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8 22:14

(단편)종말을 이끄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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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을 이끄는 자


 나는 작문에는 소질이 없음을 먼저 밝힌다. 따라서 지금부터 내가 써 나가는 글은 해리 그린우드의 일기를 참고하는 것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크게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의 일기에 적힌 이야기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소름끼치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이 꾸었던 꿈을 적어놓은 꿈 일기였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1년간의 꿈에서 겪은 이야기를 적어놓았다. 그린우드의 말에 따르면 첫 한 달간은 기록하지 않았지만 그 어떤 꿈보다 더욱 생생했으며 괴로웠다고 하였다. 기록된 꿈 이야기를 내가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소름끼치고 놀라운데 과연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는 어떻다는 것일까?


 내가 그린우드와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익숙지 않은 유학 생활과 좀처럼 늘지 않는 영어, 그리고 소통이 안됐기 때문에 학업에도 부진하여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향수병까지 겹쳐 아주 깊은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 내가 댄버스 시의 정신병원을 찾았을 때, 그때 나를 담당했던 신경정신과 의사가 해리 그린우드였다. 당시 그는 185cm의 큰 키에 약간 피부가 까무잡잡한 호감형의 남자였다. 정신과 의사는 많은 정신과 관련 환자들 때문에 향정신성 의약품을 복용할 정도로 우울하다는 소문을 많이 들었지만, 그는 상당히 호쾌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와 일주일에 한, 두 번을 계속 만나며 세 달간의 인연을 지속했다. 물론 우울증은 나의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과 그의 호의로 한 달 만에 생활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치유가 되었고 나머지 기간은 그와 나의 사적인 친분으로 만나게 되었다. 나와 그는 취미가 비슷하였다. 좋아하는 비디오 게임도 같았고 알려진 가수나 록밴드보다 이름이 덜 알려진 인디밴드에 관심이 크나는 것도 같았다. 또한 애주가라는 점에서 특히 나와 더 닮았었다. 우리는 '그린솔트'라는 이름의 라이브 바를 자주 찾아서 공연을 보며 마시고 즐겼다.


 세 달간의 즐거운 인연을 끝으로 나는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그는 나에게 마지막 선물이라며 당시에 내가 마음에 들어 했던 Poets of the Falls의 앨범을 주었다. 나는 그것을 아직까지도 즐겨 듣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 그가 한국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거의 쓰지 않던 이메일 주소로 한통의 편지가 와 있었다. 그의 이메일로서 한국으로 간다는 짧은 말과 함께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기쁜 마음에 바로 전화를 걸었고, 순간 나는 다른 사람에게 잘못 전화를 건줄 알았다. 왜냐하면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그의 목소리는 정말 소름끼치게도 거칠게 변해있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큰 절망과 피로가 묻어 있었다.


 다음 날, 나는 그의 호텔 근처의 작고 조용한 칵테일 바에서 만났다. 구부정한 허리에 머리와 수염까지 덥수룩하였고 이전에 보았던 총명했던 눈빛은 퇴색되어있었다. 나는 그에게 자초지동을 물어보았다. 그는 주저하는 듯싶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당신이 떠나고 난 뒤에 나는 좋은 친구 하나를 잃었다는 기분 때문에 썩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주 가던 라이브 바도 가지 않으며 퇴근 후에는 집 근처 술집에서 살곤 했지요. 당신이 떠나고 한 달 뒤였습니다. 똑똑히 기억나는 군요. 7월 4일 이었습니다. 잔뜩 취해서 비틀거리며 집으로 가던 중에 옆쪽 골목길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눈이 아홉 개였어요. 그래요, 엄청 취해서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그 기억이 떠나질 않아요. 보통 두 개의 눈이 있는 곳에 네 개의 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등에 나머지 다섯 개의 눈이 있었죠. 각자 따로 깜빡 거렸지만 그 눈은 나를 향해 있었습니다. 나도 그 아홉 개의 눈과 마주했죠. 그 고양이가 울었는데, 그게 그렇게 소름끼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곧장 집으로 달려갔죠. 그리고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일어났는데 피곤함이 가시질 않았어요. 계속 그 아홉 개의 눈이 어딘가에서 나를 주시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죠. 술에 완전히 취해서 쓰러질 때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중독자가 되었죠. 일도 잃어버리고 친구도 많이 절교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술 만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부터 꿈이… 아, 꿈이…."


