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0 17:39

Lady Dragon Knight(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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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인물의 대답에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예희 정도의 나이로 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의 여자 하나가 싱긋 웃고 있는 것이 모두의 눈에 들어 왔다. 청색의, 장식이라곤 전혀 없는 단순한 망토를 하나 두른 채로 긴 적갈색의 머리채를 뒤로 모아 질끈 동여 맨 여자아이는 일행을 잠시 훑어보더니 미르세린과 레이야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들은, 마법사?”

“신관이에요.”


미르세린이 불쾌해하는 것을 알아차린 레이야가 재빨리 여자에게 답했다.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상대가 아직 어려 보이는지라 크게 다투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모를 미르세린이 아니었는지라, 조금 쀼루퉁한 얼굴이 되어 레이야에게 속삭였다.


“쟨 예희 또래 같잖아. 쟤도 알 것은 알아야 한다구.”

“죄송해요.”

“휴우, 네가 죄송해할 필요는 없잖아.”


미르세린은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여자에게 따질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그런 두 사람을 가만히 보고 있던 여자는 밝게 말했다.


“다 정리 된 거죠? 그럼 이제 제 용건을 말씀드리죠…….”

“실례 아닌가? 처음 보는 분들인데.”


그렇지 않아도 마치 일행을 무시하는 것 같은 여자의 태도에 대해 뭔가 한 마디 하려고 벼르고 있던 미르세린은 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속이 조금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 쪽을 보았다. 여자에게 말을 한 것은 검은 색의 로브를 온 몸에 두른 남자였다. 잿빛 머리칼을 가진 남자는 푸른빛의, 유난히 차가워 보이는 자신의 눈동자를 가볍게 굴려 일행을 쭉 훑어보았다. 그의 눈길이 한 사람 한 사람을 거칠 때마다 일행은 저마다 조금씩 움찔거렸다. 단 한 사람, 레이야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자신의 눈을 직접 응시하려는 레이야를 보며, 남자는 조금 의외란 듯이 다른 사람들로서는 알아차리기도 어려운 나직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체, 상관없잖아. 어차피 미스트는 찬성하지 않을 테니까.”


미스트라는 남자의 등장에 여자는 투정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상당히 친한 사이였는지-비록 나이 차이는 있어 보였지만- 그를 대하는 여자의 태도는 매우 편해 보였지만 눈만은 그와 맞추지 않고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제멋대로인 여자에게도 남자의 눈매는 차갑고 무서운 것 아닐까. 예희가 그런 생각을 남몰래 하고 있는 동안, 다시 미스트가 입을 열었다.


“아니, 찬성이다. 이 사람들은.”

“의외인걸. 왜일까, 이상형이라도 되는 걸려나?”


어려 보이는 여자가 한 말이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미스트는 그에게 말했다.


“그 말은 틀리지만, 마음에 드는 건 사실이군.”

“전부? 헤에, 실은 이 여자 말이지? 미스트도 꽤 눈이 높은 걸.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정말로.”


그러면서, 여자는 레이야의 허리를 뒤에서 껴안아 등에 얼굴을 기댄 채로 슬쩍 앞으로 밀었다. 어엇, 하면서 조금 앞으로 나와 서게 된 레이야를 보며 미스트는 살짝 표정을 바꿨다. 의외라는 듯, 하지만 확신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표정. 레이야도 그와 비슷한 이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이 언제까지나 그렇게 남아 있지는 못했다. 별안간 울려 퍼진 누군가의 외침 탓에.


“이봐요! 무슨 실례에요! 다른 사람들도 있는 앞에서!”


미르세린의 외침에 낯선 여행자들은 고개를 돌려 일제히 그녀를 보았다. 약간 얼굴이 상기된 미르세린은 레이야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여자의 손을 억지로 푼 뒤 레이야의 손을 잠아 일행 쪽으로 끌어온 뒤 그 여행자들을 불쾌하게 노려보았다.


