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참으며 / 크리켓
나는 겨울이 부여한 슬픔을 뒤집어쓰고
거울 앞에 섰다, 수많은 내가 보이는.
그 속에는 내가 있었지만 내가 없었다.
그는 뭔가 다른 독을 부여잡은 체 나를 노려보았다.
그의 옆으로 죽음을 뒤집어쓴 시체도 있었다.
그림자 사이로 흩뿌려진 핏자국도 보였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웃는 자가 없었다.
나의 눈가에는 슬픔이 흐르지 않았다.
아아, 너무나도 많이 먹었구나.
이것은 흡사 독사로다.
나는 겨울이 부여한 과거를 바라보고
내 앞에 섰다, 속에 가시 덩굴을 키우는.
아마, 그 가시 덩굴은 언젠가 불꽃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며 거울을 부술 것이다.
그리고 내 옆을 오래전부터 만난 뱀 한 마리가 지나가며
맛있게 먹던 열매 하나 쑥 하고 던지고는
이히히 웃으며 사라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