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31 09:53

이야기꾼 (4)

조회 수 352 추천 수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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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게임을 엄청나게 좋아하기 때문에, 마피아 게임이나 도둑잡기 같은 단순한 걸로도 서너 시간은 거뜬히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지금같은 상황에선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으니 심심해서 미치겠다고! 뭐 앞에선 거창하게 '죽음을 예감해서' 같은 이유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적었는데, 결국 가장 강력한 동기는 무료함이다. 지금 내가 얼마나 심심한지 알아? 마샬 옷 밑에 뭐가 있는지 벗겨보고 싶을 지경이라고! 어차피 의식도 없는데 벗기는 것 이상을 시도해도 야릇한 신음이나 내고 말걸.

 

 내가 변태같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사실일 것이다. 내가 이런 말하긴 뭣하지만 결혼해도 뭐라고 안할 나이에 그걸 한 번도 안해봤으니 욕정이 쌓여있겠지. 하지만 여기서 진짜로 문제가 되는건, 왜 그 욕정이 인간이 아니라 악마에게 향하냐는 점이지.

 

 거두절미하고, 마샬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홀릴 것 같이 생겼다. 오똑한 코가 어쩌고 앵두같은 입술이 어쩌고, 상투적이면서 오그라드는 그런 표현은 차마 못하겠지만.. 어쨌든 잘생겼다. 내가 여기다 그림을 그린다면 뭔 말인지 이해를 할까 싶지만, 슬프게도 난 그림엔 젬병이라서 이렇게 글자로 인물을 상상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된 거, 누가 어떻게 생겼는지 정도는 짚고 넘어가는게 좋겠다. 글자를 앞에 두고 인물을 상상하거나 직접 그려볼 정도로 열의에 찬 독자가 있다고 내 멋대로 정했거든. 스타트는 내가 끊으련다.

 

 나는 영양상태가 좋은 평키의 남자다. 그래서 어디서 일터졌을때 범인이 날씬하거나 뚱뚱하다면 난 제외되지. 굳이 따지자면 살찐 쪽에 가깝지만, 이 정도 군살은 한 달만 운동하면 다 빠진다. 검은 머리는 제 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두지만, 그게 눈썹까지 내려오면 이마가 보이도록 숱을 쳐버리곤 하지. 눈썹은 미남이라고 자부하지만, 눈이 좀 째진 탓에 남의 시선을 내 눈 언저리에 머물게 하질 못한다. 거기다 추가로 내 눈은 오드아이지. 원래는 암갈색이었지만, 다른 탐험가에게 배신당한 이후로 내 오른쪽 눈은 파란색이 되었다. 그나마 홍채 색만 파란색이면 좋겠는데.. 흰자위여야 할 부분이 회색이라 도저히 극복할 수가 없다. 마샬이 이걸 보면 '그럼 애꾸눈으로 살던가' 하고 쏘아붙이겠지. 코나 귀, 입은 특징이 없어서 뭐 적을게 없군. 그냥 달려야 할 곳에 적당한 수만큼 달렸다. 나같이 피부 노란 사람을 흔히 동양인이라고 부르더라. 대체 어디를 기준으로 별을 나눴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피부가 노랗다는 말도 솔직히 동의할 수 없다. 오골계나 비늘돋친 녀석들, 북극곰같은 애들 제외하고, 대부분의 동물 털을 싹 밀면 나타나는 그 살색이 내 피부색인데, 그게 노랗던가? 내가 무슨 모태황달도 아니고 원.

 

 나는 평상시엔 상하의를 검은색 츄리닝으로 통일하고 다닌다. 팔뚝이나 다리통 쪽은 노란 실로 멋을 냈지. 너무 없어보이길래 직접 만들어 넣은거야. 속옷은 진녹색 계통을 좋아하고 팬티는 반드시 사각팬티. 설마 사내놈 팬티색을 궁금해하진 않겠지? 남자는 아예 안입거나 치마를 입는게 더 좋다곤 하지만 그 정도로 정력에 신경쓰진 않는다. 다른 탐험가들이 쓸 데가 없어서 고자냐고 놀릴 정도니.. 신경 쓸 이유가 없잖아. 안 그래? 날씨가 추우면 이 위에다 인조섬유로 만든 회색 통코트를 뒤집어쓴다. 보풀은 안생길테지만 가열하면 녹으니까 불 가까이에 두지 말라고 옷가게 아줌씨가 그러더라.

 

 솔직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거다. 솜씨가 없다보니 언어유희나 실없는 소리로 무마하려고 애쓰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건 어쩔 수 없는거다. 그리고, 아무리 싫대도 오늘 다룰 컨셉은 생김새로 정했으니 이걸로 간다. 설마 내가 또 민달팽이 운운하길 바라는건 아니겠지?