 그는 여기 까지 말하고 술에 취해 잠들어 버렸다. 말을 하는 도중에 도수 높은 칵테일을 무려 스무 잔이나 마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를 호텔에 대려다 주고 나도 그 호텔에서 잠이 들었다. 그날 밤은 나도 꿈이 괴로웠다. 꿈이기 때문에 기억은 안 나지만 매우 불길한 꿈이었던 것 같다. 새벽 6시 쯤 되어서 나는 그린우드의 찢어지는 비명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식은땀을 비 오듯이 흘리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그 신비한 공포를 느낀 것은 그때였다. 그의 눈에서 알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질 못했다. 그 또한 온 몸을 떨며 기괴한 외침을 토해냈다.


 "그림자! 그림자! 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움직이면서 먹어치워……. 아, 그 거대한 모습은! 그르륵……. 나도 피할 수 없어! 그 제단, 제단이! 야아, 크툴루 파탄! 오히랍 느가살!" 그는 내가 이전에 알던 목소리가 아닌 새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슈브-니구라스! 너의 모든 것을 살라먹겠다! 너에게 죽음을 선고하겠다!"


 그는 곧장 나를 노려보았다. 눈에서 불꽃이 흔들리는 게 보였는데 그것은 진정한 어둠의 불꽃이었다. 나는 그런 그가 너무 무서워 뒤로 물러났다. 그때 그는 광기에 찬 웃음을 터뜨렸다. 내 몸이 떨린 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온 방 안이 진동했다. 나도 소리를 질렀다. 내가 그 방을 뛰쳐나가려고 할 때 모든 것이 마치 거짓말이라는 냥 갑자기 멈추었다. 진동도 멈추었고 온 몸으로 느껴졌던 광기와 공포의 웃음소리도 그쳤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멍하니, 그리고 너무나 공포에 질린 채로 머리를 감싸며 숙이고 있었다.


 "안돼… 이래선 안돼……."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곧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문이 딸깍 하고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방에 귀를 귀울였다. 방안에 들어가서 무언가에 열중하는 것이 들렸다. 간간히 공포에 질린 외침이 들려왔지만 아까처럼 나에게 까지 번져오는 끔찍한 공포는 아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일기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꿈 일기를.


 그가 한 참 뒤에 방에서 나왔을 때 어제 보았던 것 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그에게 어제 듣지 못한 나머지를 들을 수 있었다.


 "꿈에서 누군가가 속삭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주고 있었어요. 한 주가 지날 때마다 목소리는 변해갔습니다. 평범했던 인간의 목소리가 그렇게…….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그 목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소름끼치고 기괴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참을 수 없는 공포를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하나같이 사실적이어서 도저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일기를 썼습니다. 제가 꿈에서 보고 듣고 느낀 끔찍한 것들을 남기기 시작했죠. 그래야만 내 머릿속의 그 괴기스러운 이야기들을 지워버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에게 그 일기를 보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의 눈엔 깊은 광기가 서려있었다.


 "안됩니다! 그것은……. 그건 너무나 끔찍해요. 그건 사람을 악마로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아니, 악마라는 말도 약과입니다. 절대 안되요."


 그는 나에게 돌아가 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순순히 응했다. 왜냐하면 나 또한 그가 무섭기 때문이었다. 나는 호텔을 나가며 그가 머무는 방을 쳐다보았다. 두꺼운 커튼 사이로 그의 초췌한 얼굴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몇 일 뒤, 나는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나이기 때문에 경찰의 수사를 받았다. 나는 그의 망가진 모습에 대해서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설령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경찰들은 나를 미친놈 취급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진행되던 수사는 결국 자살로 판명이 났다. 나는 가장 소중했던 친구를 잃은 슬픔으로 집안에서 나가지 않고 술로 세월을 보냈다.


 택배가 오게 되었다. 보낸 이에는 해리 그린우드라는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며 박스를 뜯고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보았다. 검은색 가죽커버로 되어있는 일기장이었다. 그가 그렇게 보여주지 않고 두려워하던 바로 그 일기장이었다. 일기장을 펼치자 안에 따로 편지가 들어있었다.


 

 이 일기장을 받을 때 쯤이면 이미 난 죽었을 것입니다. 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꿈을 꾸기가 싫어요. 잠을 자는 게 두렵습니다. 얼마 전에 마지막 꿈을 꾸었습니다. 그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마지막이라고 선고하였습니다. 그 목소리의 말대로 저는 더 이상 그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안심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내가 직접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되어서 그 생생한 공포의 현장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두려웠습니다. 듣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는데 그것을 체험하기 까지 하니 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이제 모든 걸 내려놓고 영원한 안식을 취하려고 합니다. 나를 누구도 막을 수 없어요.

