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10 09:42

돔모라

조회 수 344 추천 수 1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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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도시 돈의 위로 덮힌 둥근 유리막을 뚫고 강한 햇살이 들어와 롯의 눈을 어지럽힌다. 저마다의 꿈, 돈벌이, 기대로 잔뜩 부푼 동기들은 왁자하게 떠들거나 불쑥불쑥 소동을 일으킨다.  

 "지구로 귀환한 이민선 돔은 이제 인류의 희망입니다. 그리고 지금 새로이 성인이 된 여러분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오늘의 성인식을 맡은 신부가 떠드는 연설은 거대한 펜이 일으키는 바람에 곱게 빻아져 여기저기 흩어져 듣는 이는 맨 앞 줄의 몇몇 뿐이고 저들끼리 목소리만 범람한다. 그것은 롯의 귀를 충분히 괴롭힐 만 했다. 기나긴 지루함과 정신 사나움을 버텨낸 끝에 일장 연설을 마친 신부는 가브리엘 폭포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내천에서부터 길게 줄을 세우고 냉수를 퍼 앳되고 작은 정수리에 붓는다. 한명 한 명 양손으로 정성스럽게 물을 떠올리고 축복으 기도를 읊으며 세례의식을 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전통이라고 전해진다. 이제서야 그 유래를 기억할 만한 이는 낡은 역사서 정도겠지만, 소년은 이 지루한 행사에서 의미 모를 경건함을 느꼈다. 비로소 그의 차례가 되었을 때 얼굴 선이 굵고 거뭇한 수염이 짙은 신부는 무릎 사이로 흐르는 냇물을 퍼올리며 기도를 시작했다. 연설에 비할 바는 못되나 충분히 긴 기도 중에 몇 마디의 귓 속으로 움푹 들어온다.

 "어디서든 지표를 잃지 않기를, 아버지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빕니다."

 청량한 물이 머리 끝에서부터 검은 머리카락을 적시며 코 끝을 지나 턱, 목덜미 그리고 상체를 따라 온 몸을 훑어 나린다. 입술 사이로 스며드는 물 맛이 시큼한 듯이 달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묵례로 고마움을 답하고 풀밭으로 올라와 젖은 발을 닦아 신발을 대충 구겨신는다. 성인으로 탈바꿈한 동기들 틈으로 어적어적 파고들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축하해 롯."

 두살 터울의 형 아벨이 어깨를 두드린다. 바짝 깎은 갈색 머리에 선한 미소가 더욱 돋보였다. 그의 성인식 날에는 이 여유가 얼마나 부러웠던가. 문득 튀어나오려는 웃음에 설레설레 고개를 젓는다.

 "이제 뭐 할거야?"
 다정한 어투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그는 순진한 걱정의 물음이었으나 듣는 이의 마음은 그렇지 못 했다. 온갖 종류의 자격증으로 지갑을 빵빵하게 불린 동기들과 달리 그에게는 장래를 위한 별 다른 발판 같은 게 없었다.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탓이다. 여태 그래왔듯이 하루하루를 보내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막연함 뿐이었다.

 "아니."

 아벨은 빤히 동생을 바라보았다. 품을 뒤적이다가 작은 종이뭉치를 꺼내어 건넨다. 군데군데 얼룩이 져 읽기 어렵지만, 얼핏 누군가의 모험이라고 익숙한 필체로 휘갈겨 쓰여 있었다.

 "이게 뭐야?"

 "기억 안 나?"
 형은 빙글빙글 웃는다.

 "니가 쓴거야. 학교를 다니기도 전에."

 "내가?"

 "삐뚝빼뚤이지만 재밌는 얘기였어. 롯의 모험! 제대로 쓴 단어가 훨씬 적었지만."

 생각이 날 듯 말듯 하다. 어렷을 때 연필을 쥐고 공책을 빽빽하게 채웠던 생각은 어렴풋이 나는데, 아마도 일기가 아니었을까 짐작해왔을 뿐이다. 오랜 옛날이야기라도 들은 기분이다.

 "니 꿈을 이뤄."

 다정한 형의 충고에 이틀 뒤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승강기에 타게 되었다.

