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0 06:48

생존자 끝?

조회 수 423 추천 수 1 댓글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나는 달리 어쩔 줄을 모른 채 계단 바닥에 엎드려서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놈들은 내가 있다는걸 몰라. 소리에 이끌려서 폭발음 발원지로 가고 있는 것 뿐이다. 재수가 없으면 이 건물로 새어드는 놈도 있긴 하겠지만 그건 그 때 일이야. 어차피 건물도 작으니까 아주 큰 놈은 들어오지도 못해. 침착하자. 괜히 숨네 도망치네 하다가 들키면 죽도 밥도 안돼. 저게 다 지나가길 기다리자..

  계단 벽의 닫힌 창문 너머로 흘러가는 뿌연 행진은 끝날 줄을 몰랐다. 대체 몇 마리가 도시에 나타난거지? 그나마 내 시야에 들어오는 행렬 하나가 이 정도다. 다른 방향에서도 적든 많든 몰려들고 있을텐데.. 놈들이 모이는 곳은 생지옥이 될 게 틀림없다. 지들끼리도 잡아먹는 놈들이니 분명히 그리 될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놈들 숫자는 줄어드는거지. 하지만 여기서 들키거나 근처에서 알짱대면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꼴 나는거야. 그러니까 제발 가만히 좀 있어!

  기다리는 내내 밖에서 온갖 잡소음이 울렸다. 으르렁거리는 소리, 뭐 깨지는 소리, 퍽하고 살 속에 날카로운게 꽂히는 소리, 벽 무너지는 소리, 비명같이 높은 톤의 울음, 차 부서지는 소리 등등. 소리만 들어선 곧 싸울 것처럼 들렸지만 결국엔 진짜 소란스러운 일은 없었다. 분명히 저 행렬은 여기저기서 뒤죽박죽 섞인 게 아니라 제 나름대로 대장이 있는 무리가 섞여있는 것이리라.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통제가 될 리가 없지. 아니면 머리가 꽤 좋아서 ‘우리 끼리 싸워봤자 의미 없다’고 판단을 내렸던지. 어느 쪽이든 나한텐 적신호다.

계속 긴장한 채로 있으니 입이 바싹 말라버렸다. 가방 안에 물이 있긴 하지만 그걸 열면 들킬게 뻔하고.. 뱃 속도 안좋은데 진짜 환장하겠군. 항생제가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 지는 모르겠다. 행렬이 모두 지나갔는지 주변이 조용해졌길래, 나는 옥상에 올라가려다 멈칫했다. 역시 옥상에서 살펴보는건 너무 위험할 것 같아서다. 하다 못해 앉은 자세에서 주변을 살펴볼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휴대폰이라도 하나 있으면 진짜 소원이 없겠는데! 그걸로 사진 찍으면 되잖아. 죽어도 매너 모드 안먹는 찰칵 소리가 빡치긴 하지만, 뭘로 돌돌 감아놓으면 방음이 조금 되겠지. 거울 같은 것도 고려 대상이긴 하지만, 각도를 잘못 맞추면 괴물 면상에 정조준해서 내 위치를 들킬 위험도 있다. 거울로 덮어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만약 하늘을 날아다니는 놈도 있으면 그 때는 어떡하려고? 물론 지금까지 그런 건 한 번도 못봤지만, 적어도 건물 옥상과 옥상 사이를 뛰어넘는 괴물은 있을 법 하단 말이지..

  하는 수 없이 지금 있는 건물을 뒤지기로 했다. 휴대폰이든 거울이든 나한텐 뭣도 없고, 내가 여기 계속 갇혀있을 경우도 없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처럼 조용해졌을 때가 수색할 기회다. 다시 주변에 괴물이 꼬이기 시작하면 꼼짝없이 숨만 쉬고 있어야될테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 안에선 각도가 제한되어있긴 해도 내 몸을 엄폐하고 밖을 볼 수 있다. 처음 썼던 헝겊 트릭 말이다.

