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0 04:17

E. M. A. (1-7) 유혹

조회 수 460 추천 수 1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정 그렇게 신경 쓰이면 말야."


 돌연 은비가 제 쪽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명현은 주춤대며 뒤로 물러섰다. 은비는 명현 태도를 신경 쓰지 않고 그에게 바짝 몸을 붙였다. 놀란 명현은 비틀거리다 벽에 기대고서야 겨우 멈춰 섰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은비는 명현의 바로 눈앞에 있었다. 명현은 침을 꼴깍 삼켰다. 의외로 가는 그녀 목덜미로부터 그는 함부로 눈을 돌리지 못했다. 그런 명현에게 은비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렇게 갖고 싶다면, 가져 버리는 게 어때? 좋아하는 거지? 보고 있는 것만으론 만족할 수 없는 거지?"


 은비는 명현의 손을 끌어당겼다. 손끝에서 전해져오는 작은 박동을 읽어낸 명현이 손을 움찔거렸다. 은비는 힘을 주어 명현이 손을 빼지 못하게 잡고선 그에게 속삭였다.


 "왜 그래? 네가 바라던 거잖아? 다른 애들이 그런 것처럼, 너도 마찬가지 아냐?"

 "그게 아냐!"


 명현은 안간힘을 써 은비를 밀어냈다. 명현에게 거의 기대다시피 하던 은비는 꺅, 새된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명현은 혼돈스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뒷걸음질 쳤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에게서 성숙한, 하지만 어딘가 가녀린 낯선 여성의 인상이 느껴졌다. 지난 한 주, 명현이 홀린 듯 좋아해온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것도 잠시뿐,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은비는 별안간 깔깔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하하, 바보 같아. 얘, 너 날 좋아하는 거 아냐? 왜?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잖아! 어째서 도망치는 건데!"

 "아, 아니야."


 명현은 고개를 좌우로 휘저었다. 혼란스러운 듯 묘한 표정을 하고서 그는 은비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아니야.


 은비가 미처 불러 세우기도 전에 명현은 부리나케 그 자리를 도망쳐 피했다. 혼자만 남은 은비는 벽을 짚은 채 일어나 옷을 털었다. 명현이 달아난 방향을 보고 불만스러운 듯, 볼을 부풀리곤 푸념을 했다.


 "뭐야, 저 애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체육관 지붕 위에서 마녀는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입가에 회심의 미소까지 띈 채, 그녀는 나직이 휘파람을 불었다.


 "빙고~."


 순간 그녀가 있던 체육관 지붕 한편이 큰 폭발음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연기와 불꽃에 휘말려 마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폭발 장면을 본 아이들이 비명을 질러댔고, 조금 후에는 경찰차며 소방차까지 학교 운동장 안으로 진입해 야단법석을 피웠다.


 이 모든 모습을 숨은 채 바라보면서, 은비는 씩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뜻밖에 일어난 사고 탓에 학교는 금방 어수선하게 되었다. 경찰관들이 교실 안까지 들어와 사물함이며 구석구석까지 뒤지고, 교장은 긴급회의를 한다며 선생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그 바람에 오후 수업은 연이어 자율학습으로 바뀌어 버렸다.


 자리에 앉은 채 명현은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은비는 아무 일도 없었단 듯 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명현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폭발이 일어난 건 그가 은비를 내버려두고 간 직후였다. 혹시나 사고에 휘말려들진 않았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다행히 은비는 멀쩡해 보였다.


 설령 그렇더라도, 은비를 이대로 놓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명현은 체육관 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일부러 명현이 그런 곳을 찾아간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친구 다언에게서 은비 상태가 어딘가 이상하단 얘기를 들은 탓이다.


 '아침부터 난리도 아니었어. 야, 아직도 쟤 좋아하냐? 좋게 말할 때 관둬라. 괜히 상처만 더 받지 말고.'


 설령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명현은 생각했다. 상처 더 늘린다 하더라도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사랑 앞에서 바보 짓하기 마련이니까. 상대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든 모르니까 속아 주고, 알아도 속아 주는 게 남자란 생물 아닌가? 괜히 '콩깍지가 씌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명현이 고민에 빠진 그 때, 교실 문이 열리며 담임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학 담당인데다 비쩍 마른 얼굴 탓에 딱딱한 인상을 주지만 의외로 사람은 좋은 편이었다.