 내가 그 공포의 현장을 체험하면서부터 내 몸에도 뚜렷한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저는 기겁하곤 합니다. 내 모습이 꿈 속의 인물과 놀랍게도 닮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환영과 환청까지 들려옵니다. 방금도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 목소리는 마치…… 악마의 목소리였어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일기장을 없앨 수 없었습니다. 내 꿈과 현실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그 목소리의 힘 때문에 일기장을 훼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제 일기장을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기장을 읽어서는 안됩니다! 당신마저 나처럼 미쳐서는 안됩니다. 소중한 친구에게 이런 부탁을 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편지를 내려 놓고 일기장을 보았다. 미친 듯이 휘갈겨 쓴 일기들이 가득했다. 호기심을 버릴 수 없었다. 나는 미친 듯이 나에게 몰려오는 공포를 참아내고 읽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그 일기엔 진정한 원초적 공포가 서려 있었다. 중간 중간에 그가 느낀 광란의 형태는 알 수 없는 언어로 적혀져 있었다. 그나마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고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이정도였다.



 2010년 4월 15일

 언제나 들었던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둠고 무한한 공간 안에서 나는 테이블을 두고 그와 함께 마주보며 앉아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이곳은 우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엄한 우주가 보였다. 처음 꿈을 꾸던 때와 다른 풍경이었다. 그 때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상상 조차 할 수 없다. 그가 나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라고 하였다. 이윽고 무시무시한 광경을 목격하였다. 나의 발아래에 있는 행성, 그 거대한 행성 가득 무언가가 있었다. 무언가가 끊임없이 움직였다. 거대한 검은 무리가 행성의 지표면을 뒤덮으며 기어가고 있었고 그들의 눈길은 나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네 개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두 개의 눈은 붉은 빛을 뜨이고 잇었고 행성 가득 차있는 메탄가스가 그것의 양쪽 볼과 입에서 쉴 틈 없이 뿜어져나가고 들어갔다. 그들은 나를 보며 소리치고 있었다. 나를 너무나 맛있는 음식으로 보고 있었다. 그 때 나와 마주 앉은 남자가 나에게 말을 했다. 아아, 저 땅이 우리의 땅이라니! 저 메마르고 황량한 땅이 우리의 땅이라니! 그 지독하게 소름끼치는 생물들이 우리라니. 남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공포의 주인이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뒤엎을 것이라 하였다. 모두 타락하여 그 거대한 악몽과 닮은 모습으로 변해간다 하였다. 그럴 순 없어, 그럴 순 없어. 과거로……, 과거로 돌아갔다.



 2010년 6월 12일

 가까운 미래의 시간 때라고 한다. 우리의 아름다운 땅이 마침내 완전히 멸망하는 것을 보았다. 지옥의 유황불들이 바다를 태우고 있었다. 수많은 물고기들이 튀어 올랐다. 끈적거리고 물갈퀴가 달린 손이 유황불에서 튀어나와 물고기들을 집어갔다. 그 괴물들이 땅으로 올라왔다. 처음 꿈을 꾸었을 때 보았던 그 괴물들이었다. 살아남은 인간들이 괴물을 보고 공포에 빠져 하나 둘 씩 미쳐가고 있었다. 괴물들은 어두운 안개를 뒤집어쓰고 올라와 인간들을 다시 유황불의 바다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내 앞에 그 남자는 웃으며 말하였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남자가 손을 들어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거대한! 그리고 너무나 끔찍하게 생긴 무언가가 유렴 대륙으로 어둠을 뿜어내고 있었다. 남극 지방엔 온 몸에 불이 붙은 또 다른 거대한 존재가 남극을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었다. 남반구 전체엔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그리고 남반구의 사람들은 그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그림자 속엔 광기에 찬 살육의 현장이 있었다. 아시아 대륙엔 마치 산맥이라도 되는 듯이 누워있는 어느 존재에게서 설명을 할 수 없는 끔찍한 괴물들이 나오고 있었다. 