  꼭대기부터 수색에 들어갔다. 뜻밖에도 4층 양쪽 모두 문이 열려있었다. 하지만 문 밖에서부터 썩은 내를 맡을 수 있었기 때문에 관뒀다. 3층은 한 쪽이 잠겨있었다. 문에 긁힌 자국이나 살짝 패인 부분이 있긴 했지만 어떻게든 버틴 모양이다. 안에 사람이 있을까? 문을 두드리거나 할 수는 없지만, 종이와 필기도구가 있다면 글을 남기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잠긴 문은 제껴두고 다른 한 쪽 문을 열아오 정전기 쓰바..

이 집은 침입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악취나 혈흔은 물론 부서진 물건조차도 없었다. 이럴 수도 있나? 있겠지. 나도 살아있는데.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여기도 높아보였다. 문제는 왜 문을 잠궈두지 않았냐는 거지. 열쇠가 없는데 나갔거나 안에 있는데 죽었거나, 뭐 가능성은 많다만..

  둘러보다가 옆구리에 큰 통증을 느꼈다. 너무 놀라 정신이 없던 와중에 웬 사람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다음엔 내 몸에 꽃힌 과도하고 피.. 그 다음엔 생각보다 훨씬 많은 피를 덮어쓴 학생 하나.. 상황을 이해했을 땐 이미 그가 도망친 뒤였다. 처음엔 놀랐고, 상황을 이해한 다음엔 필름이 끊어졌다 이어지길 반복했다.

으아악! 괜찮아! 괜찮다고! 내가 무슨 옆구리를 내주고 목을 가져간 것도 아니고! 옆구리를 너무 깊게 찔린 것도 아니고! 상처 손가락만해 괜찮아! 아니 진짜 괜찮은건 아니고 어쨌든 야 정신없을 때 빼야지 나중에 빼면 덜덜 떨면서 빼야돼! 파워 뽑기! 피 난다! 소독약이나 술 찾아 술!

소주를 상처로 들이부은 다음에야 정신이 들었다. 악! 이것은 너무 쓰리다!

   “아힑!”

  몸까지 배배꼬일 정도로! 하마터면 아랫도리에 모셔진 레모네이드가 땅바닥으로 실족하실 뻔 했다. 암만 세상이 변했어도 요실금은 안되지. 아까 그 놈이 열어놓고 나간 문을 도로 잠그고 나서야 분노가 치밀었다. 내 배때지에 칼빵을 놓다니! 너 이 새끼 사형! 사파리 고등학교 작은 하마! 걸리면 가만 안 둬! 아오! 근데 내가 소주를 어디서 찾았지?

  뒤늦게서야 그가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던걸 떠올렸다. 그 정도 양이면 일부러 묻혔던지 피가 고압으로 뿜어져나왔던지 둘 중 하나다. 그리고 찔린 상대도 경상이던지 치명상이던지 둘 중 하나고. 하지만 난 둘 다 후자일거란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칼 든 놈한테 제 몸을 대주는 병신이 어딨냐. 피 냄새 맡고 달려드는 괴물들한테 피칠갑을 하고 나가는 병신은 또 어딨고. 어쨌든 아까 그 병신이 밖으로 도망쳤으니 괴물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은 되겠다. 뭐 죽는 소리가 나면 있는거고, 조용하면 없는거지.

  화장실 안에서 뭐가 끙끙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거의 동시에 주방에서도 낮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둘 중 하나는 확실히 죽어가는 중이겠지. 여러 고민할 것 없이 화장실 문을 열었다.

  욕조 안이 피바다다. 얼추 세어봐도 열 번은 넘게 찔린 개 한 마리가 헐떡이며 죽어가는 중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겠지. 한숨을 쉬며 문을 도로 닫았다. 보통은 좋은 곳으로 가라며 목숨을 끊어줄테지만 난.. 그런 건 못하겠다. 도저히. 쳐죽을 새끼. 죽일거면 왜 급소 냅두고 난도질을 한거야? 왜? 개가 무슨 잘못인데? 나쁜 놈.

  내가 들어와서 멈춘 거야. 나 때문에 죽지 못한거다. 나쁜건 나다. 화장실로 도로 들어갔다. 죽일 순 없지만 더 편하게 가도록 도와줄 순 있어. 아무래도 취하면 좀 덜 고통스럽겠지. 남아있는 소주를 천에 적셔서 개의 코를 덮었다.

  ‘미안하다. 부디 꿈꾸듯 죽길 바란다. 그리고 있다면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란다. 나한텐 이게 최선이다. 정말 미안하다.’

