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역시 또 무기나 들고와서... 그럼 즐감(하기에는 좀 오덕스럽긴 하지요..)
파이크[Pike, 長槍]
시기 : BC 3세기 ~ AD17세기
지역 :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유럽 전역에서 사용됨
역할 : 적을 위협, 기병돌격을 저지하는데 절대적인 위력, 화기로 무장한 아군을 엄호
기원전 3세기,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는 그리스 전역을 재패하고, 나아가 이집트와 페르시아까지 뒤집어 엎는 군사적 업적을 이룩한다. 그의 강력한 군대에는 물론 뛰어난 기병들이 존재했지만, 군단의 몸통이라 할 수있는 마케도니아의 보병들, 즉 페제타이로이들은 유래없이 인상적인 모습을 한 무기를 들었다. 길이가 6미터 정도에까지 이르는 무지막지하게 길다란 창, 사리사는 파이크와 같은 형식의 긴 창이 전쟁사의 표면에 드러난 최초의 사례일것이다. 알렉산더의 보병들은 이 사리사를 들고 단단한 대열을 이루어, 마치 고슴도치와 같은 모양으로 싸웠다. 알렉산더가 죽은 뒤 그의 헬레니즘 제국은 분열되어 서로 투쟁하다가, 서쪽에서 몰려온 로마인들 앞에 무너진다. 한때 유행했던 사리사를 이용한 보병 전술은 로마의 군사제도가 유행하면서 그 뒤 1500여년 동안 잊혀진다. 중세시대 유럽에 재등장한 파이크는 알렉산더 시대의 사리사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중세 말기에, 거의 1천년 동안 이어오던 중무장한 기사들의 전성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무기를 들때, 흔히 롱보우, 파이크, 화약무기를 꼽는다. 롱보우가 기사의 전술적 지위를 잠시나마 일반 병사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내렸다면, 파이크는 실질적으로 그들의 무시무시한 돌격을 무용지물로 돌렸고, 화약무기는 기사들을 지켜주던 갑옷과 성을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었다. 스위스인들에 의해 그 유용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파이크는 곧 그 당시에 유행하던 핼버트나 부주와 같은 긴 장대에 달린 무기들과 대등하거나, 혹은 그것들을 밀어내는 지위를 차지하면서, 기병대신 보병이 전쟁의 중심이되는 시대를 열어간다.
파이크의 외형적 특징은 굉장히 단순하지만, 인상적이다. 5~6미터에 달하는 긴 손잡이 때문에 이 무기는 두 손으로 지탱할 수 밖에 없으며, 손잡이가 길고 무거운 만큼, 창날도 단순한 모양으로 만들어 붙인다. 할버트, 부주, 파르티잔, 귀자름 같이 복잡하게 생긴 날을 가진 무기에 비해, 1:1 교전에서 활용가능한 범용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파이크의 진가는 이것을 든 병사들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밀집대형을 이루고, 창날의 숲을 만들었을때 비로소 드러난다. 파이크를 사용하는 군대에게 필요한 덕목은, 뛰어난 개인기량이 아니라, 바로 앞에서 날아오는 대포알에 맞아 죽을 지언정, 결코 대열을 깨지않고 계속 유지하는 기율과 용기다. 실제로 아무리 긴 손잡이를 가지고 있는 파이크로 무장했다 하더라도 대열이 무너져서, 기병대의 돌격에 무참하게 패배한 경우도 많다. 스위스 용병들이나, 스페인의 테르시오가 무적의 군대라고 여겨졌던 것도, 바로 그러한 덕목에 충실한 직업군인들이었기 때문이다.
17세기, 총이 주력으로 쓰이던 30년 전쟁때까지, 총병들을 엄호하는 임무로 맹활약하던 파이크는 총병이 창병의 구실까지 할수 있게 해주는 '총검(Bayonet)'이 발명되면서, 전쟁터에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