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23 03:54

수필-추억을 따라 달리다

조회 수 425 추천 수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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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전을 지나 대청댐을 가기 위해서는 작은 마을을 지나야 한다. 그곳에서 내 어린 시절의 일부분을 남겼다. 용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초등학교 뒤로 흐르는 금강은 맑은 날이면 자주 안개를 만들었다. 그 안개는 너무 짙어 세 걸음 앞도 보기 힘들 정도였다. 어린 날에는 안개 낀 아침에 학교로 가기 위해 언덕을 내려가고 있노라면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탐험가가 된 기분이 들곤 했다.

    아쉽게도 흐린 날씨에 안개는 끼지 않았다. 대청댐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동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날, 이미 몇 십 킬로미터를 달려와서 땀으로 흠뻑 젖은 몸에 시원한 비가 쏟아졌다. 달리는 동안 옆으로 지나가는 금강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사람이 없기에 그러한지는 모르겠으나 십년 전에 자주 봐왔던 고요한 강물과 같았다.

    산의 옆구리를 둘러 뻗은 길은 금강과 함께 맞닿아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자주 있는 전형적인 산길이다. 달리는 위로 나무들이 가려줘 비를 조금이나마 막아준다. 한참을 달리면 간이댐이 나온다. 댐 위로 작은 다리가 있는데 다리를 건너고 나서야 자전거를 달릴만하게 뻗어있는 길이 나온다. 정돈이 잘 된 도로 옆으로 꽃이 만연하다.

    댐과 가까워지면서 강도 깊고 어두워졌다. 그 위로 비가 쏟아지면서 약한 비안개가 깔린다. 슬슬 댐과 가까워져서 그런 것일까. 자동차가 자주 지나간다. 음식점도 보이기 시작했다. 붕어 따위의 민물고기 요리를 하는 음식점이 대부분이다. 어린 시절 먹었던 민물고기 요리는 언제나 비렸던 기억이 스친다.

    비가 어깨를 쳐지게 할 만큼 오건만 댐으로 놀러온 사람들은 많았다. 비를 뚫고 올 정도로 멋진 곳이었던가. 어린 시절 기억에는 댐의 기억이 없다. 주차장으로 오르는 계단은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비 오는 대나무 숲은 더욱 청렴해 보인다.

    댐으로 올라 대청호를 바라보았다. 깊게 잠긴 숲이 느껴진다. 그리운 숲. 내 고향과도 같은 푸른빛이다. 비가 호수로 쏟아지면서 마음이 깊게 눌린다. 추억 속 친구들이 떠오른다. 함께 자전거를 타던, 뒷산으로 곤충을 잡으러 가던, 함께 공을 차던, 눈이 오면 눈싸움을 하던 친구들. 그리고 자리들이 떠오른다. 키만 한 눈사람을 만들던 놀이터, 매일 오르내리던 언덕, 정전이 된 아파트 복도……. 그리워 쓴 웃음을 짓는다. 빗소리에 잠겨 추억들이 서서히 사라진다. 추억 속에 나는 언제나 추억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년 전 자전거 여행은 물적으로 무엇을 남기지 않았다. 만약 그 때 사진이나 글을 남겼다면 어땠을까. 지금 쓰고 있는 일종의 회고록과 같을까.

    비가 오면 빗물이 몸에 떨어지는 만큼 마음에도 떨어진다. 흐린 날에도 그늘을 만드는 나무들은 마음을 더욱 어둡게 한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호수를 바라보며 위로 떨어지는 비와 함께 추억을 떨어트린다.

 

 

비가 오면 슬픔이 깊게 잠긴다

아름다운 사진들은 빛바래 저 물속으로 잠기고

누런 바퀴자국만 남는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과거로 향하는 걸음을 방해하듯

폐허처럼 비가 쏟아진다

 

추억은 안개 속에 숨고 나는

쏟아지는 비만 좇을 뿐이다

 

비가 오면 깊은 호수에 슬픔이 내린다

썩어버린 바닥 아래까지 슬픔이 잠긴다

걸음을 옮겨 비를 모아 호수 바닥을 쓸면

다시 바람에 그리운 물비린내가 실려 오겠지

 

                                                                             -비가 오면

 

 

 

    비를 뚫고 도착했던 댐. 그러나 마음은 이미 지나온 마을에 남겨졌다. 학교 뒤로 흐르는 금강 그 건너편에 솔숲이 있다. 언젠가 가봤던 솔숲이다. 어린 날의 내게는 언제나 다가갈 수 없는 마법 같은 곳이었다. 나와 숲을 가르는 금강은 언제나 어둡게 흐른다. 깊은 인공 호수에서 흘러나온 그 물은 언제나 쓸쓸하다. 마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가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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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문 중간에 시를 쓰면 정리가 잘 되는 느낌을 받아서 자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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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Yes-Man 2012.06.23 03:56
    언제였더라 2010년 여름이었나... 했던 자전거 여행 기억을 되살려서 썼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2.06.23 06:12
    저도 글을 쓰다보면 중간중간 정리를 해야될 필요성을 간혹 느껴요. 시, 혹은 시적인 문장들이 함축적이라선지 그럴때 좋군요...좋은 걸 배우고 갑니다 ㅎ
  • profile
    욀슨 2012.06.24 09:18
    서정적이군요. 중간에 들어간 시는 직접 쓰신 건가요.
  • profile
    Yes-Man 2012.06.24 09:19
    당연히 제가 쓴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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