 그 선생이, 갑자기 명현을 지목하며 물었다.


 "곽명현, 너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 만난 적 있냐?"


 모르겠는데요, 라고 답하려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 마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르는 사람은 아니고, 아는 누나는 만난 적 있는데요."

 "아는 누나라고? 같은 동네 사는 사람이야?"


 네, 하고 명현이 대답하자 선생은 심각한 얼굴로 그에게 되물었다.


 "이름은? 사는 곳은? 무슨 일 하는지는 모르고?"

 "그것까진 저도 잘……."

 "휴, 혹시 연락처 아는 건 있냐?"


 선생이 연락처를 묻는 순간, 명현은 순간적으로 하숙집 지붕 위를 떠올렸다. 처음 만난 날부터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어쩌다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항상 그랬다. 거기라면 언제든지 마녀를 만날 수 있으리라 하고 그는 여겼다.


 "그것도 잘 몰라요. 동네 지나다니면서 몇 번 마주치기만 해서요."


 둘러대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조금 전 체육관에서 사고가 있었던 것도 그렇고, 갑자기 찾아온 담임이 심각하게 자신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것에도 썩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던 탓이다.


 아니나 다를까, 담임은 명현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다.


 "혹시나 그 여자 다시 만나면 꼭 학교에 연락해라. 아니면 경찰서나."

 "어째서요?"


 질문을 한 건 명현이 아닌 은비였다. 담임은 조금 의아했는지 은비를 잠시 빤히 쳐다보았다.


 "체육관에, 낯선 사람이 있었다는 신고가 있었다더라."


 담임의 말이 떨어지자 학생들은 일제히 웅성대기 시작했다. 담임은 학생들을 조용히 시킨 후, 말을 계속했다.


 "학교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체육관 일도 그 사람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경찰이 찾고 있다는 구나. 아무튼 다들 몸조심하고, 수업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 딴 데 새지 말고, 알았냐?"

 "선생님, 야자는요?"

 "정휘창, 너만 남아서 야자 하고 갈래?"

 "에이, 선생님. 왜 또 저한테,"


 능글맞은 휘창의 말에 학생들도, 담임도 한바탕 폭소를 터트렸다.


 그 와중에도 명현은 혼자 웃지 못해 고개를 숙인 채 있었다. 폭발 사고와 마녀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 건지 그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에 원인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 마녀 밖에 없다고 명현은 속으로 확신했다.


 사고 때문에 학교는 일찌감치 학생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소방서에서도 어떻게 폭발 사고가 발생한 건지 아직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단다. 폭탄 테러라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지만 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다.


 "야, 곽명현. 좀 놀다가 들어가지 않을래?"


 다언과 휘창이 부르는 걸 명현은 일부러 거절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곧장 그는 하숙집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명현은 방문을 닫아걸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밖으로 몸을 내민 뒤 명현은 지붕 쪽을 쳐다보았다. 아래쪽에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명현은 지붕 위에 있을 마녀를 불렀다.


 "거기 있죠? 다 알아요. 잠깐 내려와 봐요."


 부스럭대는 소리가 지붕 위에서 들렸다. 잠시 후 검은 코트를 입은 마녀가 천천히 지붕 위에서 내려와 창문을 통해 명현이 있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마녀는 살짝 놀란 듯 아래를 보았다. 명현이 깔아둔 신문지 탓이라는 걸 알고는 금방 아무렇지도 않은 양 표정을 가장하긴 했지만.


 "이렇게 일찍 네가 웬일이야? 학교는."

 "일찍 끝났어요. 야자 못했으니까요."


 명현이 하는 말에 마녀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한 얼굴이다. 그러면서도, 평소와는 달리 멋대로 방에 들어오거나 앉지 않고 창가에 선 채 잠자코 명현만 쳐다보고 있는 것도 수상쩍어 보이긴 했다. 명현은 말 돌리지 않고 직접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 폭발, 당신 탓이에요?"

 "응. 아마도."

 "대체 무슨 짓이에요, 이게!" 


 명현은 참지 못하고 마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마녀는 고개를 숙인 채 그가 하는 말을 잠자코 들었다.


 "학교에 경찰이 왔어요. 당신이 테러범이래요. 담임은 나한테 아는 거 없냐고 물어봤고, 경찰은 지금 당신 찾으러 다닌다고 하대요? 이제 어쩔 거예요? 이젠 함부로 밖에 쏘다닐 수도 없는 거 아녜요!"