“보다보다 정말 못 봐주겠네요. 우리가 무슨 당신들에게 파는 물건인 줄 알아요? 마음에 드네 마네. 아니, 처음부터 그 여자도.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다니, 무슨 무례죠? 이유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을 둘러싸고서 자기들끼리 이렇다느니 저렇다느니 이야기하는 것도 그리 좋게 보이진 않네요. 초면부터.”


미르세린의 말에 여행자들은 조금 머쓱해했다. 조금 교육을 받았다면 그들 스스로도 아마 자신들이 크게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초면부터 자신들을 소개하지도, 왜 그들을 붙들었는지도 설명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떠들어댄 것이 얼마나 큰 무례인지 아마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미르세린의 생각은 대충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다시 그런 그녀의 말에 동조를 해 주었다.


“그건 저 여자 말이 옳아. 아영, 이번엔 너무 무례했군.”

“카르낙! 어디 있다가 이제 나타난 거야?”


아영이라는 어린 여자는 반갑게 그 목소리를 맞으려다가 이내 표정을 싸악 바꾸었다. 완전히 주눅이 든 여자의 모습을 보며, 미르세린은 어떤 사람이 도대체 저 여자를 저렇게까지 주눅 들게 할 수 있나 싶어 역시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리 큰 체구가 아님에도 등에 짊어 질 정도로 큰 칼 하나를 차고 있었다. 눈매가 또렷이 서고 다부지게 다문 입, 그리고 그리 각이 진 편은 아니지만 분명한 턱 선은 한눈에 보기에도 마치 한때 전장을 누비다가 퇴역한 장군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실례했습니다, 하며 그들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까지도 왠지 사과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부지고 힘이 실린 모습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검은 로브를 입은 미스트라는 남자가 먼저 중재에 나섰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조금 서툴러서, 이런 실례를 저지른 모양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 아니 괜찮습…….”

“아니, 글쎄 용서를 해야 할 지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군요.”


미스트의 사과를 받아들이려던 레이야는 이상하게 힘이 들어간 미르세린의 말에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입을 굳게 앙다문 채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미르세린은 단단히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슨 일로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지. 오히려 레이야가 미안해질 정도로 미르세린의 분노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상대도 그것을 아는지 최대한 부드러운 어투로 그녀에게 말을 조심스레 건넸다.


“대신 저희가 사과의 뜻으로 제안을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시면…….”

“우리가 왜 당신들을 도와야 하죠?”


미르세린은 여전히 얼굴을 풀지 않고 있다. 미스트라는 남자도 이제 슬슬 화가 오를 때도 됐건만, 그는 여전히 담담한 말투였다.


“말이 필요하신 것 같은데, 복잡한 허가 절차를 받고 싶으시진 않겠죠. 허가를 받으려면 몇 일간은 꼼짝도 하지 못할 테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미스트의 말에 미르세린은 조금 누그러진 반응을 보였다. 자신들이 어떤 처지인지를 이제야 떠올린 것이다. 그렇지, 하며 자신을 기분 나쁘게 바라보는 여자를 잠시 노려본 미르세린은 다시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럼, 당신들을 도와주면 저희도 말을 빌릴 수 있는 건가요?”

“일행이 되는 거니까, 당연합니다.”


일행? 미르세린은 다시 고개를 들어 미스트를 바라보았다. 미스트는 여전히 약간은 자세를 낮춘 채였다.


“저희는 동행할 마법사를 찾고 있습니다. 생각이 있으시다면, 당신들의 말도 빌려 올 의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일정이…….”


미르세린은 말꼬리를 흐렸다. 당장 괜찮은 조건이기는 했지만 앞으로도 그것이 괜찮은 조건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고, 또 혹시라도 바쁜 이쪽의 일정과 저쪽의 일정이 서로 틀어진다면……. 미르세린은 최종 결정을 내리기를 조금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미스트는 다시 짧은 말을 던졌다.


“저희는 일정이랄 것이 없습니다. 일행이 되어 주시면 여러분의 일정에 기쁘게 맞추겠습니다. 처음부터 그것은 바라던 바입니다.”


