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0 02:59

성배:행복한 세상(계속)

조회 수 700 추천 수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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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옥상은 요새 정부가 추진하는 녹지화 사업으로 화분 투성이였다. 건물이 오래되어서 흙을 깔고 정원을 만드는 건 무리였겠지. 게다가 건물 옥상이란건 환풍기에서 뿜어져나오는 소음과 열 때문에 숨이 턱 막히는 곳이다. 그런 곳으로 왜 올라왔느냐고? 냉방을 안하는 새벽에는 환풍기가 조용하니까 그런거지 뭘. 저지대에 있는 병원이라 산너머의 일출을 본다던지 그런 로망은 없지만, 건물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돌풍은 맞을 수 있다. 나는 바람 맞는 것을 좋아해서, 태풍이 오는 8월이면 비가 오거나 말거나 밖에서 바람에게 두들겨맞고는 했다. 아, 표현이 어째 좀 피학성 뭐시기 같은데.. 하여튼, 몸이 젖혀질 정도의 강풍에 맞서다보면 생각은 뒤로 물러나고 바람을 맞고있는 내 몸에만 집중하게 되더라. 그 때 느껴지는 시원함과 압력이 참 좋아서, 지금처럼 바람 맞는 게 취미가 되었다. 옥상에서 맞는 바람이 한여름 태풍처럼 만족스러운건 아니지만.

 

 하지만 생각을 날려버리기엔 역부족이다. 꿈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갑자기 등장한 그 거대한 형체는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나는 왜 갇혀있지? 벽 너머로 비친 동물은 대체 뭐고? 그걸 보고 느낀 기시감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하는거고?

 

 안정이 되질 않는다. 스스로 꿈에 대해 해석해봐야하나. 병원에서 줄줄이 식중독이 걸렸던 어쨌건 간에 공백이 생겼으면 다른 병원에서 땡겨오던지, 긴급 채용을 하던지 인턴이라도 굴리던지 원장이 좀 행동을 해줘야하는거 아닌가? 의료업이 고객이 독촉한다고 일처리 빨라지는 직종도 아니고.. 아오.

 

 일단 내가 꿈을 자주 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안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불안 요소라면 많다. 알바 자리는 다시 구할 수 있을지, 군대 갔다가 벽보고 정자세로 앉아있는 놈 되지는 않을지, 대학 안가고 살 길은 있을지, 독도 문제나 중국의 역사놀음, 북한의 동향, 그 살리기 힘든 경제, 미국의 속국 수준으로 살아가는 나라 현실, 뻑하면 종결이니 여신이니 진지성이 사라진 기자들, 떨어질 수가 없는 유가에서 탈출할 생각도 않는 세상, 지구 온난화, 기후 변화로 붕괴되는 자연.. 나 하나만 걱정해도 힘들 판에 온 세상을 걱정하고 있다. 대개 이런 거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고민해야 될 것이지만.. 한 걸음만 물러나서 생각해보자고. 전문가들이 처음부터 전문가였겠는가? 문제의식을 갖고서 진지하게 임했기 때문에 전문가가 된 것이지. 나는 사람을 돕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사실은 장래에 무엇을 하고 살지 전혀 결단을 못내렸다. 그러니까 불안해 할 수 밖에.

 

 그래. 나 불안하다. 그렇다면 왜 항상 꿈 속에서 나는 갇혀있을까? 프로이드였나.. 그 사람은 성적 본능 뭐시기가 꿈으로 나타난다고 했었지. 약간 뿌연, 그러나 투명한 원통에 갇혀있는 나. 거기에 외설스런 해석을 해보자면.. 아직 동정을 못 떼서 이런 걸지도 모른다. 아 젠장. 원통과 갇혀있는 나 자신을 무엇으로 치환할 지는 남자라면 알거라고 생각한다. ..이 뒤엣 말을 생각했다간 여성부에서 잡아갈게 틀림없다. 그 철면피 녹도둑들이 떼어먹은 예산이 얼만데. 남자들 생각 읽는 기계를 개발했을 지도 모른다. 어휴. 내가 군대에서 장교였다면 여성부 건물 앞으로 행군하는 안건을 올렸을거야.

 

 혹은, 아주 간단하게 접근해서 '갇혀있는 나'를 '납치당한 나'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곳에 좋아서 들어갔을 리는 없잖아. 나가는 법도 모르고. 피랍당한 나, 불안한 나.. 납치당할까봐 두려워 하는 나? 하지만 내가 왜 납치를 당하지? 그야 세상이 험해서 도로 대변에서 차에 구겨넣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살면서 항상 그런걸 걱정하는 건 아니다. 내가 착해빠진 탓에 도와주다가 뒤통수맞고 배갈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야 하지만.. 쩝. 결론이 안나오는군.

 

 그렇다면 왜 이제껏 갇혀있기만 했던 내 앞에 그 짐승의 머리가 나타났을까? 현실과 연동해서 생각해보자. 나는 꿈을 꾸기 시작한 이래로 특별한 일을 겪은 적이 없다.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월례행사 수준이었으니까. 오히려 꿈을 꾸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이었다. 현실같은 꿈이니 더더욱. 매일 그 꿈을 또 꿀 것이라는 불안이 악몽으로 이어지고, 그 악몽이 다시 불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정신과 치료를 받아볼까 생각하고 있는 참이니 예전보다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나아지진 않았다.

 

 다시 외설스런 접근. 경험이라고는 기억도 안나는 몽정이 전부인 나에게 나타난 것. 그건 혹시 나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 정확히는 장래를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났다, 뭐 이런 의미가 아닐까? 구태여 말하자면.. 이름을 모르는 그 간호사. 내 말을 질리지도 않고 계속 듣고있는 그 여자. 아니 근데 왜 덩치가 2미터는 되는 짐승의 모습으로 꿈에 나타나는겨? 외설이고 나발이고 한 입에 잡아먹힐텐데! 혹시 이건 육감Sixth sense 인건가? 그 여자 겉으론 예쁘고 좋아보여도 속엔 난폭한 동물이 숨어있다 뭐 그런거야? 으.

 

 그리고 한 가지 더. 그 동물..은 대체 꿈 속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이유는 모르지만 멈춰섰다가 움직이기를 반복했는데.. 시계방향으로 움직인 것도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고.. 반시계면 과거, 시계면 미래. 이렇게 생각해보면 머잖은 미래에 그 동물로 상징되는 뭔가가 나에게 다가올 것이라는 의미인가? 내가 갇혀있던 통 속에서 낸 소리를 감지하고 갑자기 확 다가왔다는 건.. 내가 뭔가를 했기 때문에 그게 앞당겨질 거라는 해석도 되고..

 

 꿈보다 해몽 돋네. 너무 불안해서 그런지 헛소리가 다 그럴듯하게 생각된다. 곧 있으면 아침밥 나올 시간이니 얼른 병실로 돌아가야겠다. 코 주저앉고 다리에 금 간 녀석이 계속 이러고 다니면 Ca가 아니라 Carbon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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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1.08.10 08:58

     글 순서가 보다 앞서 있었네요;; 내일이나 들어와 봤으면 새 글 올리신지 몰랐을지도요;;;


     아무튼 재밌게 봤어요^^;

  • ?
    드로덴 2011.08.10 08:59

    창도에서 임시로 저장을 하게 되면 그게 글 올려진거로 간주되어서 이렇게 됩니다.

     

    가끔씩 올렸다가 삭제해서 최근 글이라는거를 어필해야해서 짜증남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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