 "그거 말인데,"

 "뭐 하는 거예요, 지금!"


 마녀를 밀쳐내고 명현은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활짝 열린 창을 닫고 커튼을 친 뒤 그는 마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 장난해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

 "왜요? 변명이라도 하려고요?"

 "찾았어, 반려 말야."


 마녀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명현이 깨닫기까진 다소 시간이 걸렸다.


 "어디서요? 어떻게 찾은 거예요?"

 "가까운 곳에 있었어. 정말이지, 그걸 눈치 못 채고 있었다니."

 "그러니까, 대체 어딘데요? 그 반려란 여자 있는 데가."

 "모르겠니?"


 눈을 치켜뜬 채 마녀가 말했다.


 "너도 오늘 봤잖아. 그 애."


 마녀의 말에 명현은 흠칫 놀랐다. 봤다고? 오늘? 어디서……. 그 때 명현은 체육관 뒤에서, 은비와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혹시, 그러니까 지금 제가 생각하는 게,"

 "맞아."


 여전히 의구심에 찬 명현에게 마녀는 분명하게 확신을 심어 주었다.


 "반려는 은비, 그 여자애 안에 있어."







 나도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 미약한 흔적을 되짚어 가다보니 그냥 걔를 찾았을 뿐이야. 체육관 뒤에 있었을 때, 네가 걔를 밀쳤었지? 그 때 살짝 그 애 안에 있던 반려가 겉으로 드러난 순간이 있었어. 그걸 확인하러 간 건데, 갑자기 폭발이 일어나서 말야.


 '누군가 방해하는 사람이 있는 걸까요?'


 계단을 걸어 오르며 명현은 머릿속으로 마녀와 대화를 나눴다. 이제는 이런 대화 방식에도 완전히 익숙해져 있다. 한 밤중의 학교 안, 수위 눈을 피해 옥상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며 명현은 마녀의 말을 들었다.


 아마도. 이제껏 방해해온 녀석과 같은 녀석이야. 어째서인지 몰라도 반려를 자꾸 감추려고 했지만, 이제 내가 찾아버렸으니까 마지막으로 발악을 했던 건지도 모르지.


 '그 반려가 은비 안에 있다면, 은비는 괜찮은 건가요?'


 괜찮아 보여, 아직까지는. 마녀가 하는 말끝에 남긴 묘한 여운에 명현은 불안해져서 바삐 걸음을 옮겼다.


 '아직까지는?'


 시간이 더 지체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진 아무도 모르는 거야.


 마녀가 하는 얘기를 들으며 명현은 어느새 옥상 문 앞에 다다랐다. 평소 잠가두는 철문은 누군가 자물쇠를 풀어놓은 채였다. 명현은 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갔다. 주위는 어두컴컴했다. 선선한 바람 한 줄기가 명현을 스쳐 지나갔다. 명현은 옥상 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보다 앞서 옥상에 도착한 누군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명현이니?"


 목소리는 매우 낯익은 것이었다. 명현은 그녀가 선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옥상 위에서, 그녀는 발치 아래 시커먼 어둠이 입을 벌린 지면을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명현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려 그를 대면했다. 그녀 얼굴을 보자, 명현은 자연스레 그 이름을 불렀다.


 "은비, 너 맞지?"


 난 여기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은비가 답했다.


 "설마 네가 먼저 전화를 걸어줄 준 몰랐어. 이런 시간에 만나자고 한 것도, 장소가 학교 옥상이란 것도 놀랐고."

 "물어볼 말이 있었어."


 은비 앞에서 명현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긴 했지만, 은비 앞에 서면 어째선지 자꾸 긴장부터 하게 된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명현은 그녀에게 줄곧 그가 알고자 했던 질문을 던졌다.


 "은비 넌, 대체 누구인 거야?"

 "……알고 있었어?"


 명현의 질문에 은비는 대답 대신 도로 질문을 던졌다. 명현은 대답하지 않고 은비를 빤히 쳐다보았다. 답변을 요구하는 그의 눈짓에 은비는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나도 잘 모르겠어. 글쎄, 나는 누구인 걸까?"

 "?"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야.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돼 버린 건지. 부모님이랑 헤어진 후로, 이렇게까지 불안했던 적이 없었어. 매일 밤 악몽 때문에 제대로 잠도 설치고, 주변에선 기분 나쁜 일도 자주 생기고."