  개는 캑캑거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주방 옆 보일러실에서 쓰러진 여자를 발견했다. 다행히 칼에 찔리진 않았지만 머리를 뭐로 얻어맞은 모양이었다. 벌겋게 올라온 혹이 홍시같이 무시무시하다. 꼭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터라 심장이 벌렁거릴 지경이었다.

  와 미치겠네. 나도 따지고 보면 병잔데 왜 책임감을 느끼는거지? 내가 했냐? 내가 했냐고! 어유 휴머니즘 호구새끼! 뒷구멍엔 털이 나도 양심엔 털이 못나는 모양이다.

양심의 가책 따윌 느껴봤자 내가 할 수 있는건 소파에 뉘여놓고, 수건 물에 적셔서 얹어주는게 다였다. 이젠 진짜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그럼 이제.. 어쩐다냐.

  어디서 새된 비명이 들렸다. 분명히 아까 그 작은 하마 새끼겠지. 아니 꼭 그 놈이어야 한다. 하하 이거 참 편리하네. 안그래? 나갈 이유를 없애버렸잖아. 아직 근처에 괴물이 남아있단 소리니까.

?
  • ?
    드로덴 2012.05.20 06:49
    이걸 마지막으로 더 이상은 안쓸겁니다. 으앙
  • ?
    乾天HaNeuL 2012.05.20 19:30
    못 쓰는 게 아니라요? ㅡ.ㅡ;;
  • profile
    클레어^^ 2012.05.21 00:43
    헉... 그, 그럼 주인공은 살아 남을 수 있나요? 아니면 죽나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05.22 22:17
    결말이 아니라 안 쓰시는 건가요? 내심 기대했던 저는 ㅠㅠ
    조만간 다른 글 올리시는 거죠?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600 피그말리온【#10】 2 ♀미니♂ban 2012.05.19 521 1
599 [스스로 무덤을 팠습니다 ㅠㅠ]그래도 별은 빛난다 - 10. 여름방학 프로젝트 2 클레어^^ 2012.05.19 443 1
» 생존자 끝? 4 드로덴 2012.05.20 423 1
597 노래방 셀린디온 - My heart will go on ( 영화 타이타닉 OST ) (남자ver) 1 file Fever 2012.05.20 839 1
596 [독후감] 해를 품은 달 2 乾天HaNeuL 2012.05.21 721 1
595 『호러어드벤쳐』귀신의 집 _ 프롤로그 3 3류작가 2012.05.22 384 1
594 『호러어드벤쳐』귀신의 집 _ 1화 8 3류작가 2012.05.22 532 1
593 발큐리아! 3화 6 윤주[尹主] 2012.05.22 540 1
592 발큐리아! 4화 2 윤주[尹主] 2012.05.23 424 1
591 현실과 꿈-6 2 다시 2012.05.24 451 1
590 『호러어드벤쳐』귀신의 집 _ 2화 5 3류작가 2012.05.24 486 1
589 『호러어드벤쳐』귀신의 집 _ 3화 7 3류작가 2012.05.24 421 1
588 천지창조 2 다시 2012.05.26 397 1
587 나는 한국의 캐릭터 디자이너 2 다시 2012.05.26 1838 1
586 [드디어 일 났습니다]그래도 별은 빛난다 - 11. 결전(1) 2 클레어^^ 2012.05.26 537 2
585 발큐리아! 5화 3 윤주[尹主] 2012.05.27 2781 1
584 『호러어드벤쳐』귀신의 집 _ 4화 7 3류작가 2012.05.28 401 1
583 번지점프를 시켜주다 3 다시 2012.05.28 403 1
582 현실과 꿈-7 5 다시 2012.05.28 473 1
581 발큐리아! 6화 2 윤주[尹主] 2012.05.28 1424 0
Board Pagination Prev 1 ... 186 187 188 189 190 191 192 193 194 195 ... 220 Next
/ 220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제휴문의] | [후원창구] | [인디사이드연혁]

Copyright © 1999 - 2016 INdiSide.com/(주)씨엘쓰리디 All Rights Reserved.
인디사이드 운영자 : 천무(이지선) | kernys(김원배) | 사신지(김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