그제야 미르세린은 흔쾌히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비록 미르세린이 자신들의 의사를 묻고 결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예희나 레이야, 레이븐에게도 불만은 없었다. 일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이점도 많으니까. 아헤르의 도움 이후로 그들은 그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뒤에서 잠자코 그들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여자가 앞으로 나와 미르세린 앞에 섰다.


“그럼 이제 해결된 거죠? 잘 부탁해요. 아영이라고 불러 주세요.”


아직 앳된 얼굴의 여자는 아직도 어색해하는 미르세린에게 대뜸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으려던 미르세린은 순간 움찔 하더니 조금 불쾌한 낯빛을 띄었다. 금속제의 글러브가 여자의 손에 끼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여자는 무례하기만 했다.


“죄송합니다. 아영의 습관이라, 글러브는 잘 벗으려 하지 않거든요. 이해해 주십시오. 미스트라고 합니다.”


오히려 깍듯한 것은 차가워 보이는 미스트였다. 미르세린은 창백한 피부를 한 그의 손을 잡았다. 가볍게 악수를 마친 미르세린의 앞에 이번에는 미스트의 뒤에 서 있던 큰 검을 짊어진 남자가 섰다. 어림짐작으로도 미스트나 아영보다는 머리 하나가 커 보이는 사람이었다.


“카르낙입니다.”


처음 보았을 때 느낀 것처럼 그의 말에는 여기저기 힘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이런 타입의 사람에겐 이런 공손한 말보다도 오히려 딱딱한 군대식의 명령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미르세린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색하게 그의 손을 잡았다.


“이제 그쪽 분들도 소개를 들어 볼까요?”


미르세린과의 악수를 모두 마친 미스트의 말이었다. 잠시 눈짓이 교환된 뒤 레이븐이 먼저 나아가 악수를 건넸다.


“레이븐이라고 합니다. 어, 신전에서는 역사 일을 맡고 있습니다.”

“역사라면?”


미스트 일행에겐 들어보지 못한 말인 모양이었다. 미스트는 잠시 생각을 하고는 그의 질문에 답했다.


“신전 내에서 네 번째 단계를 밟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급이라고 생각하시면…….될 것 같습니다만.”

“그렇습니까. 그럼 이쪽 분도 역시 그 역사라는?”


레이야를 가리키며 미스트가 물었다. 레이야는 가볍게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역사는 남자 분들의 단계이고, 게다가 저는 첫 단계인 몽환시에 불과합니다. 레이야라고 합니다.”

“언니, 좋은 사람 같아.”


아영의 말에 레이야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쓴웃음인지 그저 평범한 미소일지 모를 이상한 느낌의 미소. 다행히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희라고 합니다. 이 분들과는 잠시 여행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저기 손은 죄송하지만 제가 좀 사정 탓에…….”


소개를 하면서도 예희는 손을 잡으려는 미스트 앞에서 자신의 손을 감추며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기만 했다. 형체나 물리적인 힘은 사람이나 다를 바 없다고는 하지만, 예희에게서는 고스트리콘 특유의 한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죽은 자인 고스트리콘에게선 살아 있는 사람의 온기 대신 죽은 사람의 냉기가 영혼을 차지한다. 예희의 경우 어느 정도는 그 냉기를 성력석의 마력으로 묶어두고 있기는 했지만, 잘못 다른 사람들과 직접 접촉을 하면 금세 그 냉기가 들통날수도 있다. 때문에 예희는 그 고스트리콘이라는 말의 의미도 분명히 알지 못하면서 최대한 미스트의 악수를 피하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미스트는 그런 그녀를 더 추궁하지 않았다. 아직 한 사람이 더 남아있어서였을까. 예희는 십년감수한 표정이었다.


“저는 미르세린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신관이시죠, 미르세린 씨도?”


미스트의 물음에 미르세린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미스트는 약간 아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의 의도는 미르세린의 계급을 알아보려는 것이었지만, 미르세린은 단순히 자신이 신관이라는 사실만을 알려줄 뿐이었다. 그런 미스트의 눈빛을 읽은 레이야가 입을 열었다.


“대신관님이세요. 저희 신전의.”