 "은비야?"

 "날 안아줘."


 돌연 은비가 꺼낸 말에 명현은 움찔거렸다.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 탓이다. 그런 명현에게 한 발짝 한 발짝씩 다가서면서 은비는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냈다.


 "안아줘, 키스해 줘, 사랑해 줘. 기댈 수 있게 해 줘. 불안하지 않게 제발 도와 줘."

 "은비야……."

 "왜 그렇게 놀라는데? 왜 자꾸 도망치는데? 내가 싫어? 키가 너무 커서? 얼굴이 못생겨서? 몸매가 좋지 않아서?"

 "그, 그런 게 아냐,"

 "그런데 왜!"


 뒷걸음질 치던 명현은 은비 눈가가 촉촉이 젖어드는 것을 보았다. 명현이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해하는 와중에, 은비는 아예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고 말았다.


 "흑, 흑……."

 "저기, 괜찮아?"

 "나 왠지 무서워……."


 흐느끼는 와중에도 은비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그건 꿈이 아니었나봐……."

 "……."

 "나, 사람을 죽였어."


 그녀 고백을 명현은 귀를 기울여 들었다. 마녀가 말한, 반려에 대한 힌트가 그녀 말 속에 있는지도 몰랐다.


 "정신 차렸을 땐 이불 속에 있어서 몰랐어. 흑, 그런데, 낮에 네가 말한 게 생각이 나더라? 네가 말한 대로인지도 몰라. 어쩌면 나, 흑, 그 여자 죽여 버린 건지도 몰라."

 "그건……."


 은비가 기억하는 건 분명, 알영 귀신에 대해서일 것이다. 명현은 손수건을 꺼내 은비에게 건넸다. 알영 귀신에게도 분명, 이런 식으로 이 손수건을 건넨 적이 있었지. 그 여자에겐 딱히 잘해준 것도 없었는데, 한 번 기억을 떠올리니 연달아 그녀에 관한 기억이 하나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명현은 은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명현아,"


 조금 진정됐는지, 은비가 그를 불렀다. 명현은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째선지, 지금 대답을 해버리면 은비에게 화를 내 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은비는 다시 한 번 그런 명현을 불렀다.


 "명현아,"

 "……왜 그래?"


 간신히 화를 억누른 채 명현이 답했다. 은비는 조금 뜸을 들인 끝에 말을 이었다.


 "나, 나이를 먹는 게 싫어졌어."

 "……."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는 게 싫어졌어. 이 이상 키가 크는 건 사양이야. 지금도 콤플렉스인걸."

 "……."

 "그래도 여기, 이렇게 앉아 있으면 말야. 그렇게 내 키가 크단 생각이 들지 않는걸."

 "……."

 "명현아?"


 아무 대꾸가 없는 명현이 이상했던지 은비는 다시 한 번 그를 불렀다. 명현은 짤막하게 그녀에게 답했다. 왜? 은비는 그것만으로도 적잖이 안심이 되는지 얼굴에 미소를 뗬다.


 "좋아해."

 "……."

 "한 번 만이라도 좋아. 날 껴안아 줘."


 명현은 다시 대답을 망설였다. 은비가 자신을 유혹하는 것에 불편해하고 있었다. 낮에 봤던 그녀와는 달리, 지금 은비는 명현이 짝사랑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강해 보이지만 어쩐지 애처롭고, 안쓰러워 보이는 구석이 그녀에게 있었다. 그런 모습을 사랑해왔다고 명현은 생각했다. 지난 한 주 동안, 그가 혼자 사랑해왔던 은비 모습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래? 네가 사랑한 게 그 여자애라고? 확실해?'


 그 순간 마녀는 짓궂게 훼방을 걸어왔다.


 '똑똑히 봐. 네가 좋아하는 게 눈 앞에 있는 그 여자애야? 그 얘가 은비라고 확신할 수 있어?'

 '무슨 소리에요, 그게?'


 참지 못하고 명현은 마녀에게 물었다. 마녀는, 그의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그에게 직접 질문을 던졌다.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다고 그 애가 말했지? 너는 그 애를 좋아한다고 했어. 좋아한다는 건, 너는 알고 있다는 거야? 그 애가 누군지 말야. 네가 사랑하는 그 애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는 있는 거야?'

