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짊어진 사나이 - 윤동주를 기리며

by 크리켓≪GURY≫ posted Jul 17, 200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당신의 언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과 그 속에 깃든 새, 달, 별.
그네들을 나에게 전해주는 바람과 비.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살며시 다가온 부끄러움은
당신의 언덕 위에 오른 그날부터 이겠지요.

그리움은 지평선 너머의 먼 곳까지
부끄럽게 전해집니다.
아직은 내 이름에 담긴 추억과 소망이
안타깝게, 다 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수에 젖는 태양처럼
조용히 타오릅니다.

당신이 올랐던 언덕에는
그토록 부끄러움 속에서 간절히 바라던
조그만 자랑의 풀들이 무성했습니다.
수많은 발길이 이 언덕을 지나갔고
나 또한 이 언덕을 반갑게 지날 것입니다.

초원이 되어버린 언덕 위에는
수줍은 듯이 고개 들고 있는
당신의 이름의 꽃이 있습니다.
그 꽃에 부드럽게 웃으며 다가가
조용히 입을 맞추고 언덕을 내려갔습니다.

먼 훗날 추억을 밟으면
나무로 크게 솟아오른 당신의 꽃에
연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고 못나지 않게
당신의 꽃 옆에 내 이름자를 묻고
꼭꼭 흙으로 눌러 담아 기도했습니다.

겨울을 맞이하는 지금 이 땅에
당신의 언덕엔 봄이 드리웠습니다.
당신의 보살핌과 사랑 속에서 여름을 맞이한다면
비로소 새싹으로 나와 당신의 옆에 서고자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발길이 그러하듯이
부끄러움이 땅에 심어 놓은 내 이름자에도 나비가 날아들고
그리운 추억을 써서 담은 하늘의 별이 비가 되듯 초원으로 내릴 때
나는 그저 당신의 나무 옆에 작은 달맞이꽃으로 남아
새로운 아침이 오듯, 언덕을 찾는 그리움의 이들을 기다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