 "A. 바빌 329-12 이브빌라 마녀씨."

 아벨이 적어준 메모를 읽었다. 형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몇 번이나 당부를 했다. 음식 가려먹지 말고 빨래는 이틀에 한 번씩 무슨 일이 있으면 즉각 전화할 것. 강가에 애 내놓은 심정으로 어떻게 승강기에 태울 생각은 했는지 모를 일이다.

 승강기는 거대했다. 지구로 귀환한 우주이민선 '돔'은 세계최후를 맞이한 바다 한 가운데에 인공섬을 띄우고 생존자들을 모았다. 황폐해진 행성에서 유구한 세워 동안 소문으로나 전해지던 모든 생존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녀부터 흡혈귀, 괴물까지 여태 본 적도 없는 존재들의 등장에 이민선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긴 토의 끝에 바다위에 세워진 인공도시 마라는 돔과 거대한 승강기로 이어진 독립된 땅이 되었다. 공존과 대립의 틈새에서 두 도시는 미묘한 대치상태를 유지했다.

 "성함이 롯 맞으시죠?"

 안내원은 서류를 꼼꼼히 읽어보고 확인과 동의를 구한다. 돔은 순수한 인류의 보금자리이다. 그 내면의 비밀까지는 알 수 없더라도 이 공중도시의 표면은 인류의 순수성을 상징하고 있었다. 마라에서 이곳으로 되돌아 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기에 이들은 꼼꼼하다. 올라오는 승강기는 막대한 이용금액이 붙어 있고 본인이 인간이라는 증명서류, 수 많은 검사를 요구한다. 내려가는 것은 언제나 올라오기 보다 쉽다. 왜냐하면 돔의 인구는 항상 넘치기 때문에.

 "네 맞아요."
 "이 티켓은 왕복이 아니라 편도입니다. 올라오는 건 불가능한 표에요 맞으시죠?"
 재차 확인을 한다. 돔에서도 종종 마라를 다녀오는 이들이 있다. 그 중의 대다수는 해외 여행처럼 망망대해 위에 세워진 인공도시의 최고급호텔에서 휴일을 즐기다 돌아오는 관광이다. 테마파크에서 일하는 이종족들, 혹은 돔에서 볼 수 없는 조류와 해양동물을 구경하고 체험한다. 그걸 위한 것이 왕복 티켓이다. 그러나 아주 소수는 안정된 돔의 생활을 버리고 미지로 떠나기를 선택했다. 개중에는 고향을 찾아 고생 끝에 귀향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푸른 바다 끝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대륙을 찾아 영영 떠나버리는 이들도 있었다. 안내원의 눈에는 동경과 안타까움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 롯을 보고 있다.

 "안녕히가십시오"

 원형이 넓은 승강기 내부는 회색과 흰색으로 조화롭게 되어 있다. 중앙의 기둥에는 네 방향으로 비춰지는 커다란 모니터가 달려 있고 세로로 긴 유리창이 먼 지평선을 보여주고 있다. 백여명 정도가 자릴 차지하고 있는데, 그중 대다수는 아무개 관광이라는 플랜카드를 내 건 관광버스 안에 타고 있었다. 모험의 기분을 내고 또래에게 으스대고 싶어하는 꼬마들과 그 가족들, 오붓한 분위기에서 모두 함께 휴일을 보내고 싶어 하는 아버지들, 어렷을 적 꿈을 이룬다고 착각한 채 흥분한 어른들. 다양한 군상들이 모여 어지간히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된다. 간혹 큰 짐가방을 진 비장한 표정의 사람들이 있다. 젊은 이들은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싶을 것이고, 늙은 이들은 꿈을 찾는다 생각하는 이들. 이 두 무리가 야릇하게 범벅이 되어 있었다. 승강기가 진동도 없이 깃털처럼 아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자 유리창 밖으로는 아득하게 펼쳐진 지평선과 그보다 더 멀리 보이는 마라의 모습이 빠르게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대단히 이색적이어서 모두의 두뇌를 건드리고 신경을 일깨워 아드레날린이 솟아나게끔 유도했다. 다들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와중에 롯은 시큰둥한 얼굴이 변함없다. 신문, 잡지, tv 따위에서 숱하게 다루는 게 이종족들의 모습이다. 예전 어느 다큐는 죽을 자리를 찾아다니는 늑대인간의 삶을 방영했다. 당시에 어디서든 그 이야기를 하고 그 프로그램은 그 채널의 간판채널처럼 되었다. 주인공 늑대인간은 돔에 초청까지 받았다. tv쇼에 등장한 정장의 남자는 늑대로 변하지도 않았고 불쌍해 보이지도 않앗다. 그는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다가 되돌아갔다. 유명한 밴드의 마라 출신 기타리스트가 흡혈귀여서 매년 마라에서 열리는 콘서트 티켓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그 기타리스트는 방송에서 자신이 지금은 바다 속의 가라 앉은 독일이라는 나라 출신이며 지구 최후의 날을 기억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떠벌렸다. 곧 그건 불가능하다는 대학 교수들의 주장이 신문에 실리고 거짓말이라는 소문이 무성하게 퍼졌으나, 결국 교수들이 밴드의 팬들에게 사이버테러를 당함으로써 쉬쉬하는 분위기로 끝이 났다. 사람이나 흡혈귀, 늑대인간이나 하나도 다를 게 없어보였다. 적어도 롯으 눈에는 그랬다.