“예에? 이렇게 젊으신 분이?”


세 사람의 반응에 미르세린은 그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리고 몇 번이고 사과하는 레이야까지도 괜찮다며 다독여 줄 동안에도 그녀의 마음이 그리 편할 리는 없었다. 그저 모른 채 넘어가 버렸다면 좋았을 것을. 그것이 나이를 세는 것을 이미 오래 전부터 포기하고 있었던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럼 저희가 말을 빌리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어디로 가시는지를 물어도 될까요?”


순간 미르세린의 눈빛이 변했다. 주위를 한번 휙 둘러보던 그녀는 미스트를 불러 가까이로 오게 한 후 최대한으로 소리를 죽여 작게 말했다.


“그게 좀 그런데…….쿠홀트라고, 아세요?”


순간 미스트의 얼굴은 더 하얗게 질려 버렸다. 미르세린의 말을 듣지 못해 무슨 일인지 몰라 멀뚱히 그만을 바라보는 두 사람도, 조금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의 네 사람도 그런 미스트와 함께 몸이 굳어버린 것처럼 한참 동안 멍청히 서 있었다. 잠시 후, 미르세린이 다시 입을 열 때까지.


“내키지 않으시나보죠?”

“……왜 그러는지는 그쪽도 잘 아실 겁니다.”


다소 맥이 풀린 것처럼 보이던 미스트는 주위를 조금 둘러보고는 다시 일행을 향해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말을 건네는 그의 폼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쿠홀트는 이 나라, 바슬의 적국인 것 아실 테죠?”

“네.”

“……무슨 사정이라도?” 미스트의 질문에 미르세린은 뭐, 그런 거죠 하며 얼버무렸다. 하지만 미스트의 눈초리는 굉장히 의심스럽다는 눈초리였다. 그것을 본 레이븐이 갑자기 미르세린을 붙드는 동시에 미스트 일행에게 말했다.


“잠시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그러시죠. 저희도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미스트는 몸을 돌려 아영과 카르낙에게로 돌아갔다. 이따금 이쪽을 힐끔 돌아보며 소리죽여 이야기하는 폼이 심상치 않았다. 그들 모르게 그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레이븐은 역시 소리를 죽여 미르세린에게 말했다.


“무슨 짓입니까! 저들이 첩자라면 어쩌시려고…….”

“첩자?”


미르세린은 의아해하기만 했다. 그녀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레이븐은 한숨을 내쉬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 사람들 왠지 눈빛이 이상한걸요. 아무래도 우리를 쿠홀트의 첩자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뭐?”


미르세린은 적잖이 놀라했다. 당연한 거잖아 하는 얼굴로 그녀를 보면서 레이븐은 조금 머리가 띵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생각 전혀 해보지 않으셨죠, 미르세린 님?”

“……응.”


미르세린은 조심스럽게 답했다. 하지만 레이븐은 불안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이따금 미스트 쪽을 몰래 돌아보다가 다시 미르세린의 얼굴을 바라보고, 한숨을 쉬다가 다시 발을 동동 구르고. 정신없는 레이븐의 모습을 보던 레이야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그게 아니라면, 뭐죠?”


순간 레이븐은 안절부절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던 몸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얄미우리만큼 침착한 모습. 그러고 보면 저기 미스트라는 남자도 묘하게 레이야와 닮은 분위기였지. 레이븐은 조금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 때문인지, 뒤를 이은 그의 답변도 조심스러우면서도 왠지 어색한 느낌이었다.


“그게 아니면, 저들이 공국의 첩자이던가.”

“그럼 우리는…….”


예희가 놀란 얼굴로 그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이번엔 레이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그들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거의 비슷한 것들이었다.


“저기, 미르…….대신관님이셨습니까?”


별안간 미스트가 부르는 통에 미르세린은 흠칫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이야기가 모두 끝났는지 미스트 일행 세 사람은 모두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미스트는 직접 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레이븐은 채찍을 손으로 집으며 미르세린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미르세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미스트를 보았다.


“예, 그렇습니다만.”

“위험한 길이라는 건 아실 테죠, 그래도 갈 겁니까?”