 


 2010년 7월 21일

 머나먼 우주에서 무언가 꿈틀 거리는 것이 기어오는 걸 보았다. 별들을 집어 삼키며 오는 그 무언가. 그리고 어느 미친 북소리와 섬뜩한 피리소리. 남자가 웃는다. 그의 모습이 서서히 변해갔다. 발아래의 땅, 지구에는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인간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그들, 살아남은 인간의 무리에게 다가 가는 것은 기괴하게 변형된 인간들이었다. 타락하여 인간이기를 버리고 거대한 악몽의 존재에게 굴복한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고대에서부터 이어져온 숭배의식을 통해 존재들에게서 살아남은 악마적인 이교도들이었다. 그들이 사람을 하나 둘씩 잡아가고 죽이고 심지어 인육을 먹기까지 했다. 내 앞에 있는 남자는 그 이교도들의 중심에 있는 한 남자를 가리켰다. 아아, 그곳에 기괴하게 일그러진 내가 있었다.

 


 2010년 9월 10일

 모든 유황불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바다는 유황불들에 의해 완전히 메말랐고 공기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지독한 메탄가스가 가득 찼다. 아아,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구나. 아니, 현실이 아닌 더 먼 미래? 내가 지금 보고는 것은 현재인가 미래인가. 내가 겪은 것은 꿈인가 사실인가. 완전히 괴물로 변한 지구에 있는 나는 이교도의 중심에서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제물로 준비된 인간들의 시체가 나무 기둥에 묶인 채 불타고 있었다. 그 제물의 인간들은 나의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 가족들……. 막을 수가 없었다. 볼 수 밖에 없었다.

 


 2010년 10월 5일

 모든 것이 끝났다. 인간도 완전히 사라지고 식물도 동물도 없어졌다. 그리고 나에게 끔찍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남자 또한 사라졌다. 내 눈 앞이 캄캄해졌다. 끝인가? 끝난 것일까?



 2011년 1월 6일

 판게아! 판게아! 모든 것이 하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대륙! 대륙이 집어삼켜진다. 리예라 불리는 광기의 땅이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 혼돈의 한 복판에 그 남자가 서있었다. 미친 듯이 춤을 추는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은? 아아, 니알랏토텝! 그가 바로 그였구나. 아아, 나는 빠져나올 수 없는 광기의 늪에 빠져버렸구나. 저것은 내가 만들어 낼 미래로구나. 지구가 메마르고 괴물들이 돌아다니며 그 괴물들 사이에서 가장 잔인하게 타락한 생물이 바로 나이고, 저 공포의 존재들과 혼돈의 대리자가 돌아다니는 저 파괴된 행성은 내가 만든 것이구나.


 나는 어떻게 하지? 이건 꿈이고 예지몽이고 내가 만드는 것이라면……. 꿈을 파괴한느 방법은?



 2011년 1월 7일

 이제 끝내려고 한다. 미래에 펼쳐질 죽음의 세계를 막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포기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 같다. 요즘 거울을 자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나는 꿈속에서 변한 나의 흉측한 모습과 닮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나는 타락하는 구나. 창 밖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 기괴한 악마의 고양이가 나를 바라보며 웃는 것 같다.


 '네가 정말 죽을 수 있겠어? 그만 우리에게 귀의하는 게 좋을텐데?'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죽지 않는다면 어쩌면 그 참혹한 세상에서 영생을 누리며 행복하게, 인간답지 않게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이상하게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굳건한 정신이 그것을 거부한다. 그래서 나는 죽는다.


 나의 친구여. 편지에 쓴 글을 거부하고 만약 이 일기를 읽는 다면 반드시 없애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도 이 일기를 잊어버리고 나, 해리 그린우드라는 사람이 있었는지도 잊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감춰진 이면의 공포를 나 혼자 짊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 좋습니다. 그럼 안녕히.



 아아, 그가 죽었구나. 그는 일기를 쓰면서도 흔들리는 정신력을 붙잡고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안녕히'라는 말 다음으로 다시 격정적인 감정으로 휘갈겨 쓴 알 수 없는 문자가를 보면 그렇다. 그는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난 뒤에 자신이 이 일기를 없애지 못할 것이라 느꼈기 때문에 이렇게 나에게 보낸 것일 테다.


 나는 결국 일기를 없애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든 굳건한 정신이 타락을 막았다고 하지만 나는 그와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오히려 그와 함께 하면서 체험한 공포의 흔적과 일기를 통해 얻은 상상이 나의 마음속에 든 알 수 없는 괴물을 깨운 것 같다. 일기의 내용들이 내 몸과 정신에 깃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기에 감춰진 내용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기괴한 상형 문자, 그리고 어둠의 존재들에게서 전해들은 과거의 문자. 내 속에 감춰진 이면의 존재가 꿈틀 거린다.