 승강기가 내려가는 데에는 두시간이나 걸렸다. 승강기 내부에 달린 거대한 모니터에서 지난 늑대인간의 다큐를 다시 보여주었고 사람들의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했다. 그것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마라로 가는 문이 열리자, 모두들 뛸 듯이 기뻐했다.

 "어서오세요. 조화로운 마라입니다."

 금발의 아가씨가 돔의 사람들을 맞이해 손을 흔들었다. 그 싸인에 관광버스들이 호텔을 향해 출발한다. 롯은 영화에 나올 법한 어두운 도시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정작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그냥 도시였다. 저 멀리 언덕이 보이고 높은 빌딩과 항구도 있다. 돔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으나 항구는 이색적이었다. 하늘 위에 있는 도시에는 항구가 있을 수 없으니까. 또한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덩치가 산 만하거나 도저히 사람의 범주에 들 수 없다 생각되는 이는 한손에 꼽힐 만큼 적었다. 물론 신기하게 구경하는 것도 롯 뿐이었다.

 "어딜가요?"

 노란 택시 한대가 대로변에서 서성이는 롯의 앞에 멈춰서더니 대답을 기다린다.

 "A. 바빌 329-12 이브 빌라요."

 주머니에서 꺼낸 메모를 읽어주자, 중년의 택시 기사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까닥여 환영한다. 차 뒷문을 열고 짐을 먼저 싣고 몸을 구겨넣는다. 위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짠 맛이 바람따라 코 끝에 찡하다.

 "위에서 오셧나봐?"

 대답이 정해져 있다.

 "예."

 "놀러 온거야? 눌러 앉으려구?" 눌러앉는다. 어감이 마음에 들었다.
 "눌러 앉으려구요."

 돔에서는 주로 열차를 타고 다녔다. 그게 훨씬 효율적이므로 자가용을 가진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그들도 불편한 도로로 그걸 끌고 나올 생각을 하진 않는다. 그 탓에 바쁘게 깜빡이는 신호등과 도로 위의 무수한 자가용에 롯은 넋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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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츤데레 포인트걸 2012.06.10 09:42
    따, 딱히 SinJ-★님이 좋아서 10포인트를 지급하는건 아니야!!
  • profile
    SinJ-★ 2012.06.10 09:42
    뭐래
  • profile
    욀슨 2012.06.10 09:47
    SF인가요. 뒷 이야기도 있는 건가요?
  • profile
    SinJ-★ 2012.06.10 10:29
    ㅇㅇ
  • profile
    윤주[尹主] 2012.06.10 18:14
    재밌게 읽었어요~
    배경색이랑 글자색 반전한 건 일부러 하신 건가요? 기본 폰트도 읽는 건 괜찮은 거 같은데요;
  • profile
    SinJ-★ 2012.06.10 19:23
    붙여넣기 한건데 귀차나서...
  • profile
    2012.06.12 07:50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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