미르세린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가지 않는다고 말하면 오히려 상대방의 의심을 살 것이 뻔하다. 간다고 말해도 그건 마찬가지일지도, 아니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결국 어떻게 답하든 결과는 그리 달라질 것이 없었다. 고민하던 미르세린은 결국 사실대로 이야기하기로 결심하고는 미스트에게 말했다.


“저희는 가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특별히 ‘무슨 일이’에 강조를 두면서 미르세린은 상대방의 안중을 살폈다. 미스트는 조금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속이 어떠한지 까지는 미르세린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잠시 동안의 침묵. 어느 순간 미스트는 무언가를 결심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미르세린을 다시 보며 입을 열었다.


“힘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바슬과 이 일대에서 볼 일은 모두 끝났으니까요.”

“그렇다면?”

“그러면 말은 아예 사 버리는 편이 낫겠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미스트는 말을 마치고는 곧바로 쿤훌에 가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말을 팔지 않겠노라고 완고하게 말하던 주인은 미스트가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 두어 개를 얹어 주자 두말 않고 말들을 내 주었다. 일곱 마리의 말을 확보한 미스트는 모두에게 말을 한 마리씩 나누어 주고는 자기 말에 올라타며 미르세린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가 볼까요?”


뜻밖의 환대에 미르세린은 당황스러워했다. 너무나도 과도한 친절이다. 첩자일 거라고 의심했던 우리에게…….아니, 어쩌면 이것도 한 계략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미르세린은 조금 생각을 하다가 결국 말 위에 올라타 앉았다. 잘 부탁하겠습니다, 하며 환하게 웃으며.


“그런데 괜찮을까요? 정말?”


말에 올라타 앉아 뒤따라오던 레이븐이 미르세린에게 물었지만, 미르세린은 별다른 걱정이 없는 것처럼 괜찮아, 를 연발했다. 묘한 자신감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이렇게나 친절한 사람들인데.”

“그렇게 쉽게 믿어도?”


걱정스러운 듯 레이븐이 재차 물었지만, 미르세린은 역시 큰 걱정 없다는 것처럼 말했다. 레이븐은 이제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데 아까 예희는 뭘 보고 그런 거야?”


레이븐의 그런 표정은 보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가던 미르세린이 불현 듯 예희에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예희는 미르세린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정확히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예?”

“레이븐은 허가서를 보고 놀랐다지만, 너는 그 쪽과는 정 반대방향을 돌아봤잖아.”

“글쎄요.”


아, 그거. 하면서 예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미르세린에게는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해 두었지만, 그 이후로도 예희의 신경은 온통 그 때 일로 가 있었다. 이상한 인기척을 등 뒤에서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던 그 일로. 


“…….”


잘못 알았거니 하며 미르세린을 따르는 예희 쪽으로, 정말로 누군가의 낯선 시선이 향했다. 한 마디 입도 열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던 낯선 시선은 그들이 성을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서야 겨우 스스로의 모습을 건물 사이의 그늘로 바쁘게 감추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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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보면 인물 성격 유지하는 게 영 까다롭네요;
 <LDK> 쓸 때, 7, 8명 파티 계속 유지하며 끌고 나가면 성격 통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다시 살펴보면 역시 나중에 가서 말투가 바뀌는 인물들이 있곤 합니다...

 그래서 요즘엔 파티 규모를 더 적게 가져가려 하지만요;; 한 서너 명 정도가 적정한 듯 합니다. 주연 한두명에 보조 한두명...이런 식으로요.
 아무튼 인물 표현이 제일 어려운 것 같네요^^;
?
  • profile
    클레어^^ 2011.08.21 08:19

    아영이라...

    혹시 예희와 같은 세계에서 온 인물인가요?

    아니면 예희는 모르지만, 같은 학교 친구라던가...

  • profile
    윤주[尹主] 2011.08.21 16:40

     아영은 미르세린과 같은 세계 인간이에요. 미르세린이나 다른 사람들과 이름이 좀 달라 보이는 건, 문화권 차이 때문이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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