 그가 처참한 몰골이 되어 가듯이 나도 변해갔다. 일기의 내용을 모두 알게 되자 나는 더 이상 인간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여기는 내륙인데, 바닷물 소리가 들린다. 나를 끌어들이는 저 목소리. 아아, 그래. 사실 해리 그린우드가 나를 깨우기 위한 통로였구나. 그 유황불의 세상은 해리 그린우드가 아니라 내가 만들 것이구나. 검은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비친다. 아홉 개의 눈이 뜨여진다. 스물 두개의 눈이 몸에 박혀있다. 사백 팔십 네 개의 눈이 내 공간에 새겨진다. 나는 찾아간다. 나의 친구를. 순수하고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을 가졌다는 과거의 수호자 혈통을 지닌 해리 그린우드를. 그에겐 미안하지만 그는 조용히 안실을 취할 수 없으리라. 그에게 미안하지 않다. 나는 원래 그런 사악한 존재였으니까.


 어둠이 찾아온다. 나의 꿈이 벌떡인다. 내 심연의 존재가 서서히 올라와 나에게 말을 건다. 그의 일기에 적혀 있는 미래의 세상이 펼쳐진다. 멀리서 아자토스가 다가오고 니알랏토텝이 나와 혼돈을 말하며 땅 아래의 처참한 파괴의 현장이 펼쳐진다. 나의 핏줄이 옛 지배자들의 세상을 열리라. 내가 꿈에서 깨어나자 영안실이었다. 주변엔 온통 인간의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누구의 피 인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 눈 앞에 해리 그린우드의 평온한 시체가 누워져 있었다. 다가가 죽은 그를 깨웠다. 눈을 뜨는 핏기가 없는 창백한 얼굴의 친구는 절망과 공포에 물들어 있었다. 나는 웃었다. 해리 그린우드가 울부짖는다. 그의 손톱이 자신의 몸을 쥐어뜯는다. 그가 지금까지 꿈이었다면 지금 부터는 현실이되리라. 쉴 틈 없는 공포를 세상에 전해주는 이교도의 우두머리가 되리라.


 검은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은은하게 울려온다. 세상 곳곳에 검은 고양이가 울어댔다.



-------------------------


짬 날때마다 썼던 것이라 그다지 썩 마음에드는 작품도 아니고 완성도도 좀 낮습니다.


지금 현재 굉음(A roaring sound)이라는 코스믹 호러 소설을 하나 쓰고 있는데 아마 이 소설보단 100배 1000배 낫을 겁니다. 다 쓸때까지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프린터해온 걸 열심히 다시 타이핑한거라 중간중간 오타는 알아서 해석해주시길 바랍니다 ㅋ


판그루 그루나파 크툴루 리에 가나글 파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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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2.05.28 22:33
    거의 러브크래프트 작 다른 글들과 흡사하네요. 특징적인 구조라던가, 등장인물이라던가...같은 계통의 미번역작이라고 해도 믿겠는데요 ㅎ

    재밌게 봤습니다. 역시 대단하세요^^
  • ?
    크리켓 2012.05.28 22:38
    오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러브크래프트 소설에 비하면 정말 초라한 작품이지요

    요즘 러브크래프트 전집과 도해 크툴루, 그리고 위어드 테일즈 홈페이지를 통해 설정이라던지 배경 문체등을 배우고 있습니다

    옛날엔 그저 그런 소설을 썼다면 지금 부터는 본격적으로 러브크래프트 스쿨에 들어가고 싶은 열망으로 쓰고 있습니다.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굉음이라는 소설을 현재 열정적으로 작업중에 있습니다. 이 소설의 경우는 크툴루 신화의 틀에서 제작된 거라면 굉음의 경우엔 러브크래프트 특유의 코스믹 호러에 바탕을 둔 소설이지요.

    이 소설도 좋으셨다면 굉음도 기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profile
    3류작가 2012.05.29 00:50
    문장 하나하나에 신경쓴게 보이네요.
    꿈이라서 그런지 몽환적인 느낌도 좋구요.
    전 상상하면서 글을 읽기 좋아하는지라 장면이 저절로 떠오르네요.
    어쨌든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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