴 말하는거지. 어떤놈인지 몰라도 죽이겠다 하다가 옥좌의 뒤에서 나는 노인의 목소리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왕의 허락이 내려지지 않았음에도 옥좌가 있는 방향으로 얼굴을 치켜 들었다. 이 표정은 두고두고 나중에 생각해도 볼만 하겠다고 생각하며 서 도프만은 머릿속에 똑똑히 기억해두기로 했다.

 

"후작. 원래 모든 일은 선택이 중요하네만, 설마하니 그렇게 쉽게 덫에 걸릴 줄은 몰랐군. 돈을 많이 모으고 병사들을 많이 모으고 있길래 혹시나 해서 찔러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폐하는 집무실에서 모든 것을 내다보고 계셨습니다."
"그럴수가, 설마 당신이...크읏!"
"당신의 영지에 그 수많은 사병과 최근 3년간 모아온 재물의 양. 그러면서도 세금을 걷는 양은 전혀 변하지 않고, 영지에 어떠한 발전도 기여하지 않은 채 그저 유지만 시켜놓을 뿐. 이정도 증거가 있으면 더욱 더 몸을 사렸어야죠. 탐욕의 냄새가 여기 옥좌까지 진동해오는데 말이지."

 

목소리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자취를 감추듯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대신에 이번엔 왕이 직접 입을 열었다.

 

"...이보게 후작. 왜 이 베아트리체 왕국이 바로 옆에 제국 세첸브리아를 끼고도 속국으로 전락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는지 아나?"

 

벨루시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단상을 내려왔다. 서 도프만은 최근 반년간은 칩거한 채 나오지도 않고 일더미에 파묻혀 지낸 사람치고 굉장히 균형잡힌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후작의 앞까지 당도한 벨루시는 친히 무릎을 굽혀 그와 눈높이를 맞춘 뒤 그의 턱과 볼을 손아귀에 움켜쥐며 말했다.

 

"바로, 자네같은 녀석들이 딴 맘을 품는 걸 귀신같이 알아차리기 때문이지. 세간에서 그러지 않던가. 베아트리체의 왕에게는 또다른 눈과 귀가 있다. 눈과 귀만이 아니지. 코 나 손의 역활도 하고 다리나 입의 역활도 하는, 그런 게 있다네. 그들은 늘 이 나라의 모든 것을 주시하지. 어느 나라건 마찬가지야. 왕이나 황제가 되면 그런 조직이 존재하기 마련이네.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는 이런말도 있지 않던가. 폐하의 성은이 이 나라 구석구석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왜 나약한 왕을 소재로 한 소설이 베아트리체에 만연하는줄 아는가? 바로 그점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지. 늘 신하들에게 휘둘리는 왕. 충신 한명만 믿는 왕. 어리석어도 너무 어리석고 너무나도 뻔한 의도가 보이지 않던가 자네눈에는? 뭐, 그랬으니 역모라는 것도 꾀할 수 있던 거겠지."

 

벨루시는 손을 빼며 더이상 신경쓸 것 도 없다는 듯 뒤돌며 서 도프만을 향해 말했다.

 

"자, 이제 명분은 충분하신가 도프만 경. 여기 있는 전원은 루마노스 후작파에 속한 자들로 역모에 가담한 자들이다.

모조리 그 목을 쳐 그 싹을 잘라내라. 지금 이자리에서."

 

그건 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만.
니콜라스 도프만은 왕의 의견에 정반대 생각이었다. 지금처럼 이렇게나 카리스마 있는 품위를 유지하는 왕이 몇백년간 내려온게 베아트리체다. 그렇다면 차라리 더욱 더 그 권위를 강화해서 아예 역모를 할 생각조차 안들어가는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이상론일 뿐이라는 것을 다른 누구보다도 서 도프만이 잘 알 고 있었다.


니콜라스 도프만은 병사들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발검." 병사들이 검을 뽑아들자 이번에는 "참수." 라고 말하고 툭툭 하고 머리들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떨어져 나가자 "착검."이라 말했고, 더이상 겁에 질려하는 역도들은 없었다. 그저 그들의 얼굴과 눈에는 분함과 억울함. 후회와 삶에 대한 미련이 가득했다. 서 도프만은 발치에 구르는 루마노스 후작의 머리채를 쥐어 똑바로 세워놓으며 생각했다. 알현실의 레드카펫은 역도들의 피로 물들어 흰색이 붉은색으로 변했다는 거던데
그것은 사실일지도 모르겠군.

.
.
.

근데 이게 누가 말해준 거었지?

------------------------------------------------------------------------------------------------------------------------------------------------------

상당히 찜찜한 1화. 퇴고 한다고 했는데 분량 쓰기도 벅차 퇴고는 생각도 못하고 오탈자만 신경써서 올립니다 ㄷㄷ;
일단 스타트 끊어버렸으니까요. 어떻게든 다음주 것도 쓸 수 있겠지 하고 생각중입니다. 생각보다 힘드네요; 요즘 롤에 빠져서 큰일입니다. 모두들 수고하셔요. 저는 그만 자러갑니다.

------------------------------------------------------------------------------------------------------------------------------------------------------

일요일이군요.

어제 새벽에 자기 전 한번 모바일로 훑어 보고 미처 못본 오탈자와 중복되는 문장 같은 거 두어개

손봤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의 추진력을 위해 일부러 정보를 많이 푸는 전략을 초반에 택했습니다.