 '무슨 소리에요! 얘는 은비라고요. 제 친구요. 제가 누굴 사랑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느냐고요? 물론이죠!'

 '아니, 넌 아무것도 몰라.'


 머릿속을 파고든 마녀 목소리는 매섭고도 차가웠다. 명현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마녀가 할 말이 무엇인지 명현도 대충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넌 네가 좋아하는 게 누구인지 모르고 있어. 어때, 네가 좋아하는 그 여자는 누구지? 은비야, 아니면 내 반려야?'


==============================================

 <E. M. A.> 유혹 편입니다.

 쓰면서 기존 스토리라인을 조금씩 수정해가고 있기 때문에, 화수 번호가 제대로 맞는지 모르겠네요;; 계속 확인하면서 맞추고는 있는데 혹 헷갈려서 잘못 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양해 부탁드려요;;

 이야기도 슬슬 마무리 단계에 이르는 것 같습니다. 이번 화는 선택지가 없고, 최종 한 개 정도 선택지를 넣을 생각입니다.
 앞으로 약 한두 화 정도는 선택지가 없을 것 같아서, 되도록 연재 주기 줄일 수 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가능하면 다음 화는 일찍 올려볼게요. 그렇지 않으면 평소처럼 일주일 간격이 되겠지만요 ㅎㅎ

 다음 화 제목은 '등장'입니다. 결말에 가까워 오는만큼 마무리 잘 해야겠네요.

 그럼 모두 좋은 하루들 되시길^^;

?
  • profile
    클레어^^ 2011.08.10 05:06

    은비 몸에 반려씨가 빙의라니...;;

    은비는 무사하겠죠?

  • profile
    윤주[尹主] 2011.08.10 06:08

     무사하긴 합니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요 ㅎㅎ

     은비와 반려 얘기는 다음 화 정도에서 한 번 정리할 생각이에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860 Lady ~ 공략 불가 그녀 (Pilot) 4 윤주[尹主] 2011.08.09 529 1
859 (수필)프리휴먼 에피소드1 file dbeld 2011.08.09 709 0
858 성배:행복한 세상(계속) 2 드로덴 2011.08.10 700 1
» E. M. A. (1-7) 유혹 2 윤주[尹主] 2011.08.10 460 1
856 고등학교 1학년 때 썼던 손발이 오그라드는 자작 소설 12 시우처럼 2011.08.11 735 2
855 『각자의 시각에서 보는 감각 로맨스』횡단보도 9화! 2 ♀미니♂ban 2011.08.12 652 1
854 7차 비평 ; 이번엔 다소 비평 수위를 높여서... 9 윤주[尹主] 2011.08.12 674 3
853 초승달이 떠오를 때에(4) 황당한 첫만남 1 건망 2011.08.12 554 1
852 7차 비평 4 Mr. J 2011.08.12 663 1
851 7차 비평 : 이번 주말은 말복 7 시우처럼 2011.08.12 664 1
850 다시 님, <일반 사회>에 대한 추가 비평 1 윤주[尹主] 2011.08.13 620 1
849 태풍의 눈 2 모에니즘 2011.08.13 1298 0
848 [이번 것은 3인칭 시점입니다.]별의 이야기 Side A - 32. 그리고 그 후...(못 다한 이야기 1) 2 클레어^^ 2011.08.13 505 1
847 7차 비평 16 다시 2011.08.13 663 0
846 [정통 판타지] 연습작 #1 - 전장묘사 6 하르시온 2011.08.14 477 1
845 아름다운 공주 -2- 여행은 깨달음을 얻는 과정-3. 휴식1 3 다시 2011.08.14 501 1
844 4 file 스마호 2011.08.14 723 1
843 (작사) 내가 널 잊어야 하는 이유 1 ThePromise 2011.08.14 1109 0
842 Lady Dragon Knight (17) 3 윤주[尹主] 2011.08.14 459 1
841 (7차 비평) 가볍게 끝내는 나의 비평. 5 乾天HaNeuL 2011.08.15 643 1
Board Pagination Prev 1 ... 173 174 175 176 177 178 179 180 181 182 ... 220 Next
/ 220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제휴문의] | [후원창구] | [인디사이드연혁]

Copyright © 1999 - 2016 INdiSide.com/(주)씨엘쓰리디 All Rights Reserved.
인디사이드 운영자 : 천무(이지선) | kernys(김원배) | 사신지(김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