 

 자, 내가 도움을 받았던(그리고 지금도 받고있는) 플레밍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그는 다소 땅딸막한 사내이다. 허옇게 일어나고 말라버린 피부를 보면 도저히 나에게 존댓말을 쓸 이유가 없는 이인데, 그는 타인을 높여말하길 좋아한다. 자기는 상대보다 어려진 기분이 들고, 존댓말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 누이좋고 매부좋은거 아니겠냐고 하더라만, 난 그게 비꼬는 거란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애초에 그런 대답에 뭉뚱그리지도 않고 제대로, 그러니까 준비해놓은 대답이 있다는게 비꼬는게 아니면 뭘지.. 하여튼, 그는 피부건강이 좋지 않아 실제 나이보다 10년은 늙어보이는 장년 남성이다. 머리카락은 새하얗기까지 하지. 진짜 에누리 없이 백발이다. 내가 오덕오덕 증후군에 걸려있었다면 은발이라고 썼을 지도 모른다만. 그는 보랏빛 의상을 즐기는 것 같다. 덕분에 내눈엔 핌프같이 보이지. 매춘업자말이야. 고통의 집안에 자기 집을 따로 마련해둔걸 보면 매춘업자 그 이상인 것 같지만..

 

 나는 물어볼 게 있지 않는한 그와 가까이 있기를 삼가왔다. 그래서 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보면 기억이야 나지. 하지만 내가 제대로 적을 수 있는건 기껏해야 그 사람 코가 앞으로 많이 튀어나왔다는 것 정도이다. 남의 어디가 좋고 나쁜지 알 정도면 그건 절친 수준 아닌가? 난 그 남자랑은 절친은 고사하고 질 나쁜 친구 되기도 힘들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가 아주 그냥 죽고 못사는 마샬에 대해서 적어보자. 녀석은 키가 2미터도 넘는 악마다. 하지만 진짜로 큰 녀석들에 비하면 얜 애교지. 게다가 외형이 인간과 매우 흡사하다. 내가 내장같은 촉수를 흔들거나 곰팡이에 뒤덮인 녀석에게 매력을 느낄 병신일리가 없잖아. 다른 악마들을 보면 아예 몸이 불이나 얼음, 흙같은 걸로 되있는 녀석들도 있는데, 이 놈은 살과 뼈로 이루어져있다. 게다가 옷도 입고. 녀석의 옷은 빨간색 계통이다. 일부러 가슴하고 배만 드러나도록 해놓은게 참 괘씸한 디자인이야. 왜냐고? 난 벌크업을 안해서 복근이 도로 뱃살 밑에 묻혔거든. 왜 그렇게 식스팩에 환장하는건진 나도 모르겠지만, 뭐 어쩌랴. 대세에 편승해야지. 뭔 이상한 문자가 적힌 나무조각이나 뼈목걸이같은 악세사리도 보이긴 하지만 용도는 모르겠다. 얼굴은 그냥 형용키 힘들게 잘생겼다. 진짜로..

 

 계속 적다보니 생각나는건데, 인간을 남녀노소 분간없이 끌리게 만드는 성질을 고려하면 마샬은 몽마 계열인 지도 모른다. 지배인.. 그녀도 이녀석 얼굴봐서 들여보내준것 같던데. 흠..

 

 다시 외모 이야기로 돌아가서, 녀석은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다. 이제껏 지켜봤지만 더 자라는 것 같지는 않다. 머리색은.. 역시 악마라 이건가, 햇볕에 한참 내놔서 탈색된 듯한 파란색이다. 뿔은 하프를 반토막내서 관자놀이 위쪽에 붙여놓은 것 같고, 날개는 박쥐같은게 두 쌍이다. 가죽이 덮여있지 않은 부분도 있는데, 뼈색이 빨간게 좀 소름끼친다. 항상 피가 묻어있는 것 같다니까. (플레밍은 날개 숫자가 악마가 강한 척도라고 하던데, 그럼 이녀석은 어중간한 악마는 아닌 모양이다.) 놈의 꼬리는 보라색이다. 길이가 거의 내 키 정도는 될 것 같고, 끝부분에 세모꼴인 연골이 만져진다. 전체적으론 말랑말랑하고. 전에 말했듯이 이 녀석 꼬리는 질감이 재밌어서 손이 자꾸만 간다. 따지고 보면 지금 이놈 먹여살리고 있는건 난데.. 내 피 먹이고 생명력도 부어주고 말이야. 아무리 거기가 약점이라지만, 아까부터 심심해죽겠던 차.. 좀 괴롭히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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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어^^ 2012.04.02 01:02

    오호~. 그럼 주인공은 운동을 좀 하면 몸이 좋다 이 말이군요... +_+

    휴우~. 저처럼 좀만 먹어도 살 찌는 체질은 그저 부러울 뿐이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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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로덴 2012.04.12 11:50

    신이 앵그리버드를 한다면, 우리 둘은 조만간 붉은 새의 습격을 받을 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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