떡밥도 많이 풀었구요.

원래 하나하나 떡밥 풀면서 본격 - 니콜라스 도프만 기억 찾기. 가 주제가 되었지만 그건 이제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으로 글의 골격 자체를 변경해서 진행중입니다.

해서 LTE로 전개해보도록 하죠.

 

그럼 오늘도 수고많으십니다. 건필하세요.


 

?
  • profile
    yarsas 2012.11.18 08:05
    정기연재 시작하셨군요.

    괜찮은 시작이라 생각합니다만, 전체적으로 뜻이 모호한 긴 문장이 빈번하게 등장하는군요. 사건 내용이 복잡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문장들이 내용 이해를 더디게 하는 것 같습니다.

    시작부터 등장인물도 많고 임펙트 있게 시작하시는 것이 제 취향이랑 비슷하군요. 앞으로의 전개 기대하겠습니다.
  • profile
    역전 2012.11.18 17:31
    감사합니다. 엑스트라들이긴 하지만 등장인물을 굳이 연출시키는 건 떡밥을 뿌리는 행위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모호한 문장이라 하시면 코젤리아의 북방정벌 당시의 내용을 상세히 회상하거나
    왕실 예법등을 말하시는 건가요? 나중에 두어번 더 설명하는 일 없이 가려고 써놓은건데 이해를 더디게
    하는군요;; 그냥 부연설명이라고 만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깊게 생각할 필요없이.
    약간 이영도 식 판타지인 '자기 세계관' 건설이란게 해보고 싶어서 이 Obey me , Defy me 에 도전중이어서
    그렇습니다.
  • ?
    강건마 포인트맨 2012.11.18 17:31
    10점 뽀오나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profile
    욀슨 2012.11.18 11:55

    연재 시작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연재될 내용도 기대하겠습니다.

  • profile
    역전 2012.11.18 17:32
    감사합니다. 욀슨님 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서 정기연재작으로 돌아오세요 기사의 장송곡 다봤단
    말입니다 (笑)
  • profile
    윤주[尹主] 2012.11.21 08:44
    잘 봤습니다. 시작부터 피가 난자하네요.
    주인공이 기억을 잃었다는 설정 탓인지, 묘하게 관조적인 태도 탓인지 좀 색다른 분위기가 납니다.
    앞으로 멋진 연재 기대할게요 ㅎ
  • profile
    역전 2012.11.22 07:21
    욀슨님이 잘 소개해주었듯이
    음모와 계략이 판치는 어지러운 궁정이야기다
    보니까요.
    역모숙청은 빠질수가 없더군요. 응원 감사드립니다 ^^
  • ?
    강건마 포인트맨 2012.11.22 07:21
    10점 뽀오나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320 [UNDEAD] 5. 생과 사에 걸친 자 - 1 4 yarsas 2012.10.21 401 2
319 바람의 리에시아-엘티아의 6 비보- 프롤로그 2 XatraLeithian 2012.10.23 378 2
318 [단편]첫번째라고 불린 날 12 윤주[尹主] 2012.10.25 376 2
317 [UNDEAD] 5. 생과 사에 걸친 자 - 2 4 yarsas 2012.10.27 435 2
316 『2012년 5월 5일』타임슬립 로맨스! 장기일【13화】 4 ♀미니♂ban 2012.10.29 320 2
315 [엽편] 어느 할로윈 4 욀슨 2012.11.01 297 1
314 [습작] 냄새 7 욀슨 2012.11.08 400 2
313 [UNDEAD] 5. 생과 사에 걸친 자 - 3 7 yarsas 2012.11.09 445 2
312 [단기기획] Planet Strangelove (1) 8 욀슨 2012.11.10 329 2
311 [내일의 일기] 쌓아온 그 말의 횟수 4 2012.11.12 430 3
310 [단기기획] Planet Strangelove (2) 6 욀슨 2012.11.13 365 2
309 『2012년 5월 6일』타임슬립 로맨스! 장기일【14화】 4 ♀미니♂ban 2012.11.15 352 1
308 [내일의 일기] 1 기브 2012.11.16 359 1
307 [내일의 일기] 삼첩화 5 욀슨 2012.11.16 558 2
306 [UNDEAD] 5. 생과 사에 걸친 자 - 4 6 yarsas 2012.11.17 486 2
» Obey me , Defy me 8 역전 2012.11.18 495 2
304 [연작] 희귀동물 추적관리국-만드라고라의 비명소리를 쫓아서 2 욀슨 2012.11.18 416 0
303 [연작] 희귀동물 추적관리국-살아있는 호수의 공포 3 욀슨 2012.11.18 410 0
302 [내일의 일기] 내일은 이미 벼락처럼 내게로 찾아와 11 윤주[尹主] 2012.11.19 412 2
301 [오랜만의 컴백이에요^^]기억해줄래 - 15. 새로운 일상 2 클레어^^ 2012.11.19 451 2
Board Pagination Prev 1 ... 200 201 202 203 204 205 206 207 208 209 ... 220 Next
/ 220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제휴문의] | [후원창구] | [인디사이드연혁]

Copyright © 1999 - 2016 INdiSide.com/(주)씨엘쓰리디 All Rights Reserved.
인디사이드 운영자 : 천무(이지선) | kernys(김원배) | 사신지(김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