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노래 - 01

by 원준 posted Jul 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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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눈빛의 순록 머리 위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난롯가에는 밝은 오렌지 색 불이 일렁이며 방 안을 물들이고 있었지만 열기가 미처 닿지 못한 창가에는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김 서린 유리 밖으론 짙은 보라색 배경 속에 칩엽수들의 흐릿한 실루엣이 비춰지고 있었다. 투박한 식탁 위에는 빈 맥주병들과, 아무렇게나 던져진 트럼프 카드와 지폐들이 맥주에 부분부분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식탁 아래로 떨어진 카드 몇 장은 끈적한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하트 퀸 옆엔 눈을 반쯤 뜬 남자의 시체가 있었다. 머리에 한방, 가슴에 두 방. 화장실에는 바지를 내린 남자가 변기 위에 퍼질러져 있었다. 머리에 한방, 가슴에 두 방. 아무렇게나 가구들을 제껴 만든 공간에는 대머리 남자가 속옷만 입은 채로, 허벅지에 난 총알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식탁 의자에 꽁꽁 묶여 있었다.

 덜덜 떠는 대머리 남자 앞엔 알이 커다란 선글라스를 쓴 매부리코 남성이 서 있었다. 그는 한손엔 빈 맥주병, 다른 한 손엔 알루미늄 야구 배트를 들고 있었다. 창가에는 날카로운 눈빛의 남성이 막 불을 붙인 궐련을 입에 문 채 무표정으로 창에 서린 김에 손가락으로 별을 그리고 있었다. 그의 목덜미에도 아기 손바닥만한 별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그가 별을 하나 그릴 때 마다 검정 가죽 자켓이 가볍게 흐늘거리며 권총집 속의 9mm를 살짝 드러내었다.

 매부리코 남자가 맥주병을 바닥에 툭, 떨어트리곤 야구 배트로 가볍게 내리찍어 조각을 내었다. 그는 겁에 질린 대머리 남자 앞에 웅크리고 앉더니 오른손으로 대머리의 얼굴을 거칠게 움켜쥐더니 주섬주섬 뭔갈 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씨발 가만있어! 아가리 다 헐고 싶어?”

 깨진 버드와이저 병 조각을 벌벌 떨고 있는 남자의 입에 세심한 손길로 하나하나 집어넣고 있었다.

 

“...... 여덟... 아홉, 열!”

 그는 몸을 일으킨 뒤, 뒤로 두어걸음 물러서 팔짱을 낀 채 상체를 뒤로 살짝 젖히고 마치 예술을 감상하는 듯 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입 한 가득 맥주 병 조각으로 가득 찬 대머리의 아랫 입술 위로 침과 피가 옅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공포에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유리조각 사이로 흐느끼는 소리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자신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지, 매부리코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옅게 띄워졌다. 그는 옆에 내려둔 알루미늄 배트를 집어들곤 가볍게 대머리의 크게 벌려진 턱 아래에 가져다 대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할 건지 알겠지? 빨리 말해.”

 그는 고개를 돌리며 피식, 하더니 배트를 잠시 낮추었다.

 

“아니, 미안. 취소. 빨리 눈짓이든 뭐든 해봐.”

 대머리 남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필사적인 표정으로 방의 한 구석을 향해 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매부리코 남자는 그가 가리키는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의 구두가 나무 판자 위를 지나며 요란하게 뚜벅 뚜벅 소리를 내었다. 방구석에 다다른 남성은 대머리 남성을 향해 돌아보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대머리의 눈동자는 구석의 바닥을 향해 있었다. 매부리코가 알루미늄 배트로 바닥을 가리키더니 다시 확인하듯 ‘여기?’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대머리가 고개를 마구 끄덕이자 배트로 판자를 내리쳐 부쉈다. 안에는 작은 공간이 있었고, 그 안에는 작은 상자가 들어 있었다. 매부리코는 상자를 꺼내 먼지를 훅 하고 불더니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곤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창가의 남자에게 상자를 휙 던져 건네주곤 다시 대머리에게 돌아왔다. 그리곤 양손으로 알루미늄 야구 배트를 꽉 쥐곤 양 팔을 옆으로 쭉 뻗었다. 만약 그게 사람 대가리가 아니라 야구공이었다면 분명히 홈런이었을 것이다.

 

---

 

 막 아침 해가 비추기 시작한 눈밭 위 오두막 앞에 검정색 승용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김 서린 촌스러운 안경을 쓴 장년의 유태인 남성이 조수석에 앉아 신문의 부고란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원하던 것을 찾지 못했는지, 그는 신문을 접어 뒷좌석에 휙 하고 던져버린 뒤 안경을 벗고 양 손 검지로 미간을 문질렀다. 컵 홀더에 손을 뻗어 아직 김이 새어 나오고 있는 맥도날드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컵을 창밖으로 휙 하고 던져버렸다.

 

“아까운 커피는 왜 버려?”

 또 다른 양복의 남자가 운전석 문을 열고 들어오며 물었다. 그는 양복 자켓을 꽉 여미며 부르르 하고 떨었다(그는 실제로 입으로 ‘부르르’소리를 내었다). 삼십대 후반 쯤 되어 보이는 남자는 젤을 발라 꼼꼼히 넘긴 올백 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입꼬리에 수직 흉터가 나 있었다.

 

“저거 완전 쓰레기야. 끔찍하군. 형편없어.”

 유태인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두 놈은 깔끔하게 죽었어. 머리에 한 방, 가슴에 두 방씩. 프로 짓인거 같아.”

 그가 말하며 럭키를 하나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근데 나머지 한 놈은 코 아래부터 완전히 너덜너덜해졌더군. 그 왜, <닥터 후>에 나온 외계인처럼 됬어. 입이 문어발같은 거 있잖아.”

“우드?”

“몰라, 여튼 죄다 조지고, 죄다 들고 날랐어.”

 유태인은 자켓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더러운 안경을 닦기 시작했다.

 

“귀찮게 됬군.”

“귀찮게 됬지.”

 올백머리가 대꾸하며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